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성 스토리콜렉터 51
혼다 테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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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961년 예일대의 밀그램 교수는 권위를 가진 사람으로부터 부여된 불법적인 지시에 대하여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에 대해 연구를 하다가 직접 실험해보기로 합니다.  징벌에 의한 학습효과를 알아본다는 테마를 걸고 실험에 참가할 사람들을 모집했는데요. 참가자를 둘로 나누어 한쪽은 선생, 다른 한쪽은 학생의 역할을 맡겼습니다. 그렇지만 학생 쪽은 미리 섭외해 둔 배우들이었죠. 교사가 학생에게 문제를 내고 틀렸을 경우 전기 충격을 가하게 했는데요. 버튼은 교사가 누릅니다. 사실 학생에게는 가짜 전기 충격장치가 붙어있었고, 버튼을 누르면 감전된 것 같은 연기를 하라고 했었습니다. 처음엔 가벼운 찌릿함 정도의 15볼트의 전압이었지만 나중엔 450볼트까지 올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실험이었습니다. 과연 그들은 겨우 4달러의 소득을 위해 타인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는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렸을까요? 몇몇은 그렇게 했고, 몇몇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라는 말에 65%의 사람들이 450 볼트 이상 전압을 올렸습니다. 학생(역할의 사람)이 비명을 지르고 괴로워하는 것을 알면서도요. 내 잘못이 아니야, 나는 어쩔 수 없었어. 명령을 따랐을 뿐이야. 라는 생각으로 이런 일을 행했던 것인데요. 불법적이거나 반인륜적인 명령이라도 권위가 있는 사람의 말이라면 따른다는 걸 실험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도저히 이런 짓은 할 수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사람도 있었다는 거죠.


또 하나의 유명한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 있습니다. 1971년 행해진 이 실험은 참가자를 두 그룹 - 교도관과 죄수- 로 나누어 가짜 감옥 생활을 하게 했는데, 처음엔 역할놀이를 하는 것처럼 즐기더니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역할에 심취, 교도관들은 - 실제로 감옥에서도 저럴까 싶은 - 가혹 행위를 합니다. 상황을 지나치게 즐기는 거죠. 갑갑한 공간과 스트레스로 폭력성이 터져 나온 죄수 측에서 반항을 하지만 교도관들은 소화기 등을 사용해 폭동을 진압합니다. 당초 예상된 날짜를 모두 채우지 못하고 끝난 실험이었지만 - 그만큼 사태가 심각했다는 걸 말합니다 - 인지부조화와 권력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었습니다.


위의 두 가지 실험을 떠올리게 된 것은 혼다 테쓰야의 <짐승의 성> 때문이었습니다. 갇혀있는 공간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한 사람의 명령을 따르는 것만이 생존의 비결이라면 따를 수밖에 없겠지요. 상대방이 비명을 지르고 고통으로 몸부림치더라도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 자신에겐 죄가 없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저 사람이 당하는 고통이 내 것이 될 테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해야 합니다. 오늘 밤도 누군가는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그게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나만 아니면 됩니다. 그래서 스탠퍼드 감옥의 교도관처럼 변합니다. 명령을 충실히 행하는 밀그램의 선생이 되기도 합니다. 밀고하고, 잔인한 폭력을 저지르고. 이곳에서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이 조그만 세상에서의 생존에 목숨을 겁니다. 잦은 폭력에 대한 노출로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2002년 3월에 밝혀진 기타큐슈 일가족 감금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짐승의 성>은 읽는 내내 세상에, 작가가 변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잔인하고 가학적인 장면들이 상당히 묘사되어있습니다. 어쩌다 등장하는 것이 아닌,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전기 충격 장면은 만화<사채꾼 우시지마>에서도 본 적이 있기에 - 그때도 두려워하며 읽었지만 - 조금 면역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소설에의 가학행위는 만화 그 이상이었습니다. 아무리 작품을 위해서라지만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기타큐슈 일가족 감금 살인사건을 검색해서 읽어보았는데요. 실제의 사건이 소설보다도 더 잔인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혼다 테쓰야의 필력으로 읽을 만하게 다듬은 게 이 정도였구나. 


