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괜찮아 - 오늘도 애쓰는 당신을 위한 자기긍정감 심리학
다카가키 츄이치로 지음, 홍상현 옮김 / 나름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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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모교에 입학하게 된 딸아이의 등록을 위해 학교에 방문한 참에 생활기록부를 떼어보았습니다. 첫 장은 인적 사항 및 학교생활에 관한 기록이 있었고, 뒷장에는 수우미양가와 석차의 성적표가 있었습니다. 과거를 추억하며 앞장을 훑다가 행동발달상황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착하고 온순하고, 봉사정신이 있는 학생이었다는 것도 그렇지만, 1학년 때의 기록, '개인의 일 보다 집안의 일을 우선으로 생각한다.'라는 부분 때문이었습니다. 과거의 내가 불쌍했습니다. 강압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에, 나이차가 많지 않은 새엄마와의 불협화음. 두 살 아래의 남동생과 제 끼니와 도시락을 챙기는 건 모두 제 몫이었으며 빨래며 청소 같은 집안일도 모조리 제 일이었습니다. 주말이면 귀여운 돌쟁이 이복동생의 양육도 맡았습니다.  나 자신보다 집안일이 우선일 수밖에 없었는데요. 제게 착한 아이 콤플렉스 같은 것이 있었다는 문제였습니다. 집안이 시끄러운 것도 싫었지만 내가 착하게 굴면 평화와 안정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 쑥스럽게 말하자면, 사랑을 받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선생님께도 보였던 건지, 제가 상담 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괜찮아요. 선생님도 2학기가 되니 제 존재를 잊으셨거든요. 저는 사고를 치며 튀는 학생도 아니었고, 공부를 잘하는 우수 학생도 아니었으니까요. 몇 년 동안 같은 반에 반복해서 나타나더라도 아마 선생님은 눈치채지 못하셨을 겁니다. 어쨌든 그렇게 착한 아이로 살아서 저는 행복했을까요.

'착한 아이'는 위험합니다.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혼나지 않으려고, 인정받으려고 거짓을 꾸며내거나 사실을 숨기고 과장하기도 하거든요. 나아가서 스스로의 감정을 속이기도 하지요. 그렇기에 불안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불안합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막연히 불안합니다.  그 불안감을 이겨내기 위해 '배 째!'라는 방법도 사용할 수 있지만,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던 사람에겐 사용하기 어려운 고급 스킬이라 아무 일 없다고 되뇌며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그러나 막연한 위안은 구체적인 걱정의 공포를 이겨내기 힘들기에 괜찮다는 연기를 합니다. 부모나 사회 앞에서요. 그럼 뭐야. 도로 '착한 아이'가 되려 하는 거잖아. 그곳에서 뛰쳐나오기가 너무 힘듭니다. 뭘 해야 할까요. 이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착한 아이'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채찍에 위협당해 어쩔 수 없이 착한 아이가 된 경우와 사탕으로 유혹당해 부지불식간에 착한 아이가 된 경우 말입니다. (중략)

어느 쪽이든 그런 착한 아이에게는 '있는 그대로 괜찮다'라는 근본적 안심감이 없습니다. 자신이 '존재' 수준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도 괜찮다는 마음이 없는 겁니다. 늘 지배자, 권력자의 입장에 부합하는 '착한 아이'의 역할을 다하고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해야 자신의 자리를 지킬 자격을 얻으니까요. 그러니 자유롭고 솔직하며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섞여 들어가 타자와 교류할 수가 없습니다.

-p.196


저는 칭찬받아야 한다는, 착한 아이여야 한다는 그 압박에서 먼저 벗어나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쁜 아이로서의 첫걸음으로 집에서 뛰쳐나왔었죠. 그래도 착한 아이이니 엄마를 찾아갔습니다. 결국 사슬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자기긍정감이 부족한 제가 쉽게 사슬을 끊어낼 수 있을 리가 없었죠. 이 성향은 제 인생을 좀먹었고 꼬이게 만들었습니다. 착한 아이로 보이기 위해 노력해서 얻은 건 거짓말하는 스킬과 우울증이었습니다. 내가 처해있는 상황이 싫고, 이런 상황에 발목 잡혀있는 내가 싫고, 이걸 떨쳐 내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는 내가 싫었습니다.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죠.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깨닫습니다. 지금 이 모든 것에 대해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걸요. 


