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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밥상 - 세계화는 전 세계의 식탁들을 어떻게 점령했는가
구정은 외 지음, 강윤중 사진 / 글항아리 / 2016년 1월
평점 :
어릴 때에 비하면 식료품을 구입하는 장소와 과정에 무척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플라스틱으로 된 장바구니를 들고서 시장에 가서 고등어도 한 마리 사고, 채소가게에서 -먹긴 싫었지만 - 이런저런 채소도 좀 사고, 김치찌개를 끓일 돼지고기도 사고,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가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만두가게에 들러 만두 한 판을 사 먹고 선 낑낑거리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느새 만두는 뱃속에서 사라지고 꼬르륵 소리가 들립니다. 어린 저는 쌀을 씻어 밥부터 앉히고 고등어를 씻어 건져둡니다. 그리고 김치찌개를 끓일 준비를 하고...
지금도 좀 비슷하긴 합니다만, 시장 대신 집 근처의 중형마트로 갑니다. 제주도라는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육지보다는 대형마트의 지배를 덜 받긴 합니다. 그렇지만 제주에서 나는 고등어나 갈치, 옥돔 같은 것은 꿈의 생선이라 선물용으로 한두 마리 사는 정도이고 노르웨이 산을 먹을 것인가, 통조림 고등어를 먹을 것인가 살짝 고민합니다. 갈치는 꿈도 못 꿉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다른 건 몰라도 생선만큼은 풍요로울 것 같은 제주에 살면서 왜 그런 고민을 하느냐고요? 그건 제가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이 섬에서 먹거리 때문에 고민하는 건 저 뿐만이 아닐 겁니다. 어쩌면 그 고민을 넘어서서 아무렇지 않게 인스턴트, 냉동식품들을 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러시아산 동태와 고니를 가지고 동태찌개를 끓이면서 별로 신경 쓰지 않으니까요. 제주산 흑돼지 역시 그렇습니다. 저는 보통 제주산 백돼지를 사지만 가끔은 덴마크산 삼겹살을 구입합니다. 다행인 건 통조림이나 레토르트 파우치, 그리고 전자레인지용 식품은 거의 구입하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모든 가공식품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되도록 신선한 재료를 구입해 요리를 하지만, 가끔 바쁠 때 한두 번 이용하는 것이라면 별로 해가 되지 않을 겁니다. 가공식품을 개발하는 연구원들도 무척 많은 노력을 기울여 되도록 좋은 식품을 공급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직접 요리하는 것보다 더 많이 들어가야 제맛을 내는 나트륨과 당분들 때문에 아무래도 계속해서 이런 음식들을 먹는다면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칠 테지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영양적인 면과 식품 공학적인 면을 모두 챙기는 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러니 각 가정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신선한 식재료를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쉽게 손이 가는 각종 가공식품들은 전 세계 곳곳에 퍼져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식품들이 많이 공급되는 곳은 비만율이 높습니다. 마트는 꿈의 공간입니다. 전 세계 각종 식재료, 식자재들이 모여있습니다. 그저 데우기만 하면 되는 것들부터 이것저것을 사서 열을 가하며 조립하기만 하면 되는 것들도 있고, 간단히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것들과 복잡한 조리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들이 모두 존재합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복잡한 조리를 해서 먹을 것인가, 간단히 조리해서 먹을 것인가 골치 아프게 생각할 필요 없이 쿡방과 먹방을 보며 만족감을 느끼면서 라면을 후루룩 먹는 삶은 본인이 선택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식품에 관심이 많은 제가 이번에 읽은 책은 <지구의 밥상>이라는 책으로 경향신문 기획취재팀의 기자들이 세계 10개국에서 취재한 내용을 정리하여 낸 것입니다. 본디 신문 기사로 되어 있던 것이라 그리 어렵지 않은 문체로 간결히 서술되어 있습니다. 문체는 그러하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벼이 읽을 수 없었습니다. 인구의 94.5퍼센트가 비만이며 성인 대부분이 당뇨를 앓는 남태평양의 나우루는 콜라 식민지라 불리는 섬으로 비극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큰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말 그대로 바다 건너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제가 사는 제주 역시 별다를 바가 없는 게 아닌가, 성인병, 비만 국내 1위인 이 섬에 사는 나는 그들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습니다.
신선한 식품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보존 기간이 긴 식품들만 사 먹을 수밖에 없는 미국인들, 의외로 빈부의 격차가 심해 굶는 사람이 백만 명이나 된다는 영국의 실정, 부유하기 때문이 아니라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유기농업을 하고 있는 쿠바의 이야기들이 후쿠시마 식품을 구매하는 일본의 주부들 이야기 못지않게 충격적이었습니다. 머리가 울릴 정도의 충격은 아니었지만, 과연 우리는 괜찮은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했습니다.
로컬푸드보다 저렴한 가격에 수입상품을 구할 수 있고, 번거로운 조리과정 없이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지금의 환경이 과연 좋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과연 우리는 이런 환경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인지, 탈출한다면 겪게 되는 많은 수고로움을 감내할 수 있을 것인지 수많은 고민이 저를 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