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교전 세트 - 전2권 악의 교전
기시 유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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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겠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아니 읽고 있지 않을 때에도, 다 읽고 난 지금도. 모리타트의 선율이 머릿속에서 맴돕니다. 아니, 아예 콧소리로 흥얼거리고 있습니다. 하스미의 마력에, 저주에 빠져버린 걸까요.

 


사이코패스란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의미합니다. <악의 교전>에 나오는 하스미는 눈에 띄는 괴상한 얼굴, 온몸에 기름과 피를 뒤집어쓴 형상의 살인마가 아니라 잘생긴 외모와 품위 있는 행동으로, 누구에게나 사랑 받을만한 그런 인물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없는 차가운 인물이지요. 그의 지적인 모습은 연기입니다. 현대는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아져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하지만 <악의 교전>에서 하스미를 겪고 나면 웬만한 사람들은 천사로 보일 지경입니다. 하스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하거나 자신이 생각한 바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걸림돌이 되는 것이라면 가까운 사람, 친구(애초에 그런게 존재하긴 하는 건지), 심지어 부모까지도 살해할 수 있는 자였습니다. 죄책감이라는 게 뭔지도 모를 그는 완벽하게 살인 사실을 감추며 살아왔지만 유달리 감이 좋은 사람이 있게 마련이지요. 누군가가 자신의 올바르고 멋진 모습에서 죽음의 냄새를 맡는다면 그 사람 역시 사신의 곁으로 보내버립니다.

 

 


한 학교의 영어 선생으로 근무하면서 선생님들의 신뢰를 받고 학생들의 사랑을 받던 하스미에게 신뢰와 사랑은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 당연히 가져야 할 것들이었기에, 어느샌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자신의 가면을 땜질하기 위해 주변의 방해되는 인물들을 하나씩 처치합니다. 그러나 완벽한 계획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했기에 그는 결국 폭주합니다. 자신이 담임으로 있는 반 아이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기로 결심하지요.


실제로 긴박하고 침이 마르는 장면들은 교내에서 벌어지는 처참한 살육장면들이었는데,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살인마를 피하려하지만, 결국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 학교에서의 살육장면은 전체 분량의 1/4도 되지 않는데 동시각대에 벌어지는 일들이 묘사되어 긴장을 고조시킵니다. 단연 최고의 부분이지요. 하지만 이 소설에서의 실제 공포감은 하스미의 어린시절까지 포함하여 그가 존재하고 있다는 그 자체로 만들어집니다.


사실 책보다 영화로 먼저 <악의 교전>을 접했는데요. 영화는 음울하고 기괴한데 ..... 졸렸습니다. 푸욱 가라앉아 사건의 당일까지 이어지는 필름.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며 가위눌림에서 풀려나려고 애쓰는 정도의 긴장과 공포감. 그렇다고 지루해서 잠이 들것 같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쩐지 몽롱하면서 꿈과 생시를 오가는 것 같은 연출이었습니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기분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영화가 느린 재즈 속에 악마가 도사리고 있다가 활개를 치는 것 같았다면, 소설에서는 밝은 세상속에 세상의 어둠을 모조리 뭉쳐 안에다 담고 겉으로는 잘생긴 선생님을 연기하는 악마가 존재했습니다. 자신이 악하다는 것 조차 인식하지 않는 그는, 선생님이라는 겉옷을 벗으면 연쇄 살인마로 돌변할 수 있는 자였습니다.


소설에는 참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가타기리라는 여학생인데요. 머리가 좋다기보다는 감이 좋습니다. 어쩐지 기분나쁜 4인방 선생님을 꼽았는데, 감이 딱 들어맞았습니다. 소설의 진행상 그녀의 역할은 뛰어나게 두드러지지 않으면서도 극을 끌어가는 중요한 인물이로구나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곳에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매력까지 갖추고 있던 소녀였는데, 어째서 영화에서는 그녀를 빼버렸을까요.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영화를 본 누리꾼들 중 몇명이 원작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아쉬운 영화라고 평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일까하는 의심이 들었지요. 영화를 보았을 때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느꼈었으니까요. 악몽 가운데 들어 앉은 기분이었습니다. 전반의 지루함은 견딜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대단하다고 여겼지요. 하지만 원작을 읽고나니 영화가 원작을 살리지 못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역시 시간의 제약이란 지면의 제약보다 큰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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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이야기꾼들
전건우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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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전의 일입니다.

