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혹은 시작
우타노 쇼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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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예를 들어 러시아의 원자력 발전소가 폭파하든,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동북지장의 핵연료 시설에서 방사선이 누출되든, 그것이 직접 우리 집을 오염시키지 않는 한 나는 평화롭게 살 것이다. 

나의 솔직한 기분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웃에서 누가 유괴를 당하든 총을 맞아 심장이 터지든 내 알 바 아니다. 물론 유족의 처지를 생각하면 가슴 아프지만, 그건 그냥 표면적으로 마음이 그렇다뿐이고 마음 깊은 곳에는 슬픔도 없다. 오히려 내 가족에게 아무 일이 없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앞선다. 

-p.67


사이타마현 한 마을에서 초등학생이 살해됩니다. 그것도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두고 연쇄적으로.

아이를 유괴하고나서 아이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메일 계정으로 한 통의 협박장이 도착하는데, 이 협박장은 유괴된 아이의 휴대폰으로 발송된 것입니다. 범인은 단 한통의 협박장만 보낸 후 휴대폰에서 배터리를 분리해서 위치가 추적되지 않게 합니다. 협박장은 상당히 기묘한 것이 아이의 유괴 몸값치고는 크지 않은 액수를 요구합니다. 마치 그 집의 사정을 알고 있다는 듯, 부모가 저축성 예금을 담보로 대출할 수 있을 정도의 범위인 60~200만엔 정도만 요구합니다. 참 기묘하지요. 그리고 협박장에서 늘 그렇듯이 경찰에게 알리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부모들은 경찰에 알리고, 몸값을 지불하지만 아이는 살해당합니다. 사실은 협박장을 보내기도 전에 이미 살해 했습니다. 살해 도구는 소형 권총. 적합하게 설계되어 있어, 총을 쏜 뒤의 반동이 강하지 않아 힘이 좋지 않은 사람도 이용 할 수 있는 도구였습니다. 

첫 번째 희생자 에바타 신고 의 이웃인 '나'는 아들 유스케와 친했던 신고의 유괴 살해로 약간 안됐다는 생각은 했지만 사실 내 일 처럼 마음이 아프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결국은 남의 일이니까요. 내 일처럼 여길 수는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내 가족, 내 자신이 중요하니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만 않으면 되잖아요. '나'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아들 방에서 어른의 명함을 발견합니다. 처음엔 초등학교 6학년 아이다운 호기심으로 어디서 주워왔으려니... 하고 넘어갔는데요. 며칠 후 그 명함 주인의 아들이 연쇄 살인의 희생자가 됩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상해서 아들의 방을 몰래 살펴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제까지 연쇄 살해당한 아이들의 부모 명함을 발견합니다. 처음엔 우연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우연이 겹치다니. 조마조마해집니다. 그리고 결국. 서랍의 비밀층에서 권총과 실탄까지 발견하고맙니다.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좀 더 조사를 하는데, 조사를 하면 할 수록 아들이 그 범죄에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은 깊어만 갔고, 유괴범이 시키는 대로 멋모르고 아이들을 불러내는 역할 정도만을 했을거라는 상상이 결국은 아들이 범인이며, 직접 살해했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결국 '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합니다. 다음에 하자고 결심한 순간 그의 눈에 들어 온 것은 온가족이 처참하게 살해된 현장이었습니다. 그것도 자기가 준비했던 흉기로. 정말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망상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여기 있는 나와 지금 여기 있는 아빠는 현실의 나와 아빠가 아니라는거야. 현실의 아빠가 보는 환상 속에 존재할 따름이야."

-p. 355


이 아버지는 아들이 범인임을 확신하고선 어떻게 말할까, 아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하나... 알린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정말 이 아이는 어째서 이런 일은 저질렀을까하며 밤새 잠 못 이루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정말 사람을 들었다놨다 합니다. 어쩜 이럴 수가. 두근두근 했다가 한시름 놓기도 하고, 다시 좌절했다가 다시 두근두근하게 하고. 읽는 내내 심한 파도 위에 떠 있는 배안에 있는 기분을 느끼게 했습니다. 

