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의 전설
데이비드 밴 지음, 조영학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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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은 경쟁관계 일 것입니다. 오디푸스 컴플렉스는 젖혀두더라도 한 무리안에서 서열 짓기를 필요로하는 수컷의 본능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사랑하지만 경계하는 사이. 아들이 자라서 가정을 꾸리게 되면 그제야 아버지와 친구가 됩니다. 전우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관계이기 때문에 어린시절 갑작스런 아버지의 부재를 겪게되면 아들의 가슴엔 큰 생채기가 남습니다. 자신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자책도 합니다. 입으로 내어 말하진 않더라도.

 

<자살의 전설>의 저자 데이비드 밴도 그랬나봅니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외도로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쪽에서 생활하였으나 열세살 한창 사춘기때 아버지가 알래스카에서 함께 지내자고 했습니다. 방학마다 놀러가는 것도 때로는 즐겁지 않았는데, 함께 지내자니! 데이비드 밴은 거절했고, 그 직후 아버지는 자살했습니다. 두번째 결혼 중에도 간통을 저질러 결혼 생활을 깨뜨린 주제에 두번째 부인에게 사랑한다고 애원하며 통화하다 자살했습니다. 그녀가 살인과 자살로 인해 양친을 잃은지 11개월만에.

아무리 생각해도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아버지인데도 작가는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만일 자신이 알래스카에 가서 함께 사는 것에 동의했더라면 아버지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며 괴로워했습니다. 만일 함께 지냈다면 - 이란 가정에서 나온 소설이 '수콴섬'이었습니다. <자살의 전설>에는 실제의 사건을 바탕으로 한 허구의 소설 여섯편이 들어있는데, 그 중간의 중편이 '수콴섬'입니다.

주인공 로이는 아버지의 청을 거절 할 수 없어서 함꼐 수콴섬에서 거주하게 됩니다. 그 곳은 알래스카 남동쪽, 틀레바크 해협의 한 작은 섬으로 웨일즈윌더니스의 사우스프린스 북서쪽이고, 케치칸에서는 약80 킬로미터 거리였습니다. 실제로 어디쯤인지 궁금해서 구글 지도에서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케치칸은 찾았으니 대략 저기 많은 섬들 중 하나겠구나 싶었지요. 아무튼, 이웃마을은 커녕 이웃집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도로도, 숲길도 아무것도 없는 좋게말하면 자연 그대로에 가까운 섬이었지만, 로이의 눈을 빌려 대신 본다면 온통 Gray인 세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어째서 아들과 함께 생활하려 했을까요. 제가 본 아버지, 짐은 함께 생활하려 했던 것 같지 않습니다. 함께라는 것은 공생이지만 짐은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 상대로 아들을 택했던 것 같습니다. 아들은 자신의 뜻과는 달리 이 곳에서 생존을 위해 싸워야했고, 밤이면 아버지의 우울과 싸워야했습니다. 섬을 떠나고 싶었지만, 떠나기 싫다고 말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대책도 없고, 계획도 없는 즉흥적이고, 제 멋대로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결과, 아들은 아버지가 해내지 못한 것을 해냅니다. 아버지가 우울증 중에서도 하지 못했던 한가지. 자살을 아들은 해냅니다. 아버지가 손에 쥐어준 피스톨로요. 아버지는 아들의 시신을 보고서도 제대로 된 행동을 하지 못합니다. 변명거리만 찾고, 아이의 시신을 제대로 건사하지도, 매장해주지도 못합니다. 그의 방황과 찌질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행동을 보며 가슴아픔을 느낍니다. 저 인간, 끝까지 그럴꺼야?

하지만, 애초에 이 소설이 아버지의 자살에서 비롯된 소설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시신을 감추고, 어찌 할바 몰라 허둥대고, 사람들에게 변명을 해대는 아버지 짐의 모습은 아들이자 저자인 밴의 모습을 비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자살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며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생각하려 애쓰는 그의 모습과,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자살을 병사라고 말하며, 불면에 시달리고 고통에 시달리던 자신의 모습 그대로 였던 것입니다.

