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 스톡홀름신드롬의 이면을 추적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
롤라 라퐁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퍼트리샤 허스트 사건

1974년 미국의 언론 재벌 가문의 여식이자 사교계의 꽃인 퍼트리샤 허스트가 어느 날 무장 저항 단체인 SLA에게 납치를 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만한 사람을 납치했음에도 불구하고 희한하게도 SLA는 그녀의 부모에게 몸값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퍼트리샤가 직접 녹음한 녹음테이프만이 전달되었는데, 퍼트리샤는 다치지 않았으며 그들이 자신에게 국제적 포로 규정에 준하는 대우를 해주고 있음을 알리고, 몸값 대신 빈곤한 이들을 위해 기부를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안전을 위한 간곡한 어조로, 그러나 후반에 이르러서는 부모를 거세게 비난하며 더욱 노력할 것을 강요합니다.

그리고 불과 60여 일 후, 퍼트리샤는 자신을 납치한 SLA 대원들과 함께 은행강도 행각을 벌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체 게바라의 연인인 타니아로 개명하고 M1 소총을 든 채 스스로가 무장 대원으로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에 그녀의 무사 생환을 응원하던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지요.

결국 납치된 지 1년 4개월 만에 FBI의 무력 진압으로 SLA 대원들이 사살되고 몇 달 뒤 퍼트리샤 허스트 역시 체포됩니다. 급하게 꾸려진 최고의 변호인단은 퍼트리샤가 무장 대원들에 의해 세뇌되어 은행강도 행위에 가담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35년 형을 언도받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로널드 레이건과 서부 영화로 유명한 존 웨인 등 거물급 인사들이 탄원하여 징역 7년으로 감형됩니다. 후에 지미 카터 대통령의 특별 사면으로 보석금 150만 달러를 내고 가석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1년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사면을 받게 되어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람들은 퍼트리샤 허스트 사건을 전형적인 스톡홀름 증후군 사례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그녀는 작가로, 배우로 그리고 주부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폴라 라퐁

폴라 라퐁은 퍼트리샤 허스트 사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합니다. 실화를 근거로 쓴 이 소설은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들어있는 - 하지만 단순한 구조가 아니라 다소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독서력이 부족한 독자라면 시점을 맞추지 못해서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독서를 꾸준히 해 왔던 독자라면 금세 이 이야기 <17일> 속에 빠져들어 우리가 미쳐 보지 못했던 퍼트리샤 허스트 사건을 다각도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30대의 진 네베바 교수, 그리고 그녀가 채용한 10대 후반의 조수 비올렌의 시각으로 퍼트리샤 사건을 훑기 시작합니다. 퍼트리샤가 체포된 후 감금당해 세뇌되었음을 주장하며 감형 혹은 무죄 판결을 얻어내려고 하며 변호인단은 마지막으로 진 네베바 교수에게 그녀의 사건을 검토하여 무죄를 입증할 보고서를 써달라고 부탁합니다.

프랑스에 체류 중이던 네베바 교수는 비올렌과 함께 사건 자료를 시간순으로 읽고 들으며 놓친 것이 있는 건 아닐까 심각하게 검토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게 되는 건 퍼트리샤 혹은 타니아의 말속에는 사람들이, 특히 부유계층의 남자들이 놓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SLA는 퍼트리샤의 녹음 메시지를 통해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내줄 것을 요구했으며 그녀의 부모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다지 질이 좋지 않은 음식을 겨우 1500여 명밖에 받지 못했기에 퍼트리샤는 분노하며 다시 메시지를 보냅니다.

저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어요. 하나는 안전한 장소에서 풀려나는 것이고, 또 하나는 SLA에 합류해서 저와 억압받는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거예요. 저는 남아서 싸우기를 선택했습니다. 그 누구도 식사를 제공받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 모욕을 당하거나 자신의 생명과 자신이 낳은 자식들의 생명을 계속해서 걱정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p.163

비올렌도 저도 이 말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퍼트리샤는 과연 스톡홀름 증후군이었던 걸까요. 사면 받기 위해 거짓과 돈으로 자신을 휘감았다고 해도 이 순간만큼은 진실의 목소리를 내었던 건 아닐까요.

비올렌, 우리 세대는 부모들이 미국이라는 살인 기계의 잘 기름칠 된 톱니바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몹시 혼란스러워. 그들은 전쟁이 그들의 잔디밭을 피로 물들이지 않는 한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가는 모범적인 노동자들이지. 아메리칸드림이라는 거대한 축제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먼 곳으로 죽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 생각이야.

