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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35
프랑수아 라블레 지음, 유석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9월
평점 :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두 부자(父子)의 연대기.
[가르강튀아]
소크라테스를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겉모습만으로 보아서는 양파 껍질 한 쪽도 주려 하지 않을 정도로 그의 육신은 추하고 우스꽝스러웠다. 뾰족한 코에 눈은 황소눈이고, 미친 사람 같은 얼굴에 행동거지는 어수룩하고, 또 촌스런 옷차림에다 돈하고는 인연이 멀고 여복도 없으며, 국가의 어떤 직무에도 맞지 않았지만, 언제나 웃고 다니면서 누구에게나 옳다고 맞장구치며 같이 술잔을 기울였고, 항상 비웃어댔지만 신과 같은 지혜를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이 상자를 열어보게 되면, 그 안에서 여러분은 인간의 능력 이상의 지혜와 놀라운 덕성, 꺾을 수 없는 용기, 비할 데 없는 절제, 확실한 평정, 완벽한 자신감, 또는 사람들이 그토록 불철주야로 쫓아다니며, 일하고 항해하고, 전투를 벌이면서 얻으려는 것에 대한 믿을 수 없는 초연함과 같이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천상의 약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작가 서문 한번 끝내준다. 내 책에 대해서도 한 거지 같은 놈이 그렇게 말했다. 똥이나 처먹어라. 술 냄새가 기름 냄새보다 얼마나 감미롭고 즐거우며, 간절하고, 신성하고 달콤한 것인가! 라며 자기 글을 비난하는 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더니 그리고 너희들, 당나귀 좆 같은 놈들아. 다리에 종양이 생겨 절름발이나 되어버려라! 라고 대놓고 깐다. 무지 후련하다.
3장에서는 섹스를 '등이 둘 달린 짐승놀이를 하며 즐겁게 살덩이를 비빈다' 거나 ' 엉덩이 조이기 놀이'라고 표현한다. 여러 종류의 책을 봤지만 이런 식의 표현은 처음이다.
어릴 적부터 여자 맛을 아는 가르강튀아의 고추를 시녀들은 나의 작은 통 마개, 나의 가시, 나의 산호 가지, 나의 꼭지, 마개, 나사송곳, 피스톤, 드릴, 도래송곳, 느러뜨린 보석, 아래로 세게 지는 딱딱한 막대기, 곧추 선 찬장, 작은 빨간 순대, 성과 없는 작은 불알이라고 불렀단다. 글의 느낌이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희랍인 조르바>와 매우 비슷하다. 이를테면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멋진 바지 앞주머니를 열고 그의 물건을 꺼내서 공중에 쳐들고 신나게 오줌을 싸서 여인네와 이이들을 빼고 26만 4백 18명을 익사시켰다는 식.
전쟁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잔인한 내용이 슬슬 나오는데, 외데몽의 말은 죽어 나자빠져 있는 크고 뚱뚱한 놈의 불룩한 뱃속에 오른발이 무릎 있는 데까지 박혀버려 빠져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가르강튀아가 막대기 끝으로 물속에 잠긴 놈의 창자를 쑤시기 전까지는...이런 종류의 잔인함에는 처음보다 온갖 잔혹과 유머가 더욱 많이 가미되어 있는 편이다.
가르강튀아가 빗으로 머리 손질을 하다가 베드숲 공격 때 머리카락 사이에 남아 있던 대포알들을 한 번 빗을 때마다 일곱 개 이상씩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고 그랑구지에는 이(머리 피 빨고 사는 벌레)라고 생각했다고! 혼자 읽다가 낄낄거릴 정도의 기발함.
그리고 이 시기 쯤 쓰여진 많은 책들은 이렇게 잔치를 위해 준비한 음식을 각 몇 마리까지 구체적으로 적는 것이 유행이라 따른 것처럼 보인다.
가르강튀아는 뭔가 끝난다는 느낌이 없이 수도사의 말로 마무리짓는다. 물론 전쟁이 끝나고 수도사의 공로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텔렘 수도원이 그들의 미래가 될 것임을 알리고 그 후의 인생은 수도원의 기초에서 발견된 수수께끼에 대한 중요한 암시임을 은근히 알리는 의미 있는 마무리라 생각해도 되지만.
수도사의 말은 아래와 같다.
사람들을 유혹하는 자들이란 시합을 주선하는 사람들로서, 그들은 보통 친구사이랍니다. 두 번 서비스를 넣은 다음에는 경기장 안에 있던 사람은 밖으로 나가고 다른 사람이 들어오게 되지요...경기가 끝난 다음 사람들은 환한 불 앞에서 휴식을 취하고, 속옷을 갈아입습니다. 그다음에는 보통 주연을 벌이는데, 승리한 사람들이 더 신나게 마시지요. 그러고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거지요.