 

<자살의 전설>은 '어류학', '로다', '선인의 전설', '수콴섬', '케치칸', '높고 푸르게'의 여섯편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별개의 이야기이자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사전에 각각의 이야기라는 정보가 없으면 어류학에서 로다, 선인의 전설로 넘어갈때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도대체 무슨 소리야.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거지.하고 구시렁대며 책 읽기를 포기 할 뻔했어요. 뒤쪽의 추천사와 역자 후기를 읽고 다시 용기를 내어 읽기 시작했지요. 그제서야 이야기들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섯편의 이야기 속에는 저자의 진실 10퍼센트와 허구 90퍼센트가 들어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읽고 나니 저자를 이해하게 되었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었더니 처음 느낌과 다른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읽기를 두려워하며 미루어두었던 소설인데, 읽고나니 미국 문학의 한 부분을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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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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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호텔리어 (2001년작 :MBC)>라는 드라마가 있었지만, 드라마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안 봤습니다. 오히려 <호텔 퀸시>라는 만화에서 호텔리어, 특히 컨시어지들을 보며 대단하다, 멋지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자질구레한 요구를 하는 손님들뿐만 아니라 스키퍼도 있고 블랙 컨슈머도 있으니 호텔리어들은 무척 힘들겠습니다. 저 역시 대학 졸업 후 모 호텔에 근무할 뻔했었습니다. 당시 건설 중이던 호텔이었는데요 사전에 채용이 결정되어 있었죠. 졸업 후 임시로 다른 곳에서 일하다가 호텔 오픈 즈음에 합류한다는 계획이었는데, 모회사가 부도났고, 그 건물은 아직까지도 방치되어 흉물스럽습니다. 그러니 호텔리어가 될 뻔했던 사람으로서 - 의미 없나요? - <매스커레이드 호텔>을 읽었습니다. - 아, 역시 의미 없네요.

 

히가시노 게이고가 늘 추리소설을 쓰는 건 아니므로 어떤 소설일까 궁금해하며 읽기 시작했는데요. 역시, 추리소설이었습니다. 3건의 연쇄 살인 현장에서 각기 숫자로 된 암호가 등장하고, 암호는 다음 번 사건의 장소를 예고하는 바, 다음번의 장소는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호텔에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닛타 고스케 경위를 비롯한 형사들이 호텔리어로 위장 잠복합니다. 어느 모로 보나 날카로운 닛타이지만 완벽한 잠복을 위해 우수한 호텔리어 나오미에게 훈련을 받고 프런트에 섭니다.

재미있습니다.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으나 저는 중문 관광단지의 제주 하얏트 호텔을 떠올렸습니다. 파놉티콘 같은 구조로 되어있는 (비유가 적절하지 못함을 알지만) 아름답고 편안한 분위기의 호텔. 제주엔 이런저런 호텔들이 있지만, 로비에 앉아서 쉬고 있을 때 편안함을 주는 호텔이 있는가 하면 공연히 주눅 들게 하는 곳이 있습니다. 책 속의 코르테시아 도쿄 호텔은 전자인 듯했습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친절과 손님이 룰북이라는 태도로 손님에게서 불편함을 제거해주는 호텔이었습니다.

 

세상에, 별의별 손님들이 다 있었습니다. 괜히 방을 업그레이드 받고 싶어서 트집 잡는 손님, 영감을 느끼는 손님, 시각장애인인척하는 손님, 불륜 손님 등... 뿐만 아니라 호텔의 특성상 연회, 결혼식 등도 있기에 신경 쓰이는 부분들이 한 두 군데가 아닙니다. 혼자 잠입한 것도 아니면서 닛타는 이것저것 신경 쓰며 범인을 추리해 나가는데, 시간이 갈수록 닛타에게선 호텔리어의 분위기가 풍깁니다. 반면 완벽한 호텔리어 나오미는 형사 같아지네요. 역시 가까이 있으니 닮게 되나 봅니다. 형사는 대상을 관찰합니다. 의심하고, 의문을 갖고, 범죄를 캐내려 합니다. 호텔리어도 대상을 관찰합니다. 여기서의 대상은 손님이겠죠. 고객의 숨을 뜻을 찾기 위해, 편안함을 제공하려 합니다. 누구나 가면을 쓰기 마련이지만 호텔의 손님들은 각자의 사연으로 더욱 두터운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손님이라는 가면을요. 흥겨운 파티 도중  슬그머니 나타나 사람들 틈에 숨어들었던 적사병 가면처럼, 범인 역시 가면을 쓰고 그들에게 깊숙이 다가섭니다. 그 가면은 언제 벗어던질까요?