추리 소설 작가가 사건을 하나 만들어 내고선 사건을 풀어나가는 방향을 고민할 때 이렇겠구나. 이렇게 풀어도 저렇게 풀어도 어떻게든 사건은 흘러가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단 한갈래의 방향만이 우리에게 있을 뿐입니다. 어떤 방법이 최선인지 알 수 없으니 자신의 선택을 믿고 따라가야합니다. 


유스케는 어째서 살인을 저질렀을까요? 

그리고 아버지는 어쩌자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을까요.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그리고 과연 그 선택에 대한 결과물을 모두 감당 할 수 있을까요?


세계의 시작은 카오스였다고 한다. 카오는 혼돈과는 다르다. 애당초 거대한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고 '공'은 텅 빈 무엇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내재한 무의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 오늘처럼 아주 새파란 하늘 같은 것이다. 

-p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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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체 일본의 사체 - 한일 법의학자가 말하는 죽음과 주검에 관한 이야기
우에노 마사히코.문국진 지음, 문태영 옮김 / 해바라기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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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03년에 출간 된 이 책은 우리나라의 문국진 교수님과 일본의 우에노 마사히코님의 대담집인데요. 문국진 교수님 책 답게 어려운 내용은 없습니다. 

문국진님도 연세가 많으시지만 우에노님 역시 연세가 많기에 연륜과 더불어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일들이 참 많았을 것 같습니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예전부터 눈여겨 보고 있긴 했지만, 문국진님의 책은 이 책이나 그 책이나 똑같은 이야기를 중복하는 경향이 상당히 심해서 이 책을 읽을까 말까 몇 년간 망설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필요에 의해 이 책을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는데요. 

1/2 정도 읽다가 포기 할 뻔 했습니다. 

지난 번에 읽었던 <법의학으로 보는 한국의 범죄 사건>하고 겹치는 부분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지요. 

우에노님보다 문국님님께서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도끼에 맞아 죽을 뻔 한 사건, 지상아, 페니실린 쇼크 등등은 이제 하도 우려서 뽀얗게 국물이 우러날 지경입니다. 출간 시기로 따지자면 <한국의 시체 일본의 사체>가 <법의학으로 보는 한국의 범죄 사건>보다 10년 전도 앞서 있기에 후자의 책이 중복시킨게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법의학으로....>이 책이 지상아, 새튼이등의 합본의 개정판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참..쯧.

아무튼, 초반의 고비를 벗어나 책을 덮으려고 할 때쯤 몰랐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여기서 한국의 시체 일본의 사체라는 제목을 짚고 넘어가야하지 않을까요?

일본 추리소설을 하도 많이 읽다보니 시체, 사체 거기서 거기 아닌가 하며 아무 생각없이 혼동해서 사용했는데요. 

이 책에 의하면 (10년 전이니 지금은 바뀌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에서는 시체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사체라고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물에게만 사체라는 말을 사용하고 사람에게는 시체라고 칭한다하는데요. 유족이 확실 할 경우에는 시체 대신 정중히 유골이라고 표현합니다. 일본의 경우엔 인수 공통으로 사체라고 하는데요. 유족이 확실 할 때에는 정중히 유해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별로 구별하여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말해도 알아듣긴 하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알고 넘어가는 게 좋겠죠.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부검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모양인데요. 일본에서는 부검을 한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느냐, 그렇다면 부검해라. 그렇지 않으면 하지 말고..... 라는 식인가봅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두벌죽음을 할 수 없다며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문국진님이 책마다 말씀하시는 - 아예 제목이 그런 책도 있지만 -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 했던 사건도 있었을 정도니까요. 아니, 그런데 그 사건은 이 책에서 말하길 50여년 전이라고 합니다. 그럼, 지금은 60여년 전인데, 인식이 많이 바뀌지 않았을까요? 아무튼. 우리나라에서 부검을 반대하는 이유는 아마도 미련 때문일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죽은 자와 대화를 하지 않나요? 부모님이 먼저 일찍 돌아가셨을 때에도 신부감을 산소에 데리고 가서 '아버지. 며느리감이에요.'하고 인사시키는 장면이 요즘도 나오는 걸 보면 사자와의 대화는 여전한가 봅니다. 그러니 법의관이 시신에 메스를 대면, 미련과 미련사이의 끈이 타인에 의해서 절단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부검을 반대하는 것 같다고 문국진님은 말합니다. 그러고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이 책의 후반에 들어서 이런 한일 양국에 대한 부검과 사건의 차이에 대해 알게 되었고, 고인에 대한 태도도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책을 괜히 읽은 건 아니었네요.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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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 할까요? 2 - 허영만의 커피만화
허영만.이호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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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외로움을 살짝 안은 채 허영만의 <커피 한잔 할까요2>를 읽었습니다. 

