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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마음 바깥에 있었습니다 - <고통을 달래는 순서>의 김경미 시인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일상의 풍경
김경미 지음 / 혜다 / 2019년 7월
평점 :
**이 글은 블로그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bangfriend79/221595389602
도무지 빨래 할 티이밍을 잡지 못하고 있는 요즘
일기예보에 잔뜩 긴장을 하고 나선 길이 더없이 안전하기도,
느닷없이 비가 쏟아지기도 한다.
변덕스러운 날씨만큼이나 기분도 널뛰어서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복기해 볼 때 참 아리송하다.
오늘 하루 괜찮았던건지.
마냥 "날씨 탓이야!" 해버리기엔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내 기분의 주인은 날씨인건가?
날씨의 영향이 분명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꾸준히 지켜오던 습관들이 하나 둘 무너졌고
그렇게 느슨해진 몸과 마음이 건강할 리 없었다.
내 생활이 엉망이 될 무렵에 어줍짢은 장마도 찾아와서
이 모든게 날씨 탓이라고 여기게 만들었다.
정말 '책운명'이라는 것이 있는지,
이번에 읽은 책이 건네주는 말이 참 좋았다.
전체적으로 따듯하고 위로가 되는 책이었지만
다 읽고나니 뭔가 하고싶어졌고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듯, 그렇게 내 생활도 다시 차곡차곡 쌓아보고 싶어졌다.
무너졌다가 다시 쌓는 이런 일상이 참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매 끝을 당겨 내리는 그림이 가을밤을 생각나게 했다.
갑자기 훅 느껴지는 추위에 얇은 외투 속으로 손을 쏙!
좋아하는 계절을 생각나게하는 따듯한 일러스트.
화려하지 않은 표지이지만 책의 감성을 담아내는데 충분했다.

이 책의 글들은 <김미숙의 가정음악>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한 코너에 쓰인 방송원고이다.
스무살 무렵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도 라디오 방송 원고들을 모아 만든 책이었다.
이야깃거리가 굉장히 다양했고, 특유의 라디오 감성이 느껴져서 참 좋았었다.
그런 기억이 있어서인지 이 책이 반갑고 기대됐다.




하루에 세꼭지의 글을 써서 보냈다는데, 그럼 1년만해도 1천여편의 글이 된다.
그 중에 추려진 글들이 촤르륵.
그 라디오를 들어보진 않았지만, 가장 좋은 글들이 담겨있겠지 하는 생각에 굉장한 배려를 받는 것 같았다.


선택의 기로에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는 어떤 길로 가고 싶은지, 네 마음이 향하는 쪽부터 생각해 봐라. 그랬는데도 특별히 더 마음 끌리는 길이 없다면 그때는 양 갈래 길 중 어느 쪽을 선택해도 마찬가지니 너무 고민하지 말고 아무 쪽이나 선택해라.
"어느 쪽도 끌리는 것이 없을 때는 선택을 위한 고민은 필요 없다는 뜻입니다.
고민할 시간에 오히려 아무 쪽이나 가보는 게 더 큰 도움이 된다는 뜻이죠."
앨리스를 제대로 보지 않아서 저런 장면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저렇게 명쾌하고 현명한 고양이라니!
"그럼 어느 쪽이든 상관없잖아"
세상 쿨하다.
선택장애라는 말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 나는 완전 '나'라고 생각했다.
뭔가 하나를 선택하는 상황을 부담스러워했다.
선택에 대한 후회가 남는 것이 싫었고, 선택을 책임지기도 싫었나보다.
우물쭈물. 뭐 하나 선택하지 못하고 그렇게 허비한 시간이 얼마일지...
결국 선택의 기회를 넘겨버리기도 했다.
더 좋은 것이 있었다면 분명 그것을 선택했을텐데 내게 모든것은 비등비등했던 것일까.
다르게 생각해보면 취향이나 가치관 이런 것들이 불분명했는지도 모르겟다.
고양이의 말처럼 특히 더 끌리는 것이 없다면 아무쪽이든 상관없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특히 힘들었던 선택의 순간들이 떠오르고 내 손에 동전이라도 쥐어주고싶어졌다.
동전이라도 던져서 정하라고.
앞으로도 많은 선택을 할 것이고, 쉽지 않은 것들도 있겠지만 잊지 말아야지.
"마음이 가는 쪽을 따르되, 특히 좋은 것이 없다면 아무쪽이든 상관없어!"

