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집
기시 유스케 지음 / 창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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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은 1920년대 독일의 쿠르트 슈나이더가 처음으로 도입한 것으로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말합니다. 평소에는 그들을 잘 알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조용하기 때문에 알아채기 힘들지요. 하지만 어떤 계기로 인해 그들이 숨겨왔던 증상들이 폭발하고 맙니다. 유전적이거나 뇌의 일부 기능이 차단되거나 호르몬계의 혼란으로 야기되기도 하는데요. 그들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해내지 못하게 하는 자들은 모두 적이며 제거해야 할 대상이지요. 


<검은 집>을 읽기 시작했을 때에는 보험 사기와 아동학대 쪽으로 초점을 맞추어 읽어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각종보험 사기나 클레임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보험회사 직원 신지가 클레임을 해결하러 한 고객의 집에 방문했을 때, 그 집에서 아이의 시체를 발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목매달아 죽은 아이의 시신은 마치 신지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었고, 어릴 때 추락사 한 형의 일에 대한 죄책감과 겹쳐져 신지는 깊은 괴로움에 빠지고 맙니다. 하지만, 이 일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경찰은 자살은 아닌 것 같지만 타살은 아니라는 애매한 결론을 내렸고, 죽은 아이의 아버지, 고모다는 오래전 보험금을 타기 위해 손가락을 절단했던 전과가 있으므로 혹시 보험금을 위해 아이를 죽인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에 신지는 무척 괴로워했습니다. 부부는 자신들 각각 3000만 엔, 아이에게는 500만 엔의 보험을 들어두었었는데, 그들은 매월 납입해야 하는 보험료를 감당하기에는 형편이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애초에 신지에게 시신을 목격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았고, 만일 고모다가 아이를 죽인 것이라면 그의 부인 사치코 역시 조만간 큰 화를 당할 것만 같아 더욱 두려웠습니다. 신지가 방문했던 고모다의 집은 짙은 향기와 악취가 뒤섞인 것 같은, 오오라를 느낄 수 있다면 끈적끈적한 타르가 온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검은 집이었습니다. 신지는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조사를 시작하고, 고모다는 보험금의 지금이 늦어진다는 항의를 하기 위해 매일 같이 보험회사를 방문합니다. 그리고 신지와 그의 주변 인물들에게 흉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지요. 


  희뿌연 공처럼 생긴 작은 물체. 커다란 공 주위를 몇 개의 작은 공이 감싸고 있었다. 아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기도 전에 죽어버린 것이리라. 

  어미 고양이의 것 같은 중앙에 있는 커다란 목은 둔탁한 눈을 크게 뜨고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새끼를 지키려고 하는 것처럼 처절하기 짝이 없는 형상이었다. 

-p.289



이 소설 <검은 집>은 1997년 제4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그의 데뷔작 <13번째 인격>은 좀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요. <검은 집>은 무척 대단한 소설이었습니다. 1997년의 작품이기에 스토리의 익숙함으로 범인이 누구며 어떻게 된 일인지 소설의 중반쯤에 이르러 모두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필력 때문에 책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용이 궁금해서, 결말이 궁금해서 읽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검은 집으로 빨아들이는 그의 묘사력에 사로잡혀버린 것이었지요. 무섭고, 두렵습니다. 장면들이 눈앞에서 끔찍하게 펼쳐집니다. 그러니 보험 사기 이야기도, 아동 학대 이야기도 이 책을 닫을 즘에는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모든 것을 잊게 만드는 범인의 광기가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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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형제의 길 - 흔들림 없이 끝까지 함께 걸어간 동화의 길
손관승 지음 / 바다출판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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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베를린 특파원 출신의 저자 손관승은 콘텐츠 기업 IMBC 대표이사를 역임하다 퇴직 후, 번 아웃 증후군을 겪던 중 여행길을 따라 문학을 찾는 방법으로 그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괴테와 함께 한 이탈리아 여행>이 그 첫번째 책이었는데요. 이번엔 <그림 형제의 길>을 통해 문학 여행을 합니다. 


