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나미 신서의 역사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1
가노 마사나오 지음, 기미정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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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를 통해 이와나미 신서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1930년대부터 출간하여 현재는 3000 호도 넘었다는 무척 유명한 시리즈인데다가 '신서'라는 이름의 원조인데도 전혀 몰랐다니 스스로의 무지를 탓했습니다. 소설이나 과학(그중에서도 생물 관련) 분야를 편식하는 저이기에 인문학은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면 서점에서도 도서관에서도 가까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런 신서가 있다는 걸 알리가 없지요. 괜히 인문학이라고 하면 어려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회피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를 읽으며 어렵고 심오한 내용도 이해하기 쉽게 서술해주는 친절한 책이라 생각했는데, 이와나미 신서 시리즈가 거의 그렇다는 말에 한 번 읽어볼 마음이 생겼습니다. 우리나라에선 AK 커뮤니케이션즈에서 매월 한 권씩 발행하고 있는데요. 오렌지색 표지가 제주인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이와나미 신서는 일본의 대표적 인문학 서점인 이와나미 서점에서 1938년부터 발행하기 시작한 총서입니다. 지금까지 제2차 대전 때 잠시 발행을 멈추었던 걸 제외하고선 계속 발행되어왔으니 확실히 '역사'를 품고 있겠습니다. 시대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며 늘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제작하였으니 이와나미 신서의 역사는 일본 지성의 흐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영국의 펠리컨 북스의 판형을 참고하여 휴대가 간편하도록 하였으며 저가로 보급, 일본인들에게 시대에 맞는 정보를 주고 계몽한다는 취지에 적합한 출판물이었습니다. 
이와나미 신서 시리즈가 역할에 충실하다 보니 한국인인 제 입장에서 다소 불편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국수주의인 것도 아니고, 이 책이 혐한인 것도 아닌데 신서의 내용은 무척 일본인 다운 견지이기에 제 입장에선 불편할 수밖에요. 회피를 꾀하는 저는 되도록 피하고픈 주제들이 종종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정면 승부할 자신도, 지식도 없는걸요. 그러나 애초에 이 책이 저를 위해 만든 책이 아니라 일본의 당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을 위해 편찬해온 시리즈이니 이런저런 흐름이나 내용은 무척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저의 편협함을 접어두고 본다면 이 신서 시리즈는 무척 대단한 기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초기에 여성 독자를 고려하지 않은 것도 21세기의 저에겐 불쾌하지만, 당시엔 당연한 일이었겠죠. 시대 변화를 겪으며 이와나미 신서를 여자 한국인인 제가 읽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으며 심지어 이렇게 글도 쓰고 있지 않은가요. 이런 시대이니 신서의 내용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을 겁니다. 읽어보지 않았어도 짐작할 수 있어요. 이와나미 신서는 시대의 변화를 빨리 알아채고 반 걸음 정도 빨리 나가거든요.

<이와나미 신서의 역사>는 1930년대부터 2010 년대에 이르기까지 신서의 대장정을 보여줍니다. 크게는 전시, 전후로 신서의 변화가 있었으며 냉전시대와 신세기에서도 그 차이를 볼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 최신식이며 현대적이었던 이념이나 지식, 특히 과학 분야에서의 것은 지금 와서 케케묵은 것이지만(심지어 스트렙토마이신도 없던 때의 책도 있잖아요!) 과거엔 어떤 식의 흐름이 있었나 알아볼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런 의의도 있지만, 저는 현재의 문제를 살피는 쪽에 더 관심이 갑니다. 이를테면 신고리 원전 5,6호기 문제와 더불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원전 프로파간다' 같은 책 말이에요.

