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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괜찮아 - 오늘도 애쓰는 당신을 위한 자기긍정감 심리학
다카가키 츄이치로 지음, 홍상현 옮김 / 나름북스 / 2018년 1월
평점 :
저의 모교에 입학하게 된 딸아이의 등록을 위해 학교에 방문한 참에 생활기록부를 떼어보았습니다. 첫 장은 인적 사항 및 학교생활에 관한 기록이 있었고, 뒷장에는 수우미양가와 석차의 성적표가 있었습니다. 과거를 추억하며 앞장을 훑다가 행동발달상황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착하고 온순하고, 봉사정신이 있는 학생이었다는 것도 그렇지만, 1학년 때의 기록, '개인의 일 보다 집안의 일을 우선으로 생각한다.'라는 부분 때문이었습니다. 과거의 내가 불쌍했습니다. 강압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에, 나이차가 많지 않은 새엄마와의 불협화음. 두 살 아래의 남동생과 제 끼니와 도시락을 챙기는 건 모두 제 몫이었으며 빨래며 청소 같은 집안일도 모조리 제 일이었습니다. 주말이면 귀여운 돌쟁이 이복동생의 양육도 맡았습니다. 나 자신보다 집안일이 우선일 수밖에 없었는데요. 제게 착한 아이 콤플렉스 같은 것이 있었다는 문제였습니다. 집안이 시끄러운 것도 싫었지만 내가 착하게 굴면 평화와 안정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 쑥스럽게 말하자면, 사랑을 받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선생님께도 보였던 건지, 제가 상담 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괜찮아요. 선생님도 2학기가 되니 제 존재를 잊으셨거든요. 저는 사고를 치며 튀는 학생도 아니었고, 공부를 잘하는 우수 학생도 아니었으니까요. 몇 년 동안 같은 반에 반복해서 나타나더라도 아마 선생님은 눈치채지 못하셨을 겁니다. 어쨌든 그렇게 착한 아이로 살아서 저는 행복했을까요.
'착한 아이'는 위험합니다.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혼나지 않으려고, 인정받으려고 거짓을 꾸며내거나 사실을 숨기고 과장하기도 하거든요. 나아가서 스스로의 감정을 속이기도 하지요. 그렇기에 불안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불안합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막연히 불안합니다. 그 불안감을 이겨내기 위해 '배 째!'라는 방법도 사용할 수 있지만,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던 사람에겐 사용하기 어려운 고급 스킬이라 아무 일 없다고 되뇌며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그러나 막연한 위안은 구체적인 걱정의 공포를 이겨내기 힘들기에 괜찮다는 연기를 합니다. 부모나 사회 앞에서요. 그럼 뭐야. 도로 '착한 아이'가 되려 하는 거잖아. 그곳에서 뛰쳐나오기가 너무 힘듭니다. 뭘 해야 할까요. 이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착한 아이'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채찍에 위협당해 어쩔 수 없이 착한 아이가 된 경우와 사탕으로 유혹당해 부지불식간에 착한 아이가 된 경우 말입니다. (중략)
어느 쪽이든 그런 착한 아이에게는 '있는 그대로 괜찮다'라는 근본적 안심감이 없습니다. 자신이 '존재' 수준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도 괜찮다는 마음이 없는 겁니다. 늘 지배자, 권력자의 입장에 부합하는 '착한 아이'의 역할을 다하고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해야 자신의 자리를 지킬 자격을 얻으니까요. 그러니 자유롭고 솔직하며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섞여 들어가 타자와 교류할 수가 없습니다.
-p.196
저는 칭찬받아야 한다는, 착한 아이여야 한다는 그 압박에서 먼저 벗어나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쁜 아이로서의 첫걸음으로 집에서 뛰쳐나왔었죠. 그래도 착한 아이이니 엄마를 찾아갔습니다. 결국 사슬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자기긍정감이 부족한 제가 쉽게 사슬을 끊어낼 수 있을 리가 없었죠. 이 성향은 제 인생을 좀먹었고 꼬이게 만들었습니다. 착한 아이로 보이기 위해 노력해서 얻은 건 거짓말하는 스킬과 우울증이었습니다. 내가 처해있는 상황이 싫고, 이런 상황에 발목 잡혀있는 내가 싫고, 이걸 떨쳐 내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는 내가 싫었습니다.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죠.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깨닫습니다. 지금 이 모든 것에 대해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걸요.
