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뺑덕
백가흠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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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설 싫습니다. 권선징악적 코드나 개그코드, 희망, 힐링 같은 것이 반드시 들어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어두침침하고 곰팡내 나는 공간에서 눅눅한 살덩어리 마주 비벼대다가 결국 빛이 있으되 빛이 아닌 매캐한 곳으로 추락하고 마는 엉클어진 결말은 무척 싫습니다. 희망과 빛은 말 그대로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말하는 양. 이렇게 칙칙한 것이 실제의 삶이라고 말한다면 차라리 지옥이 천국일 것입니다. 음울하고 망그러진 삶을 회복하려 하기는커녕 발을 질질 끌며 나락으로 한 발 한 발 다가가고 주의 사람들마저 자신의 암흑 속으로 끌어들이며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하는 뻔뻔함이라니. 소리 지르고 싶을 만큼 화가 나고 짜증 납니다.

 

아주 어린 시절 심청전을 보았을 때는 효녀로구나, 효행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하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아이들로 하여금 그들의 희생은 부모를 위해 당연히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해 어른들이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을 자라나면서 슬슬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심청이는 공양미 삼천 석에 아비 눈 뜨게 하려고 인당수에 뛰어들었는데...라는 말은 여러모로 편리한 이야기가 되었으니까요. 그러니, 심청전 자체가 잔혹동화였습니다. 가진 것 없는 주제에, 어린 딸이 벌어오는 것으로 연명하는 주제에 눈 뜨게 해준다는 말에 공양미 삼백 석을 덜컥 약속하고, 그것도 모자라 딸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다니. 내가 부처님과 이런 약속을 했으니 네가 어떻게 해보라고 하는 은근한 강요가 아니고 뭐였겠습니까. 원작에서의 심학규는 그런 인간이었습니다.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인간. 청이는 달아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이기적인 아버지에게 한몫 챙겨주고 인당수에 빠져 자살함으로써 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청이를 심학규는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뺑덕어미에게 모든 재산을 다 뜯긴 것도 자업자득입니다.

원작의 등장인물들이 마담뺑덕에서 다시 태어납니다. 각자의 불행과 어두움을 가진 채로. 마담 뺑덕의 등장인물 중 어느 하나도 내면의 빛을 지닌 이가 없습니다. 찌들고 지치고 힘들고..... 학규는 잘 나가던 교수였지만 성적으로 문란한 자였습니다. 조교와의 관계가 들통 나 시골로, 글 선생으로 내려오게 되었지만, 매일 술에 절어살며 희망을 놓았습니다. 그의 사라져가는 시력 역시 그의 좌절에 한몫했겠지만, 그의 가장 큰 죄는 반성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에게 기대온 것은, 그리고 그가 기댄 것은 매일 몸을 팔아대어도 갚을 길 없는 빚더미에 신음하는 팽 마담이었습니다. 마이너스인 둘이 서로 몸을 섞는다고 플러스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먼 발치에서 학규를 짝사랑하던 팽 마담의 딸 덕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뿐이었습니다.

 

간병변으로 반 시체나 다름없는 아버지를 간호하며 집안에 보탬이 되려 놀이공원 매표원일을 했지만 그나마 월급도 받지 못하고 쫓겨난 그녀에게는 학규가 희망이고 탈출구였습니다. 아버지가 죽고 팽 마담이 집을 떠나 있는 새 덕이는 학규의 여자가 되고 학규의 딸 청이를 돌보며 자그만 희망과 지독한 사랑을 꿈꿉니다. 그러나 학규는 이기적인 인간이었고, 끝까지 저만 아는 인간이었습니다. 청이는 부모와 불화, 엄마의 자살, 사랑에 고픈 상태로 이리저리 방황하다 스스로 어둠 속으로 뛰어듭니다. 이 소설에서 빛을 잃은 건 학규뿐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모두가 한줄기 마음속에 남겨두어야만하는 빛을 잃고 이리저리 헤맵니다. 눈을 떠도 뜬 것 같지 않은. 갈 곳이 어딘지 몰라 방황하는 그런 영혼들이 되어 똑바로 걷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소설은 독자들마저 이리저리 흔들어 헤매게 만듭니다. 지나칠 정도로 어지러운 입체적 구성(역순행적이라고 말해도 복잡할 정도의)입니다. 현재와 과거만을 오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대과거, 과거, 현재, 과거의 과거. 온통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통에 맹인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유랑하는 기분이어서 살짝 욕지기까지 일었습니다.

 

이런 것도 사랑이었을까요. 파멸에 이르도록 잔인한 것도? 모두가 이기적이었고 모두가 잔인했으며, 자신을 위한 사랑을 했고, 모두가 미쳐버린 것 같았는데도. 그렇다면, 저는 사랑하지 않겠습니다.

 

그가 던지듯 건넨 돈 봉투를 꼭 움켜쥐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살아남아서 복수하겠다고 결심했다. 지나간 사랑의 다른 이름은 복수다. 그것은 원래 한 몸이어서 변화하는 과정이나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계기가 필요한 것뿐이었다.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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