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마음 바깥에 있었습니다 - <고통을 달래는 순서>의 김경미 시인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일상의 풍경
김경미 지음 / 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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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빨래 할 티이밍을 잡지 못하고 있는 요즘

일기예보에 잔뜩 긴장을 하고 나선 길이 더없이 안전하기도,

느닷없이 비가 쏟아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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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스러운 날씨만큼이나 기분도 널뛰어서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복기해 볼 때 참 아리송하다.

오늘 하루 괜찮았던건지.

​

마냥 "날씨 탓이야!" 해버리기엔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내 기분의 주인은 날씨인건가?

날씨의 영향이 분명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

꾸준히 지켜오던 습관들이 하나 둘 무너졌고

그렇게 느슨해진 몸과 마음이 건강할 리 없었다.

내 생활이 엉망이 될 무렵에 어줍짢은 장마도 찾아와서

이 모든게 날씨 탓이라고 여기게 만들었다.

​

정말 '책운명'이라는 것이 있는지,

이번에 읽은 책이 건네주는 말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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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따듯하고 위로가 되는 책이었지만

다 읽고나니 뭔가 하고싶어졌고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듯, 그렇게 내 생활도 다시 차곡차곡 쌓아보고 싶어졌다.

무너졌다가 다시 쌓는 이런 일상이 참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

너무 마음 바깥에 있었습니다

김경미 지음, 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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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 끝을 당겨 내리는 그림이 가을밤을 생각나게 했다.

갑자기 훅 느껴지는 추위에 얇은 외투 속으로 손을 쏙!

좋아하는 계절을 생각나게하는 따듯한 일러스트.

화려하지 않은 표지이지만 책의 감성을 담아내는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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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글들은 <김미숙의 가정음악>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한 코너에 쓰인 방송원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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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무렵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도 라디오 방송 원고들을 모아 만든 책이었다.

이야깃거리가 굉장히 다양했고, 특유의 라디오 감성이 느껴져서 참 좋았었다.

그런 기억이 있어서인지 이 책이 반갑고 기대됐다.





하루에 세꼭지의 글을 써서 보냈다는데, 그럼 1년만해도 1천여편의 글이 된다.

그 중에 추려진 글들이 촤르륵.

그 라디오를 들어보진 않았지만, 가장 좋은 글들이 담겨있겠지 하는 생각에 굉장한 배려를 받는 것 같았다.





선택의 기로에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는 어떤 길로 가고 싶은지, 네 마음이 향하는 쪽부터 생각해 봐라. 그랬는데도 특별히 더 마음 끌리는 길이 없다면 그때는 양 갈래 길 중 어느 쪽을 선택해도 마찬가지니 너무 고민하지 말고 아무 쪽이나 선택해라.

p.26

"어느 쪽도 끌리는 것이 없을 때는 선택을 위한 고민은 필요 없다는 뜻입니다.

고민할 시간에 오히려 아무 쪽이나 가보는 게 더 큰 도움이 된다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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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를 제대로 보지 않아서 저런 장면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저렇게 명쾌하고 현명한 고양이라니!

​

"그럼 어느 쪽이든 상관없잖아"

​

세상 쿨하다.

​

선택장애라는 말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 나는 완전 '나'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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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하나를 선택하는 상황을 부담스러워했다.

선택에 대한 후회가 남는 것이 싫었고, 선택을 책임지기도 싫었나보다.

우물쭈물. 뭐 하나 선택하지 못하고 그렇게 허비한 시간이 얼마일지...

결국 선택의 기회를 넘겨버리기도 했다.

더 좋은 것이 있었다면 분명 그것을 선택했을텐데 내게 모든것은 비등비등했던 것일까.

다르게 생각해보면 취향이나 가치관 이런 것들이 불분명했는지도 모르겟다.

​

고양이의 말처럼 특히 더 끌리는 것이 없다면 아무쪽이든 상관없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특히 힘들었던 선택의 순간들이 떠오르고 내 손에 동전이라도 쥐어주고싶어졌다.

동전이라도 던져서 정하라고.

​

앞으로도 많은 선택을 할 것이고, 쉽지 않은 것들도 있겠지만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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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는 쪽을 따르되, 특히 좋은 것이 없다면 아무쪽이든 상관없어!"






자신들의 얼굴에 서린 그동안의 힘들고 굴곡진 삶이 새삼스럽고, 그런 얼굴과 삶이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된 게 신기하고, 그동안 하찮게만 여겼던 자신의 인생이 갑자기 크게 인정받는 느낌이 들어 저절로 벅찬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p.106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시골마을의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사진을 아주 크게 인화해서 건물 외벽 등에 붙이는 프로젝트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한다.