<어쨌거나 괜찮아>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에 드는 자신에게는 만족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에 대해서는 '이런 내가 싫다!'라며 거부하게 되는 것, '자기혐오','자기 거부'가 생긴다고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 부분을 포함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것이 '있는 그대로의 나'임을 받아들여 살아가는 것이 자기긍정감이라고합니다.(p.23)


그러니까 생활기록부의 앞쪽에서 회상했던 과거의 저보다는, 뒤쪽의 미양미양한 성적표를 딸에게 보여주며 함께 깔깔거릴 수 있는 현재의 제가 자기긍정감이 있는 편일 겁니다. 우수한 성적의 딸에게 엄마가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했었노라 허언하는 게 아니라 학창시절 나는 이런 성적을 받았고, 가사 노동에 시달렸지만, 덕분에 너를 키울 때 첫애를 키우는 초보 엄마가 아닌 뭔가 능숙한 태도로 키울 수 있었노라며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자기혐오에 자살 충동까지 겪던 제가 어떻게 지금과 같은 태도로 살 수 있게 되었을까요. <어쨌거나 괜찮아>를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보았더니 그건 아이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는 하루도 빠짐없이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그러는 게 아니라 사랑한다고 느낄 때마다 이야기하는데요. 등교할 때에도 '사랑해, 다녀올게.','잘 자. 사랑해.' 등등. 그래서인지 사랑받지 못한다고 여겼던 어린 시절의 어둠이 걷히고 있습니다. 여전히 불안과 우울이 저를 괴롭히고 있지만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매일 사랑한다 말하는 딸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합니다. 나르시즘과는 다른, 자기 자신을 너무나 사랑해서 성장과정에서 드리운 어둠을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이 둘도 없이 소중하다는 것, 나보다 두뇌가 뛰어난 사람도 많겠지만 그 사람과 나를 바꾸고 싶지는 않다, 이런 내가 좋다, 그리고 지금의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다, 나와 더불어 산다는 것은 그대로의 나 자신이 좋다는 겁니다.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거죠. -p.92


뜻밖의 모범사례가 아닌가요. 딸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자기긍정감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제 곁에 있다니 전 얼마나 행복한가요.


저는 또래의 사람들과 생각하는 것, 관심분야, 판단 근거가 다르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괜찮습니다. 나는 '나'이니까요. 섞이지 못해도 외롭지 않습니다. 페이스북에 따봉이 적어도, 블로그 포스트에 덧글이나 하트가 적어도 괜찮아요. 남들이 볼 때 특이하고 괴짜일지 몰라도, 저는 그런 저를 아낍니다. 아이에게 배운 대로요.


저처럼 바로 옆에 자기긍정감의 멘토(나이와 상관없이)를 두고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께는 <어쨌거나 괜찮아>를 권해드립니다. 이 책은 현재의 자신을 매섭게 채찍질하는 자기 계발서도 아니고, 독설로 비난하는 책도 아니고, 마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하는 힐링서도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결점을 포함한 자기 자신 모두를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타인에게 사랑받는 것보다 우선, 자신을 사랑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10년도 넘게 걸려 깨달은 것들을 이 책을 읽고 나서 깨닫는 분도 계실 겁니다.

더불어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께서는 꼭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들을 떨쳐내고 지금의 제가 되기까지는 너무 많은 힘든 일들을 겪었거든요. 지금도 이겨나가는 중인데, 과거는 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더군요. 부모님이 읽고 스스로 자기긍정감을 갖게 되면 양육태도에도 분명 변화가 생길 거라 생각됩니다. 그러면 아이도 변할 거예요.

나는 왜 남들처럼 못하는 걸까, 고민하는 청소년도 읽어보세요. 

자기긍정감 있는 저희 아이도 가끔 그런 고민을 하거든요. '남은 남이고 나는 나야.'라는 중심을 품고 있다면 조금 더 행복해지고 버틸 힘을 얻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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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의 기생충
린웨이윈 지음, 허유영 옮김 / 레드박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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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는 어떤 타입인가 하면, 타인은 물론이고 부모 형제를 포함한 모든 이가 어떤 중요한 선택을 했다면, 그건 나름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론이므로 합당한 이유가 있으리라 믿고 그 결정을 수용하는 편입니다. 부모님의 결정은 저에게도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고, 그로 인해 오랜 시간을 고통받고 힘들었던 데다가 지금 제 우울하고 불안한 성격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므로 아주 쿨하게 좋은 결정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던 과거 부모님의 행동, 저의 행동과 결정이 모여 지금의 저와 제 아이가 되었으니 상처는 상처대로 두더라도 자존심으로 이겨나갑니다.- 솔직히 회피 성향도 다소 있음을 인정하는 바이지만, 결국 버티다 보면 더 좋게 되겠지라는 희망으로 삽니다. 확실히 과거보다는 지금의 삶이 나으니까요. 