독일에는 그림 형제와 동화를 따라가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고 가볍게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메르헨 길'이 조성되어 있는데요. 하나우에서 브레멘을 잇는 무려 600 Km에 달하는 길이라고 합니다. 이 길은 60여 개의 도시와 8개의 국립공원을 통과하게 되어 있다고 하네요. 그야말로 스토리를 위한 스토리 텔링 로드가 아닌가 합니다.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이 '메르헨 길'을 따라 진행되는 여행기 비슷한 것인가 했습니다. 저자가 도시와 마을을 이동하며 다정한 사람들도 만나고 친절한 사람들도 만나지만 소중한 카메라를 소매치기당하는 에피소드 같은 것들도 있었거든요. 슈타이나우 시청 앞 광장 분수에 있는 개구리 왕자 조각상 이야기를 하면서 개구리 왕자, 그리고 개구리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식으로 진행되는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카메라를 소매치기당하다니. 기록을 위해 촬영하던 사진들이 모두 사라져버렸으니 이 일을 어쩝니까.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괜찮아. 그림동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역경을 이겨냈는걸." 그리고 계속 메르헨 길을 걸어갑니다. 그런 그를 따라 여행을 하다 보면 메르헨의 세계를 만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각 장소에 얽힌 이야기나 동화를 말하다 보니 저자가 신이 난 모양입니다. 어느새 여행기는 간데 없고 그림 형제의 일대기가 펼쳐지거든요. 잠시 이야기하며 장소에 따라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전하려나 했는데, 그냥 그림 형제의 이야기로 바뀌어버렸어요. 마치 그림 형제의 간추린 위인전을 보는 듯했습니다. 


리뷰를 하기 전에 잠시 이것저것 조사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 형제의 동화집에 실려있던 원작에 대해 모르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라는 것인데요. 사실 초판에 실려있던 이야기들은 당시의 사회상에 비추어보아도 너무 잔인하거나 원색적이라는 이유로 2판에서 조금 손보았습니다. 재판할 때마다 조금씩 수정을 해 나갔기에 200년이나 지난 지금은 좀 달라져도 괜찮지 않나 싶겠지만, 구전동화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더라도 엄연히 작가가 있는 글의 원작을 변형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어릴 때 원작에 가까운 글로 읽었기에 어른이 된 지금 이렇게 이야기할수 있는 것이겠죠. 원작에 대해 모르는 사람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림 형제가 개구리 왕자의 원작자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는데요. '개구리 왕자'는 그림 동화의 초판에서부터 꾸준히 그림 동화집의 첫 번째 이야기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그림 형제는 형인 야코프 그림과 빌헬름 그림을 말하는데, 야코프 그림은 학문이나 출판 기획 프로젝트를 맡았었고 빌헬름 그림은 문학에 재능이 있었고 문장력도 뛰어났습니다. 형이 자료를 조사하고 출판에 힘쓰고 동생은 글을 썼지요. 그림 형제는 평생을 거의 함께 살았는데요. 그들이 사정상 잠시 떨어져 있을 때 주고받은 서신을 보면 얼마나 그 우애가 깊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10대 초반일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모님 마저 돌아가시자 그들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가난 속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몇 년 후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가난, 가난, 그리고 더욱 가난... 하지만 그들은 꿈을 잃지 않습니다. 꾸준한 가난과 병약했던 빌헬름의 질병과 싸우면서도 끝까지 노력했지요. 그들은 자신들 앞에 닥친 가난뿐만 아니라 독일 국민들 모두에게 꿈을 줄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그것이 바로 메르헨이었던 것입니다. 그림형제가 생각했던 동화란 '민족적인 뿌리의 가장 순수한 정신적 근원'이었습니다. 동화에는 낯선 첨가물이 없이 민족의 독자적인 문학적 통찰력과 성향이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자신들이 수집한 이야기를 학술적 원천으로 삼아 그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신들의 의지대로 가감하거나 치장하지 않고서 말이지요. 