늦은 밤이라 커피를 마시기엔 부담스러워 커피맛 사탕 하나를 혀 위에 얹고 책에 나오는 커피 향들을 상상하려 했지만, 

커피에대해 아는 것이 없으므로 그냥 내가 아는 커피향을 상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좀 더 아는 것이 많았다면 어땠을까. 

콩 볶는 커피숍에 앉아서 읽었더라면 또 다른 느낌이었을까. 


사람이 살아가면서 능력치는 분명 올라갈 텐데, 기대치 역시 높아지는 바람에 좌절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 기분이 그런 기분입니다. 한 살 때 보다는, 열 살 때 보다는, 스무 살 때보다는 분명 나아졌을 텐데

어째서 점점 더 자신에 대해 확신이 들지 않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미흡함을 인정하고 계속 정진하는 사람이 2대커피의 강고비인가봅니다. 이미 모든 것을 마스터한 것 같은 사장님 아래에서 커피에 대한 것을 배워가며 사람에 대해서도 배워갑니다. 그렇게 그렇게 바리스타 강고비가 만들어지나봅니다. 


이번엔 꼴보기 싫은 평론가도 등장합니다.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 같은 태도는 정말 재수없습니다. 꼴보기 싫습니다. 하지만, 원래 그런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던 것이니 자세히 지켜보아야겠습니다. 미스터 초밥왕의 무토 쯔루에도 처음엔 재수없는, 아니 거의 끝까지 그런 캐릭터였는데, 그 만화를 몇 번이나 되새겨 본 이후에야 그는 쇼타를 초밥왕으로 성장시키는데 무척 중요한 인물이었음을 깨달았었거든요. 

꼴보기 싫은 평론가 초이허트도 그런 사람일거라 믿습니다. 그러니 삐딱한 그의 목은 봐주어야겠네요. 



2권은 1권보다 좀 더 캐릭터가 생생하고 커피이야기와 인생이야기가 진하게 풍겨옵니다. 그러니 할말도 많고 생각도 많아집니다. 

생각이 많아진 만큼, 더욱 땅을 파고 들어가 다시 겨울잠을 자게 될 것 같은데, 진한 에스프레소가 저를 깨웁니다. 

어쩌라는 건지. 

이 커피는 저를 잠들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니 커피향을 상상하면서 따뜻한 대추차를 마셔야겠습니다. 

아니, 이것 도대체 무슨 맛이랍니까. 

대추에서 은은하게 우러난 단맛과 산미가 커피를 대신하는군요. 



이번의 책은 밥 딜런의 'One More Cup of Coffee' 와 함께 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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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 할까요? 1 - 허영만의 커피만화
허영만.이호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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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 어떤 철학을 부여 할 만큼 커피를 잘 알지는 못합니다. 

원두를 주문할때도 어떤 커피가 내 입맛에 맞는 건지도 몰라

뒷면을 보며 열심히 끙끙거리다가 주문합니다. 그것도 분쇄해서요. 

