레터스 투 줄리엣 - 일반판 - 아웃케이스 없음
개리 위닉 감독, 아만다 사이프리드 외 출연 / UEK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입버릇처럼 페트병의 뚜껑을 딸 때마다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비빔밥 비빌때도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사실 내가 혼자인 여자라서 가장 짜증이 날 때는 내가 원하지도 않는 남자들이 내게 무작정 달려들때다. 그게 제일 피곤하고 그게 제일 속상하다. 물론 내가 남자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거나 하는건 아니라서 남자들이 마구 쌓이는 타입의 여자는 결코 아니지만, 어쩌다 아주 드물게 내가 원하지도 않는 놈이 남자랍시고 나를 건드려 볼려고 할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르고, 그때가 바로 가장 혼자인 여자로서 힘이 드는 때다. 내가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내가 누군가의 파트너라는 혹은 애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면, 너 따위가 나한테 감히 얼씬도 하지 못할텐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때가 가장 피곤하다. 바로 그때, 나는 사랑이고 조건이고 뭐고 아무것도 상관없이 그냥 확 결혼을 해서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이미 누군가의 아내야, 그러니 나를 좀 내버려둬, 하고 말할 수 있도록.

그러나 내가 혼자인 여자라서 가장 좋을 때 역시 남자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는 거다. 나를 사랑하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 나는 누군가에게 속해있지도 않고 나를 좋아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도 아니다. 나를 좋아하는 것은 지극히 자유롭고 안정적이며, 나 역시 자유로운 여자라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에 거침이 없다. 나는 오늘 이 남자를 만날 수도 있고, 내일 저 남자를 만날 수도 있다. 내가 오늘 집에 가는 길에 아무나 붙들고 두시간 동안 코피 쏟아가며 질퍽거리는 밤을 보낸다 해도, 아무도 내게 손가락질 할 수 없다. 그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고, 내가 만나고 싶은 남자를 내가 원하는대로 만날 수 있다. 그 점이 가장 신나는 점이고, 그럴때마다 아 내가 혼자인 여자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곤 하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는데 갑자기 내 자신이 혼자라서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나는 아직도 괜찮은 남자를 만날 확률이 아주 적지만 그래도 있고, 또 만나서도 괜찮은 상황이다. 만약 내가 마음에 들어하고 또 나를 마음에 들어하는 누군가와 언젠가 어딘가에서 만난다면 우리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나도 너를 사랑하고 너도 나를 사랑하니 우리 서로에게 연인이 되어주자, 고 해도 정말이지 괜찮은 것이다. 그것이 무척 다행이라 여겨지는 바로 그런 영화인 것이다.

소피는 찰리를 사랑하고, 찰리에게 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약혼자에게 우리는 아니라고, 말을 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뿐이랴, 그 과정을 끝내고 나서는 다시 찰리에게 날아가 나는 이제 혼자이고 너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과정까지 필요하다.

소피는 이 두가지의 어려운 과정을 다 끝냈다. 이것은 영화이니만큼 그 일들을 소피는 해냈고, 그것을 나는 관객으로 앉아서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장면들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생각했다. 만약 내가 소피라면, 일단 약혼자에게 우리는 아닌 것 같아, 라고 말을 할 수 있다. 내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데 대체 어떻게 이 약혼을 유지하고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한 사람을 가슴에 품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나도 할 수 없는 일이니, 그만큼의 용기는 나도 억지로 쥐어 짜내어 나올 수 있다. 이봐요, 우리는 아닌것 같아요,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뒤, 그 뒤의 과정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찰리에게 날아가는 일, 날아가서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일, 나는 그것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날아가기는 하지만, 반갑게 인사를 하지만, 사실은 너를 보러 왔다고, 나는 약혼을 깼다고, 그 말은 내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걸 어떻게 해, 대체 어떻게. 거기까지의 용기는 내게 없다.

그래서 로맨스를 보여주는 영화가 좋다. 내가 못하는 걸 그녀들이 한다. 내가 내지 못하는 용기를 그녀들이 낸다. 내가 꺼내지 못하는 말들을 그녀들은 꺼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영화를 보고 달라지느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지만, 보는 동안에는 한껏 꿈꿀 수 있다. 나라면, 나였다면, 그랬다면?

로맨스 영화의 여주인공들은 참 예쁘다. 어쩌면 그렇게 안찌질할까. 현실의 나는 이토록 찌질한데. 하고 싶은 말을 하지도 못하고 용기도 없는데. 찌질해서 용기가 없는걸까, 용기가 없으니 찌질한걸까. 에라이 모르겠다. 그런 여자들도 있고 나같은 여자들도 있고 그러니까 세상이 유지되는거지.

지구는 둥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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