 

추리소설이지만, 호텔리어로서의 에피소드들이 와닫는 소설이었습니다. 게다가 여러 가지의 에피소드들이 마지막엔 모두 복선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묘한 기쁨을 느끼게 합니다. 커다란 호텔 로비의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 눈을 감고 <매스커레이드 호텔>의 스토리를 창조하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모습이 그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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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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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던 데다가 부모님도 용돈으로 만화나 책을 사는 것에 대해 간섭하지 않으셨기에 상대적으로 용돈이 넉넉한 편이었던 대학시절은 책 구매의 황금기였습니다. 한 달에 두 번씩 나오는 만화잡지(지금보다 더 다양했었죠), 단행본, 로빈 쿡, 스티븐 킹, 그 외 이런저런 소설들, 읽지도 않을 원서, 계간 추리 문학지(이름도 기억 안 나는) 등등. 책을 별로 사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책이 공간을 잠식해 들어가더라고요. 장식장, 책장, 책꽂이, 이불장, 캐비닛(아버지 사무실 것을 들고 왔어요)이 있었습니다만, 잠 잘 곳만 빼고선 책에 둘러싸이고 말았어요. 그러다 보니 정리는커녕 처박기 바빴군요. 언제나 제 방은 어수선했습니다. 20대 아가씨 방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3,4학년 때는 도서관에서 문헌자료들을 찾기도 했고, 남자친구도 사귀고 하느라 바빠서 책 구매가 덜 했지만, 숨통을 틔우기 위해 차에다가 책을 싣고 헌책방에 가져다 팔곤 했습니다.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저희 집엔 책이 별로 없습니다.

 

예전에 한기호 님이 알라딘 중고 서적을 적대시하면서 이용자까지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그렇다면 책 욕심은 많지만 경제력이 좋지 않아 읽고 싶은 책을 모두 사 볼 수 없기에 도서관을 이용하는 나는 중고서적을 이용하는 사람들보다 더 나쁘고 출판시장을 좀먹는 쓰레기인가 하는 생각에 괴로워했습니다.  이웃 끊고 새 글 안 보니 괴로움에서 해방되었지만 말이에요. 출판사 입장에서는 저 같은 사람이 싫겠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능력은 안되는데 책은 읽고 싶은걸요. 일부는 구입하고 대부분은 도서관을 이용합니다. 현재 세 군데의 도서관을 이용하는데 특히 집 근처 제주시 북 카페는 농담 삼아 '내 서재'라고 부릅니다. 만약 제가 읽은 책 모두를 구입했더라면 저 역시 장서의 괴로움을 겪고 있을 거예요.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은 읽고 있는 저의 입을 쩍 벌리게 만들었습니다. 책이 엄청나게 쌓여 목조건물의 바닥이 꺼질 정도라니, 이 정도면 재앙이네요. 책을 연간 400권 읽는다 치고 (저는 250여권이지만 만화까지 하면 그리될 것 같네요) 10년이면 4천 권 100년이면 4만 권인데. 보유한 책이 3만 권을 넘는 사람들은 그 책을 다 읽을 수는 있는 건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흥. 어차피 다 읽지도 못하면서 쌓아두기는.'이라고 구시렁대지만 사실은 부러워요. <장서의 괴로움>에는 책이 사는 집을 지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신경숙 작가님의 집이 그러하다던데요. 아무튼 그는 모든 벽에 책장을 설치하는 것도 모자라 주택 개축시 복층 구조의 높다란 벽을 모두 책으로 채운 꿈같은 집을 짓습니다. 책의 보유를 적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런 집을 동경하는 걸 보니 저는 장서의 보유와 욕심 버리기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자책이 등장해서 머지않아 나무의 무덤인 책이 사라지는 건 아닌가, 그럴 땐 책장에 외장하드나 USB를 쌓아두게 되는 건가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전자책은 크레마나 아이패드 같은 것으로 읽은 적은 없지만 PC로 도서대출하여 읽어보았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무리였습니다. 하나의 콘텐츠 정도로만 인식이 되어서 책 읽는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언제까지나 책이 사는 집을 동경하게 될 것 같습니다.