-p.149

이 소설을 따라가면서 진, 비올렌, 나라는 세 세대의 사람, 또는 여자의 눈으로 퍼트리샤를 보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세대가 다르다는 것은 사건을 해석하는 기준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1970년대 당시와는 다른 눈으로 사건을 볼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진 네베바 교수는 요즘 기준으로 보아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수준의 사고를 하고 있었고 비올렌은 진에 의해 깨우쳐집니다.

비올렌이 진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실은 진 역시 비올렌에게 큰 의미를 두고 있었습니다. '나'라는 사람은 비올렌을 통해 다시 진의 생각을 자신의 것과 합쳐봅니다. 독자인 저는 진의 눈으로, 그리고 비올렌의 눈으로 또 21세기를 사는 '나'의 눈으로 퍼트리샤를 봅니다.

책을 읽으며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습니다. 이 책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사건이라고 흘려보낼 수 있는 퍼트리샤 허스트 사건을 작가만의 스타일과 필력으로 재구성하면서 저를 이 안에 옭아매고 엮어버렸습니다. 타니아였던 시절 그녀가 냈던 목소리에 큰 감동을 받았었지만 다시 퍼트리샤로 돌아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뇌가 아닌 자유의지로, 혹시 처음부터 납치 자작극은 아니었을까 하고 의심했던 저를 실망시켰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롤라 라퐁은 퍼트리샤가 스톡홀름 증후군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를 내보였음을, 그녀가 사용했던 단어나 문장을 통해 끌어냅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저는 감동과 슬픔을 동시에 품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슬기로운 방구석 와인 생활 1
임승수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블로그 초창기 시절 동생의 이것저것 잡다한 블로그에서 와인에 관한 것도 좀 본 기억이 있습니다. 저나 얘나 와인에 대해 관심을 두었던 건 '신의 물방울'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동생은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했으니 와인을 여전히 종종 즐기는 것 같은데, 저는 '신의 물방울' 만화를 보는 것만으로 그쳤습니다. 그러므로 와인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만화를 보았으니 포도밭이 어디고, 연대가 어디고 하는 걸 따진다는 건 알고 있지만 진짜 딱 거기까지입니다. 제가 와인을 마셔 본 건 손가락에 꼽을 만큼 일 거예요. 20대 때는 소주, 막걸리, 그리고 위스키 주종을 즐겼었고, 30대 때부터 술을 점점 멀리하다가 지금은 거의 마시지 않습니다. 몸이 자꾸 아프니까 간을 소중하게 다룬다는 의미로 잘 참고 있다가 애가 조니워커를 권하면 아주 조금 온더록스로 마십니다. 그러니 와인이란 저에게 샹그리아의 재료, 뱅쇼의 재료, 꼬끄뱅의 재료 일뿐입니다.(애호가님들께는 더할 나위 없이 무식한 말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가끔은 와인에 대해 궁금증이 일기도 합니다.

도대체 저 병안에는 무엇이 들었길래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것일까, 잠깐의 기호품 그 이상의 의미를 차지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거요. 그 매력이 무척 궁금하긴 하지만 혹시나 손을 대었다가 헤어 나오지 못할까 두렵기도 합니다.

저는 와인 초보도 아니고, 와인 방관자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냉장고 위에 스파클링 와인 한 병 얹어놓고 언제 먹을까 궁리하는 꼬꼬마입니다. 방관자임에도 불구하고 와인에 대한 궁금증은 애주가도 아니면서 스피릿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이라고 말하는 작가 임승수가 저를 보면 그런 방관자 주제에 왜 이 책을 읽었느냐고 물을지도 모릅니다. 이것 역시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마시지는 않지만, 마시는 사람들의 마음도 궁금하고 어떤 와인을 어떤 때에 마시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어쩌면 지난 2월 엄마 집에서 가지고 온 와인의 코르크를 따는 데 애먹지만 않았어도, 그 와인이 떫고 맛이 없지만 않았어도 그때 와인교에 발을 넣었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저는 떫은 와인의 봉오리를 열리게 하는 방법도 몰랐고, 그때 사용한 코르크 따개는 거의 일회용처럼 되어버려 쓰레기통에 버려졌습니다.