그러면 향이 다 날아가 버린다는 것도 알고, 공기와의 접촉 때문에 산화된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그렇게 주문해서 커피메이커에서 조금씩 내려서 마시는 커피가 맛없는 커피전문점의 커피보다 나을 때는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일종의 이상심리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마셔도 그만, 마시지 않아도 그만인 것 같은 커피를 하루에 한 잔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섭섭한 건

카페인의 중독성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녹차가 주는 분위기, 국화차가 주는 분위기, 보리차가 주는 분위기가 다르듯 

커피가 주는 분위기도 다른 것이기에, 

잠을 쫓기 위해 사발로 마시던 대학시절 때와는 다른 기분으로 마십니다. 


요새 갑자기 꽂힌 로비 윌리암스의 노래를 들으며 허영만의 <커피 한잔 할까요? -1 >를 읽었습니다. 

벅스의 라디오 기능을 사랑하지만, 어쩐지 이 책은 로비 윌리암스와 함께하고 싶었달까요? 물론 그는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 무언가 가득 찬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책을 덮고 나니 외롭습니다. 

어째서 외로움이 몰려오는 것일까요? 

어두움이 내려앉은 밤, 창밖에서는 차들이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리는데, 우리집에서는 잠든 아이의 숨소리만 들립니다. 그것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 책 안에 있는 사람들의 고독을 느꼈기 때문일까요? 

고독과 열정과 꿈과 희망이 있는 그들의 이야기 <커피 한잔 할까요>였습니다. 



....다음 권도 연이어 읽을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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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
윌리엄 골딩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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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깊은 사색의 힘이 없다는 걸 슬프게 한 소설입니다.

이 책을 덮고 나서 읽는 중간 중간 메모를 해 둔 것과 플래그를 붙여놓은 부분을 다시 돌이켜 읽어보아도 도대체 처음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 알 수 없었습니다.


소년들은 무인도에 표류합니다하지만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에서 그랬던 것처럼 합심하며 모험을 즐기거나 하지는 않습니다꿈과 희망과 생존이 결합되어있는 신나는 모험의 세계라기보다는 정말로 참혹한생존을 위해 나름대로의 세상을 만들어가야만 하는 잔인함이 그들 속에 존재했습니다.


이 소설은 냉전시대에 쓰였습니다냉전시대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의 시간이 지났지만그 당시에는 미국과 소련의 신경전이 어찌나 팽팽했던지 어린 학생들조차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분단국가인 우리나라는 그 냉전시대를 제법 잘 느낄 수 있었고요어렸던 저는 혹시 그들이 상대방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우리나라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면 어쩌나하는 염려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지금도 전쟁이라는 불안감은 우리 곁에서 맴돌지만매월 15일 정기적으로 민방위 훈련을 받아온 학창시절은 전쟁이라는 것이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실감케 했습니다.


