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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로이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75
사무엘 베케트 지음, 김경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0월
평점 :
암호로 쓰여진 듯한 글.
아는 이의 추천으로 읽은 처음 접한 베케트의 소설.
음향과 분노를 읽었을 때보다는 덜 화가 나지만 이렇게 친절하지 않은 글은 별로 반갑지가 않다, 그렇다고 내가 친절한 글만 읽는다는 뜻은 아니고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 한다는 뜻이다.
암호를 쓸 것이면 그냥 자신의 일기장에 쓰면 될 일이다.
작가는 '하나도 하지 않았지만 조금은 했다' 식의 말투를 즐겨 썼다.
의도가 뭘까? 어차피 언어는 인간이 만들었으니까 의미가 클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의 과거 그것과 같은 건가? 아니면 그게 바로 삶의 비밀이라도 된다는 건가.
2부의 256쪽에 화자가 긴 시간 동안 빨 수 없는 셔츠를 더 오래 입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셔츠를 입은 내용을 보니 몰로이가 1부에서 8개의 빠는 돌을 차례대로 공평하게 빨기 위해서 길게길게 나열했던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셔츠도 빨고 돌도 빠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아 언어에 대한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을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내 생각에 베케트는 수학 중에서도 확률이나 통계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았었지 싶다.
다음과 같이 작품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집 안으로 들어와서 이렇게 썼다, 자정이다.
비가 창문을 때리고 있다. 그때는 자정이 아니었다, 비가 오고 있지 않았다.
1951년에 출간됐다는 이 책이 그 시기에 앞으로 유망할 책이란 평을 받았던 것은 분명하겠지만, 놀라운 글들이 범람하는 지금은 그렇다고 하기 어렵다. 그저 놀라우려고 자신만 아는 것들을 읊조린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장정일의 희곡이나 시보다 소설을 더 선호하듯 베케트 역시 소설보다는 희곡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이 작품이 전통적인 소설 속의 이야기 전개 대신에, 이야기하는 방식과 글이 쓰여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메타픽션 경향을 띠고, 이런 경향은 1950년대 프랑스 문학 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며 누보 로망(새 소설)이라는 독특한 현상을 탄생시켰다는 것은 그냥 우리가 알면 되는 것이고 이런 문구를 보고 뭔가 대단한 것을 기대하고 이 작품을 본다면 필시 실망을 안게 될 것이다.
아래는 오탈자로 의심되는 부분.
119쪽, 밑에서 9줄 : 안 돼지 -> 안 되지
156쪽, 1줄과 155쪽 끝, 184쪽, 밑에서 2줄 : 이빨 -> 이
173쪽, 1줄 : 틀린 점 -> 다른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