인천에 살고 있던 저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대구로 이사를 가야해서 한밤중까지 짐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희집은 반지층이었는데요. 신축 건물의 반지층이라 그다지 불편하게 살고 있진 않았습니다. 한참 짐을 꾸리던 중, 현관문 밖이 어수선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누가 빌라 출입문 앞에서 놀고 있나.. 신경이 쓰여 현관문 외시경으로 밖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한 젊은 남녀가 출입문 안쪽에 있는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뒤지고 있더군요. 남의 것도 살피는 건가... 왜 저러는 건지 의아했지만, 이러다가 밤을 꼬박 새울 것 같아서 다시 하던일을 마저 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흘렀는데도 여전히 밖은 어수선했고, 도대체 뭘 하길래 안가고 저기서 저러고 있나하는 생각에 다시 외시경을 내다보았습니다. 남자는 여전히 우편함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지만, 여자는 세개 뿐인 계단을 내려와서 저희집 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얀 옷을 입은 머리 긴 여자.

함께 짐을 싸주던 후배에게 궁시렁 거렸습니다. 쟤들은 왜 안가고 한 사람은 우편함 뒤지고, 한 사람은 우리집 보고 있는거야? 그러자 후배는 어디어디, 하면서 현관문으로 다가갔습니다. 그 순간 저는 갑자기 소름이 끼쳤고 후배의 옷자락을 잡고 불러 세웠습니다. 언니 왜요? 후배가 현관으로 걸어 가자 현관 조명이 그녀를 감지하고 켜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있지. 출입문 조명도 감지식 아니었나? 사람이 움직이면 불이 켜지는거 맞지? 그런데, 쟤들이 우편함 뒤적일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왜 불이 안켜지는 거야? 언니, .....내가 다시 내다볼까요? 아니, 내다보지마.. 아깐 우리집에서 세발자국 정도 떨어져있었어. 그여자가. 내다봤다가는..... 더욱 가까워진 그 여자를 보게 될까봐 무서워. 왜 그런 이야기도 있잖아. 외시경을 내다보는데 문 밖의 사람도 함께 들여다보더라는. 후배는 진저리를 쳤습니다. 하지마요. 언니. 무섭단말이에요. 어떡하죠?

저는 잠시 생각하다가 현관으로 걸어갔습니다. 뭐하려고요 언니.

 .... 쉿.


저는, 조용히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힘차게 열었습니다. 콰당탕. 동시에 출입문 쪽의 센서가 작동했는지 불이 켜졌습니다. 언니!! 왜 그런거에요! 후배가 놀래서 묻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인데 그렇게 눈대고 보고 있는거면, 코 깨지라고."


출입문 근처와 밖을 내다보아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뭐였지. 혹시 우편함 뒤지는 작은 동작에는 센서가 인식 못해서 불이 안켜지는 건가 싶어서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우편함 앞에서 서서 불이 꺼지길 기다린 후 조심스레 우편함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확 켜지는 센서등.

"불 켜지네."


집으로 들어와서 짐을 후다닥 싸고 잠을 청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느냐고요? .... 아침에 이사했죠. 뭐.

그게 다냐고.. 끝이냐고요? ...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잖아요. 결말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요. 그때 일은 저에게 미스터리로 남았지만, 뭐 어쩔 수 있나요. 할 수 없지.



 

 

 

참 비현실 적이지만 실화입니다. 기승전결 따위는 없어요. 인생 살이에서 언제가 클라이맥스인지 어떻게 알겠어요. 내가 죽은 후에나 알게 되려나.

