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의 마지막 로맨스 - 아웃케이스 없음
조엘 홉킨스 감독, 더스틴 호프먼 외 출연 / UEK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누구나 살다보면 삶의 비참함을 경험하게 될때가 있다. 남자는 딸아이의 결혼식에서 딸아이의 손을 새아빠아게 넘겨야했고, 비행기를 놓치고, 직장을 잃었다. 그런 굵직한 일들이 아니어도 충분히 비참하다. 딸아이의 결혼식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야 한다는거, 그 자리에서 빛나고 싶은데 핸드폰을 받아 일을 하게 해달라고 말해야 한다는 거, 그 전화를 받으러 나가야 하는데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그 사이로 나가야 한다는거, 나가면서 발을 헛디딘다는 행위등. 게다가 전(前)부인은 아직도 남자가 자신의 앞가림을 제대로 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한다. 남자는 그저 비참하다.

여자도 비참하다. 엄마는 자꾸만 남자를 만나라고 하고, 남자를 만나러 간다고 하면 어떤 옷을 입었냐고 전화한다. 남자를 만나고 있을때도 전화를 한다. 여자는 엄마의 전화를 무시할 수가 없다. 엄마가 혼자니까. 자신이 전화를 받아주지 않으면 엄마는 어디에 대고 말하겠는가. 게다가 여자는 자신이 포함된 자리에서 자신이 언제나 주변인이라고, 바깥으로 떨어져 나가있다고 느끼게 된다. 소개팅을 한 자리에서도 우연히 소개팅남자의 친구들과 합석하게 되고 그녀는 그저 멀찌감치 떨어져 웃는것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녀는 일주일에 두번 작문수업을 듣고, 혼자 있는것이 편하다. 까페에서 책을 읽고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다. 예쁘지도 않고 멋부리지도 않는다. 그렇게 독신으로 나이가 들어가고 있어서 주변에서는 그녀에게 남자를 소개시켜주기 위해 애를 쓴다. 아이구, 나는 그녀가 자꾸 나를 닮은것 같아서, 아니 내가 그녀를 닮은 것 같아서 덩달아 비참해지고 쓸쓸해진다.

그리고 그런 비참한 남자와 여자가 만난다.

그 둘은 대화를 한다. 서로가 얼마나 지독한 날들을 보냈는지를 얘기하고, 자신의 다음 일정을 얘기한다. 남자의 딸의 결혼식에 같이 가고, 같이 춤을 추고, 남자가 작곡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듣는다. 여자는 혼란스럽다. 남자와 여자는 하룻밤을 꼬박 새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렇게 밤을 새워 놀아본것은 정말 오랜만이에요, 라고 여자는 얘기한다.

새벽에 헤어진 그들은 정오에 다시 만나기로 한다. 그러나 그자리에 남자는 오지 않는다. 남자가 오지 않는 이유를 여자는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남자가 나오지 않는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포도를 사가지고 웃으며 그 자리에 나갔으면서도. 지금 돌아서 이 남자와 헤어지는 새벽, 버스를 타고 가는 그녀의 표정은 기대로 가득 넘쳤으면서도.

그러나 남자는 말하고 싶다. 자신이 왜 나오지 못했는지를. 바로 여기, 바로 여기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인데, 나는 ‘대화’야 말로 오해를 이해로 바꾸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며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말하지 않으면 오해가 쌓인다. 그러나 말을 하는 순간, 우리는 그게 무엇이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 맙소사, 너에게 그런 일이 있었던 거구나, 하고. 전하지 못한 말들은 효력이 없다.

여자가 나랑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그녀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말한다.

나는 단념하고 포기하는게 더 편해요. 그런데 당신때문에 힘들어요.

단념하고 포기하는게 더 편한 사람앞에 나타나서 단념과 포기를 할 수 없도록 만들다니, 자꾸만 기대하게 만들고 자꾸만 꿈을 꾸게 만들다니. 지금껏 살아온 내 삶의 패턴을 바꾸어버리려고 하다니.

남자는 그녀에게 물었다.

단 하루만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어떻게 살고 싶냐고. 그러자 그녀는 스페인에 있었으면 좋겠고, 글을 쓰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자 남자가 말했다.

그곳에 나를 초대해줘요, 라고.

이별은 상처라고 생각하는 여자가 남자를 받아들여야 하고, 모든것을 쥐고 있으려고 했다가 결국 모든것을 놓아버린 남자가 마지막 기회를 잡으려고 한다. 이것이 자신의 마지막 기회라고. 여자는 영국에 살고 남자는 미국에 산다. 여자는 남자에게 어디에 사느냐 묻고 남자는 이제 거주지를 옮길거라고 말한다.

묻고 싶은 말들이 많아졌다.
당신이 단 하루,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싶어요?
그곳에 나를 초대해줄래요?
어디에 살아요?

로맨스는 신이 주신 가장 커다란 축복이 아닐까. 로맨스는 어디든 찾아가니까. 젊고 예쁜여자에게도 그리고 나이들고 예쁘지 않은 여자에게도. 키 크고 잘생긴 남자에게도, 키 작고 주름이 많은 남자에게도. 영국에 있는 여자에게도, 미국에 있는 남자에게도. 로맨스는 그들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준다. 20대에도 50대에도. 그것이 로맨스의 미덕이다. 다가오는 로맨스를 우리가 밀어내려고 애써봤자 떨쳐지지 않는 이유이다. 로맨스는 버스 안에 홀로 앉아 있어도 웃게 만들고, 로맨스는 미국에 살면서도 영국으로 이사오게 만든다.

그리고 로맨스는,
눈물을 흘리게 하며, 그 눈물을 닦아주기도 한다. 계속 찾아와도 좋은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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