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다카시의 교육력 -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19
사이토 다카시 지음, 남지연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이토 다카시. 어디서 봤던 이름인가 했더니, 최근 4년 사이에 문학 작품 100권과 교양서 50권을 읽어야 '독서력'이 있는 거라고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아, 추리 소설은 빼고요. 역사 소설은 경계에 있다고 했다던가. 그래서 제가 삐져있던 그 저자로서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어디서 봤냐면, 리뷰 생태계가 오염되었다며, '이 책도 좋고 저 책도 좋다'라는 블로그 서평을 지적하는 바람에 저를 삐지게 한 - 그렇다면 더블 삐짐인가- 한 소설가의 SNS에서였습니다. 물론 기사를 끝까지 읽고 나서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이해하고 삐짐을 풀었고, 사이토 다카시의 '독서력'을 읽지도 않고서 삐지는 건 도에 어긋나는 것이라 생각, 마음을 열고 현재 메이지 대학 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사이토 다카시의 교육력은 무얼 말함인지 제대로 톺아보기로 했습니다.

이 책은 열자마자 망했다. 어쩌면 좋지. 오가타 고안이라거나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사람에 대해 나오고 '회독' 학습법 같은 것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포기하고 싶어. 하지만 톺아보겠다는 다짐은 어쩔 건데. 그래서 계속 읽기로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후쿠자와 유키치, 어디서 들어본 인물인데... 아, 만 엔 인물이었지. 계몽사상가, 교육자였다고. 
저를 당황시켰던 건 서장이었는데요. 서장이 이 정도면, 본문은 어쩔 거야 싶었지만, 의외로 본문부터는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 그러고 보면 서장의 내용은 저만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일본인에게는 상식일지도 모르죠. 

 이 책의 본문에선 가르치는 사람, 즉 교육자가 갖춰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교육자의 범위는 넓어서 학교의 교사 일수도 있고, 유치원의 선생님이나 학원 선생님, 그렇지 않으면 강사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방과 후 교사로서 입시와 무관한 무언가를 가르치는 사람일 수도 있지요. 아무튼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라는 자세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내가 하라면 해! 라거나 내가 말하는 건 무조건 외워. 나를 무조건 따라야 해!라는 강압적이고 씨알도 안 먹히는 방식의 교육이 아니라 배우는 자를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수업에 참여하게 하여 향학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언제나 부드러운 카리스마만으로 이끌 수는 없겠지만, 존경 혹은 동경 받을만한 교사가 된다면 학생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입니다. 어둡고 음침한 입시나 각종 시험을 대비시키는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진정한 스승이 될 수 있는 길을 내보여줍니다. 

저는 밑줄을 긋거나 표시하지 않는 타입이라 책을 읽다가 '하이라이트'라는 앱을 이용, 사진에 밑줄을 긋고 태그를 달아 보관하고 페이스북에 올립니다. -라고 하지만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처음엔 몰랐는데 무척 편리한 앱이더군요. - 이 책을 읽다 보니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 많아, 이러다가 책을 스캔할 기세라 다소 자제하였습니다. - 4~5컷 이상 페이스북에 올리는 건 좋지 않은 일이라고 스스로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 읽는 내내 밑줄 긋고 간직하고 싶은 부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이 책은 교육을 하는 사람이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현장의 사람이 아니라 학부모의 입장에서 읽었는데 교육자들이 모두 이렇다면 학교 다닐 맛 나겠다, 공부할 맛 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전에 적용하기엔 입시나 현교육 시스템에 맞지 않는 방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과거에 비추어, 그리고 아이에게 전해 듣는 학교생활로 현재를 상상할 수밖에 없는데요. 과연 어떨까요. 각종 서류에 치여 보고서를 많이 많이 작성해야 하는 선생님께서 자기 계발을 하고 독서를 하며, 창의적인 방법을 연구하여 아이들과 함께 하는 건 힘든 일일까요. 