[팡타그뤼엘]
가르강튀아처럼 작가 서문으로 시작되는데 자기가 하려는 팡타그뤼엘에는 조금도 거짓이 없다고 강력히 말하고 있다. 앞의 것과 재료가 비슷하다 말하면서 소변으로 사람들을 익사시켰다는 등의 이야기로 가득했던 일대기와 비슷한 이것이 과연 정말 거짓이 없는지 두고 볼 일이다. ㅋㅋㅋ 1장부터 말도 안 되는 일만 일어나고 그게 또 재밌다. 가르강튀아와 마찬가지로.
저자가 현학적 사람들을 비판하는 글을 팡타그뤼엘이 말한 리모주 출신 학생의 일화를 통해 보여주는데 이는 평소의 내 생각과 일치한다. 즉, 사람들이 쓰는 언어에 따라 말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 괜히 있어 보이려고 온갖 어려운 말들을 그러모아 표현할 필요는 없다는 것.
7장에서는 생 빅토르 도서관에 비치돼 있는 도서목록이 장장 9페이지에 걸쳐 쓰여 있는데, 교묘한 제목바꾸기와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작가에게 붙여주는 풍자는 기발하기 짝이없다.
귀찮아서 대충 읽고 넘어갈 독자가 많을 수 있겠는데 한 글자도 놓치지 말고 각주와 함께 읽어볼 만한 부분이다.
너무 원통해서 수치심 때문에 상스럽게 똥을 싸버렸다는 얘길 보니 갑자기 옛날에 우릴 괴롭힌 놈의 집 안방에 가서 똥을 싸놓고 나오자던 미연이의 복수 방법이 떠올랐다. 물론 크게 관련 있는 경우는 아니지만 무언가 너무 억울하고 수치스러울 때 그는 왜 '상스럽게 똥을 싸버렸다'는 표현을 했을까? 아마도 그 마음과 본능적인 행동을 같게 하여 좀 더 그 심정을 극대화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지. 아니면, 더욱 수치스러운 행동을 통해 마음을 해소하는 것일 수도 있고.
온갖 말장난과 풍자가 가득한 이 책에서 오늘날과 비슷한 모습을 발견했다. 바로 '현명하게 떨어지는 자는 다리 위를 걷지 않는다'인데, 이것은 '현명하게 걷는 자는 다리에서 떨어지지 않는다'의 위치를 바꾼 말장난으로 재밌는 것은 최근 '비가 오려나, 빨래야 에미 걷어라', '보일러 댁에 아버님 놔드려야겠어요' 와 같은 말장난이 신기하고 해서 자주 사용했던 기억에 한참을 웃었다는 것이다.
참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가 이 책에서도 역시 술을 마시는 행위가 굉장히 기본적이고 중요한 듯 묘사되었다는 점인데, 심지어 파뉘르주가 살려 놓은 에피스테몽은 3주 동안 목이 쉬고 마른 기침이 생겨 술을 많이 마시지 않으면 잘 낫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솜씨 있게 고쳐졌다는 부분까지 있을 정도로 술이 생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마음이 백번 아니 천만 번 이해가 갔다는 애주가의 말씀.ㅋㅋ
책의 모든 부분에서 소르본 신학자들을 비판하고 있는데, 죽음을 경험한 에피스테몽이 만난 영웅들은 사후세계에선 수전노, 소몰이꾼, 방앗간 주인, 식충이 등이 되어 있더라는 말을 하며 신학 세계를 제대로 까고 있는 그 또한 수도원 소속이었다. 그 어떤 것을 비판하든 무조건 그것에 대해 잘 알고 나서 해야 함이 절절해지는 부분이다.
와, 이 사람 장난 아니다. 팡타그뤼엘이 혀로 군사들을 비로부터 피신할 수 있게 하는 동안 저자는 그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데 그 몸 속에 신세계가 있더라는구조.(대단하다, 더 이상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몸 속에서 몇 달 간을 살다 나와 드디어 저자와 팡타그뤼엘이 만나는 장면까지 부드럽게 연결하고 있다. 그리고 병에 걸린 팡타그뤼엘의 오줌에서 온천이 생겨났더라는 결말.
천박하고(그 의미 그대로의 천박 말고 知를 넘어서다 보면 얻게 되는 솔직함 같은) 놀라운 작품이다.
아래는 오탈자로 의심되는 부분.
135쪽 밑에서 3줄, 당했전 -> 당했던
167쪽 각주 319가 두 개고, 321이 없다.
171쪽 1줄, 끼워주세요-> 끼어주세요 (물건을 끼워 넣는 거 아닌가?)
244쪽 각주 444번은 20장 220번을 보라 하는데 관련이 없어 보인다.
336쪽 밑에서 2줄, 방식이로든 -> 방식으로든
395쪽 5줄,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또는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전자가 더 나을 듯.
425쪽 밑에서 3줄, 동료들와 -> 동료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