장기간 학대를 받았다며 경찰에 보호를 요청한 소녀 마야의 신고로 맨션 선코트마치다 403호를 조사하러 간 경찰들은 경악합니다. 온 집안에서 풍기는 비정상적인 냄새. 방문마다 채워져있는 맹꽁이자물쇠. 자신을 학대했다고 지목한 2인조 중 한 명인 아쓰코를 그 집에서 조사차 데리고 나오는데, 아쓰코 역시 학대받은 흔적이 온몸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과 요시오가 마야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자백했는데요. 경찰 조사 결과, 그 집 욕실에서 4명의 DNA가 검출됩니다. 죽은 사람이 마야의 아버지 하나가 아니라는 거죠. 경찰의 조사, 그와는 별도로 진행되는 신고의 이야기, 아쓰코의 혼란스러운 자백 등...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멈출 수가 없습니다. 


기리노 나쓰오의 <아웃1,2>에서 보았던 장면들도 오버랩되면서 정말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시신에 관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무뎌지고 무감각해지는 것인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짓이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면서 도망칠 수 없는 건 남아있는 가족들 때문일까. 이지경이 되기 전에 초반에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일까. 말도 안 되는 협박에 넘어가서 파멸에 이르는 경우는 흔하다지만 이 정도로 당하면서도 - 참아야 하는 고통에 비하면 협박의 내용은 별것도 아닌 거 같은데 - 지켜야 했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듭니다.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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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찾습니다, 여름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나혁진 지음 / 들녘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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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혁진 작가의 <그녀를 찾습니다, 여름>을 읽었습니다. 리뷰를 하려고 PC 앞에 앉았지만 어떻게 멋지게 잘 써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괜히 레몬 생강 차만 홀짝거리고 있습니다. 딱히 멋지게 써야 하는 건 아니지만요.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공개적인 글을 쓰는 블로거인 저조차 글을 쓸 때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전달할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데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님들은 오죽할까요. 

<그녀를 찾습니다, 여름>은 비극적인 사건과 가벼운 일상 추리가 어우러진 소설입니다. 베리에이션이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가독력도 무척 좋고요. 주인공인 기우의 감정 기복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눈이 피로하거나 살짝 졸릴 때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요. 그렇지만 좀 아쉬운 점들이 보였습니다. 변주가 심하다 보니 뭔가 많이 가벼워져버린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출판사의 책 소개에서는 나혁진 작가의 지난번 두 권의 책과는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라 말하고 있는데요. <브라더>는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교도섬>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제가 <교도섬>에서 느낀 나혁진 작가는 유쾌한 무협 코드가 있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의 책은 공부는 못하지만 관찰력과 추리력이 좋은 - 풋풋한 주인공이 고교 시절과 대학시절에 겪는 사건과 일상 미스터리를 보여줍니다. 나쁘지는 않은데, 뭔가 좀 어색한 느낌이었습니다. 약간 절뚝거리는 기분이었달까요. 재미있게 잘 읽어나가면서, 소설 속에 포옥 빠져들어가면서도 뭔가 어색한 기분이었어요.

마지막에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어쩐지... 그래서였구나...하며 납득했지만, 책 읽는 도중에 느꼈던 약간의 어긋남은 추리물을 읽는 데에는 방해요소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재미없느냐. 그게 또 그렇지 않습니다. 재미있어요.