 

책은 내용물 만으로 구성되는 건 아니다. 종이질부터 판형, 제본, 장정 그리고 손에 들었을 때 느껴지는 촉감까지 제각각 다른 모양과 감각을 종합해 '책'이라 불리는 게 아닐까.

p.181

 

책이란 본디 읽히기 위해 태어난 바. 읽히지 못하고 꽂혀있기만 하면 죽은 거랑 다를 바 없어서 불쌍합니다. 그러니 한 번 읽고 둘 것이 아니라 가끔씩 꺼내어 다시 읽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 해서 미안한 책이 여러 권입니다. 심지어 사놓기만 하고, 혹은 선물 받은 채로 일 년도 넘게 읽지 않은 책들도 있어요. 책들에게 미안합니다. 새로운 것만 눈에 들어오니 저는 바람둥이인가 봐요. <장서의 괴로움>을 읽는 내내 책 더미에 깔릴 것만 같은 그들이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나 역시 저렇게 불편하고 싶다는 이중의 심리가 오락가락했습니다. 문득 고개를 드니 '그런 쓸데없는 생각 말고 나 좀 읽어줘.'라고 하는 책들이 눈에 들어오네요. 미안하다 책들아.

책은 내용물 만으로 구성되는 건 아니다. 종이질부터 판형, 제본, 장정 그리고 손에 들었을 때 느껴지는 촉감까지 제각각 다른 모양과 감각을 종합해 `책`이라 불리는 게 아닐까.

p.181

책을 필요 이상으로 끊임없이 쌓아두는 사람은, 개인차가 있긴 하겠으나 멀쩡한 인생을 내팽개친 사람이 아닌가 싶다. 생활공간 대부분을 거의 책이 점령하는 주거란, 일반 상식에서 보면 아무리 잘 봐주려 해도 멀쩡한 정신은 아니다. 쌓고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는 일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있는 것은 그저 한도 끝도 없이 갖고 싶은 책이 눈앞에 아른거려 계속 살 수밖에 없는 비틀어진 욕망뿐이다. 게다가 그에 대한 반성마저 별반 없다.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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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 생명진화의 숨은 고리
박성웅 외 지음 / Mid(엠아이디)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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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이란 무엇일까요? '蟲'자가 들어가 있으니 벌레의 한 종류로 보아야 할까요? 서민교수는 <기생충 열전>에서 기생충을 "한 종의 생물이 다른 종의 생물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데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득을 취하며, 핵막을 가진 진핵 생물이어야 한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칼 짐머는 <기생충 제국>에서 "기생충은 다른 종에 붙어살면서 자신의 이득을 위해 다른 생물에게 피해를 주는 모든 생물을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자연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들을 기생충이라 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프롤로그 발췌) 함께 더불어 살아가면 공생이지만, 일방적으로 자신만 이득을 취하는 모든 생물을 기생 생물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네요.

 

기생 : Parasite라는 단어를 들으면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 같은 것들과 채변봉투의 향긋한 추억이 떠오르지만, 기생수도 생각납니다. 원래는 인간에게 달라붙어 기생하며 숙주인 인간을 완전히 장악해 그들을 조종하고 지구를 장악해가는 패러사이트들이지만 주인공과 그의 손에 깃든 패러사이트는 공생해가며 위기를 극복해나갑니다. 그저 재미있는 만화로만 여겨졌던 <기생수>가 이 책 <기생>을 읽고 나니 심오한 만화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많은 기생충들이 있는데, 인간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것들도 있고,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있으며 오히려 연구를 한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러는 순간 '기생'이 아니지 않는가 싶지만)도 있습니다. 몇 번을 보아도 재미있는 영화 '연가시'에서는 변종 연가시가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 가지만 실제로는 곤충 한정 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벌레를 싫어하기 때문에 계곡물에서 연가시를 만나는 건 사양입니다. 연가시가 있다는 게 수질 최고라는 보증이 된다고 해도 말이죠. 메디나충처럼 지속적인 괴로움에 시달리게 하는 무서운 기생충도 싫고, 개구리 다리를 기형으로 만드는 리베이로이아도 무섭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신기합니다. 숙주로 하여금 자신들의 생식에 유리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도 신기하고, 번식에 용이하도록 형태 변이를 일으키게 하는 것도 신기합니다. 이쯤 되면 본능대 본능의 싸움이 아니라 고도의 지능을 지녔으나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지구에 잠입해있는 기생수의 친구 패러사이트들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드는데, 기생 따개비는 숫게를 기생 거세해 암게로 바꿀 수 있을 정도입니다.

