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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 생명진화의 숨은 고리
박성웅 외 지음 / Mid(엠아이디)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기생충이란 무엇일까요? '蟲'자가 들어가 있으니 벌레의 한 종류로 보아야 할까요? 서민교수는 <기생충 열전>에서 기생충을 "한 종의 생물이 다른 종의 생물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데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득을 취하며, 핵막을 가진 진핵 생물이어야 한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칼 짐머는 <기생충 제국>에서 "기생충은 다른 종에 붙어살면서 자신의 이득을 위해 다른 생물에게 피해를 주는 모든 생물을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자연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들을 기생충이라 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프롤로그 발췌) 함께 더불어 살아가면 공생이지만, 일방적으로 자신만 이득을 취하는 모든 생물을 기생 생물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네요.
기생 : Parasite라는 단어를 들으면 회충, 요충, 십이지장충 같은 것들과 채변봉투의 향긋한 추억이 떠오르지만, 기생수도 생각납니다. 원래는 인간에게 달라붙어 기생하며 숙주인 인간을 완전히 장악해 그들을 조종하고 지구를 장악해가는 패러사이트들이지만 주인공과 그의 손에 깃든 패러사이트는 공생해가며 위기를 극복해나갑니다. 그저 재미있는 만화로만 여겨졌던 <기생수>가 이 책 <기생>을 읽고 나니 심오한 만화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많은 기생충들이 있는데, 인간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것들도 있고,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있으며 오히려 연구를 한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러는 순간 '기생'이 아니지 않는가 싶지만)도 있습니다. 몇 번을 보아도 재미있는 영화 '연가시'에서는 변종 연가시가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 가지만 실제로는 곤충 한정 인데, 그렇다 하더라도 벌레를 싫어하기 때문에 계곡물에서 연가시를 만나는 건 사양입니다. 연가시가 있다는 게 수질 최고라는 보증이 된다고 해도 말이죠. 메디나충처럼 지속적인 괴로움에 시달리게 하는 무서운 기생충도 싫고, 개구리 다리를 기형으로 만드는 리베이로이아도 무섭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신기합니다. 숙주로 하여금 자신들의 생식에 유리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도 신기하고, 번식에 용이하도록 형태 변이를 일으키게 하는 것도 신기합니다. 이쯤 되면 본능대 본능의 싸움이 아니라 고도의 지능을 지녔으나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지구에 잠입해있는 기생수의 친구 패러사이트들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드는데, 기생 따개비는 숫게를 기생 거세해 암게로 바꿀 수 있을 정도입니다.
어린 따개비 암컷이 게를 발견하면 위에 올라타 자신의 껍질을 벗고 부드러운 부분을 게 관절을 통해 집어넣습니다. 그리하여 양분을 계속 빨아먹는데, 게의 흉곽 신경절과 뇌 계통의 신경을 모두 장악해버려 게는 완전히 따개비의 조종하에 움직입니다. 짝짓기, 탈피도 금지. 수주 후 따개비 암컷이 게의 배 뒤쪽에 주머니를 만들고 알을 낳으면 수컷들이 수정시키고, 게는 그 알을 자신의 알처럼 돌보는 데다가 알이 부화되면 게는 물속에다가 그 알 주머니를 놓아주고 물에 뜬 유충들을 앞발로 하나씩 분리해줍니다. 이건 기생이 아니라 지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한번 기생수가 생각납니다.
이렇게 곤충이나 게 같은 것을 조종하는 기생충이 사람도 조종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사람들의 교통사건율이 높았으며, 자살률도 높았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알츠하이머병의 발병률은 낮아진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말라리아, 체체파리의 수면병, 메디나 충 같은, 사람에게 몹쓸 기생충도 있지만, 유기농법에 도움을 주는 기생벌이나 크론병에 효과가 있다는 돼지 편충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생물은 인간을 기준으로 하여 그것이 해로운 가 이로운 가로 갈려왔고, 해롭다 여겨지면 그것을 박멸하려 애써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성이 생긴 슈퍼 박테리아나, 말라리아 같은 것들도 생겨났는데, 인간과 그들은 끊임없이 싸우며 드래곤볼도 아닌데 더욱 강한 적을 만나게 됩니다. 피콜로처럼 우리 편이 되게 하면 좋을 텐데요. 이 책을 통해 기생 생물의 여러 가지 모습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내 몸을 그들에게 내어주는 것은 거절하지만, 세상엔 이런저런 신기한 녀석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즐거웠습니다.
우리는 얼핏 보기에 체체파리와 같은 매게 동물이나 기생생물들은 인류에게 이로움은 전혀 없고 해가 되는, 쓸모없고 없어도 좋은, 아니 없어져야 하는 그런 생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구에 아예 없어도 좋은 존재라는 것이 있을까? 없어도 되고 있어야만 되고는 인간이나 또 다른 절대적인 누군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경이로운 대자연의 선택이다. 진화를 통해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한 종은 살아남고 반대로 적응하지 못한 종은 사라질 뿐이다.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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