와인교의 사도바울이라고 하는 임승수의 전도를 미리 받았더라면, 내 피에도 와인이 흐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이라고 말하는 그의 책은 무척 흥미로우며 즐거웠기 때문입니다. 와인 입문자에게는 좋은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며 애호가에게는 즐거움을 더할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와인에 대한 정보를 주면서 입문자를 슬슬 애호의 길에 빠질 수 있는 동아줄을 내려줍니다. 할인 판매가라거나 정가에 속지 않고 합리적인 가격에 와인을 구매할 수 있는 방법부터 가성비가 좋은 와인도 추천합니다. 와인에 얽힌 개인적인 이야기도 위트 있게 버무려져 있어서 낄낄거리며 읽을 수 있습니다.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정보가 상당히 많고, 와인에 대한 정보도서라고 하기엔 개인적인 취향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책에서도 이르듯, 이 도서는 에세이도 아니요 정보도서도 아닌 와인 간증서인 것입니다. 다른 것이 아닌 오롯이 작가의 생활비를 탈탈 털어 넣어 직접 느끼고 체험한 것을 전해주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책입니다.

그러나, 신의 물방울은 아니에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고 마르크스주의 책을 쓰는 사회학 작가가 와인을 마시면서 쓴 책이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볼루션 익스프레스 - 생명의 진화를 탐사하는 기나긴 항해 익스프레스 시리즈 4
조진호 지음, 장대익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진호 작가의 책을 처음 만났던 건 그래비티 익스프레스였습니다. 도서관 신간 코너에 꽂혀 있던 그 책을 꺼내면서 처음에는 외국 작가의 그래픽 노블 같은 것인가 하였지만 이내 책에 코를 박고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다시 <아톰 익스프레스>를 만났습니다. 언젠가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래비티 익스프레스>,<게놈 익스프레스>와 더불어서 이북 책꽂이에 두었었는데 당시 아이의 화학 선생님께서 재미있다면서 추천해 주셔서 기억이 났습니다. 그 선생님은 제 화학 선생님이시기도 하거든요. 저는 내친김에 책을 쭉 읽어 나갔고, '존재'의 철학과 더불어 화학의 역사, 지금까지 흘러왔던 변화 과정 등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에는 가슴이 찡해지기도 했지요.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었던 책입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조금 흘러 <에볼루션 익스프레스>를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우리는 어디로부터 왔는가에 대한 질문을 비글호에 싣고 떠나는 여행입니다.

나는 왜 존재하는 가에 대한 철학적 물음으로 시작하여 과학적 기원으로 향해 갑니다.

나는 왜 있는가를 누구로부터 나왔는 가로 질문을 바꾸어 나의 부모님, 그리고 그 부모님, 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을 하면 할수록 희미해지는 그것은 무척 중요하면서도 찾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조진호는 '나의 기원' 그리고 모든 '생물의 기원'을 찾기 위해 익스프레스에 올라탑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물음부터 시작하며 생물의 최초 기원에 대해서는 현세대 인류뿐만 아니라 고대로부터 고민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발생설을 주장하던 존 니덤의 이론이 깨지던 파스퇴르의 실험으로 인해 우리는 모든 것은 자연히 발생하지 않고 무언가로부터 왔다는 걸 압니다.

그리하여 원시 대기에 이르러 무기물들이 '어떠한' 충격에 의해 유기물로 합성되기 시작하고 그것이 LUCA라고 합니다. 그것은 에너지를 다루고 스스로 복제하며 증식합니다. 가장 작은 단위의 균부터 복잡한 체계를 가지고 있는 생명체까지 모두 이를 기원으로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드디어 최초의 것을 찾아내었다고 착각하고 말죠.

하지만 LUCA 역시 최초의 생명체는 아닐 거라고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왜' LUCA가 생겨났는 건데요. 결국 우리는 여전히 최초의 기원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과학자도, 철학자도 근원을 찾아 고민하고 고뇌하는 것입니다.

조진호의 익스프레스는 기원을 찾기 위해 '다윈'을 만납니다. 그의 수명이 다해가던 순간 에른스트 마이어와 함께 방문한 조진호에게 자신을 갈라파고스에 데려다 달라는 조건을 걸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약속을 얻어냅니다. 그가 원하는 갈라파고스는 젊은 시절 그가 수많은 시간을 바쳤던 그곳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번의 익스프레스는 열차가 아니라 시공간을 항해하는 '비글호'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항해를 따라가며 다윈의 일생과 연구에 대해 봅니다. 고뇌와 열정도 지켜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시공간을 초월한 그들의 여행 속에서 나의 기원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일뿐입니다.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시작된 우리는 종이니 속이니 하는 것으로 분화되어 있어도 결국은 하나, 커다란 생명수 나무 끝의 존재라는 생각에 이르르게 됩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춰 서지 않습니다. 아직 그 최초의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어떻게 분화되기 시작했는지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아는 것이 부족합니다.