무척 대단한 인물들입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들의 꿈을 잃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기까지 하다니요. 그들은 독일인의 민족의식 고취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린이에게 꿈과 상상의 세계를 주었습니다. 위인전 같은 이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다시 메르헨 길에 대한 여행기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독일에 가게 된다면 이 길을 꼭 걸어보고 싶습니다. 600Km니까.. 설마 모두 걸어서 이동하는 건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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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립트 스토리콜렉터 15
아르노 슈트로벨 지음, 박계수 옮김 / 북로드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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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실히는 잘 모르지만, 조금씩 들려오는 소문을 듣자 하니 그렇게 녹녹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출판사와 계약해서 책을 내더라도 그 책이 쪽박인지 대박인지는 시장에 풀려보아야 알 수 있을 텐데요. 작가와의 협의가 판매 부수당 얼마로 계약되었을 때에도 걱정이 되겠지만 선인세를 주었다거나 계약금을 후하게 주었다거나 할 때에는 판매에 대한 부담감이 엄청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편집부에서는 윤문이라거나 편집에 신경을 쓰고 소설의 내용뿐만 아니라 표지 시안에도 무척 신경을 씁니다. 마케팅부에서는 어떤 마케팅으로 이 책을 소문낼 것인가 고심하겠지요. 유명한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읽어주거나 비밀 독서단 같은 데에 소개가 되면 판매 부수가 좀 오를 텐데,그런 일이 없을 것 같다면 자신들만의 독특한 마케팅을 기획해야 할 겁니다. 


만일 계약을 한 작가에게서 원고를 받아보았는데, 그 원고가 형편없다면 큰일입니다. 출판사 측에서 원고를 읽어보았을 때 이건 어떻게 해도 책으로 팔릴 수 없겠다, 독자에게 소개할 수 없겠다 싶을 때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출판사 직원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문장의 매끄럽지 못함은 둘째 치고서라도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받은 작품이 잔인한 살해 방법이나 자극적인 내용만 잔뜩 묘사되어있는데, 논리면에서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앞뒤가 맞지 않고 형편없는 구성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제로 출판사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소설 <스크립트>에서는 편집부의 한 명이 고스트라이터로서 이 소설에 손을 댑니다. 아니, 손을 댔다기보다는 공저자 혹은 실제 저자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소설이 형편없었거든요. 출판사에서 애초에 작가의 소설을 포기했다거나 작가에게 이런저런 점이 잘 못 되었으니 수정하라고 했었더라면 이 소설 속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 <스크립트>에는 크리스토프 얀이라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등장합니다. 그는 4년 전 <밤의 화가>라는 미스터리 소설을 발표했고, 어떤 광팬에 의해 모방 살인이 일어나는 바람에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립니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한 신작 <스크립트>를 모방한 범죄가 다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피부 위에 새겨진 소설이 캔버스처럼 틀에 고정되어 배달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만일 이 사건이 <스크립트>의 모방 살인이라는 것이 언론에 알려지면 이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되겠지요. 형사들은 엽기적인 사건을 추적하다 이 소설과의 접점을 만나게 됩니다. 소설의 흐름 중간중간 피해자에게 벌어지는 일들이 끼어있습니다. 읽기 어려울 정도로 상세한 묘사로 인해 눈앞에 그려지는 잔혹한 장면들이 너무나 끔찍해 고개를 돌리고 싶지만 피해자인 그녀처럼 눈이 고정되어 차마 돌릴 수도 없습니다. 과연 누가 어떤 의도로 이런 일을 벌이는 걸까요. 작가인 크리스토퍼 얀, 서점 주인 한젠, 가정부 예거부인, 서평을 까칠하게 올렸던 니나 하르트만, 니나의 남자친구 등 등장인물들 모두가 수상쩍습니다. 책의 장이 거의 다 끝나 갈 때까지 이 책의 범인은 진부하게, 뻔한 사람일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생각지도 못 했던 인물일 것인가 궁금했고, 마지막에 한꺼번에 제대로 마무리 지어집니다. 