어린 따개비 암컷이 게를 발견하면 위에 올라타 자신의 껍질을 벗고 부드러운 부분을 게 관절을 통해 집어넣습니다. 그리하여 양분을 계속 빨아먹는데, 게의 흉곽 신경절과 뇌 계통의 신경을 모두 장악해버려 게는 완전히 따개비의 조종하에 움직입니다. 짝짓기, 탈피도 금지. 수주 후 따개비 암컷이 게의 배 뒤쪽에 주머니를 만들고 알을 낳으면 수컷들이 수정시키고, 게는 그 알을 자신의 알처럼 돌보는 데다가 알이 부화되면 게는 물속에다가 그 알 주머니를 놓아주고 물에 뜬 유충들을 앞발로 하나씩 분리해줍니다. 이건 기생이 아니라 지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한번 기생수가 생각납니다.

이렇게 곤충이나 게 같은 것을 조종하는 기생충이 사람도 조종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사람들의 교통사건율이 높았으며, 자살률도 높았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알츠하이머병의 발병률은 낮아진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말라리아, 체체파리의 수면병, 메디나 충 같은, 사람에게 몹쓸 기생충도 있지만, 유기농법에 도움을 주는 기생벌이나 크론병에 효과가 있다는 돼지 편충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생물은 인간을 기준으로 하여 그것이 해로운 가 이로운 가로 갈려왔고, 해롭다 여겨지면 그것을 박멸하려 애써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성이 생긴 슈퍼 박테리아나, 말라리아 같은 것들도 생겨났는데, 인간과 그들은 끊임없이 싸우며 드래곤볼도 아닌데 더욱 강한 적을 만나게 됩니다. 피콜로처럼 우리 편이 되게 하면 좋을 텐데요. 이 책을 통해 기생 생물의 여러 가지 모습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내 몸을 그들에게 내어주는 것은 거절하지만, 세상엔 이런저런 신기한 녀석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즐거웠습니다.

우리는 얼핏 보기에 체체파리와 같은 매게 동물이나 기생생물들은 인류에게 이로움은 전혀 없고 해가 되는, 쓸모없고 없어도 좋은, 아니 없어져야 하는 그런 생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구에 아예 없어도 좋은 존재라는 것이 있을까? 없어도 되고 있어야만 되고는 인간이나 또 다른 절대적인 누군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경이로운 대자연의 선택이다. 진화를 통해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한 종은 살아남고 반대로 적응하지 못한 종은 사라질 뿐이다.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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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뺑덕
백가흠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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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설 싫습니다. 권선징악적 코드나 개그코드, 희망, 힐링 같은 것이 반드시 들어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어두침침하고 곰팡내 나는 공간에서 눅눅한 살덩어리 마주 비벼대다가 결국 빛이 있으되 빛이 아닌 매캐한 곳으로 추락하고 마는 엉클어진 결말은 무척 싫습니다. 희망과 빛은 말 그대로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말하는 양. 이렇게 칙칙한 것이 실제의 삶이라고 말한다면 차라리 지옥이 천국일 것입니다. 음울하고 망그러진 삶을 회복하려 하기는커녕 발을 질질 끌며 나락으로 한 발 한 발 다가가고 주의 사람들마저 자신의 암흑 속으로 끌어들이며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하는 뻔뻔함이라니. 소리 지르고 싶을 만큼 화가 나고 짜증 납니다.