전건우의 <밤의 이야기꾼들>도 그렇습니다. 이야기들 마다 기승전결은 있지만, 아구가 딱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주인공인 김정우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계곡으로 놀러갔다가 폭우로 부모님을 잃고 일년간 마치 실어증에 걸리듯, 시력을 잃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다가 월간 풍문이라는 잡지사에 취직하고 그 곳에서 대호 선배와 함께 일년에 한 번 열리는 '밤의 이야기꾼들'이라는 모임에 취재를 나갑니다. 그곳의 기괴한 분위기. 참자가들의 기묘한 이야기는 정우를 불안하게도 만들고 의심하게도 만듭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난장이가 집안의 물건을 가지고 가는 대신 원치 않는 것도 가지고 가고, 댓가로 좋은 것을 놓고 간다는 이야기에다가 도플갱어를 본다는 성형중독자 이야기에, 이사 가고서도 전에 살던 집에 집착하는 남자의 이야기에, 학교폭력으로 이상한 얼굴이 되어버린 여자의 이야기...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저주에 뺏긴 이야기 같은 것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비현실적인 것이 도리어 현실적이다라는 이야기에 자신의 과거 사건도 떠올리게 됩니다.


이야기의 공포 정도라고 한다면 중, 혹은 중상정도 될겁니다. 기묘한 모임, 기괴한 이야기들은 마치 더링님의 '잠밤기'에 투고하는 투고자들의 이야기 같이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 곳에는 도시전설도 있고, 실화들도 있었으니까요. 한 번은 위에서 이야기한 이야기가 아닌 예전의 이야기가 인터넷 라디오에서 소개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읽은 후 착각 한거다...라는 결론을 내고 비웃고, 낄낄 거리더군요.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일은 모두 착각이고 비웃음거리가 되는 걸까요? 어디선가 그런 괴이쩍은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흥미로워하며 듣는 것이 아닐까요? 밤의 이야기꾼들의 이야기들도 그렇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있을 것 같은 이야기들. 이야기꾼들의 이야기를 들은 김정우도 마침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안식을 찾습니다. 그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같은 것이 그를 누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책을 덮으며 약간 임팩트가 부족하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의 이야기꾼들의 이야기 하나하나는 괴이하고, 영화화 계약을 했다는 '홈, 스위트홈'은 무척 두렵게 드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을 하나의 맥락으로 본다면, 어쩐지 무언가가 조금 부족한 것 같은 기분. 한국 영화나 소설의 필수 요건인 억지 감동이나 눈물 같은 것도 조금 들어있었습니다. - 그래서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지독하게 무섭지는 않지만, 문득 길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 같은 사람과 마주친다면,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오소소 돋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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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의 다섯 번째 아내 블랙 로맨스 클럽
제인 니커선 지음, 이윤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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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겪어 본 사람은 상상 할 수 없는 숨막힐 듯한 공기가 있습니다. 분명히 공기는 흐르고 있는데, 내 주위에만 산소가 부족한 공기가 느리게 흘러갑니다. 그 공기는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으며 나를 지켜보고 있는 자에 의해서만 움직입니다. 내가 긍정적이고, 창의적이고 발랄할 수록 그 옥죄는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집니다. 1토르의 기압이 남들을 누르고 있을 때 나에게만 더욱 큰 힘을 가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듭니다.

가령,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웃으려는 순간, 저게 웃기냐. 저게 웃겨?라는 말을 들으면 갑자기 세상 모든 것이 재미없어집니다. 아니, 재미없어야합니다. 하나도 슬프지 않은데, 그가 눈물을 흘리면, 나도 슬퍼야합니다. 그가 화가 났을 때는 특히 조심해야합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는 뇌를 흔들어 놓습니다. 마음에서 불안감이 꿈틀거립니다. 기분이 좋을때도 조심해야합니다. 방심했다가는 갑자기 돌변해서 빈정거리거나 화를 낼지도 모릅니다. 전, 그런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남들에게는 한 없이 좋은 사람이고, 사업도 번창하여 통크게 한 턱 쏘기도 합니다. 동안에 귀여운 눈웃음. 매력적인 목소리. 뛰어난 화술. 노래도 연기력도 뛰어납니다. 타인에게서 저런 사람이 아버지라니 넌 참 좋겠다라는 말을 들을 때면 당신이 함께 사시던가요...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 만 같았습니다.


