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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평점 :
몇년 전 지인으로 부터 신영복 교수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선물 받은거라 처음 몇장은 읽었지만, 이내 읽기를 그만 두었습니다. 세상에 읽을 책이 얼마나 많은데 감옥에서 쓴 편지를 읽고 있을까 하면서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편견이였습니다. 최근엔 <강의>를 읽었습니다. 사실 다 읽은 건 아니고 읽고 싶은 부분만 골라 읽었습니다. 요즘 <논어>를 필사筆寫중이였는데, <강의>에 '논어'에 대한 부분이 있어서 그것만 찾아 읽었습니다. 사실 고전古典은 내 능력밖이라 <강의>를 전체를 읽을 자신이 없기 때문에 이였습니다. 세번째로 읽게 된 신영복 교수님의 책은 <담론談論>입니다. 앞의 두 권은 제대로 읽은게 아니라 세번째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이번에 일독했습니다. 물론 이 책도 제겐 결코 쉬운 책은 아니였습니다. 1부는 고전이 많이 나와서 반은 이해하고 반은 그냥 읽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경>, <주역> , 공자, 맹자, 노자, 묵자, 장자, 순자, 한비자등 하도 많이 나와서 헷갈리 정도 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다 이해하고 안다면 대단한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전 사실 1부보다는 2부의 글이 더 가슴이 닿았습니다. 감옥에서 지낸 이야기와 주변 수감자들의 에피소드가 뭉클했습니다. 20년간의 복역하면서 자살하지 않은 이유가 겨울 독방에서 2시간 남짓 만나는 '햇볕' 때문이라는 것과,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사색하며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감동적이였습니다. 무기수에서 8.15 특별가석방으로 출소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젊은 나이 28세에 들어가 48세 중년이 되어 나온 세상은 어쩜 낯설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이 바뀌어 있는 사회로 나와 바로 이듬해 성공회대학 강단에 나가 강의를 하셨다니 대단한 분이라 여겼습니다. 감옥에서 꾸준히 책을 읽고 사색하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 왔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지난 7일에 '신영복 북콘서트'가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꼭 갔었을텐데 좀 아쉽습니다. 신영복 공식사이트 <더불어숲>http://www.shinyoungbok.pe.kr/에 들어가 보니 볼 게 많습니다. 글도 잘 쓰시지만 붓글씨를 정말 잘 쓰십니다. 2015 만해문예대상 수상하시고 상금은 장학금으로 기부하신다는 기사를 봤는데, 더불어 사는 삶을 몸소 실천하시는 분이구나 생각하니 존경스럽습니다. 신영복 교수님의 연륜과 경험에서 묻어나오는 책 <담론>을 다시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다른 분들께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제대로 살고 있는가 생각될 때, 왜 살아야하는지 회의가 들때 <담론>을 읽으면 도움이 될 듯 합니다.
공부는 한자로 '工夫'라고 씁니다. '工'은 천天과 지地를 연결하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夫' 천과 지를 연결하는 주체가 사람(人)이란 뜻입니다. 공부란 천지를 사람이 연결하는 것입니다. 갑골문에서는 농기구를 가진 성인 남자로 그려져 있습니다. 인문학人文學의 文은 紋과 같은 뜻입니다. 자연이란 질료質料에 형상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람(人)이 한다는 뜻입니다. 농기구로 땅을 파헤쳐 농사를 짓는 일이 공부입니다. 공부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입니다. p 18
돌이켜보면 제가백가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상앙, 이사와 같이 천하 통일을 이끈 사람들의 삶도 결국 비극으로 끝납니다.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룬 것이 많을 수 없습니다. 꼬리를 적신 어린 여우들입니다. 그 실패 때문에 끊임없이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자위합니다. 한비자의 졸성拙誠이 그런 것이라 하겠습니다. 졸렬하지만 성실한 삶, 그것은 언젠가는 피는 꽃입니다. 빅토리 위고Victor-Marie Hugo가 <레미제라블>에서 한 말입니다. "땅을 갈고 파헤치면 모든 땅들은 상처받고 아파한다.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 피우는 것은 휠씬 뒤의 일이다." 사실입니다. 아름다운 꽃은 휠씬 훗날의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하물며 열매는 더 먼 미래의 것입니다. p 200
<청구회 추억> 후기