과거에 비해 현재는 많은 연구 장치나 발전된 과학 도구로 다윈의 시대와는 다른 연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우주 속 생명체를 찾는 연구까지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쩌면 지구인이라는 - 우주의 시점에서 본다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관점에서 그들을 찾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많은 걸 알게 된 것 같지만 동시에 여전히 아는 것이 없습니다.

<에볼루션 익스프레스>는 필연적으로 <게놈 익스프레스>와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만남을 통해 우리는 좀 더 심층적인 것을 배우고 익히게 됩니다. 그리고 다윈은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갈라파고스를 찾아냅니다. 그가 비글호를 떠나는 장면은 무척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완전한 휴식, 더 이상 그는 익스프레스에 탑승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감동이 있기 때문에 저는 익스프레스 시리즈를 놓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에볼루션 익스프레스>는 찰스 다윈과 에른스트 마이어가 메인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지만, 바버라 매클린톡, 그레고어 멘델,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 같은 중요한 과학자들도 등장합니다. 그리고 에피쿠로스, 데이비드 흄 같은 철학자도 등장하지요. 에볼루션 익스프레스라는 거대한 영화가 끝난 후 촬영장에 에드워드 윌슨, 리처드 도킨스, 윌리엄 해밀턴이 찾아와 조진호와 나누는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다윈과 공동 논문을 내었던 앨프리드 월리스의 이야기도 흥미롭고요.

익스프레스 시리즈들이 그렇듯이 이번 <에볼루션 익스프레스>역시 과학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주었으며 철학적 고찰도 하게 만들었습니다. 억지로 끌고 가는 과학 여행이 아니라 영화를 보듯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종착역에 도착해 있는 신기한 경험을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요일은 지나가고 주말은 오니까
안대근 지음 / 허밍버드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요일이 좋을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그걸 알고 있기에 주말이 오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젊은이들에게 지금의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알려주마라고 할 필요는 없다.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 조언해 주고 싶은 마음은 한가득이지만, 그들이 살아온 인생의 크기가 내 인생의 크기보다 작다고 결코 쉽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몸이니 너희들이 알 게 무어냐하고 큰소리 떵떵 치는 이들이 있는데, 오히려 그런 이를 보면 작고 작은 세계에서 살았구나 하며 혀를 차게 된다. 이렇게 그들의 그릇의 크기를 재고 있는 나 역시 그런 인간들 중 하나겠지.

각각의 지내온 인생 - 흘려보내기도 하고 가열하게 살아오기도 했던 그 시간들이 모이면 무한히 팽창하는 우주와도 같다. 모든 생을 살아 볼 수 없기에 우리는 소설을 읽기도 하고, 에세이를 읽으며 그들의 인생을 내 인생 한편에 꽂아 두어본다. 때로는 위로를 얻기도 하고 때로는 위로를 건네고 싶어 하기도 한다.

이 책은 어느 쪽일까.

<목요일은 지나가고 주말은 오니까>의 작가 안대근은 인스타그램 속에서도 딱 이런 색이다. 너무 초록 초록하지도 않은 적당한 연둣빛의 그런 느낌. 화려하거나 강하지 않아서 오히려 안심이 된다. 세상 속에서 부대끼고 있는 이들 중에서도, 아니 인스타에서 화려함을 뽐내고 있는 이들 중에서도 그와 같은 사람이 있겠지. 다들 가면으로 자신을 두르고 괜찮은 부분, 좋은 부분을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서 실제로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고 있는지 알지 못하며 겨우 그것에 머무르려 한다. 그래도 그들 역시 또 일주일을,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거겠지.

컨디션이 시원찮은 탓에 누워서 <목요일은 지나가고 주말은 오니까>를 펴 들었다. 초록빛이 눈에 좋다던데, 속았잖아. 마음에도 좋은가 보다. 그냥 남의 인생을 조금씩 들여다보고 있었을 뿐인데,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궁금해졌다. 이름은 남자 같지만 그래도 아닌 경우가 꽤 많으니까, 나를 포함해서. 그래서 그의 인스타를 들여다보았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기도 하는 선이 가는 남자였다. 다행이었다. 책을 통해서 느껴지는 느낌 그대로였으니까. 만일 우락부락한 남자가 튀어나오기라도 했으면 깜짝 놀랐을 테니까.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에 대한 묘사가 점점 더 진해진다. 선이 가는 것과 손에 땀이 많은 것까지 포함해서. 중간에 몰래 문틈으로 쳐다보았기 때문에 더 느낌을 선명하게 가졌을지도 모른다. 내가 본건 모자를 쓴, 마스크를 착용한 그의 모습뿐이지만 조금 알게 된 거 같은 느낌이다. 이 역시 그에 관한 일부일 뿐일 테지만.