<푸른수염의 다섯 번째 아내>라는 소설의 푸른 수염, 버나드 드 크레삭은 저희 아버지를 연상하게 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크레삭의 대저택으로 초대받아 그 곳에 살러 간 17세 소녀 소피아는 처음엔 그의 부유함과 자신이 아버지에게 못 받았던 물질적인 사랑과 우아한 생활에 조금은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점점 크레삭의 성격을 깨닫고 불안해합니다. 처음엔 크레삭을 이성이라기 보다는 아버지 비슷한 사람이라 여겼기 때문에 저는 소피아가 되어 크레삭의 성격을 그대로 받아야만 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크레삭이 욱하는 성질을 부릴때면 제 심장도 쿵덕쿵덕. 트라우마가 들춰지고 말았습니다. 소피아가 그 곳에서 떠나고 싶어하는 심정과 얼마나 불안했을까하는 마음을 이 소설에서 표현 한 것 보다 더 진하게 느끼고 말았습니다. 저는 소피아였고, 소피아는 저였습니다.

하지만, 크레삭은 소피아의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크레삭은 소피아가 아기였을 때부터 그녀를 점찍어 두었던 모양입니다. 자신의 신부로요.

이미 그에겐 행방불명 되었거나, 죽어버린 네명의 빨간 머리의 신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빨간머리의 아름다운 소피아와 결혼하기를 원합니다. 소피아는 그와 결혼하기 싫습니다. 아무리 모든 부를 함께 누릴 수 있다하더라도 그의 허락 없이는 1센트도 그녀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흑인 노예들에 대한 그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직 19세기 중반, 노예들은 주인의 소유물이며 짐승과 같아서 생사여탈이 그의 손에 있었지만, 소피아는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이해하기를 원했습니다. 에스더 왕비와 같은 용기도 크레삭에게는 듣지 않았습니다.


부를 가지고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과 자유를 누리며 가난한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나마 나을 테지만, 만일 후자를 선택한다면 크레삭에게 반드시 복수를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녀의 선택은 더욱 힘겹습니다. 그리고, 이미 죽은 빨간 머리의 네 유령도 그녀의 결혼을 막고 싶어하는듯, 언젠가부터 그녀 주위를 맴돕니다.


아멜리 노통브의 푸른 수염, 페로의 푸른 수염, 앤젤라 카터의 피로 물든 방... 이야기와는 다른 결말을 보여주는 <푸른 수염의 다섯번째 아내>. 어떤 결말을 내었을까요. 저는 이 이야기의 결말이 마음에 듭니다. 비록 헐리우드식 공포영화의 규칙을 그대로 따르는 바람에 유치함에 코웃음을 쳤지만요. 좋습니다. 이런 결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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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이브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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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작가생활 25주년 기념 소설이었던 매스커레이드 호텔을 읽으면서 닛타 형사와 호텔리어 나오미에게 애정이 생겼드랬습니다. 평소 그렇게 관심가는 캐릭터가 생긴 후, 다시는 그들을 작품에서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괜히 섭섭해지곤했는데요. 이번의 신작 <매스커레이드 이브>가 그 섭섭함을 어느 정도 씻어주었습니다. 처음엔 매스커레이드 이브라고 하니까 아담과 이브 할때 그 '이브'라고 생각해서 가면을 쓴 여자 - 여기서는 실제로 가면을 쓴 것이 아니라 내면과는 다른 외면을 보이는 것을 가면이라고 하지요 - 의 이야기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의 이브는 크리스마스 전날을 말할때 사용하는 이브였습니다. 다시말하자면 <매스커레이드 호텔>의 프리퀄이라는 이야기죠. 그러므로 전작의 전편이 되겠습니다. 이책의 에필로그 부분에서는 매스커레이드 호텔의 처음 부분이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매스커레이드 호텔을 읽으며 서로 연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형사 닛타는 히가시노 게이고 시리즈물의 주인공들 중 가장 고급지지만 건방지지 않은 캐릭터인 것 같습니다. 유가와(갈릴레오)도 고급스럽긴하지만 까칠하고 다소 건방진 태도를 보이는데 닛타는 신입 앨리트 형사로 곧 출세할 것 같은 친구이지만 빛나는 두뇌회전에 비해 신중하고 겸손합니다. 호텔리어 나오미 역시 프로다운 모습을 보이지만 - 사실은 사람을 너무 관찰한다는 이유로 지적을 받습니다 - 정도 있고 정의감도 있어서 약간 원칙을 벗어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무척 멋진 여성입니다. 호텔리어로서의 원칙도 고수하면서 손님이 쓰고 있는 가면을 알면서도 내버려 둘 때도 있고, 어떨때는 가차없이 벗겨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밀은 비밀. 손님의 프라이버시는 반드시 존중합니다. 어디까지나, 호텔리어니까요.


