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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나미 신서의 역사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1
가노 마사나오 지음, 기미정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를 통해 이와나미 신서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1930년대부터 출간하여 현재는 3000 호도 넘었다는 무척 유명한 시리즈인데다가 '신서'라는 이름의 원조인데도 전혀 몰랐다니 스스로의 무지를 탓했습니다. 소설이나 과학(그중에서도 생물 관련) 분야를 편식하는 저이기에 인문학은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면 서점에서도 도서관에서도 가까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런 신서가 있다는 걸 알리가 없지요. 괜히 인문학이라고 하면 어려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회피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를 읽으며 어렵고 심오한 내용도 이해하기 쉽게 서술해주는 친절한 책이라 생각했는데, 이와나미 신서 시리즈가 거의 그렇다는 말에 한 번 읽어볼 마음이 생겼습니다. 우리나라에선 AK 커뮤니케이션즈에서 매월 한 권씩 발행하고 있는데요. 오렌지색 표지가 제주인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이와나미 신서는 일본의 대표적 인문학 서점인 이와나미 서점에서 1938년부터 발행하기 시작한 총서입니다. 지금까지 제2차 대전 때 잠시 발행을 멈추었던 걸 제외하고선 계속 발행되어왔으니 확실히 '역사'를 품고 있겠습니다. 시대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며 늘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제작하였으니 이와나미 신서의 역사는 일본 지성의 흐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영국의 펠리컨 북스의 판형을 참고하여 휴대가 간편하도록 하였으며 저가로 보급, 일본인들에게 시대에 맞는 정보를 주고 계몽한다는 취지에 적합한 출판물이었습니다.
이와나미 신서 시리즈가 역할에 충실하다 보니 한국인인 제 입장에서 다소 불편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국수주의인 것도 아니고, 이 책이 혐한인 것도 아닌데 신서의 내용은 무척 일본인 다운 견지이기에 제 입장에선 불편할 수밖에요. 회피를 꾀하는 저는 되도록 피하고픈 주제들이 종종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정면 승부할 자신도, 지식도 없는걸요. 그러나 애초에 이 책이 저를 위해 만든 책이 아니라 일본의 당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을 위해 편찬해온 시리즈이니 이런저런 흐름이나 내용은 무척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저의 편협함을 접어두고 본다면 이 신서 시리즈는 무척 대단한 기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초기에 여성 독자를 고려하지 않은 것도 21세기의 저에겐 불쾌하지만, 당시엔 당연한 일이었겠죠. 시대 변화를 겪으며 이와나미 신서를 여자 한국인인 제가 읽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으며 심지어 이렇게 글도 쓰고 있지 않은가요. 이런 시대이니 신서의 내용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을 겁니다. 읽어보지 않았어도 짐작할 수 있어요. 이와나미 신서는 시대의 변화를 빨리 알아채고 반 걸음 정도 빨리 나가거든요.
<이와나미 신서의 역사>는 1930년대부터 2010 년대에 이르기까지 신서의 대장정을 보여줍니다. 크게는 전시, 전후로 신서의 변화가 있었으며 냉전시대와 신세기에서도 그 차이를 볼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 최신식이며 현대적이었던 이념이나 지식, 특히 과학 분야에서의 것은 지금 와서 케케묵은 것이지만(심지어 스트렙토마이신도 없던 때의 책도 있잖아요!) 과거엔 어떤 식의 흐름이 있었나 알아볼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런 의의도 있지만, 저는 현재의 문제를 살피는 쪽에 더 관심이 갑니다. 이를테면 신고리 원전 5,6호기 문제와 더불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원전 프로파간다' 같은 책 말이에요.
이 책 <이와나미 신서의 역사>는 지금까지의 이와나미 신서 시리즈의 목록이 총망라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3000권을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기에 문장에 맞게 이러저러한 책이 있다고 간략히 설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저자 입장에서 중요하다고 여긴 책은 좀 더 부연 설명을 합니다. 그런데 책에 대해 소개를 하면서도 이 책은 이렇다 저렇다 평하거나 내용의 잘잘못은 따지지 않습니다. 의견을 보태고 싶었던 적이 있었을 텐데, 최대한 자제력을 발휘하여 전체적인 내용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고 독자 스스로 본래의 신서를 찾아 읽고 판단하게 도와줍니다.(귀찮으면 찾지 않겠지만) 그러니 조선, 한국, 한국인에 관한 부분이 나와도 독자 역시 자제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저자의 입장이 독자에게 입혀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이와나미 신서의 역사>를 초반에는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으나 중반이 되니 좀 지치더군요. 이럴 땐 끊어 읽기.
다음날 플래그를 붙여가며 읽으니 또 새롭습니다. 간혹 무슨 말인지 모를 내용도 좀 있긴 했지만요. 저 같이 무지한 독자를 위해 뜻이 첨가되어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에 좀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간 책이 어마어마하게 두꺼워지고, 가격도 올라가겠죠. 책의 맨 뒤엔 지금까지 출간된 서적의 총 목록이 있습니다. 그 두께만도 굉장해요. 3000여 권이잖아요! 이게 메뉴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저 같은 결정 장애가 있는 사람은 며칠을 굶고 말 테니까요.
<이와나미 신서의 역사>는 2015년까지의 내용을 다룬 책이므로 오늘까지의 기록을 포함하다면 내용이 더 추가될 겁니다.
'이와나미 신서 시리즈'가 우리나라에서는 AK 커뮤니케이션즈에서 번역, 출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 제1권으로 우리도 읽으면 좋을 신서를 차례로 펴내고 있습니다. 본디 인문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경직되는 저이지만, 이와나미 신서 시리즈라면 조금씩 접근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풍요로워집니다. 읽을 수 있는 책이 늘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