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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선 가루카야 기담집
오노 후유미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충사>라는 만화가 있습니다. 애니로도,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요. 벌레를 잡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세스코 같은 해충박멸 전문가는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벌레는 불길하고 꺼림칙한 것, 하등하고 기괴하여 마치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생물인지 아닌지 악한 것인지 선한 것인지 애매한 그런 것들을 말합니다. 평소에 늘 보아왔던 것들이 아니기에 그런 것들과 접하게 되면 두려움을 느끼고 피하게 되지요. 그것이 전달하려는 메시지 같은 것에 귀 기울일 담대함 같은 건 없습니다. <충사>의 주인공 깅코는 여행을 하면서 많은 벌레와 그들로 인해 고통받거나 구원받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무척 서정적인 작품입니다. 수채화 속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을 읽어놓고 웬 <충사>타령일까 하시겠지만,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의 표지를 그린 작가가 <충사>의 우루시바라 유키입니다. 수채화로 그려진 표지가 참 아름답습니다. 기담집이라고는 하나 공포를 자아내는 표지 대신 어딘가 사연 있어 보이는 일본의 집을 그려놓았습니다. 표지 가운데에 깅코를 닮았지만 머리가 검은 청년이 목장갑을 끼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오바나라는 청년일 겁니다. 이 청년은 기담집의 여러 단편에 매번 등장하지만 - 그것도 거의 끄트머리에 - 주인공은 아닙니다.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은 각기 다른 주인공들이 겪는 기묘한 현상을 단편으로 엮었는데요. 연작 단편이라기보다는 각각의 개별 이야기로 되어 있는 독립형 단편입니다. 주인공들은 낡고 낯선 집으로 이사를 와서 괴현상을 겪기도 하고, 리모델링 후 괴현상을 겪기도 합니다. 혼자만 겪는 경우도 있고, 가족들과 함께 느끼기도 하며 때로는 동네에 괴담으로 떠도는 이야기를 체험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당장 이사를 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달아날 수도 없으니 미쓰다 신조의 <흉가>나 <화가>에 등장하는 소년들처럼 버텨야 합니다. 마가 낀 게 분명해요. 공양이나 퇴마로 해결될 것 같지도 않고...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어쩌면 기분 탓인지도 모릅니다.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거나 하는 건 천장의 빈 공간으로 쥐나 고양이가 들어와서 뛰어놀고 있는 것일 겁니다. 그러니 공사를 하면 나아지겠죠.
하지만 공사를 맡은 사람은 이상하게도 다른 곳을 소개해주겠다면서 '영선 가루카야'의 오바나를 소개해줍니다. 오바나가 특별히 퇴마를 해주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공사를 통해 영혼과 사람을 모두 편하게 만들어 주지요.
온다 리쿠의 <우리집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절판된 책인데요. 그 소설에도 오바나와 비슷한 인부가 등장합니다만 이쪽은 좀 카리스마가 있어서 얌전히 있지 않으면 너희들 다 쫓겨난다!라는 식으로 그것들을 조용히 시킵니다. 그곳에는 사연 많은 것들이 모여 있었거든요.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에 등장하는 것들의 사연도 참 만만치 않습니다. 풍문으로 듣는 사연이라 확실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바나의 손을 거친 후에는 잠잠한 걸 보니 그들의 마음을 잘 다독여준 모양입니다. 각 단편의 중간까지는 두려운 마음으로 읽다가 차츰 그들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그들의 측은함을 느끼게 되니 괜스레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합니다. 특히 마지막, '우리 밖'은 제일 무섭고, 제일 슬펐습니다.
<잔예>, <귀담백경>으로 호러는 별로인가!라는 감상을 갖게 했던 <십이국기>의 오노 후유미를 이 작품을 통해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남편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호러물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지요. 마음이 애틋해지는 호러 단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