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6
강상중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제시대의 작가라는 편협한 이유로 가까이하지 않았던 작가 나쓰메 소세키. 그러다 슬그머니 <도련님>을 읽고 즐거워했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어 볼까 망설이는 동안 '현암사'에서 하나씩 나오던 나쓰메 소세키 시리즈가 완결, 주변에서 한 권씩 챙겨 읽으며 그 감상을 말하는 바람에 마음이 많이 흔들렸습니다. 일본 소설들을 챙겨 읽는다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이 읽으면서 어째서 나쓰메 소세키의 책은 읽으려 하지 않는 걸까. 저는 어쩌면 고전 문학은 어렵다는 편견에서 핑계를 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망설이다 잊고, 기억해냈다 잊어버리는 동안에도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시시때때로 일어나곤 했지요. 그러던 중,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를 만났습니다. 강상중은 부모님이 일제시대 때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한 재일교포 1세대인데요. 나가노 데츠오라는 일본 이름을 쓰며 일본 학교를 다녔지만 심한 차별을 겪으며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와세다 대학 정치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2년 처음 한국을 방문해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합니다. 이에 강상중이라는 한국 이름(본명)을 사용하며 한국 사회의 문제와 재일 한국인이 겪는 차별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행동했다고 합니다(출판사 제공 저자 소개). 그는 학자, 교수, 저자로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나쓰메 소세키를 -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인생의 스승으로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소세키의 책을 읽으며 자신의 인생과 닮아있는 주인공들에게 감정 이입을 하면서 나아갈 길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위안을 얻기도 하며 깊이 빠져들어갔습니다. 섬세하면서도 동시에 대담하며 유머러스하면서도 위태로운(p.14), 어떻게 보면 모순된 모습을 보여주는 그에게 매력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는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라는 책을 통해 수많은 나쓰메 소세키의 책들 중 데뷔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전기 3부작 <산시로>,<그 후>, <문> 그리고 <마음>을 소개하며 소세키와 소세키 문학의 매력을 전합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소세키 문학의 행간을 읽어줍니다. 소설은 흐름 자체만으로도 즐겁지만 그 안에 내포된 의미나 배경을 알고읽을 때, 그 맛이 더 좋아지는 법입니다. 물론 반드시 그 패턴을 따라 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같은 것은 없습니다만 작가가 어떤 시각을 가지고,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는가 하는 걸 안다면 그 작품의 깊은 맛까지 음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작품에 대한 해설집 같은 책이로군요. 문학 작품의 해설집, 혹은 해설이 독이 될 때도 있습니다. 다소 난해한 소설을 읽었는데 마침 뒤에 해설이 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더니 더욱 모르게 되어버리는 경우도 흔하지 않습니까. 멀리 갈 필요 없이, 국어 시간에도 겪는 일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다면 염려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 책은 교양 있는, 사려 깊은 선생님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문학의 깊이를 담뿍 안고서 되도록 쉬운 말로 다정하게 읽어주는 기분이 들게 하니까요. 얼마나 그러 하냐 하면, 강상중으로 인해 소세키라는 작가의 매력이 마음속에 틀어박혀 저는, 인터넷 서점을 뒤적이고 말았습니다. 전집을 한 번에 사려 하니 제 기준으로는 큰 돈이 들게 생겨서 낱권으로 사야겠구나 싶었지만요. 일단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산시로>시리즈, <마음>부터 읽어봐야겠습니다. 그 책들을 읽은 후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를 다시 읽는다면 더 뚜렷하게 마음에 박힐 것 같습니다. 아니, 어째서 저는 바보처럼 이제껏 소세키를 멀리했던 거죠?


AK 커뮤니케이션즈에서 발행 중인 AK 이와나미 시리즈에도 관심이 생겼는데요. 기회가 된다면 제1권인 이와나미 신서의 역사부터 읽어보고 싶습니다. 혹시 어렵지는 않을까,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지만, 이 책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 정도라면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는 애초에 주니어도 읽을 수 있게 쓰인 책이니까요.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그러하길 기대해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봄날의 바다
김재희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묘한 분위기의 아름다운 바다를 그리게 하는 표지입니다. 김재희라는 이름에 끌렸고, 표지의 빛깔에 끌려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내 기억 속의 애월 바다는 쪽빛을 띄고 있지 않았지만, 책 속의 애월 바다는 함덕의 바다처럼, 월정리의 바다처럼, 하도리의 바다처럼 쪽빛을 띄고 있었습니다.