과거와 현재가 힘을 모아 만들어 낸 '나'라는 인간이 <우리 엄마의 기생충>의 저자 린웨이윈에게 완전히 공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과거의 그녀가 현재의 자신까지 잡아먹고 있었으니까요.- '현재'라기보다는 '현재'의 바로 직전이 더 어울리는 표현 같습니다. 
페이스북에서 별 갖가지 성향의 사람을 보며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내 생각과는 너무 다르다. 싫은 타입인데라고 구시렁대면서도 제게 직접 피해를 주지 않는 한 타임라인이 올라오는 걸 그냥 지켜보는 건,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으로 - 때론 한심하지만 저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할 사람도 있을 테니 함부로 활자로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살고 있다는 걸 잊지 않기 위함이므로 저자의 글과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끝까지 읽기로 했습니다. 저자의 비호감에 메모장에 '내가 이걸 왜 읽어야 하나'라고 끄적이곤 줄까지 그었습니다. 그 아래 '난, 난 이걸 찾아야 해.'라고 덧붙였지만 말이에요.

린웨이윈의 엄마는 비록 사춘기 후엔 사랑한다, 귀엽다 표현하지 않았던 워커 홀릭 엄마였지만, 반복되는 유산 중에 얻은 딸이라 금지옥엽 돌봐주었다고, 제 기준으로는 그만하면 사랑해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겉으로만 아껴주는 게 아니라 물심양면으로 돌봐주는데 도와줘도 불만이고, 안 도와줘도 불만입니다. 사랑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돌봄도 제대로 받지 못한 데다 어설픈 상태에서 어른이 되어 중심을 잡기 위해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저로서는 그녀의 불만이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이를 키우며 이제야 비로소 동반 성장하고 있는 저로서는 말입니다. 세로로 서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동전도 아니고 너무 양면적인 게 아닌가, 흑이길 원하면서 동시에 백이길 바라는 그녀의 이중성이 답답했습니다. 어느 정도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성향이긴 한데, 저자는 너무 지나쳤습니다. 
강박증에 우울증, 자해까지. 결혼 후에는 배우자 폭행, 공갈, 협박 같은 전형적인 가정폭력까지 행했습니다. 다행히 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했는데, 자신이 분노를 눌러 삼켜왔다고 표현할 땐 기함했습니다. 정말 분노를 누르는 게 뭔지 알기나 하고 말하는 걸까 하면서요.
이렇게 미워하며 에세이를 읽어내려갔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책에 대만 출판계 최고의 상인 '금정장'을 준 걸까. 책을 읽으며 적었던 메모를 이틀 동안 들여다보며 고민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끝없이 저자를 통해 제 과거를 회상했습니다. 내 아이의 현재와 미래를 비추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자의 괴로움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자신을 기생충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숙주에 기생하지 않고선 살 수 없는 존재, 뛰어난 머리와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안으로 파고들고 숨을 수밖에 없는 존재. 저자는 당당히 독립하여 기생충이 아닌 독립 생물이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생충이 아니라 공생충이 되면 좋았을걸. 세상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는 완벽히 독립된 존재라는 건 없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으면 좋았을걸.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에세이가 문학적 수정을 거쳐 어느 정도 가감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고픈 메시지를 위한 장치가 놓여있다는 뜻인데요. 이렇게 한바탕 작가를 미워하며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볼 수 있었던 건 그녀의 트랩에 걸려들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책을 읽은 모두가 나와 같은 과정의 사색을 했으리라 생각지 않습니다. 오히려 흐름에 따라 그녀의 아픔을 자기 것처럼 여기며 울었을지도 모릅니다. 용감하게 이겨내는 과정을 밟는 그녀에게 손뼉을 쳤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각양각색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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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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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왜 책을 읽으시나요?"
서면이나 기록용 필름 인터뷰를 몇 번 한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저 질문은 꼭 따라오더군요.  때가 되면 배가 고프지 않으냐, 밥 먹는 것처럼 책이 고프니 책을 읽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책을 읽는 것을 당연한 일로 대답하는데, 납득을 못하거나 겉 멋든 대답으로 여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몰라요. 그냥 읽어요.'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좋아하는 데 이유가 필요한가요. 3일만 안 읽어도 그리운걸. 제 블로그명이 책 읽고픈 날인데요. '책, 읽고픈 날'이 될 수도 있고 '책이(ㄺ) 고픈 날'로도 읽힐 수 있게 중의적으로 지은 블로그 이름입니다. 저는 책이 그립고 고프기에 책을 찾습니다. 
책을 잘 안 읽는 사람에게 이유가 수십 가지가 있는 것처럼 책을 읽는 사람에게도 수십 가지의 이유가 존재할 거예요. 각자의 방식으로 책을 사랑하고, 원하고, 취급합니다. 그 방법 중 어떤 것이 그르고 어떤 것이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거예요. 이유만큼이나 방법도 다양한 거니까요. 저처럼 접는 금 하나도 용납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책 끝을 접어가며 읽는 사람도 있잖아요. 