캔버스 틀을 돌려 캔버스를 틀에 고정시킨 클립 옆에 작은 암적색 덩어리들이 달려 있는 너덜너덜한 가장자리를 보자, 니나는 이것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틀림없이 착각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예감은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의 둔탁한 울림처럼 니나의 마음속에 공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명확해져 갔다.

니나는 손가락 끝으로 그 틀을 다시 돌렸다. 그녀가 어두운색의 점을 한 번 더 또렷이 바라보았을 때 그 예감은 한순간에 확신이 되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그 물건을 싱크대 위로 던지고는 떨리는 손을 입술에 갖다 댔다.

이 어두운색 점은 약간 늘어난 색소반이 틀림없었다. 책의 표지로 보이는 이 물건을 만든 이 소재, 가장자리에 여전히 작은 살점들이 매달려 있는 이 소재는 틀림없이 살갗이었다. 그것도 동물의 것이 아니었다.

- p.13 ~14


아, 참. 이 책의 교훈.

서평을 까칠하게 올리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는 서평이 아니라 리뷰니까 괜찮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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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심연 - 뇌과학자, 자신의 머릿속 사이코패스를 발견하다
제임스 팰런 지음, 김미선 옮김 / 더퀘스트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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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도가 있는 유명한 뇌과학자이자 첫사랑의 그녀와 결혼해 세 아이를 둔 아버지인 제임스 팰런은 어느 날 연구실에서 뇌의 영상들을 분석하던 중 자신의 뇌 사진이 사이코패스의 그것과 유사한 특징을 띄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혼란스러워합니다. 하지만 이내 과거를 회상하면서 자신의 과거가 평범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게 되지요. 게다가 알고보니자신의 가계도에 살인자들이 유독 많이 등장하는, 이건 뭐 빼도 박도 못하는 사이코패스의 성향이 있는 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사이코패스의 특징 중 하나인 집중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지식을 동원, 스스로를 분석하기에 이릅니다. 



91 페이지부터 110 페이지까지는 좀 어렵습니다. 무척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알듯 말듯합니다. 다행히 최근에 뇌과학에 관련된 책을 읽거나 읽다가 만 적이 있기에 어렴풋이 알아들을 수는 있었습니다. 아주 잠시요. 전문용어와 분석에 관한 이야기가 책의 중간중간 나오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럴때는 잘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자신의 뇌에 사이코패스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뇌과학적인 지식으로 스스로를 분석하는 것도 그렇고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며 분석하는 것들도 그랬습니다. 그는 어릴 때, 젊을 때에 공황장애, 강박장애나 공격성, 쾌락주의, 개인주의 등 사이코패스로서 폭력성을 드러낼 소지가 무척 많았습니다만, 누구를 죽인 적도 없었고 가정폭력범이 되지도 않았습니다. 한때 돌출되던 폭발적인 에너지를 스포츠로 대방출. 그래서 안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잠깐의 이야기이고, 길게 보아서 그는 어째서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사이코패스가 되지 않고 지금에 이르렀을까요? 


  수감된 사이코패스 중 유아기에 신체적, 감정적 학대나 성적 학대를 당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청소년 사이코패스 범죄자 3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70퍼센트가 어린 시절 내내 심각한 학대를 받았다고 답했다. 어린 시절에 대한 믿을 만한 기억이 기껏해야 서너 살 이후에야 시작된다고 보면, 이 결과는 더 높은 비율의 성인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이 일찍부터 상당한 학대를 경험한다는 의미를 함축했다. 그렇다면 이들 중 90퍼센트 이상이 생애 초기의 한 시점에 학대를 당했을 수도 있다. 나는 여기에다 가해자를 감싸는 사이코패스들을 더하면, 사이코패스 중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은 비율은 거의 99퍼센트에 육박할 수도 있다고 추론했다. 

