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치미교 1960
문병욱 지음 / 리오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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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혼란스러운 시대에 탄생한 동학은 인본주의를 기본으로 하여 인간 평등과 사회주의를 주장하였습니다. 이후 숱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 사상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해 왔는데요. 동학 초기에 함께 했던 전정예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1899년 금강산에서 도를 닦다가 계시를 받았다며 백도교를 창시하는데, 1912년에는 자리를 잡고 정식으로 포교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한때 신자가 1만 명이 넘을 정도로 그를 따르는 이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교리는 동학의 그것과 거의 유사했다고 하는데, 주문을 열심히 외고 기도하면 신선이 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백도교를 세운지 얼마 되지 않은 1919년 전정예가 갑자기 사망하고 그의 아들 전용해는 간부 우광현과 함께 비밀리에 아버지의 시신을 암매장합니다. 교주의 사망 이후 신도들의 이탈이 생기고 포교 활동문제로 내분이 일어 결국 인천교와 백백교로 갈리게 됩니다. 

백백교 사건이라고 하면 가장 충격적인 것이 전용해와 그의 수하들이 10년 동안 전국 곳곳에서 80여 회의 살인을 벌여 300여 명이 희생되었다는 것일 텐데요. 그중에는 신도들도 있었고, 방해가 되는 인물들도 있었을 겁니다. 신비한 힘이 있다며, 머지않아 새 세상이 올 텐데 그곳에서는 신도가 바친 헌금의 액수에 따라 직책이 결정된다는 - 말도 안 되는 - 이야기로 신도들의 돈과 딸들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내부 고발로 전용해가 쫓기게 되고 자살로 끝을 맺습니다.


<사건 치미교 160 > 이 백백교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쓰인 소설입니다. 시대를 30년 정도 뒤로 조정하여 치미교라는 이름으로 재구성했지요. 치미교의 교주는 곽해용. 부친을 포함한 가족들이 친일파로 731부대와 유사한 성격을 가진 735부대에 근무했으나 해방 후 귀국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고향과 그 인근에는 발을 붙이지 못하고 쫓기듯 마을을 떠나는데요. 친절한 사람을 만나 차도 얻어타고 용기도 얻고 그러다 경남 함양군의 한마을에 닿습니다. 산속의 외진 마을에서 그곳 아이들에게 글도 가르치고 간단한 진료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습니다. 그대로 조용히, 과거에 저질렀던 죄들을 씻으며 잘 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한국전쟁(6.25)가 발발하는 바람에 피난을 가게 되어 마을 사람들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휴전 후 달성군 비슬산 자락에서 마침내 자신이 궁리해 왔던 뜻을 펼치기로 결심합니다. 




  무엇이든 가지려 마음을 먹으면 가질 수 있는 힘을 얻고 싶었다. 가지고 싶은 것이 많다기보다 마음을 먹기만 하면 가질 수 있는 능력 그대로의 원초적인 힘을 원했다. 원하는 힘을 손에 넣으면 돈을 원할 때 돈을 가질 것이고, 여인을 원할 때 여인을 취할 것이었으며 명예를 원할 때 명예를 쥘 것이었다.

  그럼 그러한 힘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심을 해보니 돈만 많아서도, 매력만 있어서도, 명예만 높아서도 안 되었다. 다름 아닌 인간을 부릴 수 있어야 했다. 인간의 의식과 마음을 장악할 수 있어야 했다.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는 인간을 멋대로 부리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힘의 실체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

  인간을 부린다. 이는 곧 신이 되겠다는 뜻이었다.

-p.128



그리하여 흩어져 있던 마을 사람들을 모으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이용해 그는 교주가 됩니다. 강원도에 완전히 자리를 잡고요. 그를 믿고 따르면 죽어서 영원한 행복이 있는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말에 사람들은 전 재산을 바치고선 그들과 공동생활을 합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성원의 아버지 철곤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막내딸인 유선을 교주에게 첩으로 바치기까지 하다니 성원과 동생들은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 사이비 종교에서 아버지를 빼내오기 위해 재산을 처분하고 그들 틈에 잠입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조직은 단단했고 아버지의 세뇌는 깊기만 했습니다.


소설은 시대를 넘나들며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1960년대에 왔다가 일제시대로 돌아갔다가 해방 직후로 돌아갔다가 다시 60년대로 돌아오는 등 엄청난 널뛰기를 합니다만 책을 읽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습니다. 오히려 현재의 의문을 과거에서 해소하는 경우도 많았으니까요. 백백교를 모티브로 한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도진기의 <유다의 별>에서도 백백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치미교와 비교하며 읽어나가는 재미도 있었거든요. 참 나쁜짓도 많이 했습니다. 735부대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인체 실험도 하고 병을 만들어 내 세상에 퍼트리기도 하고 백신인지 치료제인지 뭔지, 아무튼 그런걸 만들어내서 엄청나게 팔아먹기도하고요. 사람도 많이 죽어나갑니다. 그런걸 교주라고... 하긴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보는 법이니까요.


치미교의 탄생부터 몰락까지를 한마디로 용두사미라고 할 수 있는데요.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 소설도 그랬습니다.

시작과 전개는 무척 대단했습니다. 흥미진진하여 책을 쉽게 놓지 못 했습니다. 몰입도가 굉장했죠. 과연,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클라이맥스가 거의 없어요. 오름들을 오르락 내리락하다가 한 번쯤은 쭉 하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그런 맛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냥 내려와서 집에 가요.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다행이지만, 책에서는 백록담까지는 안 가더라도 1100고지까지는 다녀왔으면 좋겠거든요. 그런 아쉬움이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정말 아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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