<봄날의 바다>주인공인 희영은 10년 전 동생 준수가 새별 오름 인근에서 은행원을 성추행하고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지만 구치소에서 자살해버린,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들의 무죄를 주장하던 어머니는 작년에 돌아가실 때까지도 준수의 무죄를 밝혀야 한다며 희영에게 당부했습니다. 동생이 살아 있을 때에도, 죽은 후에도 희영에게는 동생이 짐처럼 느껴졌습니다. 가해자의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엔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평생 자신을 옭아맬 올무가 되어 언제고 준수와 자신의 이야기가 튀어나올지 몰라 두렵습니다. 

동생이 죽은 지 10년이 지난 현재, 새별 오름에서 당시의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다시 발생합니다. 그리고 인터넷에 올라온 연쇄살인설 찌라시에 한 가닥 희망을 가져봅니다. 희영은 사실을 알고 싶었고, 동생을 위해서라기 보다 자신을 위해 사건을 조사하려 제주에 내려옵니다. 주인장이 용의자일지도 모르는 바다 게스트하우스에 일부러 묵으며 그를 관찰하고, 그곳에서 현우를 만납니다. 현우는 사건에 접근하는 희영을 돕습니다. 희영의 친구 소정을 만날 때도, 감건호라는 프로파일러를 만날 때도 함께였습니다.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고향 애월에서 하나의 끈, 하나의 의지가 되어 준 현우는 어쩐지 끝까지 믿어주지 못 했던 동생 준수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준수에 대한 죄책감이 현우를 통해 치유되는 것 같았습니다.


<봄날의 바다>에서는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픈 이야기를 합니다. 준수가 판결이 나기 전에 자살했기 때문에 그 사건은 미결로 남았지만, 많은 의혹을 남기고 있습니다. 수많은 고등학생들 중에 하필 왜 그 아이가 지목되었던 것인지, 프로파일링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었는지. 구치소에서 바지를 찢어 목을 매 죽었다면 날붙이는 누가 전해 준 것인지. 부인과 자백, 그리고 다시 부인을 했던 준수. 과연 어느 것이 진실인지... 그 모든 것이 밝혀지지 못한 채 희영은 10년간을 고통 속에 살아온 것입니다. 과연 그녀는 모든 진실을 찾고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사실 조금 아쉬웠습니다. 초반 50여 페이지에서 추리도 아닌, 흐름상의 짐작을 했는데, 그게 맞아버렸거든요. 설마하니 그렇기야 하겠나 싶었는데, 추리물의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금새 눈치 채고만 것 같습니다. 게다가, 방언 적용이 잘 못 되어 있었습니다. 차라리 그냥 표준어로만 구사를 하는 편이 낫지 않았나 싶었는데요. 몇 개 나오지 않은 방언마저 이상하게 적혀 있어서 참 아쉬웠습니다. 희영이 제주공항 택시 승강장에서 택시를 타고 20여 분 달리니 애월의 한담 해변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실은, 제주공항에서 노형로터리를 벗어나는 데만도 20분은 걸릴 겁니다. 한밤중인 지금 달려도 30분 좀 넘게 걸리거든요. 뭐 그런 저런 게 괜히 마음에 걸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의 밥상 - 세계화는 전 세계의 식탁들을 어떻게 점령했는가
구정은 외 지음, 강윤중 사진 / 글항아리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때에 비하면 식료품을 구입하는 장소와 과정에 무척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플라스틱으로 된 장바구니를 들고서 시장에 가서 고등어도 한 마리 사고, 채소가게에서 -먹긴 싫었지만 - 이런저런 채소도 좀 사고, 김치찌개를 끓일 돼지고기도 사고,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가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만두가게에 들러 만두 한 판을 사 먹고 선 낑낑거리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느새 만두는 뱃속에서 사라지고 꼬르륵 소리가 들립니다. 어린 저는 쌀을 씻어 밥부터 앉히고 고등어를 씻어 건져둡니다. 그리고 김치찌개를 끓일 준비를 하고...