자신들의 얼굴에 서린 그동안의 힘들고 굴곡진 삶이 새삼스럽고, 그런 얼굴과 삶이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된 게 신기하고, 그동안 하찮게만 여겼던 자신의 인생이 갑자기 크게 인정받는 느낌이 들어 저절로 벅찬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시골마을의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사진을 아주 크게 인화해서 건물 외벽 등에 붙이는 프로젝트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한다.
이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당장에라도 보고싶어졌다.
삶이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
그것도 아주 크게 인화된. 그걸 마주하는 느낌이 어떨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엄마, 아빠, 할머니의 얼굴이 차례로 생각났다.
가장 좋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존중과 인정을 표하고싶다는 마음과 함께.

살구꽃이 피면 한 번 모이고 복숭아꽃이 피면 한 번 모인다. 한 여름에 참외가 익으면 한 번 모이고 가을이 되면 서련지에 연꽃 구경하러 한 번 모인다. 국화꽃이 피어 있는데 이례적으로 첫눈이 내리면 모이고 한 해가 저물 무렵 화분에 매화가 피면 다시 한 번 모인다.
정약용이 주위의 관료들을 모아 만든 모임인 '죽란시사(竹欄詩社)'에 적용했던
아주 낭만적인 회칙이다.
보통의 모임들은 몇월 몇째주 무슨 요일이거나 특정한 날짜를 정한다.
그런데 이 모임은,,,,세상에 ♡
복숭아꽃이 피면 모이고, 참외가 익으면 모이고.
국화꽃이 폈는데 첫눈이 내리면 모인단다.
정말 그랬을까 싶으면지만 저런 규칙을 정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아름답다.
저런 모임에 참여하고싶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때에 좋아하는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보고싶은 사람도 많고, 보고싶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많다.
그치만 '잘지내냐'묻는 말이 왜 이리 싫은지..
하루 걸러 만나던 사람들도 몇년 째 못보고 있고, 만나지 못한 시간만큼 어색해졌음을 확인하기가 무섭기도 하다. 어색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예전같지않음을 느낀다면 슬플 것 같아서ㅎㅎ
예전에 단짝 동기언니와 과제를 하다 문득 '사기단'이라는 모임 이름을 정했다.
멤버는 우리 둘 뿐이었지만.
'사사건건 기뻐하는'이었는지 '사고치고 기뻐하는'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어이없는 이름이었다. 제대로 된 활동은 못했지만 그냥 우리 일상이 저랬으니까..
그런 모임을 제대로 어이없게 해보고 싶다!ㅎㅎ

그녀는 무너져 내린 육체와 정신을 이끌고 다시 돌아가죠. 그리곤 고향에서 자신을 새롭게 되살립니다.
"자신을 새롭게 되살립니다."
되살린다.
도시의 삶에서 망가진 몸과 마음을 고향에서 되살린다.
이 표현이 쏙 와닿았던 것은 나역시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다.
도시에서의 삶이 피폐하고 건강하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엄마, 아빠가 있는 고향에 갈때면 확연히 느껴지는 것이 있다.
행복, 충만함, 사랑, 생명, 여유, 배려, 진심
많이 웃고, 많이 먹고 그만큼 많이 움직이게 된다.
딸 셋이 다 타지에 나가있어서 고향에는 엄마, 아빠뿐이다.
가족 단카방에는 부모님의 귀여운 일상이 가끔 올라오는데 대체로 자연과 꽃, 음식이다.
"예쁜 토마토가 아가들 기다린다~"
"드디어 낮달맞이꽃을 데려왔어" 라던가
"돼지세마리 먹일 열무김치 완성!" 이라던가.ㅎㅎㅎ
우리를 집으로 불러모으는 엄마의 주문이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가려고 노력하는데,
그런 노력에도 일년에 겨우 열두번. 다 합쳐도 며칠 안되겠다 싶다.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다녀서 17살부터 밖에 나와 살았으니 꼬박 10년이 넘었다.
한 달만이라도 집에서 지내고싶다!
사실 해외여행보다 가장 하고 싶은 일.
내가 지내는 집이 따로 있음에도 '집'하면 고향집이 생각나는걸 보니
내 진짜 집은 그곳인가보다.
당장 가야지!ㅎㅎ

엄마, 아빠가 돼지들 먹이려고 키우는 식량.
볼 때마다 마음이 든든하시단다.ㅎㅎ

좋은 글이 너무나 많았지만, 유독 마음을 쿡쿡 건드렸던 글들만 담았다.
잊고 지내던 소중한 것들을 생각나게 하고,
엉망인 것 같은 일상이지만 괜찮은 거라고 얘기해주는.
다 읽고 나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내 일상 구석구석 살펴 보고 싶고, 사소하다 여긴 것들 한 번 더 바라보고 싶어지는
예쁜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