  내가 범죄자가 아닌 이유를 생각하기 시작한 게 바로 이때다. 살인자들은 학대를 당한 적이 있었고 나는 그런 적이 없었다. 우리를 만드는 건 양육이 아니라 본성이라는 나의 신념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키우느냐'가 결국은 범죄자를 만들어내는 데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p.112-113


최근 아동 학대가 늘고 있죠. 가정에서나 어린이집에서나. 아동학대가 늘어나고 있는 건지 이런 것이 아동학대다...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 인식의 변화가 숨겨져있던 아동학대를 드러나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요. 어쨌든 수치상으로 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런 학대는 반사회적 행동을 증가시킵니다. 학대를 하는 사람의 뇌 역시 사이코패스적인 부분이 있을 텐데요. 그것은 후성유전체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원래의 유전자 부호는 동일하더라도 초기 환경이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스트레스가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서 10대 이후의 행동을 바꿔 놓을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가 자제하고 폭력의 고리를 끊어낸다면 아이에게 자신도 모르게 전해 준 폭력성의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출생 직후부터 10대 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가 무척 중요합니다. 폭력은 그 폭력의 감수성을 무디게 함으로서 아이가 가질 수 있는 폭력의 크기는 어마어마 해지겠지요. 


얼마 전 에이드리언 레인의 <폭력의 해부 >를 읽을 때 모든 것이 유전적으로 세팅되어 있는 것이라면 후천적으로 아이를 케어해도 소용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고뇌했었는데요. 이 책을 통해 고민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폭력의 해부>역시 끝까지 읽었더라면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는데요. 끝까지 읽지 않은 탓에 혼자서 고민했었나 봅니다. 

이 책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그런 부분을 감내하면서 읽을 가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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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미스터리 스토리콜렉터 39
리 차일드 외 지음, 메리 히긴스 클라크 엮음, 박미영 외 옮김 / 북로드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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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의 액정화면을 쓰다듬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보드라운 흰색의 책 표지를 넘기자, 그곳은 뉴욕이었습니다. 



뉴욕은 미국의 상업, 금융의 중심으로서 실제의 수도는 아니지만 경제적인 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대학과 연구소, 공연장들이 있어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지요. 문화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문학일 텐데요. 문학 중에서도 미스터리를 사랑하는 작가들이 모인 미국 추리소설가 협회(MWA)에서 70주년을 맞아 기획한 앤솔로지 <뉴욕 미스터리>가 오늘 이야기하려는 책입니다. 

 

미국 추리소설가 협회(MWA)는 1945년 3월에 창립되어 2015년에 7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클레이튼 로슨, 앤서니 바우처(그의 이름을 딴 앤서니 상도 있습니다만), 로렌스 트리트, 브렛 할리데이를 비롯한 10여 명의 작가들로 시작했던 이 단체는 점점 그 규모가 커져 현재는 수많은 작가들이 이 협회에 속해있다고 합니다. 현재의 그랜드 마스터는 서스펜스의 여왕이라 불리는 메리 히긴스 클라크가 맡고 있는데요. 그녀가 엮은 <뉴욕 미스터리>는 17명의 작가가 참여해 흑백의 뉴욕을 자신의 색으로 칠하고 있습니다. 

 

각 단편의 시작마다 흑백의 뉴욕 사진이 들어있습니다. 그 사진은 뉴욕의 명소 플랫 아이언 빌딩, 센트럴 파크, 헬스 키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등 뉴욕은 커녕 미국에 가보지 않은 저 역시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장소가 등장하며 그 장소를 배경으로 미스터리가 펼쳐집니다. 미국 추리소설가 협회가 뉴욕에 있기 때문에 70주년 앤솔로지는 뉴욕의 과거와 현재를 담는데 초점을 맞춘 모양입니다. 주로 과거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요. 읽다 보면 회색빛의 건물이 붉은색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회색빛의 강이 푸른색으로 빛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회색으로 돌아가버리는 우울함을 겪기도 하지요.  