<매스커레이드 이브>에는 네개의 연작 단편이 들어있습니다. 첫번째 사건에서는 나오미의 대학시절 남자친구가 등장하는데요. 하필 이 친구가 불륜이랍니다. 토라져서 가버린 여자친구를 찾아달라고 나오미에게 부탁하는데요. 아니 뻔뻔함에도 정도가 있지. 그런데, 정말로 불륜일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두번째 사건에서는 신입 앨리트 형사 닛타가 활약합니다. 한밤중 런닝 중인 남자가 살해되고, 그 범인을 찾아야합니다. 닛타는 현장 증거와 정황증거를 모아 범인을 찾습니다. 그리고, 뜻밖의 결과를 맞게 되지요.

세번째 사건에서는 미모의 여류작가를 만나기 위한 오타쿠들이 등장합니다. 나오미는 고객을 그 오타쿠들에게서 보호 할 수 있을까요?

네번째 사건은 드디어 니타와 나오미의 접점이 생깁니다. 직접 만나지는 않지만요. 대학교수가 교수실에서 살해당한 사건을 추적하는데, 읽는 동안에는 좀 답답했습니다.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의 알리바이를 조사하는 쪽에만 촛점이 맞춰져있었기 때문이었죠. 이러다가 진범이 아니면 어떡하나..하는 걱정도 했었는데요. 나름대로 이유가 있더라구요.


<매스커레이드 호텔>을 재미있게 읽었었기 때문에 이번 <매스커레이드 이브>는 더욱 재미있었습니다. 연작 단편이라고 해도 좋고, 각각의 단편이라고 해도 좋고, 혹은 장편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궂이 가르지 않더라도 모두 <매스커레이드 호텔>, 코르테시아 호텔에서 만나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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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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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잠시 다단계라는 것에 발을 적신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부분은 블록체로 충격 고백이라는 말머리를 달면 좋겠네...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이런 상상을 하는 것마저 부끄럽습니다.