나쓰카와 소스케의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에도 이런저런 방법으로 책을 사랑하고 다루는 몇 명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책을 읽고 쌓아두고 전시하는 타입의 사람, 책을 이리저리 잘라서 줄거리만이라도 전하려는 타입의 사람, 잘 팔리는 책만을 만드는 출판사 사장... 얼룩 고양이 얼룩이와 할아버지를 잃고 고서점에 틀어박힌 외톨이 소년 린타로가 책의 미로를 지나 그들을 만나고 그들의 방식이 옳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책을 사랑하는 것은 맞지만 잘못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하는데요. 자신만의 방식으로 책을 사랑하는 그들에게 방식이 반드시 옳다고, 그르다고 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양이는 이야기의 안내자이자 미궁의 안내자입니다. 표지와 제목에서 느꼈던 분위기로는 좀 더 중심에 있을 것 같았는데, 은하철도 999로 치자면 철이를 보호하는 메텔보다 기차의 차장 정도의 역할입니다. 모든 일을 판단하고 해결하는 건 소년 린타로거든요. 누구보다 책을 사랑하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를 사랑하고 할아버지가 사랑하던 책을 사랑한 린타로였기에 얼룩이가 안내한 곳에서 만난 사람에게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의 혜안이 그의 마음에 함께 있었습니다.  린타로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이나 배경은 미야자와 겐지의 글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21세기의 '은하철도의 밤'이라는 이야기를 듣나 봅니다. 여러 유형의 인물을 등장시켜 좀 더 이야기를 길게 만들거나 시리즈로 해도 좋지 않은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 역시 '은하철도의 밤' 같습니다.

겉으로만 훑으며 읽으면 그냥 동화 같을 뿐인 소설입니다. 하지만 때로 읽기를 멈추고 책과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건 이 책이 지닌 철학적인 힘 때문일 겁니다.


무턱대고 책을 많이 읽는다고 눈에 보이는 세계가 넓어지는 건 아니란다. 아무리 지식을 많이 채워도 네가 네 머리로 생각하고 네 발로 걷지 않으면 모든 건 공허한 가짜에 불과해.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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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긴 싫고
장혜현 지음 / 자화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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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말씀하셨죠. '넌 언제 어른 될래?' 
못 입게 된 청바지와 낡은 셔츠를 이어 붙여 만든 크로스백을 보고선 그러시더군요. 잘 만들었다고 칭찬하실 줄 알았는데. 아마 제 취향이 어려서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엄마는 길가에서 예쁜 꽃을 발견하고 호들갑 떨며 좋아하는 소녀 같은 분인지라 제가 엄마를 닮았다면 빨리 어른이 되지는 못 할 것 같습니다. 
엄마가 던진 그 물음표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전 여전히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가능하면 피터 팬으로 살고 싶은데 제 삶이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간간이 사고를 쳐가며 어른도 아이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나이만 먹어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을 반납하고 어른처럼 살아야 했던 그 시기에서 정신 연령의 시계가 멈춰버린 걸까요? 이런 엄마를 둔 탓에 제 아이는 도리어 어른스러워져버렸고 진보 성향을 띤 보수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니, 보수 성향의 진보였던가. 미래를 염려하며 미친 듯 수학 문제를 풀어대는 아이의 옆방에서 저는 여전히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걸 말하는 걸까 사색합니다.