이 책 <이와나미 신서의 역사>는 지금까지의 이와나미 신서 시리즈의 목록이 총망라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3000권을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기에 문장에 맞게 이러저러한 책이 있다고 간략히 설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저자 입장에서 중요하다고 여긴 책은 좀 더 부연 설명을 합니다. 그런데 책에 대해 소개를 하면서도 이 책은 이렇다 저렇다 평하거나 내용의 잘잘못은 따지지 않습니다. 의견을 보태고 싶었던 적이 있었을 텐데, 최대한 자제력을 발휘하여 전체적인 내용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고 독자 스스로 본래의 신서를 찾아 읽고 판단하게 도와줍니다.(귀찮으면 찾지 않겠지만) 그러니 조선, 한국, 한국인에 관한 부분이 나와도 독자 역시 자제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저자의 입장이 독자에게 입혀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이와나미 신서의 역사>를 초반에는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으나 중반이 되니 좀 지치더군요. 이럴 땐 끊어 읽기.
다음날 플래그를 붙여가며 읽으니 또 새롭습니다. 간혹 무슨 말인지 모를 내용도 좀 있긴 했지만요. 저 같이 무지한 독자를 위해 뜻이 첨가되어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에 좀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간 책이 어마어마하게 두꺼워지고, 가격도 올라가겠죠. 책의 맨 뒤엔 지금까지 출간된 서적의 총 목록이 있습니다. 그 두께만도 굉장해요. 3000여 권이잖아요! 이게 메뉴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저 같은 결정 장애가 있는 사람은 며칠을 굶고 말 테니까요.
<이와나미 신서의 역사>는 2015년까지의 내용을 다룬 책이므로 오늘까지의 기록을 포함하다면 내용이 더 추가될 겁니다. 

'이와나미 신서 시리즈'가 우리나라에서는 AK 커뮤니케이션즈에서 번역, 출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 제1권으로 우리도 읽으면 좋을 신서를 차례로 펴내고 있습니다. 본디 인문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경직되는 저이지만, 이와나미 신서 시리즈라면 조금씩 접근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풍요로워집니다. 읽을 수 있는 책이 늘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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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기억을 지워줄게
웬디 워커 지음, 김선형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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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나라의 연간 성범죄가 3만 건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중 강간 및 강제 추행이 74퍼센트로 제가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이에도 어디선가 성범죄에 노출된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성범죄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기에 남자이므로, 나이가 많으므로 염려 없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신고된 것만 3만 건이니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거나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꼽아본다면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는 것인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 범죄의 크기가 크건 작건 간에 피해자는 상당한 상처를 입습니다. 잊고 살아가다가도 갑자기 그때의 기억이 살아나 두렵고 괴롭습니다. 자신이 잘 못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기막힌 감정이 되어 일상과 다른 기분을 느낍니다. 성폭력은 영혼에 상처를 내는 극악무도한 범죄입니다. 

<너의 기억을 지워줄게>에는 크게 세 가지의 불안이 존재합니다. 강간당한 기억을 일종의 치료요법을 통해 삭제했으나 불안만은 남아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고통에 자살 시도를 한 제니의 그것과 상처받은 자식을 지키지 못한 데다 범인을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 부모의 그것과 어쩌면 자신의 아이가 용의자일지도 모른다는 다른 부모의 불안. 이 세 가지가 존재하며 교차하는데, 누구의 고통이 가장 크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일 15년 전이었다면 제니의 고통이 가장 클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을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청소년 딸을 키우는 엄마이므로 단언할 수 없습니다. 상상조차 하기 싫어 피가 쏠려나가 정신이 아득해지는걸요.

