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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루션 익스프레스 - 생명의 진화를 탐사하는 기나긴 항해 ㅣ 익스프레스 시리즈 4
조진호 지음, 장대익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2월
평점 :
조진호 작가의 책을 처음 만났던 건 그래비티 익스프레스였습니다. 도서관 신간 코너에 꽂혀 있던 그 책을 꺼내면서 처음에는 외국 작가의 그래픽 노블 같은 것인가 하였지만 이내 책에 코를 박고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다시 <아톰 익스프레스>를 만났습니다. 언젠가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래비티 익스프레스>,<게놈 익스프레스>와 더불어서 이북 책꽂이에 두었었는데 당시 아이의 화학 선생님께서 재미있다면서 추천해 주셔서 기억이 났습니다. 그 선생님은 제 화학 선생님이시기도 하거든요. 저는 내친김에 책을 쭉 읽어 나갔고, '존재'의 철학과 더불어 화학의 역사, 지금까지 흘러왔던 변화 과정 등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에는 가슴이 찡해지기도 했지요.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었던 책입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조금 흘러 <에볼루션 익스프레스>를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우리는 어디로부터 왔는가에 대한 질문을 비글호에 싣고 떠나는 여행입니다.
나는 왜 존재하는 가에 대한 철학적 물음으로 시작하여 과학적 기원으로 향해 갑니다.
나는 왜 있는가를 누구로부터 나왔는 가로 질문을 바꾸어 나의 부모님, 그리고 그 부모님, 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을 하면 할수록 희미해지는 그것은 무척 중요하면서도 찾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조진호는 '나의 기원' 그리고 모든 '생물의 기원'을 찾기 위해 익스프레스에 올라탑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물음부터 시작하며 생물의 최초 기원에 대해서는 현세대 인류뿐만 아니라 고대로부터 고민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발생설을 주장하던 존 니덤의 이론이 깨지던 파스퇴르의 실험으로 인해 우리는 모든 것은 자연히 발생하지 않고 무언가로부터 왔다는 걸 압니다.
그리하여 원시 대기에 이르러 무기물들이 '어떠한' 충격에 의해 유기물로 합성되기 시작하고 그것이 LUCA라고 합니다. 그것은 에너지를 다루고 스스로 복제하며 증식합니다. 가장 작은 단위의 균부터 복잡한 체계를 가지고 있는 생명체까지 모두 이를 기원으로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드디어 최초의 것을 찾아내었다고 착각하고 말죠.
하지만 LUCA 역시 최초의 생명체는 아닐 거라고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왜' LUCA가 생겨났는 건데요. 결국 우리는 여전히 최초의 기원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과학자도, 철학자도 근원을 찾아 고민하고 고뇌하는 것입니다.
조진호의 익스프레스는 기원을 찾기 위해 '다윈'을 만납니다. 그의 수명이 다해가던 순간 에른스트 마이어와 함께 방문한 조진호에게 자신을 갈라파고스에 데려다 달라는 조건을 걸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약속을 얻어냅니다. 그가 원하는 갈라파고스는 젊은 시절 그가 수많은 시간을 바쳤던 그곳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번의 익스프레스는 열차가 아니라 시공간을 항해하는 '비글호'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항해를 따라가며 다윈의 일생과 연구에 대해 봅니다. 고뇌와 열정도 지켜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시공간을 초월한 그들의 여행 속에서 나의 기원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일뿐입니다.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시작된 우리는 종이니 속이니 하는 것으로 분화되어 있어도 결국은 하나, 커다란 생명수 나무 끝의 존재라는 생각에 이르르게 됩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춰 서지 않습니다. 아직 그 최초의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어떻게 분화되기 시작했는지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아는 것이 부족합니다.
과거에 비해 현재는 많은 연구 장치나 발전된 과학 도구로 다윈의 시대와는 다른 연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우주 속 생명체를 찾는 연구까지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쩌면 지구인이라는 - 우주의 시점에서 본다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관점에서 그들을 찾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많은 걸 알게 된 것 같지만 동시에 여전히 아는 것이 없습니다.
<에볼루션 익스프레스>는 필연적으로 <게놈 익스프레스>와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만남을 통해 우리는 좀 더 심층적인 것을 배우고 익히게 됩니다. 그리고 다윈은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갈라파고스를 찾아냅니다. 그가 비글호를 떠나는 장면은 무척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완전한 휴식, 더 이상 그는 익스프레스에 탑승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감동이 있기 때문에 저는 익스프레스 시리즈를 놓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에볼루션 익스프레스>는 찰스 다윈과 에른스트 마이어가 메인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지만, 바버라 매클린톡, 그레고어 멘델,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 같은 중요한 과학자들도 등장합니다. 그리고 에피쿠로스, 데이비드 흄 같은 철학자도 등장하지요. 에볼루션 익스프레스라는 거대한 영화가 끝난 후 촬영장에 에드워드 윌슨, 리처드 도킨스, 윌리엄 해밀턴이 찾아와 조진호와 나누는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다윈과 공동 논문을 내었던 앨프리드 월리스의 이야기도 흥미롭고요.
익스프레스 시리즈들이 그렇듯이 이번 <에볼루션 익스프레스>역시 과학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주었으며 철학적 고찰도 하게 만들었습니다. 억지로 끌고 가는 과학 여행이 아니라 영화를 보듯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종착역에 도착해 있는 신기한 경험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