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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성기 옮김 / 이레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했던가.
우리가 어떤 잘못을 하게 되면, 그게 잘못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누군가 내게 비난을 하고 욕을 하고 훈계를 할 때, 그 앞에서는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변명도 해보고, 핑계도 대보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가 잘못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스물 다섯살 때였나. 짝사랑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러니까 그때는 그게 짝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 남자의 걷는 모습도, 냄새도, 농담까지도. 뭐 하나 맘에 들지 않는게 없었다. 그렇게 그를 혼자 좋아하고 있을 때, 후배가 내게 저 오빠 좋아해요, 라고 고백해왔다. 그러니 잘 되게 좀 도와달라는 식이었다. 아뿔싸, 나도 좋아하는데. 내가 그를 ‘먼저 알았고 먼저 좋아했’다는 것 쯤은 후배가 ‘먼저 고백’한데서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표면적으로 나는 그 둘이 잘 되게 도와주려 애썼다. 사실 내 진실한 마음은 그 둘이 잘되는걸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명이 모여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을 때, 후배는 내게 그를 불러달라고 했다. 고백을 할거라고. 나는 그를 불러내줬고, 계속 술을 마셨다. 다음날 후배에게 물어보니 그의 대답은 노, 였다고 한다. 그는 동갑의 다른 여자를 좋아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후배는 내게 혹시 그게 언니 아니예요? 라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아닐거라고. 그러나 사실은 그러길 바랐다.
이 책 속의 선생님도 아가씨를 먼저 알았고, 먼저 마음에 품었다. 그러나 뒤늦게 알게 된 친구가 ‘먼저 고백’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그를 말린다. 아가씨를 좋아하지 말라고. 그리고 자신은 아가씨에게 청혼한다.
그리고 며칠 뒤 친구는 자살한다. 유서에는 선생님을 원망하는 어떤 문장도 없다. 친구가 자살하기 전에도, 친구를 말렸던 자신이 아가씨에게 청혼했단 사실에 대해 내내 불편해했던 선생님은, 친구가 자살하자 그 마음속의 짐을 덜어놓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가씨에게도 말할 수가 없다.
모든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친구의 애인을 뺏어놓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한 여자와 잘되기 위해 친구를 말린 누군가는 평생 편안한 마음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 그때 말할걸. 그때 말했어야 했어. 내가 그러는게 아니었어.
그를 힘들게 하는건 타인의 비난이 아니었다. 원래 악한 사람으로 태어나는게 아니라 상황이 되면 인간은 모두가 악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던 자기 자신이었다. 자신이 가장 경멸했던 행동을 자신이 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는 기분. 그는 그런 마음상태로 도무지 세상에 나갈 수가 없다.
나도 몇번. 아니 어쩌면 아주 많이.
타인의 어떤 행동들을 보고 경멸해놓고서는 내가 저지른 적이 있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 대해 치를 떨기도 했다. 어떻게 내가 이래, 어떻게…
어쩌면 이 책속에서 선생님이 말했듯이, 그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같은 상황이어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수 있었겠지만.
이제와서 내가 저질렀던 잘못들을 후회해봐야 무얼할까. 다 부질없는 짓. 그저 나는 그 잘못들을 다시 또 반복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한다고 해서 내 마음의 빚이 덜어지는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마음이 늘 무겁다. 내 마음이 무거운 건 다른 누군가의 탓이 아니다. 그저 내가 스스로 알아서 느끼는 것 뿐이다.
어쩌면 마음은 그래서 존재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잘못을 잘못으로 인식하게 하기 위해서. 다시는 그런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그게 마음이 존재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