제니는 파티장 인근에서 복면 괴한에게 성폭행을 당합니다. 소설 초반에 묘사된 성폭행 장면은 끔찍해서 머릿속으로 밀려들어오는 상상을 억지로 밀어내야만 했습니다. 제니의 부모 샬럿과 톰의 모습은 각기 달랐지만, 샬럿은 강인한 태도의 엄마로, 톰은 유약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녀를 지키길 원했습니다. 제니가 겪은 일을 잊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가길 원했던 샬럿은 기억을 지우는 요법을 사용케하지만, 결국 그것은 제니에게 독이 되었습니다. 마을 전체가 알고 있는 사실을 자신만 몰랐던 데다가 이유 모를 두려움이 자신을 쫓아다녔습니다. 두려움의 실체를 모르니 이겨낼 수도 없었던 제니는 자살을 시도합니다. 운 좋게(?) 제니가 자살시도를 한 화장실 밖에서 불륜의 행위를 하려던 샬럿과 밥(톰의 상사이자 사장)이 제니를 발견하고 응급실로 옮깁니다. 다시 충격을 받은 샬럿과 톰은 제니에게 기억을 되돌려주기로 결정하고, 이 소설의 화자인 정신과 의사 앨런을 만납니다. 제니는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샬럿과 톰은 영혼의 치유를 위해 모두 치료를 받는데요. 앨런에게 털어놓는 마음의 이야기로 조금씩 치유되어가지만 앨런은 그들의 비밀을 모두 조합하는,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한편, 주요 참고인으로 소환된 남자가 파란 잠바에 빨간 새가 그려진 옷을 입은 소년이 숲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는 목격 진술을 하는데, 수영 선수인 앨런의 아들에게 마침 그 옷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표백제 냄새에 반응한 제니. 설마 앨런의 아들이 그런 짓을 저지른 걸까요. 그렇다면 앨런은 제니의 기억을 되살려 범인을 떠올리게 할까요, 아니면 그릇된 기억을 주입하려 할까요.
이야기는 묘하게 흘러갑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반전.