주인공이자 화자인 기우는 고교시절 학교 괴담을 해결하고 알게 된 동급생 지연이와 알콩달콩 만나는 사이가 되지만, 함께 놀러 간 놀이공원에서 그만 지연이가 사고로 죽습니다. 원래도 바이킹이나 롤러코스터를 타지 못 했던 기우는 그 사건 이후로 고소공포증이 생기는데요. 어느덧 시간은 흘러 대학교 2학년 학생이 되어있습니다. 그래도 아직 지연이를 잊지 못했습니다. 그녀를 어떻게든 다시 만나고 싶어 영계 통신이라는 동아리도 만들었지만, 별 소득은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죽은 자와 대화가 가능하다는 학우를 만나려고까지 했을까요. 그 학우를 통해 지연이는 만날 수 없었지만, 소민이라는 후배를 알게 되었습니다. 기우에게 호감을 가진 소민은 영계 통신 동아리에 가입합니다. 도대체 뭐 하는 동아리인지, 영계랑 통신은 하지 않는 것 같던데요. 아무튼 영계 통신 동아리는 오란고교 호스트부의 타마키 선배 같은 재력과 성격을 가진 김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유지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넘쳐날 정도의 돈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는 립 서비스마저 최상급. 
독자를 뿜게하는 오글거림을 갖춘 김원의 초대로 동아리 부원들은 그의 별장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화장이라는 저택의 오래된 살인사건과 만나게 됩니다. 영혼의 소행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밀실 사건에 관심을 두는데요. 역시 영계 통신 동아리 답죠. 이곳에서 영혼을 만나려 하나 봅니다. 그러나 영혼에 의한 사건이 아니라 사람에 의한 사건이라는 의심이 깊어지는데요... 과연 그들은 사건을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요?

이 소설은 미스터리물입니다만, 좀 가볍습니다. 사건 자체가 가벼운 건 아닌데요. 생각하고 추리해야 하는 맛은 없습니다. 하지만 읽어나가는 맛은 아주 좋아요. 중간의 유머 코드도 제법 있고요. 무리수를 둔 곳도 좀 보이기는 합니다만, 귀여우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니, 작가 말고 소민이요. 
아까부터 이 책이 재미있다, 아쉽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읽으라는 말이냐 말라는 말이냐...
글쎄요. 다만, 아쉬운 점이 좀 보완되어서 시리즈물로 나와도 좋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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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환상문학전집 11
필립 K. 딕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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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많은 SF 명작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명작 중의 명작,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읽었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읽었기 때문인지 이미 이 책은 절판되었지만, 다행히 폴라북스에서 2013년 출판한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는 여전히 판매 중입니다. 

저자는 평생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요.  소설들이 영화화되어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 사랑을 느껴보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으니 참 안타깝습니다.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는 1982년 <블레이드 러너>라는 영화로 제작되어 상영되었는데 정작 작가는 영화의 완성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의 세계관은 새롭고 철학적이었는데요. 그 세상을 바탕으로 SF 영화나 소설들이 재생산되다 보니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약간 식상하다 느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장면,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 그만큼 작가가 우리에게 던져놓은 물음과 이야기는 커다랗고, 아직까지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겠죠.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무엇이 올바른 일인가, 어떤 게 진실인가. 사실과 진실을 구별할 수는 있는 것인가. 수없이 생각해야 했고, 긴장과 해소를 반복했습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의 도덕관과 <토탈 리콜>에서의 진실과 허구의 불확실한 경계가 이 소설에서도 보였습니다. 옳다고 믿는 것이 반드시 진실이고 정의인 것은 아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생각해 보아야한다...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저이기에, 주인공인 릭이 살고 있는 - 최후 세계대전 이후의 세상을 상상하며 생각해 보아도 '스스로의 지능과 판단을 가지고 있는 지적 물체'를 즉결 심판으로 '은퇴' 시켜도 좋은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없었습니다.

릭 데카드가 사는 세상은 최후 세계대전 이후 낙진으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되어 올빼미가 멸종하고 이내 대부분의 곤충을 포함한 동물들이 멸종하거나 멸종 위기를 맞은, 회색빛의 우울한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릭은 경찰서 소속 현상금 사냥꾼으로 일하고 있는데요. 우울감을 가진 데다가 머서 주의라는 종교 같은 것을 믿고 있는 아내와 둘이 살고 있습니다. 그는 언뜻 보아서는 진짜처럼 보이는 전기 양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웃들은 모두 진짜 양으로 알고 있지만요. 릭은 정말 살아있는 동물을 키우고 싶어 합니다. 동물을 키우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정교하게,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져 누가 보아도 진짜 같더라도 그 안에서 심장이 뛰고 있지 않다면 그에겐 아무 소용없습니다. 집에서 동물을 키운다는 건 인간으로서의 가치 지표와 같습니다. 좀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아마도 현대의 사람들이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를 가지고 싶은 욕망과 비슷한가 봅니다. 우리는 좋은 무생물을 원하고, 그는 좋은 생물을 원합니다. 살아있다는 건 언젠가 죽기 마련인데,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거금을 들여 동물을 키우길 원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죠.