<어쨌거나 괜찮아>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에 드는 자신에게는 만족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에 대해서는 '이런 내가 싫다!'라며 거부하게 되는 것, '자기혐오','자기 거부'가 생긴다고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 부분을 포함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것이 '있는 그대로의 나'임을 받아들여 살아가는 것이 자기긍정감이라고합니다.(p.23)
그러니까 생활기록부의 앞쪽에서 회상했던 과거의 저보다는, 뒤쪽의 미양미양한 성적표를 딸에게 보여주며 함께 깔깔거릴 수 있는 현재의 제가 자기긍정감이 있는 편일 겁니다. 우수한 성적의 딸에게 엄마가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했었노라 허언하는 게 아니라 학창시절 나는 이런 성적을 받았고, 가사 노동에 시달렸지만, 덕분에 너를 키울 때 첫애를 키우는 초보 엄마가 아닌 뭔가 능숙한 태도로 키울 수 있었노라며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자기혐오에 자살 충동까지 겪던 제가 어떻게 지금과 같은 태도로 살 수 있게 되었을까요. <어쨌거나 괜찮아>를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보았더니 그건 아이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는 하루도 빠짐없이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그러는 게 아니라 사랑한다고 느낄 때마다 이야기하는데요. 등교할 때에도 '사랑해, 다녀올게.','잘 자. 사랑해.' 등등. 그래서인지 사랑받지 못한다고 여겼던 어린 시절의 어둠이 걷히고 있습니다. 여전히 불안과 우울이 저를 괴롭히고 있지만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매일 사랑한다 말하는 딸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합니다. 나르시즘과는 다른, 자기 자신을 너무나 사랑해서 성장과정에서 드리운 어둠을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이 둘도 없이 소중하다는 것, 나보다 두뇌가 뛰어난 사람도 많겠지만 그 사람과 나를 바꾸고 싶지는 않다, 이런 내가 좋다, 그리고 지금의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다, 나와 더불어 산다는 것은 그대로의 나 자신이 좋다는 겁니다.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거죠. -p.92
뜻밖의 모범사례가 아닌가요. 딸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자기긍정감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제 곁에 있다니 전 얼마나 행복한가요.
저는 또래의 사람들과 생각하는 것, 관심분야, 판단 근거가 다르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괜찮습니다. 나는 '나'이니까요. 섞이지 못해도 외롭지 않습니다. 페이스북에 따봉이 적어도, 블로그 포스트에 덧글이나 하트가 적어도 괜찮아요. 남들이 볼 때 특이하고 괴짜일지 몰라도, 저는 그런 저를 아낍니다. 아이에게 배운 대로요.
저처럼 바로 옆에 자기긍정감의 멘토(나이와 상관없이)를 두고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께는 <어쨌거나 괜찮아>를 권해드립니다. 이 책은 현재의 자신을 매섭게 채찍질하는 자기 계발서도 아니고, 독설로 비난하는 책도 아니고, 마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하는 힐링서도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결점을 포함한 자기 자신 모두를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타인에게 사랑받는 것보다 우선, 자신을 사랑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10년도 넘게 걸려 깨달은 것들을 이 책을 읽고 나서 깨닫는 분도 계실 겁니다.
더불어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께서는 꼭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들을 떨쳐내고 지금의 제가 되기까지는 너무 많은 힘든 일들을 겪었거든요. 지금도 이겨나가는 중인데, 과거는 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더군요. 부모님이 읽고 스스로 자기긍정감을 갖게 되면 양육태도에도 분명 변화가 생길 거라 생각됩니다. 그러면 아이도 변할 거예요.
나는 왜 남들처럼 못하는 걸까, 고민하는 청소년도 읽어보세요.
자기긍정감 있는 저희 아이도 가끔 그런 고민을 하거든요. '남은 남이고 나는 나야.'라는 중심을 품고 있다면 조금 더 행복해지고 버틸 힘을 얻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