<너의 기억을 지워줄게>는 이미 워너 브라더스에서 영화 판권을 계약하고 리즈 위더스푼이 제작, 주연을 맡아 영화화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리즈 위더스푼의 나이로 보아 샬럿 역을 맡을 것 같은데요. 심연에 어둠을 가지고 있으나 현재는 우아한 부인으로 등장할 그녀의 모습이 참 잘 어울립니다. 
사실 소설 초반부터 너무 높은 곳에서 시작하는 바람에 - 이를테면 롤러코스터의 시작점처럼 동력에 의해 꼭대기까지 쭉쭉 끌어 올려져서 급강하하는 그런 기분이 들었는데요. 위치 에너지가 운동 에너지로 전환되었으면 하는 지점에서 그렇지 못하고 그냥 평지를 달리더군요. 초중반이 살짝 지루했습니다. 아, 읽지 말까. 왜 제목이 <너의 기억을 지워줄게>일까. '너의 기억을 되살려줄게'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오호, 아들이 의심을 받는 건가? 그럼 제목에서의 '너'는 아들인가? 제니에게서 아들의 기억을 지우는 건가? 어, 그런 거 아니네. 그럼 왜 제목이 <너의 기억을 지워줄게>지? 원제는 <All Is Not Forgotten>인데. 그럼 말이 되는데. 우리나라 제목은 왜 그런 거지? 따위의 생각을 하며 산만하게 읽었습니다. 그렇지만 중후반에 이르러서 속도가 붙기 시작하더니. 금세 끝.
책을 덮고 전체적인 스토리를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그 부분은 복선이었고, 그 부분은 필요한 부분이었구나 하며 이제는 이해합니다. 괜찮은 스릴러네요. 특히 마지막의 개연성은 참 좋았습니다. 그러니 혹시 저처럼 중간에 슬럼프가 온다면 그냥 참고 읽으셔요. 끝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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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나이프 밀리언셀러 클럽 98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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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소년법의 적용을 받는 연령은 몇 세까지라고 알고 계시나요? 최근 부산 여중생 폭력 사건, 인천 어린이 유괴 살해 사건 등의 끔찍한 사건을 시작으로 최근 어금니 아빠 사건에서 딸의 구속영장 기각까지 하여(검찰에서 구속영장을 재신청했습니다.) 소년법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정한 소년이란 19세 미만인 자를 말하는데요. 생각보다 적용 연령대가 높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소년법은 '반사회성(反社會性)이 있는 소년의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矯正)을 위한 보호처분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고, 형사처분에 관한 특별 조치를 함으로써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소년법 제1장 제1조)'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거든요. 초등학생 이상이라면 무엇이 잘 못되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 견해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가장 기본이 되는 사항, 도둑질하면 안 된다, 폭력을 쓰면 안 된다,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거든요. 어금니 아빠 사건처럼 간혹 보호자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 때문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해 보호자가 의뢰했을 때에는 위의 반사회적 행동을 해도 괜찮다는 그릇된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압니다. 그렇다면 정말 뭘 잘 몰라서, 이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그저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저지르는 건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상의 아이들이 잘 못된 걸 몰라서 하는 일인가요? 알면서 합니다. 잡혀도 감옥에는 가지 않으니 저지른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도 과연 법으로 보호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말이지요. 전 소년법의 개정이 이루어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촉법소년- 만 10세 이상에서 만 14세 미만의 형사 미성년자, 형사책임능력이 없기 때문에 형사처분을 받지 않고 보호처분을 받습니다.- 연령대 이상의 범죄자에게 그 장래가 어쩌느니 갱생의 가능성이 있다느니 하며 앞길이 창창한 아이를 한 번의 실수로 빨간 줄 들어가게 하면 되겠느냐 어쩌느냐 하면서 보호해주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미래는 소중하고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의 미래는 소중하지 않단 말인가요. 소년들의 인권은 중요하고, 아픔을 겪은 사람들의 인권은 뭐 알아서 챙기면 되는 건가요. 모든 소년을 보호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말로 사건에 휘말렸을 뿐인 아이도 있을 것이고 진지하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아이도 있을 겁니다. 그것에 대한 판단과 정말 올바른 성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교육할 수 있는 대체 방안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렇잖아도 소년범에 관한 이야기로 연일 시끄러운 요즘,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는 소년범에 대해 깊이 생각할 계기를 주었습니다. 이 소설은 2005년 작품인데요. 한 무리의 소년에게 얻어맞는 통에 휴대폰이 부서진 주인공 히야마가 무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휴대폰을 구입하는 그 정도 시절이 배경입니다. 히야마는 4년 전 집에 침입한 삼인조에게 아내를 잃습니다. 범인은 이내 잡혔지만, 열세 살의 미성년자였으므로 소년 보호소에 가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사과는커녕 범인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했던 히야마는 아픈 기억을 안고 아내가 남긴 사랑스러운 어린 딸과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느 날, 경찰이 찾아옵니다. 소년 B가 살해당했다는 겁니다. 그것도 집에서 멀리 떨어진, 히야마의 동선과 겹치는 인근의 한 공원에서요. 마침 그에게는 알리바이도 없었던 데다가, 아내의 죽음 이후의 인터뷰에서 범인을 내 손으로 죽이고 싶다는 말을 했던 - 아니 누군들 그런 소리를 안 할까요.- 일이 있었기에 주요 참고인이랄까, 용의 선상에 오릅니다. 매스컴에서도 소년 B, 사와무라 가즈야가 살해된 일과 히야마의 일을 연결 지어 찾아오기 시작했기에 그는 무척 곤란한 처지가 됩니다. 문득 그는 소년들이 어떤 곳에서 어떻게 교육을 받았으며 정말로 반성은 했었던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만나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지 자기 자신도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소년들에게도 검은 손이 접근하여 한 소년은 큰 부상을 당하고, 한 소년은 살해당합니다. 소년들의 사건에 접근하던 히야마는 누군가 아내에게 원한을 가졌었음을 알게 되고, 조용하고 착한 그녀에게 악의를 품은 사람이 누굴까 조사하던 중 자신이 몰랐던 아내의 이야기를 알게 됩니다. 

