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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지금 새벽이야 - 스물셋 지도 없이 떠난 세계여행
김신지 지음 / 한길사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예전에 비해 해외 여행객이 늘어가는 추세에 여행에 관한 책들도 많이 쏟아지고 있다. 막상 해외 여행을 떠나려 하면 두려움이 앞서고 비용이나 시간적 여유가 없어 쉽게 결정하긴 어렵다. <여긴 지금 새벽이야> 저자 김신지는 스물 셋 여름, 대학 등록금을 준비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틈틈이 모은 돈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1년간 세계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그런 것 같다. 이것 저것 다 신경 쓰이면 갈 수 없는 것. 가족, 내가 지금 해야할 일, 돈, 언어등.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이 모든 것 뒤로 하고 간다. 가족에게 미안해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잠시 접어두고, 돈이야 다시 벌면 되고, 언어는 부족하지만 그냥 부딪히며 소통한다. 한마디로 용기가 필요한 것이 여행이다.
이 책은 지인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늦은 밤 또는 새벽에 읽으면 감성적이라고 한다. 작가처럼 그녀도 여행을 가고 싶어한다. 그래서 영어 공부를 1년 넘게 하고 있다. 워킹 비자로 올 겨울에 떠날 예정이다. 젊은 친구들은 우리 세대보다 다른 나라에서 사는 걸 덜 두려워 하는 것 같다. 그점이 부럽기도 하다. 다른 나라에서 지낸다는 건 현재의 편안함을 버리고 고생을 하는 것인데 그들은 왜 굳이 힘든 선택을 하는 걸까? 아마도 불안한 현실 속 자신의 삶을 여행을 통해 뭔가(?) 얻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여행 한번 다녀왔디고 우리의 인생이 확 달라지거나 자신의 퀄리티가 올라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행으로인해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걸 경험하면서 나와 내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건 분명하다. 사람이 휠씬 융통성있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좀 인간적인 면모를 갖추게 되는 것 같다. 현실적으로 먹고 살기 빠듯해서, 세계여행은 꿈도 못 꾸는 사람이 많다. 그래도 좀 더 늙어 다리에 힘이 없어지기전에 여행을 가고 싶긴 하다.
<여긴 지금 새벽이야>는 과테말라, 쿠바,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스위스, 이탈리아, 모로코, 터키, 중동, 이집트 등 세계 각국을 돌아 다니며 그곳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문화를 익히며 작가의 생각들을 잘 표현한 책이다. 스물 세살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는 것도 많고 글도 정말 잘 써서 감탄했다.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도 일상적이고 평화로웠다. 다른 여행책과는 달리 여행의 정보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 놓으면서 각 나라에서 만나 사람들과의 정을 나누고, 함께 친구가 되는 사람 냄새 나는 책이다. 구경만 하다 오는 여행은 별 의미가 없지만, 그곳에 추억을 쌓고 오는 여행은 두고 두고 기억 속에 남을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여행을 낭만적으로 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대상보다 사랑하는 감정 그 자체에 빠진 사람처럼, 이 시간이 '여행'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많은 것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어떤 누추함이나 공생도 미화될 수 있고, 찾아간 여행지에 실망하더라도 그 실망을 만회라 무언가를 찾아내여 괜찮다고 말한다. 결국은, 그런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현실 자체보다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로, 행복이라 믿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p 103
나는 문득, 오래 전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있지,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발견하면 사람들은 그 페이지를 작게 접어두잖아. 당신은 그런 사람이야.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라 아마 모두에게 그럴 거야. 이건 믿어도 좋아."
어설픈 내 편현이 그녀에게 제대로 가 닿았을까, 표정이 멎은 그녀에 얼굴에 초조해지려던 찰나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그 말을 듣자, 긴 말을 한꺼번에 하고 난 뒤의 쑥스러움이 뒤늦게 밀려왔다.
"좋아, 저녁 먹으러 가자, 290페이지!"
"뭐야, 하하."
"왜, 내가 접어뒀다구. 봐봐,여기."
장난스럽게 어깨를 잡고 흔들자, 그녀는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제야 좀 안심이 되었다. p 240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네가 세상에서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행복하게 하라는 거야."
"그 사람을요?"
"아니, 너 자신을."
사비나와 나는 둘 다 잠시 말을 멎고 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도 낮은 호스텔 주방의 불빛 아래, 그 얼글은 더 없이 온화해 보였다. 내가 세상에서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p 300
가족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조금 뒤에 전화하겠다고 해놓고 잊어버렸고, 다음 주말에 내려간다 말하고선 늦잠을 자고 일어나귀찮은 마음에 일이 있다며 미루었다. 매번 나에겐 타야 할 버스가 있었고,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버스는 5분마다 한 대씩 오는데도 이번 버스를 놓치면 큰일 날 것처럼 굴었고, 어차피 이번 주에 다 끝내지도 못할 일이면서 붙들고 있는 게 마음이 편해 약속을 미루었다. 그러다가 걸지 못한 전화가 생각나고,갈 수 있는 신간이 생겼을 때는 지나버린 시간이 멋쩍어 다시 미루곤 했다 다음은 다음이 되었고, 그럴 때마다 나중에 잘하면 된다고생각했다. 챙겨둘 수 있는 미래 같은 건 없다고 말한 건 누구였더라. 안드레아가 말한 것처럼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시간은, 내가 선택한 시간일까, 미뤄버린 시간일까. p 314-315
"대화를 나눌 때마다 사실 우리는 영혼을 나누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대화 없이는, 그것이 꼭 언어만은 아니더라도 서로의 영혼을 볼 수 없다는 뜻이리라. p 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