<어른이 되긴 싫고>의 장혜현 작가도 어른이 되긴 싫지만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어떤 것이 어른인가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처음부터 어른이 되기 싫었던 건 아니고, 어린 시절의 내가 그랬듯이 어렸을 땐 서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서른을 만나고 나면 어린 시절 꿈꿨던 그것과는 동떨어져있음을 깨닫죠. 작가는 여행을 통해 삶을 통해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고 생각합니다. 
 전작 <졸린데 자긴 싫고>보다는 <어른이 되긴 싫고>가 제게 더 가까운 에세이였습니다. 여행과 사진을 통해 작가의 사랑과 아픔, 치유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엔 나이 차 많은 언니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 사랑하고 아프던 시절이... 그러나 이 에세이 <어른이 되긴 싫고>는 작가가 느끼고 생각한 것이 독자에게도 적용되어 나 자신의 이야기로 함께 했습니다. 에세이는 감정의 흐름을 타고 의미가 부여되며 사색합니다. 전작보다 한층 성숙해졌습니다. 일상에서의 생각이 주를 이루지만 사랑과 여행을 놓지는 않았습니다. 좀 더 생각이 많아졌고, 문장은 익어갑니다. 그러고 보면 어른이 된다는 건 '생활'이라는 것에 조금 더 깊게 들어온다는 뜻일까요. 그게 어떤 것일지는 몰라도 작가가 말한 것 처럼 '잦은 폭우에도 난파되지 않을 견고한 배 한 척이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기를 기도하는것, 그 배를 이끌 수 있는 다정한 선장이 내가 되는 것(p.44)' 을 염원합니다. 

'어른'에 대한 각자의 정의를 무엇으로 품고 있느냐에 따라 이 에세이는 다르게 읽히겠지요. 아마 모든 것에 동의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비뚤어지지는 마세요. 이 책은 자기 계발서도 아니고, 사회교육 책도 아닌 에세이니까요. 장혜현이라는 작가의 생각이 담겨있는 에세이입니다. 읽고 함께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자신만의 노트에 적으면 좋지 않은가요.


그러니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어른의 기준을 남의 시선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닌
나의 행복으로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남들이 뭐라 해도 행복의 주체가 내가 되면 된다.
그리고 본인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
혹 오답이 나오더라도 그것 역시 좋은 어른의 지름길일 테니.
-p.6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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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족의 왕 마쓰시타 고노스케 기업스토리 9
이와세 다츠야 지음, 김진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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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누군지 몰랐습니다. 우리나라 기업가들도 좋거나 나쁜 일로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만 압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경제, 경영, 정치 같은 걸 잘 모르거든요. <혈족의 왕> 표지의 한일자로 다문 입과 아련한 눈빛의 저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이길래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학창시절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듣기도 했죠. 조용할 때 쉬쉬쉭하는 플레이어 모터 소리가 들릴까 봐 라디오를 들었습니다만 평소에는 좋아하는 가수의 테이프나 복사 테이프를 듣곤 했습니다. 가장 처음 선물 받았던 카세트 플레이어가 파나소닉 카세트 플레이어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뒤 삼성, 소니, 아남의 것으로 바뀌긴 했지만.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바로 그 파나소닉의 창업자입니다. 전신인 마쓰시타 전기의 창업자라고 하면 더 정확하겠지요. 쌀투기로 파산하고 몰락한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심부름 꾼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 뒤 열한 살의 나이에 딸린 식구가 많은 가정의 가장으로서 경제를 비롯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했는데요. 그 중압감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이었을 것 같습니다. 무척 하고 싶은 게 많을 어린 나이었으니까요. 
심부름꾼과 점원 시절을 거쳐 20대 초반, 아내와 가내 수공업으로 소켓을 개발해 판매했는데요. 일반 소켓에 이어 쌍소켓도 개발해 판매했습니다. 초반엔 주먹구구식으로 경영을 하는 바람에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만 점점 발전해 포탄형 자전거 램프를 개발 판매한 일로 대성공을 거두지요. 안일한 경영과 1차 세계대전 후 1920년대의 공황 때문에 자금 부족으로 고생했던 그가 역경을 잘 이겨내고 1924년 9월 이후 이 포탄형 램프를 대히트친 일로 마쓰시타 전기의 기초를 삼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저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일제 강점기에 진행되었던 군수사업에 관해서는 그가 고생했던 일에 그다지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큰 그림을 그릴 줄 몰라서 그런 건지. 그 시대에 관한 것만큼은 - 더욱이 '군수'라거나 '전쟁 사업' 같은 건 용납이 안돼요. 일본인 입장에서는 황군이 어쩌느니 하면서 자국의 승전을 위해 힘써야 하는 게 당연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기분이 나쁜 것도 당연한 일이잖아요. GHQ( 일본식 표현. 서구에서는 SCAP를 사용. 연합군 최고 사령부)에 제재를 받아 고생했더라도 안타깝다거나 고생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소설이라서 감정적인 부분을 잘 요리했더라면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이건 평전이니까요.  