소설 속의 소년들은 냉전시대에 정말로 원자폭탄을 날리며 전쟁을 하는 통에 비행기로 피난을 가다가 격추당해 불시착 한 무인도에서 전에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삶을 살게 됩니다그 전까지는 서로 모르던 사이였던 영국 소년들은 나이도 대여섯 살에서 부터 열서너 살에 불과한 그야말로 어린 아이들입니다잠자리에서 일어나 벗어놓은 잠옷이라도 개키고 학교에 가면 다행일 것 같은 소년들은 돌보아 줄 어른 하나 없는 이 섬에서 자기들끼리 살아가야만 합니다구조 될 지도 모른다는 희망과세상이 멸망해서 혹은 자기들이 어디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구조 될리 없다는 불안감을 동시에 안고그래도 이곳에서 살아가는 동안 질서와 규칙을 만들어가며 어떻게든 잘 지내보려고 했습니다소년들은 누가 봐도 지도자격으로 보이는 랄프라는 소년을 대장으로 선출했습니다키도 크고 잘생긴 랄프는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이기적이고 독선적이었으며 건방진 성격이었습니다하지만그의 말은 일리가 있는 부분이 많았습니다규칙을 중요시하며우왕좌왕 발언하다 싸움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소라를 들고 있는 사람만 발언을 한다는 중요한 규칙도 만듭니다랠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봉화를 꺼뜨리지 않는 것이었는데분명 구조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러했습니다랠프와 적대 관계에 있는 잭은 사실 봉화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그는 이 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냥이라고 생각했기에 성가대원들을 사냥꾼으로 조직하여 멧돼지를 사냥하고 고기를 공급하는 역할을 합니다랠프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봉화나 오두막 만들기보다 사냥에 열을 올리는 것인데이는 살아가기 위해 중요한 식()과 주(둘 중 하나만을 고집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그들은 이미 의()는 포기한 상태라 책을 읽고 있는 제 입장에서는 잭과 랄프의 균형이 이 섬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안타까웠습니다그들에게는 이런 걱정을 해 줄 수 있는 어른이 없었기에 스스로 어른스럽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른은 없었지만올바른 판단을 하고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중요한 인물인 돼지가 있었는데요그의 이름은……모르겠습니다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돼지였습니다뚱뚱한 외모에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요학교에서 불리던 별명을 이곳에서는 이름처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어쨌든 돼지는 이 섬에서 가장 지적인 인물이었습니다그의 판단을 옳았고랠프에게나 잭에게나 직언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아닌 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 용기도 있었고생각도 어른스러웠습니다하지만 잭은 물론이고 랠프는 그의 의견을 잘 수용하지 않습니다랠프의 단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가까웠는데도요돼지는 자꾸만 무시당합니다저는 어째서 그가 무시를 당하는 지 알 수 없었습니다외모 때문인가 생각해 보았지만소년들은 섬에서의 하루하루가 지나감에 따라 점점 인간의 모습을 잃어갔으므로 외모는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문득 깨달았습니다아빠가 없기 때문이었나 보다결국 고아나 다름없는 그들이 그런 이유로 돼지를 무시하다니돼지는 그 누구보다 더 훌륭한 소년이었는데도 말이죠게다가 돼지의 안경이 아니라면 그들은 불을 피울 수도 없었습니다. - 이 부분은 좀 오류가 있는데불을 피운다고 하기에 저는 당연히 돼지가 원시일거라 생각했었는데 근시더군요 – 어쨌든이 비문명의 섬에서의 유일하다고 말해도 좋을 문명의 도구는 돼지의 안경입니다돼지는 문명이며이 사회의 지식인이었습니다지식인은 미개한 삶속에서 무시당하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캐릭터가 있습니다사이먼사이먼은 샤먼이었나 봅니다이야기가 흘러가면서 아이들은 사이먼을 돌았다고 했지만사이먼은 영적 매개체였으며예언자요성직자 같은 것이었습니다.