이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당장에라도 보고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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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

그것도 아주 크게 인화된. 그걸 마주하는 느낌이 어떨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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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할머니의 얼굴이 차례로 생각났다.

가장 좋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존중과 인정을 표하고싶다는 마음과 함께.




살구꽃이 피면 한 번 모이고 복숭아꽃이 피면 한 번 모인다. 한 여름에 참외가 익으면 한 번 모이고 가을이 되면 서련지에 연꽃 구경하러 한 번 모인다. 국화꽃이 피어 있는데 이례적으로 첫눈이 내리면 모이고 한 해가 저물 무렵 화분에 매화가 피면 다시 한 번 모인다.

p. 92 정약용 『여유당전서』

정약용이 주위의 관료들을 모아 만든 모임인 '죽란시사(竹欄詩社)'에 적용했던

아주 낭만적인 회칙이다.

보통의 모임들은 몇월 몇째주 무슨 요일이거나 특정한 날짜를 정한다.

그런데 이 모임은,,,,세상에 ♡

복숭아꽃이 피면 모이고, 참외가 익으면 모이고.

국화꽃이 폈는데 첫눈이 내리면 모인단다.

정말 그랬을까 싶으면지만 저런 규칙을 정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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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모임에 참여하고싶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때에 좋아하는 이야기 나눌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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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은 사람도 많고, 보고싶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많다.

그치만 '잘지내냐'묻는 말이 왜 이리 싫은지..

하루 걸러 만나던 사람들도 몇년 째 못보고 있고, 만나지 못한 시간만큼 어색해졌음을 확인하기가 무섭기도 하다. 어색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예전같지않음을 느낀다면 슬플 것 같아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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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단짝 동기언니와 과제를 하다 문득 '사기단'이라는 모임 이름을 정했다.

멤버는 우리 둘 뿐이었지만.

'사사건건 기뻐하는'이었는지 '사고치고 기뻐하는'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어이없는 이름이었다. 제대로 된 활동은 못했지만 그냥 우리 일상이 저랬으니까..

그런 모임을 제대로 어이없게 해보고 싶다!ㅎㅎ





그녀는 무너져 내린 육체와 정신을 이끌고 다시 돌아가죠. 그리곤 고향에서 자신을 새롭게 되살립니다.

p.228

"자신을 새롭게 되살립니다."

​

되살린다.

도시의 삶에서 망가진 몸과 마음을 고향에서 되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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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현이 쏙 와닿았던 것은 나역시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다.

도시에서의 삶이 피폐하고 건강하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엄마, 아빠가 있는 고향에 갈때면 확연히 느껴지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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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충만함, 사랑, 생명, 여유, 배려,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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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웃고, 많이 먹고 그만큼 많이 움직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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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셋이 다 타지에 나가있어서 고향에는 엄마, 아빠뿐이다.

가족 단카방에는 부모님의 귀여운 일상이 가끔 올라오는데 대체로 자연과 꽃, 음식이다.

"예쁜 토마토가 아가들 기다린다~"

"드디어 낮달맞이꽃을 데려왔어" 라던가

"돼지세마리 먹일 열무김치 완성!" 이라던가.ㅎㅎㅎ

우리를 집으로 불러모으는 엄마의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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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은 꼭 가려고 노력하는데,

그런 노력에도 일년에 겨우 열두번. 다 합쳐도 며칠 안되겠다 싶다.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다녀서 17살부터 밖에 나와 살았으니 꼬박 10년이 넘었다.

한 달만이라도 집에서 지내고싶다!

사실 해외여행보다 가장 하고 싶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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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내는 집이 따로 있음에도 '집'하면 고향집이 생각나는걸 보니

내 진짜 집은 그곳인가보다.

당장 가야지!ㅎㅎ



엄마, 아빠가 돼지들 먹이려고 키우는 식량.

볼 때마다 마음이 든든하시단다.ㅎㅎ


좋은 글이 너무나 많았지만, 유독 마음을 쿡쿡 건드렸던 글들만 담았다.

잊고 지내던 소중한 것들을 생각나게 하고,

엉망인 것 같은 일상이지만 괜찮은 거라고 얘기해주는.

다 읽고 나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

내 일상 구석구석 살펴 보고 싶고, 사소하다 여긴 것들 한 번 더 바라보고 싶어지는

예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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