미쓰시타 고노스케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지만 정신 차리고 읽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소설이 아니라 평전입니다. 다소 건조한 건 어쩔 수 없지 않나요. 자칫 우상화할까 저어한 저자의 의도인 것인지, 대체로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고 서술하고팠던 것인지, 좋은 점과 좋지 않은 점 모두를 드러내서 '경영의 신'이 아닌 혈족을 부흥시킨 자수성가 기업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 소설에 익숙한 제 독서력의 영향도 있겠지만 초집중하지 않으면 집중력이 흩어집니다. 인물이 많이 등장하고 회사명, 지명, 제품명 등이 잔뜩 나와 잠깐 방심하면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반드시 메모 준비를 하고 읽으시길 권합니다. 

책에서는 그의 도전 정신이 잘 드러나 있었습니다. 조금 위태롭다고 생각하더라도 이거다 싶은 것에는 과감히 뛰어들고, 밀어붙이는 역량이 좋았습니다. 이를테면 도시바가 일본은 가난해서 TV를 살 수 없다고 한 반면, 마쓰시타는 농가를 방문, 적극적으로 판매를 하는 식으로 독특한 판매전략, 면밀한 마케팅, 역발상, 끈기, 독함 등이 기업을 끌어간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다만 처남이 분리해서 나간 산요 전기와의 관계는 뭐가 이런가  싶을 정도로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 같으면 산업 스파이니 뭐니 난리가 날 정도의 일을 대범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결국 세탁기 개발 판매 사건으로 사이가 악화되는데요. 어쨌든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업인들이 흔히 하는 잘못인 작은집 살림 차리기도 했더군요. 그건 나중에 후회했다지만 그러면 뭐 합니까. 본부인과 작은 부인, 그리고 자녀들에게도 다 상처가 되는걸. 

책을 읽고 제가 경영을 할 수 없는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전, 마쓰시타의 엄격한 경영 방식이 싫습니다. 도와준 사람의 은혜는 절대 잊지 않고, "고객의 목소리를 들어라!"라는 사훈이 있는 건 좋습니다만, 은혜를 잊지 않는 것만큼 좋지 않은 일도 절대 잊지 않는 모양입니다. 측근이 월권을 한다 싶으면 - 사소한 보고 누락이라도 - 두고두고 승진에 영향을 준다거나 퇴출시키기도 합니다. 전 한두 번의 기회를 줄 텐데. 그 한두 번이라는 마음가짐이 기업을 무너뜨리는 거겠죠. 경영인은 좀 독할 필요가 있는데, 전 나름 강한 것 같아도 사업하기엔 무르거든요. 사업가였던 아버지께서 제가 어릴 때 한 말씀이 있습니다. 열 명의 친구를 두는 것보다 한 명의 적을 두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었는데요. 어딘가에 나왔던 말인 것 같은데, 어릴 때라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인 줄 알았습니다. 아무튼 측근이었다가 크게 틀어진 사이토는 마쓰시타의 면면을 폭로해버렸는데요. 이런 건 좋지 않습니다. 기업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단점이 많다는 게 소문이 나면 사업에 지장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이 책 <혈족의 왕>은 한 기업인을 우상화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니 그를 따르면 너도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라는 식의 메시지 대신 마쓰시타 고노스케에 대한 일대기를 전해줍니다. 에디슨에 대해 좋은 점만 보아오다가 어느 순간 탐욕을 보았을 때 실망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이렇게 그냥 있는 그대로를 접하는 쪽이 낫지 않나 합니다. 참,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발명가가 아닙니다. 기업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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