그는 여전히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을 지내고 주말을 만날 두근거림을 안고 있겠지.

나 역시 그렇다.

주말이라고 달라지는 것도 전혀 없는데.

그래도 목요일의 나는 여전히 주말을 기다린다. 딱 하루만 더 버티면 돼, 라고 말하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대학원을 가게 된다면 - 직장인을 위한 슬기로운 대학원 생활
정재엽 지음 / 원앤원북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시무시한 인터넷 글을 보았습니다. 벤젠고리처럼 생긴 육각 구조의 건물에서 방을 찾아 헤매던 학생이 마침내 누군가를 만나 자신을 따라오라는 손짓에 구원자로구나 하고 따라갔더니 그대로 대학원으로 끌려갔다는. 다른 드립 말고 이게 먼저 생각나는 이유는 지난주에 애가 학교에 갔다가 네모 구조의 건물에서 길을 헤맸었거든요. 대학원에 관한 각종 드립이 떠돌아다니는 요즘에도, 그러니까 마치 무언가를 잘못해서(잘해서) 교수님의 눈에 띄게 되면 대학원에 갈 수도 있으니 주의하라는 식의 글이 많은 요즘에도 대학원에 가서 학위를 따야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현실적으로 취업이 급하다고 생각하는 대학생보다도 직장을 다니고 있는 재직자 중에서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고 있는 분들이 제법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남들은 하나만 하기도 어려운 직장 생활과 대학원 공부인데 굳이 한 번에 두 길을 가려고 하는 이유는 뭘까요.

첫 번째는 생계형 유형으로 자신이 처해 있는 조직에서 학위를 취득하면 승진이 되고 연봉도 오르는 경우입니다. 결국 주변의 동료들이 모두 학위를 취득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만 취득하지 않으면 또 곤란하겠죠. 평가절하 된다고 느끼는 경우도 생깁니다.

두 번째는 커리어 체인지 형입니다. 학위를 취득함으로써 자신의 커리어를 품에 안고 교수직이나 연구자로 가기 위한 유형입니다. 보통 공공기관에 계신 분들이 이 루트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자기만족형입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들이 자신의 브랜드 화를 위해, 자아실현을 위해서 도전하는 경우인데요. 이와 더불어서 커뮤니티 형성을 많이 하십니다. 자신이 하는 것들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네 번째는 박사 수료 만족형입니다. 학위를 꼭 취득하겠다는 것보다는 학교에 소속되어 있는 소속감을 느끼는 걸 좋아하는 유형인데요, 코스워크 기간이 늘어져서 오래 머무는 분도 계시고 취업, 결혼, 출산 등의 신변 변화로 학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 이상 프롤로그의 내용참고)

어찌 되었거나 대학원을 가려고 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부딪혀야 하는 일들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이공계와 문과 대학원은 서로 다른 점이 있겠습니다만, 결국 이들도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생기는 문제들은 비슷하게 일어날 테니까요. 이런 것들을 어떻게 헤쳐나가면 좋을까요. 아니, 아예 미연에 방지할 수 없는 걸까요.

공부 좀 한다더니 사람이 변했다라거나 유세를 떤다라거나하는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밸런스를 잘 맞추면서 모든 걸 잘 해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재엽은 직장인이 대학원 생활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 A to Z를 <내가 대학원을 가게 된다면>에 담았습니다. 일과 가정 그리고 대학원에서 학위를 취득해나가는 과정을 자기 계발서와 같은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받아들기 전에 에세이 같은 형식으로 진행되는 책인가 했다가 딱딱 떨어지는 문장들이라 다소 당황했습니다. 그렇지만 읽다 보니 직장인 대학원생에게 어떤 가이드가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다만 여기서의 대학원은 박사학위 과정만을 다룹니다. 이미 직장에 가기 전에 석사를 취득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인가, 아니면 석사 학위과정을 밟고 있는 직장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인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대학원을 다니다가 중퇴했는데, 당시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를 하던 동료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많게는 스무 살 정도 차이가 나는 사이지만 동급생이라는 의식으로 함께 화목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모두 끝까지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제가 자퇴한 이후 줄줄이 자퇴할 수밖에 없었던 슬픈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상황이 낫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흔들거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상황에 공부라니 무슨 소리냐고 하는 주변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반드시 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이 책을 통해 가이드를 받고 주변과 부드럽게 화합해 나가면서 이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 진학 전이라면 미리 준비해서 읽고 들어가는 것도 추천합니다.

각 분야별 박사 15인의 생생한 인터뷰는 더욱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평탄하지 않은 시간들을 보냈음에도 그 후에 얻은 것은 무엇인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