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이야기꾼들
전건우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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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전의 일입니다.

인천에 살고 있던 저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대구로 이사를 가야해서 한밤중까지 짐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희집은 반지층이었는데요. 신축 건물의 반지층이라 그다지 불편하게 살고 있진 않았습니다. 한참 짐을 꾸리던 중, 현관문 밖이 어수선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누가 빌라 출입문 앞에서 놀고 있나.. 신경이 쓰여 현관문 외시경으로 밖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한 젊은 남녀가 출입문 안쪽에 있는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뒤지고 있더군요. 남의 것도 살피는 건가... 왜 저러는 건지 의아했지만, 이러다가 밤을 꼬박 새울 것 같아서 다시 하던일을 마저 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흘렀는데도 여전히 밖은 어수선했고, 도대체 뭘 하길래 안가고 저기서 저러고 있나하는 생각에 다시 외시경을 내다보았습니다. 남자는 여전히 우편함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지만, 여자는 세개 뿐인 계단을 내려와서 저희집 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얀 옷을 입은 머리 긴 여자.

함께 짐을 싸주던 후배에게 궁시렁 거렸습니다. 쟤들은 왜 안가고 한 사람은 우편함 뒤지고, 한 사람은 우리집 보고 있는거야? 그러자 후배는 어디어디, 하면서 현관문으로 다가갔습니다. 그 순간 저는 갑자기 소름이 끼쳤고 후배의 옷자락을 잡고 불러 세웠습니다. 언니 왜요? 후배가 현관으로 걸어 가자 현관 조명이 그녀를 감지하고 켜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있지. 출입문 조명도 감지식 아니었나? 사람이 움직이면 불이 켜지는거 맞지? 그런데, 쟤들이 우편함 뒤적일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왜 불이 안켜지는 거야? 언니, .....내가 다시 내다볼까요? 아니, 내다보지마.. 아깐 우리집에서 세발자국 정도 떨어져있었어. 그여자가. 내다봤다가는..... 더욱 가까워진 그 여자를 보게 될까봐 무서워. 왜 그런 이야기도 있잖아. 외시경을 내다보는데 문 밖의 사람도 함께 들여다보더라는. 후배는 진저리를 쳤습니다. 하지마요. 언니. 무섭단말이에요. 어떡하죠?

저는 잠시 생각하다가 현관으로 걸어갔습니다. 뭐하려고요 언니.

 .... 쉿.


저는, 조용히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힘차게 열었습니다. 콰당탕. 동시에 출입문 쪽의 센서가 작동했는지 불이 켜졌습니다. 언니!! 왜 그런거에요! 후배가 놀래서 묻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인데 그렇게 눈대고 보고 있는거면, 코 깨지라고."


출입문 근처와 밖을 내다보아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뭐였지. 혹시 우편함 뒤지는 작은 동작에는 센서가 인식 못해서 불이 안켜지는 건가 싶어서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우편함 앞에서 서서 불이 꺼지길 기다린 후 조심스레 우편함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확 켜지는 센서등.

"불 켜지네."


집으로 들어와서 짐을 후다닥 싸고 잠을 청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느냐고요? .... 아침에 이사했죠. 뭐.

그게 다냐고.. 끝이냐고요? ...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잖아요. 결말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요. 그때 일은 저에게 미스터리로 남았지만, 뭐 어쩔 수 있나요. 할 수 없지.



 

 

 

참 비현실 적이지만 실화입니다. 기승전결 따위는 없어요. 인생 살이에서 언제가 클라이맥스인지 어떻게 알겠어요. 내가 죽은 후에나 알게 되려나.

전건우의 <밤의 이야기꾼들>도 그렇습니다. 이야기들 마다 기승전결은 있지만, 아구가 딱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주인공인 김정우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계곡으로 놀러갔다가 폭우로 부모님을 잃고 일년간 마치 실어증에 걸리듯, 시력을 잃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다가 월간 풍문이라는 잡지사에 취직하고 그 곳에서 대호 선배와 함께 일년에 한 번 열리는 '밤의 이야기꾼들'이라는 모임에 취재를 나갑니다. 그곳의 기괴한 분위기. 참자가들의 기묘한 이야기는 정우를 불안하게도 만들고 의심하게도 만듭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난장이가 집안의 물건을 가지고 가는 대신 원치 않는 것도 가지고 가고, 댓가로 좋은 것을 놓고 간다는 이야기에다가 도플갱어를 본다는 성형중독자 이야기에, 이사 가고서도 전에 살던 집에 집착하는 남자의 이야기에, 학교폭력으로 이상한 얼굴이 되어버린 여자의 이야기...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저주에 뺏긴 이야기 같은 것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비현실적인 것이 도리어 현실적이다라는 이야기에 자신의 과거 사건도 떠올리게 됩니다.


이야기의 공포 정도라고 한다면 중, 혹은 중상정도 될겁니다. 기묘한 모임, 기괴한 이야기들은 마치 더링님의 '잠밤기'에 투고하는 투고자들의 이야기 같이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 곳에는 도시전설도 있고, 실화들도 있었으니까요. 한 번은 위에서 이야기한 이야기가 아닌 예전의 이야기가 인터넷 라디오에서 소개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읽은 후 착각 한거다...라는 결론을 내고 비웃고, 낄낄 거리더군요.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일은 모두 착각이고 비웃음거리가 되는 걸까요? 어디선가 그런 괴이쩍은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흥미로워하며 듣는 것이 아닐까요? 밤의 이야기꾼들의 이야기들도 그렇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있을 것 같은 이야기들. 이야기꾼들의 이야기를 들은 김정우도 마침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안식을 찾습니다. 그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같은 것이 그를 누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책을 덮으며 약간 임팩트가 부족하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의 이야기꾼들의 이야기 하나하나는 괴이하고, 영화화 계약을 했다는 '홈, 스위트홈'은 무척 두렵게 드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을 하나의 맥락으로 본다면, 어쩐지 무언가가 조금 부족한 것 같은 기분. 한국 영화나 소설의 필수 요건인 억지 감동이나 눈물 같은 것도 조금 들어있었습니다. - 그래서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지독하게 무섭지는 않지만, 문득 길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 같은 사람과 마주친다면,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오소소 돋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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