우리의 삶은 수많은 추억으로 이루어져 있음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모든 추억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를 만나는 곳은 언제나 현재의 길목이기 때문이며, 과거의 현재에 대한 위력은 현재가 재구성하는 과거의 의미에 의하여 제한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구나 추억은 옛 친구의 변한 얼굴처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 성이 추억의 생환生還이란 사실을 휠씬 나중에야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생각하면 우리가 영위하는 하루하루의 삶 역시 명멸明滅하는 추억의 미로 속으로 묻혀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추억에 연연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추억은 화석 같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부단히 성장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이며, 언제나 새로운 만남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이 책 역시 추억을 새롭게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p 219
겨울 징역살이가 그 혹독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옆 사람의 체온과 이처럼 잔잔한 인정이 느껴지는 것임에 비하여 어름철은 더위와 증오에 시달립니다. 낮 동안에 감방의 벽돌 벽이 땡볕에 달구어질대로 달구어져서 감방은 마치 가마 속 같습니다. 밤 두세 시까지 잠들지 못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36도의 옆 사람 체온을 안고 자야하는 여름밤의 칼잠자리는 그야말로 형벌입니다. 이 글은 그런 상황에서 쓴 여름 잠자리의 고통에 관한 것이지만 특히 증오의 대상을 옳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바로잡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가 더욱 괴롭다는 것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향한 부당한 증오는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증오를 불태우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p 300
석과불식碩果不食은 "씨 과실을 먹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씨 과실은 새봄의 새싹으로 돋아나고, 다시 자라서 나무가 되고, 이윽고 숲이 되는 장구한 세월을 보여줍니다.<중략> 첫 번째는 엽락葉落입니다. 엽락이란 바로 '환상과 거품'을 청산하는 것입니다. <중략> 다음이 체로體露입니다. 엽락 후의 나무는 裸木입니다. 잎사귀에 가려져 있던 뼈대가 휜히 드러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바로 구조와 뼈대를 직시하는 일입니다. <중략> 마지막으로 분본糞本입니다. 분본이란 뿌리를 거름하는 것입니다. 낙엽이 뿌리를 따뜻하게 덮고 있습니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뿌리가 곧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은 그 자체가 최고의 가치입니다. <중략>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닙니다. 사람이 '끝'입니다.절말과 역경을 '사람'을 키워 내는 것으로 극복하는 것,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입니다. p 420 ~ p 423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햇볕' 때문이었습니다. 겨울 독방에서 만나는 햇볕은 비스듬히 벽을 타고 내려와 마룻바닥에서 최대의 크기가 되었다가 맞은편 벽을 타고 창밖으로 나갑니다. 길어야 두 시간이었고 가장 클 때가 신문지 크기였습니다. 신문지만 한 했볕을 무릎 위에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은 살아 있음의 어떤 절정이었습니다.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햇볕 때문이었습니다. <중략>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루하루의 깨달음과 공부였습니다. 햇볕이 '죽지 않은' 이유에 햇볕과 함께 끊임없는 성찰이 함께하기를 빕니다. p 424~ 425
네덜란드의 의사이며 작가인 반 에덴Frederik van Eeden의 동화 <어린 요한>의 버섯 이야기 입니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갑니다. 산책로 길섶에 버섯 군락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버섯 중의 하나를 지팡이로 가리키면서 "얘야, 이건 독버섯이야!" 하고 가르쳐 줍니다. 독버섯이라고 지목된 버섯이 충격을 받고 쓰러집니다. 옆에 있던 친구가 그를 위로합니다. 그가 베푼 친절과 우정을 들어 절대로 독버섯이 아님을 역설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정확하게 자기를 지목하여 독버섯이라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위로하다 위로하다 최후로 친구가 하는 말이 "그건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였습니다. 아마 이 말이 동화의 마지막 구절이라고 기억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독버섯'은 사람들의 '식탁의 논리'입니다. 버섯을 식용으로 하는 사람들의 논리입니다. 버섯은 모름지기 '버섯의 이유'로 판단해야 합니다. '자기의 이유', 이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멀고 힘든 여정이라 하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를 줄이면 '자유'自由가 되기때문입니다. p 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