지금도 좀 비슷하긴 합니다만, 시장 대신 집 근처의 중형마트로 갑니다. 제주도라는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육지보다는 대형마트의 지배를 덜 받긴 합니다. 그렇지만 제주에서 나는 고등어나 갈치, 옥돔 같은 것은 꿈의 생선이라 선물용으로 한두 마리 사는 정도이고 노르웨이 산을 먹을 것인가, 통조림 고등어를 먹을 것인가 살짝 고민합니다. 갈치는 꿈도 못 꿉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다른 건 몰라도 생선만큼은 풍요로울 것 같은 제주에 살면서 왜 그런 고민을 하느냐고요? 그건 제가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이 섬에서 먹거리 때문에 고민하는 건 저 뿐만이 아닐 겁니다. 어쩌면 그 고민을 넘어서서 아무렇지 않게 인스턴트, 냉동식품들을 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러시아산 동태와 고니를 가지고 동태찌개를 끓이면서 별로 신경 쓰지 않으니까요. 제주산 흑돼지 역시 그렇습니다. 저는 보통 제주산 백돼지를 사지만 가끔은 덴마크산 삼겹살을 구입합니다. 다행인 건 통조림이나 레토르트 파우치, 그리고 전자레인지용 식품은 거의 구입하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모든 가공식품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되도록 신선한 재료를 구입해 요리를 하지만, 가끔 바쁠 때 한두 번 이용하는 것이라면 별로 해가 되지 않을 겁니다. 가공식품을 개발하는 연구원들도 무척 많은 노력을 기울여 되도록 좋은 식품을 공급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직접 요리하는 것보다 더 많이 들어가야 제맛을 내는 나트륨과 당분들 때문에 아무래도 계속해서 이런 음식들을 먹는다면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칠 테지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영양적인 면과 식품 공학적인 면을 모두 챙기는 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러니 각 가정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신선한 식재료를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쉽게 손이 가는 각종 가공식품들은 전 세계 곳곳에 퍼져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식품들이 많이 공급되는 곳은 비만율이 높습니다. 마트는 꿈의 공간입니다. 전 세계 각종 식재료, 식자재들이 모여있습니다. 그저 데우기만 하면 되는 것들부터 이것저것을 사서 열을 가하며 조립하기만 하면 되는 것들도 있고, 간단히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것들과 복잡한 조리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들이 모두 존재합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복잡한 조리를 해서 먹을 것인가, 간단히 조리해서 먹을 것인가 골치 아프게 생각할 필요 없이 쿡방과 먹방을 보며 만족감을 느끼면서 라면을 후루룩 먹는 삶은 본인이 선택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식품에 관심이 많은 제가 이번에 읽은 책은 <지구의 밥상>이라는 책으로 경향신문 기획취재팀의 기자들이 세계 10개국에서 취재한 내용을 정리하여 낸 것입니다. 본디 신문 기사로 되어 있던 것이라 그리 어렵지 않은 문체로 간결히 서술되어 있습니다. 문체는 그러하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벼이 읽을 수 없었습니다. 인구의 94.5퍼센트가 비만이며 성인 대부분이 당뇨를 앓는 남태평양의 나우루는 콜라 식민지라 불리는 섬으로 비극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큰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말 그대로 바다 건너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제가 사는 제주 역시 별다를 바가 없는 게 아닌가, 성인병, 비만 국내 1위인 이 섬에 사는 나는 그들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습니다. 

신선한 식품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보존 기간이 긴 식품들만 사 먹을 수밖에 없는 미국인들, 의외로 빈부의 격차가 심해 굶는 사람이 백만 명이나 된다는 영국의 실정, 부유하기 때문이 아니라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유기농업을 하고 있는 쿠바의 이야기들이 후쿠시마 식품을 구매하는 일본의 주부들 이야기 못지않게 충격적이었습니다. 머리가 울릴 정도의 충격은 아니었지만, 과연 우리는 괜찮은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했습니다. 


로컬푸드보다 저렴한 가격에 수입상품을 구할 수 있고, 번거로운 조리과정 없이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지금의 환경이 과연 좋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과연 우리는 이런 환경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인지, 탈출한다면 겪게 되는 많은 수고로움을 감내할 수 있을 것인지 수많은 고민이 저를 덮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건 치미교 1960
문병욱 지음 / 리오북스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 후기 혼란스러운 시대에 탄생한 동학은 인본주의를 기본으로 하여 인간 평등과 사회주의를 주장하였습니다. 이후 숱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 사상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해 왔는데요. 동학 초기에 함께 했던 전정예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1899년 금강산에서 도를 닦다가 계시를 받았다며 백도교를 창시하는데, 1912년에는 자리를 잡고 정식으로 포교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한때 신자가 1만 명이 넘을 정도로 그를 따르는 이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교리는 동학의 그것과 거의 유사했다고 하는데, 주문을 열심히 외고 기도하면 신선이 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백도교를 세운지 얼마 되지 않은 1919년 전정예가 갑자기 사망하고 그의 아들 전용해는 간부 우광현과 함께 비밀리에 아버지의 시신을 암매장합니다. 교주의 사망 이후 신도들의 이탈이 생기고 포교 활동문제로 내분이 일어 결국 인천교와 백백교로 갈리게 됩니다. 