릭은 안드로이드에게 붙은 현상금을 사냥합니다. 돌려 말해도 나아지는 게 없군요. 직설적으로 말해, 도망자 안드로이드를 찾아내어 '은퇴' 시키는 일을 합니다. 영원히 말이에요. 죽인다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죽으려면 먼저 살아있어야 하거든요. 안드로이드는 생명체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죽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입장에서는 죽음이죠. 그렇기에 죽지 않기 위해 도망칩니다. 릭은 그들을 찾아내고요.

이번 그의 임무는 넥서스 - 6 안드로이드의 은퇴입니다. 선배인 데이브가 추격하다가 실패한 녀석들을 찾는데요. 이번 일만 잘 해결되면 진짜 양을 살 수 있을 겁니다. 선수금 정도밖에 안되겠지만 열심히 일해서 할부로 사면 되니까. 부지런히 놈들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그들을 만나면서 릭은 조금씩 혼란스러워집니다. 뛰어난 인공지능 때문인지 평범한 인간보다 뛰어나고 판단력과 행동력도 좋습니다. 아니 뭐 그런 걸 따지지 않더라도 정말 저 안드로이드에게 생명이 없다고 말해도 좋은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릭이 아니라 제가 고민하는 건데요. 릭도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리사 마이어의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에 나오는 이코에게 생명이 없으니 사라져도 좋은 존재라고 말하기 어려운 건 독자와의 유대를 쌓았기 때문이죠. 이 소설에서는 별로 유대관계가 없으므로 제거해도 괜찮을까요? 다른 등장인물들과 다를 바 없이 이야기하고 생활하는데요. 릭은 자신이 제거한 안드로이드가 무기력한 다른 사람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죽이지 않고 살려두는 편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좋았던 건 아닐까 회의가 듭니다. 그들의 조직적 움직임에 당할 뻔했으면서도 자신의 행동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보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소설이 던지는 물음들을 일일이 열거하고 그것에 대한 대답을 하려면 길이가 무척 길어질 겁니다. 가장 신경이 쓰였던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라거나 '생명체'에 관한 기준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모두 이야기하기 힘든 걸요. 더 힘든 건 머리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모두 끄집어 낼 수 없다는 점입니다. 
SF 소설을 읽었지만, 철학자의 물음을 마주한 것만 같아요. 아무 생각하지 않고 SF 액션물로 읽었더라면 고민이 되지 않았을 텐데. 이 책은 그걸 불가능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저는 다시 <매트릭스>를 보고 난 후 , <다크 시티>를 보고 난 후 가졌던 기분, 그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세상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혹시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기억은 아닐까... 책장을 덮으며 잠이 들었습니다. 눈을 떠도 여전한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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랫맨
미치오 슈스케 지음, 오근영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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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러니까 이런 유령이라면 있다는 이야기야. '어쩌면 유령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겁을 집어먹는 사람은 머릿속으로 진짜 유령을 만들어 내고 있는 거야. 어둠 속에서 본 아무것도 아닌 물건이 창백한 사람의 얼굴로 보이기도 하고,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누군가의 속삭임으로 들리기도 한다는 거지. -p.71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본다고 합니다. 또는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도 하지요. 그런 사실을 알고 있기에 다양한 각도로 사물과 현상을 살피고자 하지만, 어딘가에 맹점은 있기 마련입니다. 소설 속의 명탐정들도 그러한데, 평범한 저 같은 사람이야 늘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요즘 나라 돌아가는 판을 봐도 그렇습니다. 모두가 획일된 생각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생각과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보이더란 말입니다. 이쯤 되면 사이코패스 집단인지 감응정신병인지, 그것도 아니면 사이비 종교의 일종인지 말도 안 되는 논리와 편견을 가지고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이므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가능합니다.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 수 있는 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게 과연 바른 소리인지 - 객관적으로 살펴보아 - 한 번쯤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미치오 슈스케의 <랫맨>을 읽다 말고 뉴스와 유튜브를 뒤적인 탓에 좀 과하게 나갔습니다.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닌데도 말이죠. 예를 들어 이 그림에서 랫맨만을 봤다고 쳐. 그때 '이건 쥐야.' 하고 믿어 버리면 의도적으로 견해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 이상 몇 번을 봐도 쥐라는 생각밖에 하지 않아. 반대로 '아저씨 얼굴'이라고 믿으면 더 이상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게 돼. 이게 명명 효과야. 쥐라고 해버리면 그냥 쥐야. 아저씨라고 하면 그대로 아저씨고. -p.71 