이 소설 <천사의 나이프>에서 소년법이 이러니 없어져야 한다. 그들은 절대 갱생하지 못하는 존재라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여러 가지 경우를 미스터리의 형식으로 제시함으로써 독자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하게 합니다. 소설의 등장인물 대부분이 소년범에게 상처를 입은 사람입니다. 각기 다른 형태로요. 그리고 소년범 중에서도 끝까지 교화되지 못한 자도, 뉘우치며 평생 가슴에 안은 사람도, 이런저런 기회를 갖지 못한 자도 있었습니다. 주인공 히야마는 일부는 용서하고 일부는 이해하며 일부는 사랑했으며 일부는 저주했습니다. 실제로도 그렇지 않을까요. 소년이기에 이렇게 저렇게 보호하며 법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깨닫고 피해자에게 속죄하는 마음을 갖는 것. 그렇게 이끌어 줄 수 있는 방법이 연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쓴 <천사의 나이프>는 출간 당시 일본에서 화제가 되었으며 소년법 개정에 공헌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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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그래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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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는 데는 수많은 역경과 우여곡절이 있기 마련입니다. 누군가는 슬기롭게 그것들을 넘기거나 지독한 노력 끝에 이겨나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저주하며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수레바퀴에 올라앉아 한탄합니다. 때로는 그냥 시간이 해결해주기도 하지만, 마냥 그것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내가 죽은 다음에 올 수도 있거든요.
누구나 겪는 역경이나 부조리가 나에게만 있는 것처럼 한탄하고 불만을 쏟아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건 이래서 안 돼, 저건 저래서 안 돼. 내가 뭐 이렇게 살고 싶어서 이 모양 이 꼴인 줄 알아? 내 부모가 이러지만 않았어도, 사회 제도가 이러니까, 사람들의 눈이라는 게 있잖아? 등등 갖은 핑계를 대면서 세상을 저주합니다. 함께 있으면 너무나 피곤해요. 물론 말도 안 되는 무한 긍정주의자는 짜증 나서 함께 있으면 더 피곤하지만요. 불평불만이 가득 차고 자기변호만 해대는 사람에게 - 죽겠다 죽겠다 하는 사람에게 "그럼 죽지그래?"라고 시크하게 말을 던진다면 어떨까요? 갖가지 반응이 예상되는군요. 이 자식이 말이면 단 줄 아느냐, 그래 이 더러운 세상 확 죽어버리자, 말이 너무 심하잖아요 위로는 못해줄망정 나 힘들었다고요 등등. 매를 버는 수도 있겠어요.
아 힘들어 죽겠어, 행복해 죽겠어, 짜증 나 죽겠어, 배고파 죽겠어, 기뻐 죽겠어. 


"너, 너 같은 사람이 내 고생을 알아? 싫어도 그만둘 수 없어. 괴로워도 헤어질 수 없다고. 괴롭고 또 괴로워서 살 수가 없지만, 이제 한계지만 그래도 멈추지 못한다고 빌어먹을!"
"어째서?"
"그러니까 너 같은 놈은 모른다고 했잖아!"
"그럼 죽지그래."
겐지는 그렇게 말했다.
"그럼...... 죽으라고?"
"그래. 이봐, 그렇게 모든 것이 슬프고 힘들어서 미치겠다. 그렇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면 말이야, 정말로 어떻게도 할 수 없다면 살아갈 의미 따위도 없는 거 아냐?"
-p.55