백백교 사건이라고 하면 가장 충격적인 것이 전용해와 그의 수하들이 10년 동안 전국 곳곳에서 80여 회의 살인을 벌여 300여 명이 희생되었다는 것일 텐데요. 그중에는 신도들도 있었고, 방해가 되는 인물들도 있었을 겁니다. 신비한 힘이 있다며, 머지않아 새 세상이 올 텐데 그곳에서는 신도가 바친 헌금의 액수에 따라 직책이 결정된다는 - 말도 안 되는 - 이야기로 신도들의 돈과 딸들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내부 고발로 전용해가 쫓기게 되고 자살로 끝을 맺습니다.


<사건 치미교 160 > 이 백백교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쓰인 소설입니다. 시대를 30년 정도 뒤로 조정하여 치미교라는 이름으로 재구성했지요. 치미교의 교주는 곽해용. 부친을 포함한 가족들이 친일파로 731부대와 유사한 성격을 가진 735부대에 근무했으나 해방 후 귀국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고향과 그 인근에는 발을 붙이지 못하고 쫓기듯 마을을 떠나는데요. 친절한 사람을 만나 차도 얻어타고 용기도 얻고 그러다 경남 함양군의 한마을에 닿습니다. 산속의 외진 마을에서 그곳 아이들에게 글도 가르치고 간단한 진료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습니다. 그대로 조용히, 과거에 저질렀던 죄들을 씻으며 잘 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한국전쟁(6.25)가 발발하는 바람에 피난을 가게 되어 마을 사람들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휴전 후 달성군 비슬산 자락에서 마침내 자신이 궁리해 왔던 뜻을 펼치기로 결심합니다. 




  무엇이든 가지려 마음을 먹으면 가질 수 있는 힘을 얻고 싶었다. 가지고 싶은 것이 많다기보다 마음을 먹기만 하면 가질 수 있는 능력 그대로의 원초적인 힘을 원했다. 원하는 힘을 손에 넣으면 돈을 원할 때 돈을 가질 것이고, 여인을 원할 때 여인을 취할 것이었으며 명예를 원할 때 명예를 쥘 것이었다.

  그럼 그러한 힘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심을 해보니 돈만 많아서도, 매력만 있어서도, 명예만 높아서도 안 되었다. 다름 아닌 인간을 부릴 수 있어야 했다. 인간의 의식과 마음을 장악할 수 있어야 했다.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는 인간을 멋대로 부리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힘의 실체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

  인간을 부린다. 이는 곧 신이 되겠다는 뜻이었다.

-p.128



그리하여 흩어져 있던 마을 사람들을 모으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이용해 그는 교주가 됩니다. 강원도에 완전히 자리를 잡고요. 그를 믿고 따르면 죽어서 영원한 행복이 있는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말에 사람들은 전 재산을 바치고선 그들과 공동생활을 합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성원의 아버지 철곤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막내딸인 유선을 교주에게 첩으로 바치기까지 하다니 성원과 동생들은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 사이비 종교에서 아버지를 빼내오기 위해 재산을 처분하고 그들 틈에 잠입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조직은 단단했고 아버지의 세뇌는 깊기만 했습니다.


소설은 시대를 넘나들며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1960년대에 왔다가 일제시대로 돌아갔다가 해방 직후로 돌아갔다가 다시 60년대로 돌아오는 등 엄청난 널뛰기를 합니다만 책을 읽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습니다. 오히려 현재의 의문을 과거에서 해소하는 경우도 많았으니까요. 백백교를 모티브로 한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도진기의 <유다의 별>에서도 백백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치미교와 비교하며 읽어나가는 재미도 있었거든요. 참 나쁜짓도 많이 했습니다. 735부대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인체 실험도 하고 병을 만들어 내 세상에 퍼트리기도 하고 백신인지 치료제인지 뭔지, 아무튼 그런걸 만들어내서 엄청나게 팔아먹기도하고요. 사람도 많이 죽어나갑니다. 그런걸 교주라고... 하긴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보는 법이니까요.


