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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긴 싫고
장혜현 지음 / 자화상 / 2017년 12월
평점 :
엄마는 말씀하셨죠. '넌 언제 어른 될래?'
못 입게 된 청바지와 낡은 셔츠를 이어 붙여 만든 크로스백을 보고선 그러시더군요. 잘 만들었다고 칭찬하실 줄 알았는데. 아마 제 취향이 어려서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엄마는 길가에서 예쁜 꽃을 발견하고 호들갑 떨며 좋아하는 소녀 같은 분인지라 제가 엄마를 닮았다면 빨리 어른이 되지는 못 할 것 같습니다.
엄마가 던진 그 물음표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전 여전히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가능하면 피터 팬으로 살고 싶은데 제 삶이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간간이 사고를 쳐가며 어른도 아이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나이만 먹어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을 반납하고 어른처럼 살아야 했던 그 시기에서 정신 연령의 시계가 멈춰버린 걸까요? 이런 엄마를 둔 탓에 제 아이는 도리어 어른스러워져버렸고 진보 성향을 띤 보수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니, 보수 성향의 진보였던가. 미래를 염려하며 미친 듯 수학 문제를 풀어대는 아이의 옆방에서 저는 여전히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걸 말하는 걸까 사색합니다.
<어른이 되긴 싫고>의 장혜현 작가도 어른이 되긴 싫지만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어떤 것이 어른인가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처음부터 어른이 되기 싫었던 건 아니고, 어린 시절의 내가 그랬듯이 어렸을 땐 서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서른을 만나고 나면 어린 시절 꿈꿨던 그것과는 동떨어져있음을 깨닫죠. 작가는 여행을 통해 삶을 통해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고 생각합니다.
전작 <졸린데 자긴 싫고>보다는 <어른이 되긴 싫고>가 제게 더 가까운 에세이였습니다. 여행과 사진을 통해 작가의 사랑과 아픔, 치유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엔 나이 차 많은 언니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 사랑하고 아프던 시절이... 그러나 이 에세이 <어른이 되긴 싫고>는 작가가 느끼고 생각한 것이 독자에게도 적용되어 나 자신의 이야기로 함께 했습니다. 에세이는 감정의 흐름을 타고 의미가 부여되며 사색합니다. 전작보다 한층 성숙해졌습니다. 일상에서의 생각이 주를 이루지만 사랑과 여행을 놓지는 않았습니다. 좀 더 생각이 많아졌고, 문장은 익어갑니다. 그러고 보면 어른이 된다는 건 '생활'이라는 것에 조금 더 깊게 들어온다는 뜻일까요. 그게 어떤 것일지는 몰라도 작가가 말한 것 처럼 '잦은 폭우에도 난파되지 않을 견고한 배 한 척이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기를 기도하는것, 그 배를 이끌 수 있는 다정한 선장이 내가 되는 것(p.44)' 을 염원합니다.
'어른'에 대한 각자의 정의를 무엇으로 품고 있느냐에 따라 이 에세이는 다르게 읽히겠지요. 아마 모든 것에 동의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비뚤어지지는 마세요. 이 책은 자기 계발서도 아니고, 사회교육 책도 아닌 에세이니까요. 장혜현이라는 작가의 생각이 담겨있는 에세이입니다. 읽고 함께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자신만의 노트에 적으면 좋지 않은가요.
그러니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어른의 기준을 남의 시선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닌
나의 행복으로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남들이 뭐라 해도 행복의 주체가 내가 되면 된다.
그리고 본인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
혹 오답이 나오더라도 그것 역시 좋은 어른의 지름길일 테니.
-p.6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