아이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이다음에 담임 선생님께서 내 제자 중에 이런 녀석이 있었다고 자랑스럽게 말씀할 수 있는 제자가 되고 싶다고요. 그 한마디로, 엄하고 까칠하고 무뚝뚝한 선생님이지만, 존경할 만한 교육자일 거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존경받는 선생님이 드문 요즘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런 선생님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사성어를 알면 중국사가 보인다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25
이나미 리쓰코 지음, 이동철 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너무 어릴 때부터 한자 공부를 강요 당하다 보니 한자와는 담을 쌓았습니다. 어릴 때 소원 중 하나는 신문에서 한자가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는 ..하여 ...라고 한다.'라고 신문을 읽는 건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한자 공부 때문에 쫓겨날 뻔한 적도 있는 저인데요. 어쩔 수 없습니다. 싫은 건 싫은 거니까요. 
아무튼 고등학생 때도 한문이 필요한 과목 - 아마도 거의 모든 과목이 그렇지 싶은데 - 시간에는 눈이 스르르 감겼습니다. 물론 숫자가 많이 들어간 과목에도요. 그러나, 사대부 종손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실제로 무슨 김 씨 종손인 성균관대 한문학과를 나온 젊은 한문 선생님 시간에는 저절로 눈이 초롱초롱 해졌습니다. 한문 선생님께서는 수업시간마다 고사성어 이야기를 해주셨거든요. 오자서, 부차, 장왕 같은 인물의 이야기도 재미있었고, 경국지색의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한시 같은 것이 나오면, 배경이 되는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당시 김용의 무협지도 종종 읽던 시절이라 선생님 수업시간에는 졸 수가 없었어요. 저는 윤승운 화백의 <맹꽁이 서당>에 나오는 학동 마냥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시는 시간에만 정신 차리고 수업을 들었었지요. 
저는 고사성어에 얽힌 이야기를 무척 좋아해요. 그러니 <고사성어를 알면 중국사가 보인다>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지요.

이와나미 신서는 얇지만 내용은 알차서, 읽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편입니다. 이 책도 예외는 아니었는데요.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달았어요. 너무나 재미있는 책이라는 사실을 말이에요. 이 책 한 권이면 중국사의 큰 흐름을 알 수 있습니다. 쉽고, 재미있게 알기 쉬운 문체로 풀어놓은 것이 특징입니다. 책을 쓴 이나미 리쓰코의 이야기 구성력뿐만 아니라 옮긴이인 이동철, 박은희의 노력도 있었겠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을 쉽게 전달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거든요. 이와나미 신서는 전문가가 아닌 사람도 읽을 수 있는, 전문적인 내용을 담은 책을 모토로 하고 있는데요. 그 점이 참 마음에 들어요. 가벼워서 가방에 넣고 다니며,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카페에서 읽을 만한 책입니다. 이번의 책 <고사성어를 알면 중국사가 보인다>가 마음에 들어 그랬는지, 그야말로 이와나미 신서의 목적에 딱 맞는 책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 책안에서 신농씨, 요순의 오제 시대부터 와신상담의 오와 월의 이야기, 진시황의 이야기, 초한지의 이야기를 거쳐 마침내 청나라에 이르기까지의 역사가 흘러갑니다. 우리가 잘 아는 초한지, 삼국지, 수호전의 배경과 사건이 들어있는데요. 고사성어에 따른 중국사라기보다는 중국사에 나타난 고사성어 이야기라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아쉬운 것은 뒤쪽으로, 그러니까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고사성어보다 역사에 치중된 경향이 조금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강희제를 발견했거든요. 녹정기에서 좋은 인상이었던 황제라 반가웠습니다. 

역사 과목에 약한 사람도 읽을 수 있습니다. 제가 읽었으니 확실합니다. 맹꽁이 서당 학동처럼 훈장님이 해주시는 말씀이라 여기며 책을 읽다 보면 파란만장한 중국사의 흐름을 타고 여행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한문 선생님을 추억했습니다. 