교고쿠 나쓰히코의 소설이라고 하면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흘러가는 미스터리 한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요괴 연구가 이기도 한 그는 요괴가 등장하지 않는 미스터리 속에서도 인간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괴이한 존재를 느끼게 합니다. <죽지그래>에서도 그런 것을 느꼈습니다. 다만 이것은 요괴 같은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자기애, 자기 보호, 이기심같이 나에게도 있고 누구에게나 있는 심리였습니다. 남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외치는 변명 같은 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려서는 괴로워서 살 수 없는 삶이니까요. 그렇다고 정말 죽어버리나요. 우리는 어떻게든 버텨나갑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겐지는 '죽지그래.'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어쩔 수 없다면 그냥 차라리 죽어버리라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변호를 하는 이들에게 호통칩니다. 따끔하게 지적합니다.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없게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해합니다. 그렇게라도 자신을 속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삶이 있으니까요. 그들이 자신을 변호하고 변명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닙니다. 나쁜 건, 살해당한 여자 아사미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아사미가 살해당한 후 겐야는 그녀의 주변 인물들을 찾아가 그녀에 대해 묻습니다. 네 번 밖에 만난 적 없지만 그녀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가족에게 헌신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만 제대로 안돼 괴로워하는 데다 회사에서도 묘한 눈총을 받고 있는 중년 가장은 아사미와 불륜 관계였고, 능력도 있고 외모도 괜찮지만 제대로 된 직장을 갖지 못해 불만이 가득한 이웃집 여자는 자신의 남자를 빼앗았다며 익명 문자 테러를 했고, 아사미의 기둥서방이랄까 주인님이랄까... 야쿠자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야쿠자 졸때기는 흔히 하는 말로 그녀에게 빨대를 꽂아 쪽쪽 빨아먹고 있었고, 미혼모로 낳은 아사미를 사랑해 준 적 없는 데다 결국 20만 엔 빚에 딸을 팔아먹은 엄마는 여전히 형편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겐야는 그들 모두에게 "죽지그래."라고 말합니다. 
아사미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었을 뿐인데, 자신의 이야기만을 한다며 화를 냈습니다. 결국 형사를 찾아갑니다. 형사 역시 냉정한 태도로 법을 수호하고 있을 뿐인데 비난을 받고 있다는 괴로움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사미의 이야기는 역시 여기서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던 데다가 형사의 태도에 화가 난 겐야는 이곳에서도 호통을 칩니다. 

 나쓰히코 소설의 가장 피곤한 점이라고 여겨왔던 것 중 하나는 묘사 없이 따옴표로 이어지는 등장인물의 대화였습니다. 어떤 소설에서는 읽다 보면 이 대사가 누구의 말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기에 무척 피로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죽지그래>에서는 엄청납니다. 계속 따옴표에요. 그런데 희한하게 절대 헷갈리지 않습니다. 각자의 성격이 명확한데다가 입장이 확실하기 때문에 구분이 어렵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구분해야겠다는 것까지 잊고 읽어내려갈 수 있습니다. 배경도 단순해서 연극 무대라면 의자 두 개와 조명만으로도 공연이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미스터리 부분에서는.... 제가 읽은 미스터리가 많아서 그런지 대략의 사정은 일찌감치 짐작해버렸지만, 그것보다 심연의 괴로움에 대해 읽어가며 생각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즐거움이었습니다. 등장인물의 변명에 화를 내고 욕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는 저렇지 않다며 위안을 하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변명하기도 하는 걸 깨닫고 잠깐 부끄러웠습니다. 변명하는 저에게 겐야가 "죽지그래."라고 말하면 반드시 말문이 막히는 일 없이 끝까지 싸울 거예요. "이보게 젊은이, 세상은 그렇게 흑백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네."라고 말할지도 몰라요. 꼰대처럼 보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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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 - 나의 선택이 세계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 동물권리선언 시리즈 7
이형주 지음 / 책공장더불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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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있는 제주,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람사 조약 습지로 등록된 물영아리 오름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다양한 습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신비한 곳이지요. 그런데, 그곳을 국가 정원으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을 듣고선 대경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습지인 물영아리 오름 일대에 300여 종의 대나무를 심고 중국의 팬더를 임대해서 사육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은 것입니다. 첫 번째 대안인데다가 아직 논의 중이므로 확정된 것이 아니므로 그나마 다행인데요. 제주에 자생하지도 않는 대나무를 일부러 옮겨 심고, 심지어 팬더라니요. 도대체 팬더가 제주에 와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요. 누구를 위한 팬더인가요?