 

아주 어린 시절 심청전을 보았을 때는 효녀로구나, 효행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하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아이들로 하여금 그들의 희생은 부모를 위해 당연히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해 어른들이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을 자라나면서 슬슬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심청이는 공양미 삼천 석에 아비 눈 뜨게 하려고 인당수에 뛰어들었는데...라는 말은 여러모로 편리한 이야기가 되었으니까요. 그러니, 심청전 자체가 잔혹동화였습니다. 가진 것 없는 주제에, 어린 딸이 벌어오는 것으로 연명하는 주제에 눈 뜨게 해준다는 말에 공양미 삼백 석을 덜컥 약속하고, 그것도 모자라 딸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다니. 내가 부처님과 이런 약속을 했으니 네가 어떻게 해보라고 하는 은근한 강요가 아니고 뭐였겠습니까. 원작에서의 심학규는 그런 인간이었습니다.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인간. 청이는 달아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이기적인 아버지에게 한몫 챙겨주고 인당수에 빠져 자살함으로써 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청이를 심학규는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뺑덕어미에게 모든 재산을 다 뜯긴 것도 자업자득입니다.

원작의 등장인물들이 마담뺑덕에서 다시 태어납니다. 각자의 불행과 어두움을 가진 채로. 마담 뺑덕의 등장인물 중 어느 하나도 내면의 빛을 지닌 이가 없습니다. 찌들고 지치고 힘들고..... 학규는 잘 나가던 교수였지만 성적으로 문란한 자였습니다. 조교와의 관계가 들통 나 시골로, 글 선생으로 내려오게 되었지만, 매일 술에 절어살며 희망을 놓았습니다. 그의 사라져가는 시력 역시 그의 좌절에 한몫했겠지만, 그의 가장 큰 죄는 반성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에게 기대온 것은, 그리고 그가 기댄 것은 매일 몸을 팔아대어도 갚을 길 없는 빚더미에 신음하는 팽 마담이었습니다. 마이너스인 둘이 서로 몸을 섞는다고 플러스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먼 발치에서 학규를 짝사랑하던 팽 마담의 딸 덕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뿐이었습니다.

 

간병변으로 반 시체나 다름없는 아버지를 간호하며 집안에 보탬이 되려 놀이공원 매표원일을 했지만 그나마 월급도 받지 못하고 쫓겨난 그녀에게는 학규가 희망이고 탈출구였습니다. 아버지가 죽고 팽 마담이 집을 떠나 있는 새 덕이는 학규의 여자가 되고 학규의 딸 청이를 돌보며 자그만 희망과 지독한 사랑을 꿈꿉니다. 그러나 학규는 이기적인 인간이었고, 끝까지 저만 아는 인간이었습니다. 청이는 부모와 불화, 엄마의 자살, 사랑에 고픈 상태로 이리저리 방황하다 스스로 어둠 속으로 뛰어듭니다. 이 소설에서 빛을 잃은 건 학규뿐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모두가 한줄기 마음속에 남겨두어야만하는 빛을 잃고 이리저리 헤맵니다. 눈을 떠도 뜬 것 같지 않은. 갈 곳이 어딘지 몰라 방황하는 그런 영혼들이 되어 똑바로 걷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소설은 독자들마저 이리저리 흔들어 헤매게 만듭니다. 지나칠 정도로 어지러운 입체적 구성(역순행적이라고 말해도 복잡할 정도의)입니다. 현재와 과거만을 오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대과거, 과거, 현재, 과거의 과거. 온통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통에 맹인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유랑하는 기분이어서 살짝 욕지기까지 일었습니다.

 

이런 것도 사랑이었을까요. 파멸에 이르도록 잔인한 것도? 모두가 이기적이었고 모두가 잔인했으며, 자신을 위한 사랑을 했고, 모두가 미쳐버린 것 같았는데도. 그렇다면, 저는 사랑하지 않겠습니다.

 

그가 던지듯 건넨 돈 봉투를 꼭 움켜쥐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살아남아서 복수하겠다고 결심했다. 지나간 사랑의 다른 이름은 복수다. 그것은 원래 한 몸이어서 변화하는 과정이나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계기가 필요한 것뿐이었다.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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