지인과 또 그 지인의 소개로 설명회라는 곳에 참여해 이런저런 강연을 듣고 미팅을 한 결과.. 저는 그 모임, 혹은 그 사업에 혹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저는 어렵게 들어간 대학원을 휴학 중이었으므로 돈을 빨리 벌어서 학교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제품도 그럴싸했고요. 거금을 들여 가입했는데, 마침 회원이 되는 금액을 파격 할인 중이어서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단계란 하위 회원을 모집해 그들에게 구매하도록 해야 하는데, 저에겐 그런 배짱은 없었지 뭡니까. 말로는 너도 좋고 나도 좋고라고는 하지만 내심 '내가 더 좋고.'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걸 다른 말로 찔리는 구석이라고 하지요. 저는 한 참의 시간을 들여 친구 둘과 아는 오빠 하나를 데려갔습니다. 오빠에게는 욕을 먹었고, 친구 하나는 거절, 하나는 한 달 동안 함께 다니다가 실망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구매하지 않았으므로 금전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시간 면에서 손해를 보았고, 특히 한 달 동안 저와 함께 그곳에 다녀준 친구에겐 '나'라는 인간에 대한 실망마저 안겨주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절친을 잃었지만, 여전히 자석요는 남아있습니다.
다단계라는 걸 잠시 겪어보고 나서는 어떤 포장지로 둘러싼다 해도 다단계는 다단계일 뿐이고, 반드시 잡아야만 할 기회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내가 잡을 수 있는 다른 멀쩡한 기회를 날려버리는 썩은 동아줄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어렸을 때 겪었으니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진 돈이 별로 없으니 잃을 돈도 적었고, 인맥이 허술하니 저로 인해 피해를 입을 사람도 적었으니까요. 만약 다단계라는 것을 한 번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지금 혹은 노년에 같은 일을 겪는다면 더 깊이 빠져들어 무엇이라도 잡아보겠다며 허우적거리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궂이 드러내지 않고 감추고 싶었던 제 치부를 드러낸 건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때문이었습니다. 회개하는 심정이 되어서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이야기를 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소설 속의 다른 인물도 아닌 사카모토라는 청년에서 저를 보았거든요. 저는 그 청년처럼 과격해지지는 않았습니다만. 소설의 처음엔 그렇습니다. 스기우라를 포함한 몇 사람이 버스 인질극에 휘말리고, 그 과정에서 범인인 노인이 어떻게든 차후에 피해 보상금을 전달하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러나 경찰이 버스 내로 진입하자 노인은 자살해버립니다. 당시 노인의 인질이었던 사람들은 묘하게 노인에게 동조하는 분위기였는데, 적극적인 공범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이 할아버지를 친근하게 여기게 되었지요. 이는 돈 때문만도 아니었고, 스톡홀름 증후군도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책을 읽고 있는 저조차 노인을 이해하려 했고 그의 사연이 궁금했으니까요. 노인의 언변이 좋아서였는지, 미미 여사의 필력이 좋아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노인의 죽음은 참 안타까웠습니다. 노인이 약속한 배상금은 그 액수가 어찌 되었든 정말로 인질들과 버스 기사에게 전달되었고, 그들은 그 돈을 쓰지도, 신고하지도 못한 채 어떤 돈인가를 조사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 주축엔 스기우라가 있었고요.
 부드럽고 살짝 우유부단한 것 같지만 할 때는 하고 할 말은 하는 오지라퍼 스기우라만 아니었어도 몰래 돈을 가지고 써 버렸을 텐데, 기초 생활 수급자 권유를 받던 노인이 사후에 보낸 돈이라니 궁금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노인과 돈의 출처를 조사하던 스기우라는 이 노인이 어떤 형태로든 뉴스에서 화제가 되었던 다단계 사기 사건의 관련자라는 것을 눈치채고 더욱 깊이 파고듭니다.
이 책은 아마도 읽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 무척 달리 읽힐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타 다른 소설도 그러하지만, 이 책은 저처럼 다단계라는 것을 살짝 겪은 후 친구를 잃어버린 사람이라면, 그 소설 속의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사기를 당하고 속아넘어가 피해자이며 동시에 가해자가 되어버렸는가를 느끼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부드럽고 다정한 남편이며 누구보다도 그 자리에서 잘 지내보려고 했던 스기우라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보던 그녀가 가장 이해 못 해주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니까 놓아준다는 식으로 말하고 자신도 독립적인 인간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녀는 실제 인간이라면, 그렇게 되기 어려울 겁니다. 살아온 인생과 누리던 것들이 있기 때문이니까요. 나호코는 스기우라에게, 아버지에게 또 다른 떼를 부리고 있는 겁니다.

책이 워낙 두꺼워 리뷰도 짧을 수 없는데, 저의 경우엔 할 말이 더 많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책을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십자가 이야기도 해야 하고, 베드로 이야기도 해야 하며, 반지의 이야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너무 길어지지 않을까요. 그러니 저는 이만 여기서 줄이려 합니다. 제가 다단계에 발목까지 잠겨있을 때 그 건물에는 무척 많은 - 연예인들도 있었죠 - 사람들이 있었지요. 목까지 푹 잠겨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아직도 다단계의 꿈을 꾸고 있을까요. 아니면 저처럼 부끄러워하고 있을까요. 그들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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