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의 다섯 번째 아내 블랙 로맨스 클럽
제인 니커선 지음, 이윤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안 겪어 본 사람은 상상 할 수 없는 숨막힐 듯한 공기가 있습니다. 분명히 공기는 흐르고 있는데, 내 주위에만 산소가 부족한 공기가 느리게 흘러갑니다. 그 공기는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으며 나를 지켜보고 있는 자에 의해서만 움직입니다. 내가 긍정적이고, 창의적이고 발랄할 수록 그 옥죄는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집니다. 1토르의 기압이 남들을 누르고 있을 때 나에게만 더욱 큰 힘을 가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듭니다.

가령,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웃으려는 순간, 저게 웃기냐. 저게 웃겨?라는 말을 들으면 갑자기 세상 모든 것이 재미없어집니다. 아니, 재미없어야합니다. 하나도 슬프지 않은데, 그가 눈물을 흘리면, 나도 슬퍼야합니다. 그가 화가 났을 때는 특히 조심해야합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는 뇌를 흔들어 놓습니다. 마음에서 불안감이 꿈틀거립니다. 기분이 좋을때도 조심해야합니다. 방심했다가는 갑자기 돌변해서 빈정거리거나 화를 낼지도 모릅니다. 전, 그런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남들에게는 한 없이 좋은 사람이고, 사업도 번창하여 통크게 한 턱 쏘기도 합니다. 동안에 귀여운 눈웃음. 매력적인 목소리. 뛰어난 화술. 노래도 연기력도 뛰어납니다. 타인에게서 저런 사람이 아버지라니 넌 참 좋겠다라는 말을 들을 때면 당신이 함께 사시던가요...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 만 같았습니다.


<푸른수염의 다섯 번째 아내>라는 소설의 푸른 수염, 버나드 드 크레삭은 저희 아버지를 연상하게 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크레삭의 대저택으로 초대받아 그 곳에 살러 간 17세 소녀 소피아는 처음엔 그의 부유함과 자신이 아버지에게 못 받았던 물질적인 사랑과 우아한 생활에 조금은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점점 크레삭의 성격을 깨닫고 불안해합니다. 처음엔 크레삭을 이성이라기 보다는 아버지 비슷한 사람이라 여겼기 때문에 저는 소피아가 되어 크레삭의 성격을 그대로 받아야만 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크레삭이 욱하는 성질을 부릴때면 제 심장도 쿵덕쿵덕. 트라우마가 들춰지고 말았습니다. 소피아가 그 곳에서 떠나고 싶어하는 심정과 얼마나 불안했을까하는 마음을 이 소설에서 표현 한 것 보다 더 진하게 느끼고 말았습니다. 저는 소피아였고, 소피아는 저였습니다.

하지만, 크레삭은 소피아의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크레삭은 소피아가 아기였을 때부터 그녀를 점찍어 두었던 모양입니다. 자신의 신부로요.

이미 그에겐 행방불명 되었거나, 죽어버린 네명의 빨간 머리의 신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빨간머리의 아름다운 소피아와 결혼하기를 원합니다. 소피아는 그와 결혼하기 싫습니다. 아무리 모든 부를 함께 누릴 수 있다하더라도 그의 허락 없이는 1센트도 그녀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흑인 노예들에 대한 그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직 19세기 중반, 노예들은 주인의 소유물이며 짐승과 같아서 생사여탈이 그의 손에 있었지만, 소피아는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이해하기를 원했습니다. 에스더 왕비와 같은 용기도 크레삭에게는 듣지 않았습니다.


부를 가지고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과 자유를 누리며 가난한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나마 나을 테지만, 만일 후자를 선택한다면 크레삭에게 반드시 복수를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녀의 선택은 더욱 힘겹습니다. 그리고, 이미 죽은 빨간 머리의 네 유령도 그녀의 결혼을 막고 싶어하는듯, 언젠가부터 그녀 주위를 맴돕니다.


아멜리 노통브의 푸른 수염, 페로의 푸른 수염, 앤젤라 카터의 피로 물든 방... 이야기와는 다른 결말을 보여주는 <푸른 수염의 다섯번째 아내>. 어떤 결말을 내었을까요. 저는 이 이야기의 결말이 마음에 듭니다. 비록 헐리우드식 공포영화의 규칙을 그대로 따르는 바람에 유치함에 코웃음을 쳤지만요. 좋습니다. 이런 결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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