**모처럼 성인뿐만 아니라 청소년도 읽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한병동 병동 시리즈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작년인가. 제주시내에도 방 탈출 게임 카페가 생겼습니다. 호기심에 한 번 가볼까, 나라면 시간 내에 충분히 탈출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도전해 볼까 했는데요. 헛, 입장료가! 저 돈이면 반찬 한두어가지 더 하지 싶은 엄마 마음에 포기했습니다. 학생 할인은 있는데 왜 엄마 할인은 없는 건가요. 딸이 위로하며 한 마디 했습니다.
"내 돈 내고 왜 내가 갇혀서 고생해야 하는 건데? 잊어버려." 
시설비, 운영비 등을 고려하면 그 정도의 입장료를 받는 게 맞는데, 저에겐 접근하기 어려운 비싼 공간이었습니다. 누굴 탓하겠습니까. 무능한 제 탓이지요.

그런데, 방 탈출- 리얼 탈출 게임에 자신도 모르는 새에 초대되어 무료로 게임을 즐기게 된 남녀 다섯이 있었으니....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과거 병원으로 사용되었던 넓고 쾌적한 공간, 제한시간 약 여섯 시간. 단 한가지 조건만 제외한다면 신나게 놀아보았을 텐데, 그들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시간 내에 탈출하지 못하면 시한장치가 되어 있는 휘발유통(들)에 붙어 저세상으로 가거든요. 곳곳에 그려져 있는 '클라운'의 메시지를 해석하고 잘 따라가면 탈출구의 열쇠, 혹은 비밀번호를 얻을 수 있을 텐데, 그들은 몰랐습니다. 이승으로 가는 열쇠는 그들 자신이 품고 있다는걸. 

감금된 사람은 모두 다섯, 게이오 의대 부속 병원 외과 교수 쓰키무라, 난요 의대 세타가야 병원 복부외과 의사 고바야카와, 신주쿠 호메이 병원 수술부 간호사 구와타, 세이란 병원 마취과 의사 나나미, 그리고 파견 사원이라고 말했지만 실은 간호사인 사쿠라바. 이들만으로도 외과 수술이 가능하겠다 싶은 의료진 구성이지만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입니다. - 실은 두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아니, 따지고 보면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클라운이 이들을 가두어 두었을 테죠. 그가 원하는 건 그날의 진실이니까. 
수술팀 같은 그들은 진짜로 수술대 위에 묶여있는 남자를 발견합니다. 감금인 하나 추가요. 그를 발견함으로 인해 일 년 전에 죽은 한 의사가 그들의 공통점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시간은 점점 줄어가는데, 진실은 천천히 다가옵니다. 그들의 시간을 따라가다 보니 저도 덩달아 조마조마 해집니다. 빨리 진실을 말하란 말이야! 병동 밖에서 실종된 사람을 추적하는 형사들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장치로서 행동할 뿐입니다. 결국 병원 내의 사람들끼리 알아서 해결해가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비뚤어진 인간들의 자기 고백과 충격적인 결말. 책 뒤의 문구가 거짓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책을 열고나면 닫기가 어려우니 360여 페이지를 모두 읽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시작하시길 권합니다. 분명 책 속에 갇혀버릴 테니까요. 

<시한 병동>을 별개의 책으로 읽어도 좋지만 전작인 <가면 병동>을 읽은 후 만난다면 병원의 장치나 사건 배경을 이해할 수 있어서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가능하다면 두 권 다 읽어주세요. 클로즈드 써클 미스터리 - 메디컬 스릴러 - 정통 추리 소설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탕 2 - 열두 명이 사라진 밤, 김영탁 장편소설
김영탁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저는 점을 보지 않습니다.  천기누설이니 알아서는 안된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알아서 뭐 하겠는가 하는 마음에선데요. 운명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어서 미래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면, 현재의 내가 뭘 하면 그게 바뀔까요. 바뀌지 않으니까 정해진 운명이겠죠. 발버둥 쳐봤자 소용없습니다. 정해진 운명이라는 게 없다면 아예 점을 볼 필요가 없고요. 그러니 미래를 엿보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현재가 모여서 미래가 될 테죠. 지금 열심히 산다고 반드시 밝은 미래가 기다리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현재를 살아봅니다. 시간에 몸을 맡기고요.

