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살의 전설
데이비드 밴 지음, 조영학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아버지와 아들은 경쟁관계 일 것입니다. 오디푸스 컴플렉스는 젖혀두더라도 한 무리안에서 서열 짓기를 필요로하는 수컷의 본능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사랑하지만 경계하는 사이. 아들이 자라서 가정을 꾸리게 되면 그제야 아버지와 친구가 됩니다. 전우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관계이기 때문에 어린시절 갑작스런 아버지의 부재를 겪게되면 아들의 가슴엔 큰 생채기가 남습니다. 자신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자책도 합니다. 입으로 내어 말하진 않더라도.
<자살의 전설>의 저자 데이비드 밴도 그랬나봅니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외도로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쪽에서 생활하였으나 열세살 한창 사춘기때 아버지가 알래스카에서 함께 지내자고 했습니다. 방학마다 놀러가는 것도 때로는 즐겁지 않았는데, 함께 지내자니! 데이비드 밴은 거절했고, 그 직후 아버지는 자살했습니다. 두번째 결혼 중에도 간통을 저질러 결혼 생활을 깨뜨린 주제에 두번째 부인에게 사랑한다고 애원하며 통화하다 자살했습니다. 그녀가 살인과 자살로 인해 양친을 잃은지 11개월만에.
아무리 생각해도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아버지인데도 작가는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만일 자신이 알래스카에 가서 함께 사는 것에 동의했더라면 아버지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며 괴로워했습니다. 만일 함께 지냈다면 - 이란 가정에서 나온 소설이 '수콴섬'이었습니다. <자살의 전설>에는 실제의 사건을 바탕으로 한 허구의 소설 여섯편이 들어있는데, 그 중간의 중편이 '수콴섬'입니다.
주인공 로이는 아버지의 청을 거절 할 수 없어서 함꼐 수콴섬에서 거주하게 됩니다. 그 곳은 알래스카 남동쪽, 틀레바크 해협의 한 작은 섬으로 웨일즈윌더니스의 사우스프린스 북서쪽이고, 케치칸에서는 약80 킬로미터 거리였습니다. 실제로 어디쯤인지 궁금해서 구글 지도에서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케치칸은 찾았으니 대략 저기 많은 섬들 중 하나겠구나 싶었지요. 아무튼, 이웃마을은 커녕 이웃집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도로도, 숲길도 아무것도 없는 좋게말하면 자연 그대로에 가까운 섬이었지만, 로이의 눈을 빌려 대신 본다면 온통 Gray인 세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어째서 아들과 함께 생활하려 했을까요. 제가 본 아버지, 짐은 함께 생활하려 했던 것 같지 않습니다. 함께라는 것은 공생이지만 짐은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 상대로 아들을 택했던 것 같습니다. 아들은 자신의 뜻과는 달리 이 곳에서 생존을 위해 싸워야했고, 밤이면 아버지의 우울과 싸워야했습니다. 섬을 떠나고 싶었지만, 떠나기 싫다고 말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대책도 없고, 계획도 없는 즉흥적이고, 제 멋대로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결과, 아들은 아버지가 해내지 못한 것을 해냅니다. 아버지가 우울증 중에서도 하지 못했던 한가지. 자살을 아들은 해냅니다. 아버지가 손에 쥐어준 피스톨로요. 아버지는 아들의 시신을 보고서도 제대로 된 행동을 하지 못합니다. 변명거리만 찾고, 아이의 시신을 제대로 건사하지도, 매장해주지도 못합니다. 그의 방황과 찌질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행동을 보며 가슴아픔을 느낍니다. 저 인간, 끝까지 그럴꺼야?
하지만, 애초에 이 소설이 아버지의 자살에서 비롯된 소설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시신을 감추고, 어찌 할바 몰라 허둥대고, 사람들에게 변명을 해대는 아버지 짐의 모습은 아들이자 저자인 밴의 모습을 비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자살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며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생각하려 애쓰는 그의 모습과,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자살을 병사라고 말하며, 불면에 시달리고 고통에 시달리던 자신의 모습 그대로 였던 것입니다.
<자살의 전설>은 '어류학', '로다', '선인의 전설', '수콴섬', '케치칸', '높고 푸르게'의 여섯편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별개의 이야기이자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사전에 각각의 이야기라는 정보가 없으면 어류학에서 로다, 선인의 전설로 넘어갈때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도대체 무슨 소리야.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거지.하고 구시렁대며 책 읽기를 포기 할 뻔했어요. 뒤쪽의 추천사와 역자 후기를 읽고 다시 용기를 내어 읽기 시작했지요. 그제서야 이야기들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섯편의 이야기 속에는 저자의 진실 10퍼센트와 허구 90퍼센트가 들어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읽고 나니 저자를 이해하게 되었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었더니 처음 느낌과 다른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읽기를 두려워하며 미루어두었던 소설인데, 읽고나니 미국 문학의 한 부분을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