1989년엔 까치가 없는 제주에 일부러 까치를 공수해와서 풀어놓았습니다. 관광지 제주에 텃새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라고요. 그렇지만 2017년인 현재 까치는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되어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호하던 노루와 더불어서요. 사냥의 재미를 위해 들여왔던 토끼와 배에서 쥐잡이로 태웠던 고양이가 호주에 상륙해서 벌어진 생태계의 어마어마한 파괴 같은 건 교훈이 되지 않았던 건가요. 그렇지 않아도 제주는 동물 학대가 심한 섬입니다.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에서는 '동물 학대 섬'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어요. 
제주 코끼리 쇼, 원숭이 쇼, 돌고래 쇼, 바다사자 쇼, 진돗개 쇼, 흑돼지 쇼, 기마 공연, 낙타 트래킹.... 아니 이렇게 좁은 섬에 무슨 동물 체험, 서커스, 공연이 이렇게 많답니까. 그 동물들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훈련받으며, 어떻게 공연을 하는 걸까요?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고 나면 마음이 뿌듯해져 다음엔 더 잘해보겠노라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의 꿈을 펼치겠노라고 그렇게 다짐하는 건가요? 


이런 관광은 '지역 문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관광객이 보는 앞에서 직접적인 학대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여행자들마저도 이것이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인지 모르고 소비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호랑이 옆에서 '브이'자를 그리며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면 '좋아요'클릭 수는 늘겠지만 그 한 번의 사진을 찍기 위해 호랑이는 이빨과 손톱이 뽑히고, 매질을 당하고, 심지어 약물에 중독되는 끔찍한 삶을 살아야 한다. -p.108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라는 책은 관광지에서의 동물 학대 문제만을 다룬 책은 아닙니다. 제가 제주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대해 더 민감했던 것이지요. 페이스북 같은 곳에 강아지나 고양이를 학대하는 영상, 사진이 올라오면 사람들은 욕을 하며 저런 놈은 똑같은 꼴을 당해야 한다며 분노하지요. 어쩜 인간이 저럴 수 있느냐며. 그렇지만 그들은 동물원에서, 아쿠아리움에서 데이트를 하고 가족 나들이를 합니다. 지구 온난화로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북극곰은 안타까워하면서, 그들이 살기에 지나치게 온난한 우리나라의 동물원에 갇혀 녹색의 털을 갖게 되어 버린 북극곰에겐 무관심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이들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럴 거예요. 저도 이렇게까지 동물 학대 문제가 심각한 줄은 몰랐거든요. 단언컨대,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는 제가 근래에 읽은 책 중 가장 슬픈 책입니다. 각 챕터마다 마음 아프지 않은 사연이 없어요.  <레드마켓: 인체를 팝니다>라는 책을 읽고선 두려워하기도 하고 마음 아파하기도 했었는데, 이 책은 더 그렇습니다.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산 채로 가죽이 벗겨져 죽어가는 눈으로 자신의 몸을 보는 동물의 끔찍한 고통이, 자신이 알비노라는 이유로 70여 마리의 동료가 죽어가는 걸 보며 인간에게 납치당한 새끼 돌고래의 고통이, 지느러미가 잘린 채 바다에 버려져 숨을 쉴 수 없어 익사하고 마는 슬픈 물고기 상어의 고통이, 서커스에서 오랫동안 쇼를 하다 눈부신 조명에 시력을 잃고 난 후엔 번식장으로 끌려가 사지를 묶인 상태에서 여러 마리의 수컷에게 강제로 교미를 당한 암컷 코끼리의 고통이, 배에 구멍이 뚫린 채 그 구멍으로 쓸개즙을 내어주는 삶을 살고 있는 곰의 고통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그들의 고통은 수요가 있는 한  오래도록 계속될 거라는 것을 알기에, 쉽게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더 슬프고 아팠습니다.

딸아이가 초등학생 때 저에게  흑돼지 축제 같은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흑돼지가 뛰어놀고 있는 곳 바로 옆에서 어떻게 돼지를 구울 수 있느냐고요. 고기를 무척 좋아하기는 하지만 저런 건 이해가 안 간다고 했습니다. 미안하지도 않느냐고. 아기 돼지들 뛰어노는 옆에서 엄마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이해 못하겠다고. 그때 깨달았어요. 그렇구나, 미안한 일이구나.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예요. 이런 행위들이 얼마나 미안한 일인지,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한 일인지 알지 못하기에 그럴 거예요. 그러니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지구에 살고 있는 자연의 일부로서의 올바른 일인지 조금은 깨달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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