미래의 일은 그렇다 치고, 과거로 돌아가서 어느 한 시점을 수정한다면 현재는 어떻게 변할까요. 
정해진 운명이 있다면 어떻게든 그 오류를 수정해서 - 어쩌면 바이러스 같은 그 시간여행자를 없애서라도 - 원래 돌아갈 예정이었던 흐름을 유지할 테죠. 그게 아니라면 현재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테고요. 
어쩌면 수정하는 순간 평행이론에 의해 또 다른 세계로 분화되는 바람에 현재는 전혀 바뀌는 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과거인은 헛수고를 한 셈이 될 테고요.
이를테면, <드래곤볼>에서 미래에서 온 트랭크스가 적을 처치하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그가 사는 미래는 변한 게 없습니다. 4년 후 다시 우리의 현재로 돌아오는데요. 자신 때문에 역사가 바뀐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또 적과 싸우는데요. 야무차가 트랭크스에게 묻습니다. 이 세계에 와서 싸우고 이기더라도 너의 세계는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왜 오는 거냐고요. 트랭크스는 이렇게 답합니다. 어머니(부르마)께서 말씀하시길, 이 지옥 같은 미래가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니 다른 세계에서라도 이 지옥 같은 미래를 막으라고요. 어쩐지 감동적입니다. 
지금은 타임머신이 없는 시대라서 - 없겠죠? 일단 순간 이동 기술을 개발하는 게 선행되어야 할 겁니다. 그래야 어디로든 이동을 시키죠.- 과거의 사건을 수정한다거나 누군가를 죽인다거나 하면 현재는 유지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수정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정답은 없습니다. 작가의 상상에 따라 어느 한 쪽을 선택하고 우리는 그 상상을 따라갑니다. 

김영탁의 <곰탕>은 어떤 상상을 했을까요? 돌 하나만 잘 못 옮겨도 미래에 변화가 생길 것 같은데, 소설에서는 미래인들이 잘도 내려옵니다. 암울한, 몇 차례의 쓰나미가 덮쳐버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제자리 일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미래가 없는 미래인이 과거로 돌아와 우리의 현재를 살고 있는데, 미래에 전혀 영향이 없을까요? 만약 미래인 하나가 현재인의 삶을 대신 살기로 결정했다면 그때부터 미래의 어느 시점이 변하기 시작했을 겁니다. 태어나야 할 사람이 태어나지 않거나, 죽어야 할 사람이 계속 살아있기도 하고요. 그런 사람이 하나가 아니라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이라면요. 과연 미래에 살고 있는 그 사람들은 어느 땅에 발을 디디고 있는 걸까요. 