파리 떼는 사이먼의 콧구멍 아래를 간질이고 넓적다리 위에서 등넘기 장난을 하였다파리 떼는 새까마니 다채로운 초록빛을 띠고 있었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낳았다그리고 사이먼의 전면에는 <파리대왕>이 막대기에 매달려 씽끗거리고 있었다마침내 사이먼은 눈을 뜨고 다시 쳐다보았다흰 이빨과 몽롱한 눈과 피가 보였다. - 그리고 태곳적부터 있어 온 피할 길 없는 인식이 그의 응시를 떠받치고 있었다사이먼의 오른편 관자놀이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 p. 206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소년들의 광란의 파티에서 두려움에 눈이 멀어버린 소년들의 희생자가 되고 맙니다소년들은 그를 공격하기 전에 이미 인간의 모습을 내 던지기 시작했으며 피맛을 본 성난 짐승이 되어있었습니다그들은 멧돼지를 사냥하며 피 맛을 즐겼으며 그런 모습의 자신들을 대견해 했습니다사냥이 잘 못 된 것은 아닙니다그들도 먹고 살아가야하니까요오히려 소년들이 그 무서운 멧돼지를 사냥해서 피도 빼고 가죽도 벗기고 불에 구워가며 먹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니까요하지만그것이 광기의 시작점이 되는 것이기에 그들의 기세가 강해질수록 제 마음속에서의 불안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지요그리고 꼬마들이 목격했다던그리고 조사단이 목격했던 무서운 짐승의 정체가 사실은 낙하산을 멘 채로 죽은 조종사의 썩어가는 시체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려던 사이먼은 그들의 손에 순교합니다그들은 이제 멧돼지 사냥꾼이 아니라 살인자가 되어버립니다광기에 사로 잡혀 벌인 일이라지만대부분의 소년들은 이제 살인을 할 수 있는 집단이 되었습니다랠프는 그런 것이 싫습니다변명을 할 여지가 없이 살인자가 되었습니다돼지가 그 일을 상기시켜줍니다돼지의 한 쪽 안경알이 깨지 던 날그들의 손에서 문명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몸부림치며 목메어 울었다이 섬에 와서 처음으로 그는 울음을 터뜨린 것이었다온몸을 비트는 듯한 크나큰 슬픔의 발작에 몸을 맡기고 그는 울었다섬은 불길에 싸여 엉망이 되고 검은 연기 아래서 그의 울음소리는 높아져갔다슬픔에 감염되어 다른 소년들도 몸을 떨며 흐느꼈다.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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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12-07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만과 문명이 얼마나 얇은 것에 지나지 않나 하는
것이 이 책의 골자 가 아닐까 ㅡ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는 우리지만 기본의 욕구를 위한 무인도에 내
던져 졌을 적에 인간이 의지하는 것이란 그리 많지
않다는 것ㅡ
소년 랠프가 돼지를 외면 하는 이유는 그의 말이 맞
기 때문이죠.
자존심에 가장 친하다면서도 자신이 리더니까 감히
하는 그런 반발 ㅡ에 외면 ...

포니 2015-12-07 21:26   좋아요 1 | URL
그렇네요.
가장 친하지만 자신보다는 못한 존재였으면 하는 친구 돼지.
(갑자기 슬퍼요)

[그장소] 2015-12-07 21:59   좋아요 0 | URL
오죽하면 도구의 인간 일까요. ..거기서부터 발전이
있어왔기도하지만 그게 아니면 그저 동물과 하나 다를게 없다는 기껏해야 파리들의 대왕 쯤 ㅡ해먹는 수준ㅡ아니겠냐 ...뭐 ...
슬픈게 맞죠..하물며 인간인데..

포니 2015-12-08 00:26   좋아요 1 | URL
도구를 버리면 인간은 정말 그런 악한 존재가 되는걸까요..
아..제가 오늘 왜 우울한가 했더니 이 책을 읽은 탓인가봅니다.
^^

[그장소] 2015-12-08 00:37   좋아요 0 | URL
음 ㅡ환경이 어떤방향으로 놓이느냐 가 관건이
아닐까요..무인도 라는 것..희망이 있을지 없을지
ㅡ소년들의 야성 ㅡ자라나는 성장과도 일맥하고요
만약 ㅡ여자들만 뚝 떨궈졌다면 ㅡ어땠을지 ㅡ아마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 같아요.인간 본성이
선하다고도 하지만 ㅡ아무도 없는 곳에선 가장 더럽고 유치하고 잔인하고 아무렇지 않아 하는게 또 인간 이잖아요..악한 걸로 ㅡ나눌것이 아니라
그저 약한 거죠..그정도로 무너질 만큼 ㅡ물론 ㅡ소설에선 소년들이니 더 그럴것이겠고 ㅡ그러니
너무 울적해 마시길. ..그런 글을 읽고 좀더 내면을
단단하게 하시면 되는 거죠.
어떤 선택의 기로에있을적에 짐승으로 돌아가느냐..인간으로 죽느냐 ㅡㅎㅎㅎ
아 ㅡ끝까지 ㅡ현명하게 살아 남는 법도 있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