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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에 갇힌 여자 ㅣ 스토리콜렉터 63
로버트 브린자 지음, 서지희 옮김 / 북로드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요즘 한진 그룹 조양호 일가의 갑질로 시끌시끌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저런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 중2병이 덜 나아서 그런 걸까 싶을 정도로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을 하는 그들을 보며 나라면, 내가 만일 저렇게 돈이 많은 사람이라면 아주 우아하고 매너 있는 행동으로 사람을 대할 텐데.. 그게 더 멋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과거 유럽의 생활을 잠시 들여다보면, 귀족들의 행동이 마치 그들 같았다고 해요. 우리가 생각하는 매너 있고, 교양 있는 행동은 귀족이 아니라 시민층의 모습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렇다면 조양호 일가의 행동은 스스로를 귀족같이 생각하는 데에서 나온 걸까요? 저는 그런 귀족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만.
이런 부유층, 기득권층의 갑질 행동은(갑질 문화라고 하고 싶지 않아요.) 비단 우리나라만의 것은 아닌가 봅니다. 혹자는 갑질 문화가 만연한 건 우리나라와 일본의 특징이라고 하던데, 서양권이라고 다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에 읽은 <얼음에 갇힌 여자>를 읽으면서 한진 그룹 조양호 일가의 모습이 떠올랐거든요. 소설 속의 일가는 조양호 일가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습니다.
겉으로야 지역 최고의 유지로서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을는지 모르겠지만, 알고 보면 엉망 그 자체였거든요. 자신들의 부와 우아함을 유지하기 위해 자식들을 내버려 둔 결과가 어떤 건지 마지막까지 깨닫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얼음에 갇힌 여자> 앤드리아는 소위 말하는 셀럽입니다만, 무척이나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폭력적인 섹스, 마약 같은 것에 스스로를 물들이면서 게을러빠진 행동과 안하무인격인 태도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소문이 나지 않았던 건 집안의 힘과 돈 때문이었을 거예요. 그런 그녀가 어느 날 누군가에게 습격당하고 꽁꽁 얼어붙은 호수 아래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성폭력의 흔적도 없고, 돈도 그대로 있는 걸 보면 원한 살인이나 보복 살해 같은 걸 의심할 수 있는데요. 보통 골치 아픈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뒤를 캐야 하는 상대가 상대니만큼 경찰 측에서도 상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일이니까요. 이에 한동안 휴직 중이던 에리카 경감을 소환합니다. 그녀라면 믿고 맡길 수 있기 때문에 불렀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런 게 아닌가 봅니다. 마음의 준비가 완전히 되지도 않은 에리카 경감을 소환해 굳이 사건을 맡겨놓고는 어찌나 비협조적인지. 일단 맡은 사건에는 최선을 다하는 그녀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자꾸만 시비를 놓습니다. 그럴 거면 왜 부른 건지. 만일의 경우 잘못되면 덤터기를 쓸 사람이 필요했던 걸까요? 끝까지 읽다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에리카 경감은 작전 중 동료였던 남편을 잃은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도 못했지만, 경찰로서 열심히 사건을 수사합니다. 단서를 찾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비협조적인 건 경찰 내부뿐만이 아니라 피해자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상하죠. 적극적으로 협조해서 범인을 반드시 밝혀내어 중형을 받게 해달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딸의 죽음을 빨리 마무리 짓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이해가 되는 게, 밝고 명랑하며 어딜 가나 빛을 발하던 앤드리아의 이미지가 사건을 파헤칠수록 점점 더러워져갔거든요. 에리카 경감이 더럽힌 게 아니라 숨겨졌던 앤드리아의 모습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던 것뿐인데, 마치 얼음이 녹아 그 안의 것이 흘러나오는 것처럼요. 앤드리아의 부모와 약혼자는 그녀의 사생활이 까발려지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습니다. 부모니까 당연한 일이겠죠. 그래도 범인은 잡아야 하지 않겠어요? 웬만하면 협조 좀 하지.
에리카 경감이 사건을 추적하는 사이 몇 명의 희생자가 더 발생합니다. 범인은 사건을 파고드는 에리카 경감 역시 공격하는데요. 몇 번의 접근과 공격으로 에리카 경감은 위험에 처하고 맙니다. 예리한 직관력과 행동력, 혼자 있을 때면 상실감에 괴로워하지만, 일할 때만큼은 누구보다도 적극적이고 열심인 그녀를 응원하다 보면 비협조적인 경찰 내부인들 때문에 답답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래도 한 팀인 부하들이 경감을 신뢰하고 잘 따라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들 덕분에 수사가 진행될 수 있었거든요.
범인은 뜻밖의 인물입니다. 일반적인 스릴러물처럼 작품에 거의 드러나지 않았던 인물이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의외로 작품 내에 잘 드러나있었습니다. 이건 일종의 스포일러가 될까요? 소설 내에 등장하던 인물이 범인이고, 결국 수사 끝에 밝혀낸다는 부분은 추리 소설 같습니다. 게다가 스릴러의 요소도 충분히 갖추고 있어요. 미국 아마존 킨들 1위에 오른 것도 당연합니다. 가독성도 좋아서 술술 잘 읽히거든요. 영국에서는 종합 베스트셀러 2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참 재미있어요. 데뷔작이 이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는 건 주목할만 일이죠.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에리카 경감 시리즈라고 하니 출판사에서 계속 출판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다음 작품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