<곰탕 2>는 <곰탕 1>보다 스토리가 진해집니다. 왜 아니겠어요. 국을 우리기 시작한 지 2권째인걸요. <곰탕 1>에서의 말갛던 국물이 점점 더 고깃국 특유의 색을 내며 향도 더해갑니다. 미래에서 온 이우환은 부산 곰탕의 아들 이순희와 그 여자친구 유강희의 아들이었습니다. 실은 <곰탕 1>에서 확실해졌지만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곰탕 2> 이야기를 할 때 수육을 썰듯 썰어놓아보는데요. 막연하게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 확실해진 이상, 자신의 아들 뻘인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었던 우환은 미래로 가는 시간여행 배에 올라탔다가 느닷없이 문을 열고 바다로 나와 곰탕집으로 돌아갑니다. 앞뒤 재지 않고 한 행동 때문에 동승했던 사람 열둘이 죽습니다. 우환이 미래로 돌아가는 줄 알고 다음날 미래로 가려고 했던 화영은 이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우환을 죽여야 할 이유가 둘이나 생겼거든요. 첫째, 미래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탈주자이고, 둘째, 과거 시점에서 열둘을 죽인 자를 죽이라는 청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죽이고 싶지 않았던 우환이지만, 자신이 미래에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려면 그래야만 했습니다. 결국 우환과 화영은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살인을 하는 처지가 되고 만 것이죠. 
부산 곰탕으로 돌아가 할아버지, 아빠, 엄마와 함께 살아가려고 했던 우환은 자신이 바다로 나갔던 날부터 순희가 돌아오지 않았기에 계속 그를 기다립니다. 애틋한 마음으로요. 한편, 순희는 부동산 업자 박종대의 꼬임에 그가 내어준 아파트에서 기거하고 있었는데요. 순희가 미래에 굉장한 조직인 아수라의 수장이라는 걸 알고 있는 박종대가 그를 자기 손에 넣기 위해 공작을 한 겁니다. 박종대 역시 미래에서 온 사람입니다. 그는 2019년의 부산으로 온 미래인에게 접근, 이곳의 사람과 바꿔치기해주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여러 일을 하는데요. 척 보아도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는 짓들을 합니다. 
순희는 박종대를 만나 점점 파멸합니다. 그가 진짜 원하는 건 파괴가 아니라 사랑과 인정받는 것일 텐데. 사랑받고 싶은 소년의 잘못된 몸부림을 따라가며 안타까웠습니다.
만일 순희의 아버지 이종인이 좀 살가웠더라면 아이의 삶은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이대로 자라나 정말 부산을 주름잡는 최고의 보스가 되면 어떡하죠. 우환이 새벽마다 말아준 곰탕이, 아버지만큼 나이 많은 아들이 말아주는 곰탕이 순희의 마음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요.

책을 읽다 보면 소설이 영화처럼 보입니다. 손을 뻗어 팝콘을 집어 입에 넣어가며 과자 부스러기가 책장에 묻지 않도록 조심하며 책을 읽어나가다 스릴감에 긴장하기도 하고, 안타까움에 콧잔등을 문지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미래의 국물 음식점 사장이 어째서 우환을 과거의 부산 곰탕집으로 보냈는지 알고 나서 또 한 번 놀랐습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 소설은 영화로 나와도 좋지 않을까, 아니면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로 - 기대해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탕 1 - 미래에서 온 살인자, 김영탁 장편소설
김영탁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곰탕을 먹어본 지 무척 오래되었습니다. 연구회 오라버니들을 따라가 먹어 본 게 마지막이었으니 제법 되었지요. 간을 하지 않은 채 먼저 국물 맛을 보고, 간을 할 후 다시 맛을 보는 걸 습관처럼 하라고 했습니다. 집에서 만들기 어려운, 제대로 만들려면 불가능에 가까운 곰탕은 사골만 우려내 만든 사골국과는 다른 맛이 났습니다. 입안에 쩍쩍 들러붙는다고 할까요. 누군가는 깍두기 국물을 부어 묘한 맛을 즐기기도 하겠지만 저는 파를 조금 더 넣어 즐기는 편입니다. 여기서 잠깐, 곰탕과 설렁탕은 어떻게 다를까요? 곰탕은 주로 한우 양지, 사태 등 고기를 이용해 끓이고 설렁탕은 사골을 주로 하여 끓입니다. 식당마다 조금씩 비율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그렇습니다. 노년의 아내가 사골을 끓이기 시작하면 며칠 동안 어딜 가려는 걸까 염려하는 남편도, 점심엔 설렁탕, 저녁엔 곰탕을 시켜 먹으며 구속될까 염려하던 MB도 막상 그것들을 먹을 때는 맛나게 먹었겠죠. 입을 쩝쩝 다시면서.
음식 만드는 일에 웬만해선 겁을 안내는 저이지만 15년 전 사골을 끓인 이후로 뭔가를 고아 내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열 살 남짓부터 스무 살이 넘도록 때때로 이런저런그런 것들을 커다란 들통이나 솥에서 끓여내다 보면 지겨워질 만도 하지 않겠어요? 그래도 남이 끓여준 건 먹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곰탕이나 도가니탕, 설렁탕, 꼬리곰탕 같은 것들. 추운 겨울이나 몸이 아플 때 곰탕 한 그릇이면 가뿐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진한 육수가 위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위통에 시달리는 요즘도 때때로 생각납니다. 곰탕은, 추억의 맛일까요?

