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일찌감치 니체 선생께서 이런 말씀하셨다.
"신은 죽었다."
하늘에서 당구를 치고 계시던 신께서 우라와마시를 돌리시려다 그 소리를 듣고는 삑사리를 내셨다.
노여운 표정으로 이렇게 대꾸하셨다.
"니체, 너 나한테 죽었다."
그 당시 당구는 물리신 걸로 알려져 있다.
누구랑 쳤냐고? 낸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데이비드 실즈> - 나는 여기에 밑줄 쳤네(그리고 토 달았네)
우리 앨런은 이렇게 설명했다. '섹스와 죽음의 차이? 죽는 것은 혼자 할 수 있고 남들이 절대 그 문제로 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 흠, 죽음은 안 해봐서 선뜻 잘 와닿지가 않는 걸. 섹스는? 뭐 그런 걸(발그레)
그래도 칼라는 나를 사랑했다. 내 복잡한 영혼, 하여간 뭐 그 따위 것 때문에 나를 사랑했다.
- 요새는 아무도 복잡한 영혼 때문에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복잡한 통장이면 몰라도. 나도 영혼이 복잡하단 소리를 몇 차례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말은 한 자들은 하나같이 내게 조상님께 은공을 드려야한다고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 도에 관심 없다.
영국의 의학자 윌리엄 오슬러 경은 말했다. '세상의 모든 쓸모 있고, 감동적이고, 고무적인 업적은 25세에서 40세 사이의 사람들이 이룬 것이다.' 이 말은 사실이다. 창조성은 30대에 절정에 달한 뒤 급격히 쇠퇴한다.
- 헐, 끝장 났다. 이제는 쓸모 없고, 무감동적이고, 합성수지적(고무적)이지 않은 삶을 살 차례이다. 그래도 괜찮다. 가벼운 유머 정도만 있어도 나는 살 수 있다(정말? / 쉿, 이 책의 저자도 정직하게 쓴 것만은 아니던데 뭐).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인생의 첫 40년이 텍스트라면 나머지 30년은 그것에 대한 주석이다.'
- 헐, 본문은 끝장 났다. 이제는 주석이다. 번호나 별표를 달고 작은 글씨로 페이지 바닥 부분에서 살게 되는 걸까.
한편 우디 앨런은 말했다. '나는 작품을 통해서 불멸을 얻기는 싫다. 나는 죽지 않음으로써 불멸을 얻고 싶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영원히 살기는 싫다. 나는 내 아파트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
- 우디 앨런 선생, 알아줘야 해. 아파트가 그럴싸하니까 저런 소릴 하시지.
신부와 목사와 랍비가 자기가 죽어 관에 뉘였을 때 사람들이 뭐라고 말해주면 좋을지 이야기했다. 신부가 말했다. "'정의롭고, 정직하고, 자비로운 분이었다'고 한다면 좋겠군요."
목사가 말했다. "'친절하고, 공정하고, 교구민들에게 상냥한 분이었다'고 한다면 좋겠군요."
랍비가 말했다.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군요. '저 봐, 시체가 움직여'."
- 목사와 신부가 당구를 치고 있었다. 시네루가 뜻대로 먹지 않아 목적구가 빗나 가자 목사가 이렇게 말했다. "시발, 존놔 안 맞네." 신부가 깜짝 놀라 말했다. "목사님, 어떻게 그런 상스런 말씀을..." 목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게임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예의 육두 문자를 날렸다. 신부는 하늘에 대고 기도했다. '하느님 이 자가 한번 더 욕을 하면 벼락을 내려 주시옵소서." 목사가 마지막으로 쓰리쿠션을 때리려는 순간 삑사리가 나자 또 한 차례 욕을 퍼부었다. "시발, 존놔 안 맞네." 그때 하늘이 우르릉 쾅쾅 울리더니 벼락이 떨어져, 글쎄 그만 신부님 정수리에 정통으로 떨어졌다. 하느님이 뭐라 그랬게?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을 처형하려고 기다리는 사형집행인의 발을 밟은 뒤에 말했다. '무슈, 미안합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 귀엽네. 요런 유머 꽤 있었는데. 교수대를 오르는 사형수가 계단을 헛밟아 잠시 휘청한 후에 "휴~ 죽을 뻔했네."라고 하는 유머 등등.
그러니까 수선 피우지 말고 그냥 번식하면 된다. 종을 유지하면 된다.
- 알어. 하지만 그게 잘 안 돼.
아버지는 으쓱 하더니 진부한 질실들을 총총 꺼내어 말했다. "늙는 데 위안이 하나 있지. 이 일을 다시 할 필요는 없다는 것." "죽은 건 쉽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그건 하잖이. 사는 게 재주지."
- 할 말 없음.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 어떻게 보면 바로 그런 자세였다. 기존의 지혜를 의심해보라는 것, 스스로 본 시각을 고집하라는 것, 언어를 운동장처럼 생각하라는 것, 운동장을 천국처럼 생각하라는 것, 아버지는 내 입과 내 타자기에서 흘러나오는 단어들을 사랑하라고 알려주었고, 내가 내 몸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사랑하라고, 다른 누구의 거죽이 아니라 내 거죽에 담겨 있는 사실을 사랑하라고 알려주었다.
- 알어. 하지만 그게 잘 안 돼.
아버지가 이겼다. 또 아버지가 이겼다. 언제나 아버지가 이긴다. 하지만 결국에는 아버지도 진다. 우리 모두 언젠가 진다.
- '언젠가 진다'고? '언젠가 이긴다'겠지. 내가 언제 이겼다고 그래. 하지만 언젠가는 이긴다. 우리 모두.
이거 참으로 기묘한 수필이다.
나는 너무 슬플까 봐 잔뜩 겁을 먹고 읽기 시작했다가
이내 키득대면서 페이지를 넘겨갔다.
이 책은 어쩌면 '이기적인 유전자(리처드 도킨스)'의 수필 버전일 수도 있겠다. 그것도 유머가 넘치는.
실즈는 아버지의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내내 고민하면서도 새침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왜 그랬을까. 나는 쫌 알지. 죽음을 앞둔 이를 평소와 사뭇 다른 태도로 대하는 것이 실례이기 때문이지.
꽤 재미있는 책이지만 슬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면 이 슬픈 책을 너는 어찌 이리 천박하게 리뷰하였느냐고?
실즈의 부친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나는 내 입과 내 타자기에서 흘러나오는 단어들을 사랑한다. 천박하다니, 어디서!!
(미안, 사실은 창의성이 급격히 쇠퇴하는 중이어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