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보수성은 이론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부분 이론의 반성 없이 습관으로 존재한다.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는데도 그저 익숙하기 때문에 집요하게 존속하는 폭력들이 있다. 그것을 없애려면 우리 주위의 익숙한 모든 것들을 한 번쯤 낯설게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왜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는가" 어느 작가는 이렇게 묻는다. 몰라서 묻는가? 거대한 것은 우리에게 분노할 자유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뭔가에 가로막힌 물이 제 갈 길을 찾아 우회하듯이 분노의 흐름도 도전을 허용하지 않는 거대한 것을 피해 사소한 곳으로 흐를 수밖에.

평균적 한국인은 박정희가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이다(책 속의 맥락을 통해 이해 가능, 오해 없으시길-블로거 주)

종교는 믿음에서 출발하고, 과학은 의심에서 출발한다. 이것이 종교와 과학의 차이이자 중세와 근대의 차이다.

자신이 먹고사는 것을 정치 지도자의 덕으로 돌리는 봉건적 어법이 존재하는 곳은 남한과 북한뿐이다. 남한은 박정희 덕, 북한은 김일성 덕. 남들 다 제 덕에 먹고살 때, 남북의 인민들은 여전히 왕의 은덕으로 살아간다. 

카리스마를 열망하는 것은 한국에서 '자율적 주체'라는 근대의 신체 프로젝트가 미완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성인이 돼서도 판단과 행위의 자율성에 도달하지 못한 미성숙한 사람은 당연히 자신의 정신을 대신하여 판단해주고, 자신의 신체에 명령을 내려줄 카리스마를 요구하게 된다. 

실제로 한국에서 논쟁은 '이성적'이라기보다는 '정서적'이며, 판단은 '논리적'이라기보다는 '감정이입적'이다.  ...... 토론을 할 때 사안의 논리적 해결보다는 인격의 명예를 건 승패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 어떤 이가 주장하는 논리보다,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의 솜씨에 더 관심이 많다. ...... 토론보다 내기를 좋아한다.

진중권 그는 틀림없이 무엇인가 꼬이고 어딘가 막나가는 데가 있지만
'어찌 아니 그럴 수 있으랴' 이 꼬이고 막나가는 땅에서...
꼬인 꽈배기를 풀려면 반대로 꼬아야 하고
막나가는 무언가를 막으려면 반대 방향으로 막나가야 하는 법.

나 스스로도 진중권 씨가 이따금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 정도로도 꿈쩍 않는 인간들이 수두룩하니...
그는 계속 그리하여야 한다.
이따금 '오버'하지만 늘 옳았으니까.

여기저기서 부당한 욕지거리를 듣고 심지어는 폭행, 협박도 당하는 터여서
'계속 애써 달라'고 말씀 드리기 참으로 면목없지만
그의 '독설'과 '추상같은 글쓰기'가 간절히 필요하다, 한국의 현재는.

그에 비하면 나는 지나치게 얌전하여서 지나치게 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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