2063년 근미래의 부산에는 곰탕이 없습니다.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겁니다. 구제역으로 가축을 죽여 멸종시키고 만 미래인들은 단백질 합성고기니 곤충 단백질이니 하는 걸 버리고 희한한 신종 식용 가축을 만들어냈습니다. 쥐를 닮은 생김새에 소고기의 노린내를 가진 '그것'을 그냥 '그것'이라고 불렀습니다. <곰탕 1>의 주인공 이우환은 '그것'을 가지고 요리를 하는 국물 음식 식당에서 주방보조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주방장이 국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준대도 거절할 만큼 바람직하지 못했던 맛이었나 봅니다. 사장은 주방장에게 오래전 먹었던 고깃국, '곰탕'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모자라 결국 주방장을 통해 이우환에게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권합니다. 곰탕의 비법과 재료를 사가지고 돌아오면 돈을 주겠다고 합니다.

시간 여행선엔 열 세명이 탑니다.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여행이라고 했습니다. 가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결국 함께 출발한 열 세 명 중 두 명만이 2019년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주인공인 이우환과 스물도 안 된 소년 김화영은 바다를 헤엄쳐 뭍에 닿았습니다. 죽일 사람이 있어 왔다던 화영은 떠나고, 이우환은 부산 곰탕집에 취직합니다. 그 집의 사고뭉치 아들 이순희, 그의 여자친구 강희와는 특별한 인연일지 모른다는 예감이 들지만 애써 부인합니다.

부산의 강력반 양창근 형사는 순희가 싸움질을 하는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을 조사하다 묘한 점을 발견합니다. 이게 과연 말이 되는 일인가. 시신의 옆구리는 무언가에 정교하게 도려내져 있었지만 잘린 부분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한편 이 책을 추천한 강풀 작가의 본명 '강도영'과 같은 이름의 까칠한 형사도 맹활약을 하는데요. 작가의 이름이 김영탁인 것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괜히 웃음이 나왔습니다. - 강풀의 타이밍 시리즈 주인공이 김영탁이거든요.

이 소설이 곰탕 레시피를 구하기 위한 한 남자의 모험기였으면 심란하지 않았을 텐데, 그 남자가 얻어 가는 건 레시피와 재료가 아닌 다른 것이었습니다. 곰탕을 끓이고 먹고 나누는 동안에 쌓여가는 건 사십 대 중반이 되도록 느끼지 못했던 '정'이었던 겁니다. 곰탕의 국물만큼 뜨끈한 정이 흐르는데, 식당 가족들이 품어준 것도 아닌데 스스로 깨쳐가며 쌓아갑니다.
한편, 부산의 형사들은 각자 자신의 촉과 추리에 따라 맡은 사건들을 추적해가는데, 그 끝은 미래인을 향하고 있습니다.

<곰탕 1>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김조한의 'Cause you're my girl'이 흘러나오며 광고 배너가 떠줘야 할 것 같은 반전이 있어 잠깐 심장이 쿵떡. 
이 소설은 여러 장르가 혼합되어 있으나 전혀 어색하지 않고 흡인력이 있으며 스크린을 메울법한 영화 같은 장면들이 종이를 채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