치미교의 탄생부터 몰락까지를 한마디로 용두사미라고 할 수 있는데요.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 소설도 그랬습니다.

시작과 전개는 무척 대단했습니다. 흥미진진하여 책을 쉽게 놓지 못 했습니다. 몰입도가 굉장했죠. 과연,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클라이맥스가 거의 없어요. 오름들을 오르락 내리락하다가 한 번쯤은 쭉 하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그런 맛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냥 내려와서 집에 가요.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다행이지만, 책에서는 백록담까지는 안 가더라도 1100고지까지는 다녀왔으면 좋겠거든요. 그런 아쉬움이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정말 아쉬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
오노 후유미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충사>라는 만화가 있습니다. 애니로도,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요. 벌레를 잡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세스코 같은 해충박멸 전문가는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벌레는 불길하고 꺼림칙한 것, 하등하고 기괴하여 마치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생물인지 아닌지 악한 것인지 선한 것인지 애매한 그런 것들을 말합니다. 평소에 늘 보아왔던 것들이 아니기에 그런 것들과 접하게 되면 두려움을 느끼고 피하게 되지요. 그것이 전달하려는 메시지 같은 것에 귀 기울일 담대함 같은 건 없습니다. <충사>의 주인공 깅코는 여행을 하면서 많은 벌레와 그들로 인해 고통받거나 구원받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무척 서정적인 작품입니다. 수채화 속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을 읽어놓고 웬 <충사>타령일까 하시겠지만,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의 표지를 그린 작가가 <충사>의 우루시바라 유키입니다. 수채화로 그려진 표지가 참 아름답습니다. 기담집이라고는 하나 공포를 자아내는 표지 대신 어딘가 사연 있어 보이는 일본의 집을 그려놓았습니다. 표지 가운데에 깅코를 닮았지만 머리가 검은 청년이 목장갑을 끼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오바나라는 청년일 겁니다. 이 청년은 기담집의 여러 단편에 매번 등장하지만 - 그것도 거의 끄트머리에 - 주인공은 아닙니다.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은 각기 다른 주인공들이 겪는 기묘한 현상을 단편으로 엮었는데요. 연작 단편이라기보다는 각각의 개별 이야기로 되어 있는 독립형 단편입니다. 주인공들은 낡고 낯선 집으로 이사를 와서 괴현상을 겪기도 하고, 리모델링 후 괴현상을 겪기도 합니다. 혼자만 겪는 경우도 있고, 가족들과 함께 느끼기도 하며 때로는 동네에 괴담으로 떠도는 이야기를 체험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당장 이사를 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달아날 수도 없으니 미쓰다 신조의 <흉가>나 <화가>에 등장하는 소년들처럼 버텨야 합니다. 마가 낀 게 분명해요. 공양이나 퇴마로 해결될 것 같지도 않고...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어쩌면 기분 탓인지도 모릅니다.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거나 하는 건 천장의 빈 공간으로 쥐나 고양이가 들어와서 뛰어놀고 있는 것일 겁니다. 그러니 공사를 하면 나아지겠죠. 

하지만 공사를 맡은 사람은 이상하게도 다른 곳을 소개해주겠다면서 '영선 가루카야'의 오바나를 소개해줍니다. 오바나가 특별히 퇴마를 해주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공사를 통해 영혼과 사람을 모두 편하게 만들어 주지요. 

온다 리쿠의 <우리집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절판된 책인데요. 그 소설에도 오바나와 비슷한 인부가 등장합니다만 이쪽은 좀 카리스마가 있어서 얌전히 있지 않으면 너희들 다 쫓겨난다!라는 식으로 그것들을 조용히 시킵니다. 그곳에는 사연 많은 것들이 모여 있었거든요.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에 등장하는 것들의 사연도 참 만만치 않습니다. 풍문으로 듣는 사연이라 확실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바나의 손을 거친 후에는 잠잠한 걸 보니 그들의 마음을 잘 다독여준 모양입니다. 각 단편의 중간까지는 두려운 마음으로 읽다가 차츰 그들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그들의 측은함을 느끼게 되니 괜스레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합니다. 특히 마지막, '우리 밖'은 제일 무섭고, 제일 슬펐습니다. 


<잔예>, <귀담백경>으로 호러는 별로인가!라는 감상을 갖게 했던 <십이국기>의 오노 후유미를 이 작품을 통해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남편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호러물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지요. 마음이 애틋해지는 호러 단편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