 

17명의 작가들의 색은 확실히 뚜렷해서 각각의 단편들이 분명한 경계를 긋습니다만, 단 한가지 미국 소설의 느낌이 강하게 느껴져 뉴욕을 더욱 진하게 만나게 만듭니다. 읽을수록 더 깊게 느껴지는 미국적인 냄새와 향기가 코를 자극해 가끔은 매캐하기도 합니다. 저는 코리안 인 뉴욕을 흥얼거리며 - 그런 노래가 있을까요? 원래는 잉글리시 맨 인 뉴욕입니다만 - 거리를 헤매는 기분으로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뉴욕 미스터리>에 실려있는 작품들 중 전혀 저와 안 맞는 작품도 있었고 무척 잘 맞는 작품도 있었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뷔페에 가도 모든 음식이 제 입맛에 맞는 건 아니니까요. 뷔페라면 샐러드 쪽이 잘 안 맞았을 테지만, 소설에서는 도리어 육류가 저와 잘 안 맞았던 것 같습니다. 

 

북로드에서 출판 전 예고로 연재했었던 줄리 하이지의 '이상한 나라의 그녀'는 다시 읽어도 재미있었습니다. 무척 짧은 분량의 소설이었지만 미스터리가 주는 반전의 맛이 진하게 들어있어서 좋았습니다. 유니언 스퀘어를 배경으로 한 메리 히긴스 클라크의 '5달러짜리 드레스' 역시 반전과 더불어 주인공의 돌아가신 할머니의 젊은 시절을 돌이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소설 속에 들어 있지 않은 수십 년의 시간을 마지막 한 줄의 문장으로 떠올리며 상상하게 만들고 놀라움 속에 빠지게 만드는 그녀의 필력에 놀랐습니다. 헬스 키친을 배경으로 한 토머스 H.쿡의 '지옥으로 돌아온 소녀'는 무척 슬펐습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어른들이 만들어 낸 비극이 결국 그녀를 계속 지옥에 있게 만든 것 같아 우울했습니다. 희곡의 형식으로 쓰여진 첼시 배경의 '함정이다!'는 벤 윈터스의 단편인데요. 무척 재미있습니다. 진부할 수도 있는 소재를 희곡으로 만드니 모든 등장인물들이 무대 위에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연극체의 대사로 이야기하는 것이 상상되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스틴 스콧 덕분에 시간 여행자 에드거 알란 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단편 '더할 나위 없는'을 통해서요. 에드거 알란 포가 은행강도를 도와주는 이유는 단지 돈 때문이었을까요? 우울함과 몽상에 빠져있던 에드거 알란 포의 밝은 모습을 훔쳐본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서틴 플레이스를 배경으로 하는 주디스 켈먼의 '서턴 플레이스 실종 사건'은 애잔했습니다. 화려함과 부유함이 오히려 마음의 공백을 만들고 그 공허함 때문에 괴로워하는 줄 누가 알았을까요. 언제나 밝은 모습의 그녀였는데요. 과거의 단 한 번의 실수가 그녀를 망쳐버렸고, 그 사실은 내내 그녀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선택은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었지요. 

N.J. 에이어스의 '가짜 코를 단 남자'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제 입맛이 아니었던 거죠. 이 작가는 법의학 미스터리로 유명하다는데 왜 이런 스타일의 단편을 썼을까요. 장편이었으면 모를까 단편으로는 상당히 아쉬웠습니다. 이 스토리를 토대로 중편이나 장편을 썼다면 좀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습니다. 순식간에 읽게 되거든요. 어쩌면 호흡을 조절하며 읽었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랬다면 <뉴욕 미스터리>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를 모두 끌어내어 온전히 느꼈을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니 천천히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매력을 느끼지 못 했던 부분들까지 모두 가지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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