정치와는 상관없는 <랫맨>은 음악 하는 청년의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어린 시절 누나가 추락사 한 뒤 뇌종양을 앓고 있던 아버지마저 한 달 후 돌아가시면서 누나의 죽음에 대해 내내 의문을 품고 있던 히메카와 료는 현재 아마추어 록 밴드의 기타리스트입니다. 친구들과 결성한지 벌써 14년째, 홍일점인 히카리와 연인 사이입니다. 뜨겁게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미적지근하게, 그리고 오래도록 사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녀의 동생 게이에게 마음이 갑니다. 게이도 히메카와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레 알게 된 히카리의 임신, 그들은 중절을 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의문이 듭니다. 내내 피임기구를 사용해왔는데 어째서 임신을 했을까요? 5%라는 - 어떻게 낸 통계인지도 모르겠지만- 확률에 당첨되어 임신이란 걸 한 걸까요? 혹시 그녀가 다른 남자를 만난 건 아닐까요? 그런 의혹을 해소하기도 전에 히카리가 사망합니다. 누군가에 의해서요. 과연 어떻게 된 걸까요. 히메카와의 누나의 죽음, 그리고 히카리의 죽음엔 어떤 랫맨이 숨어 있을까요. 



 미치오 슈스케의 소설을 읽을 때 저는, 약간의 기대를 합니다. 스산하거나 촉촉하겠지 하는 기대 말이에요. <술래의 발소리>로 처음 시작했거든요. 말 그대로 종이신문을 읽다가 책 소개 글을 보고 찾아 읽었는데요. 미치오 슈스케란 그런 미스터리 하면서도 호러블한 소설을 쓰는 사람일 거라 막연히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잔잔하거나 약간은 아픈 글을 쓰기도 하는 소설가였어요. 이 책 <랫맨>은 어떤가 하면, 잔잔합니다. 반전에 반전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큰 굴곡은 없어요. 파고가 높지 않은 바다에 커다란 돌을 던져 넣은 것 같은 정도에요.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요. 저는 괜찮았습니다. 미치오 슈스케의 글을 좋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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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hH
로랑 비네 지음, 이주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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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바로 리뷰를 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새벽무렵 잠에서 깨기전에 꿈 속에서도 이 책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HH...또 HH 계속 책 제목과 내용을 곱씹었습니다. 이 책은 거의 완벽한 팩트임에도 불구하고 서술되는 내용을 읽어가면서 머릿속은 대혼란, 저자가 의도하지 않은 미스터리에 스스로 빠져들었습니다. 몇 페이지 읽다가 갸웃, 몇 페이지 읽다가 곰곰... 이런식으로 책을 절룩절룩 읽었습니다.

어째서냐하면....


<HHhH>는 최대한 작가의 생각이나 상상을 배제하고 사실만을 전하려고 합니다. 



역사소설에서 제일 억지스러운 것은 과거를 그린 죽은 페이지에 생명을 불어넣겠다는 이유로 어느 정도 직접 수집한 증언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대사다. 이것은 활사법과 비슷하다. 묘사가 너무 생생해 마치 눈으로 직접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기법이다. 대화를 재구성하면 부자연스러울 수도 있고 의도하지 않았던  효과가 날 수 있다. 인위적인 기교가 너무나 뻔히 보이고 역사적 인물들의 목소리를 가로채어 되살리려는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많이 들어가게 된다.

-p.33



그런 이유로 작가는 이 소설에 되도록 대화를 많이 넣지 않으려고 합니다. 모든 걸 사실 그대로 서술하겠다는 거죠. 그러니 작가의 글을 따라 읽다보면 계속해서 책상에 앉아 고민하고 글을 쓰고 다시 고민하는 작가의 모습만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그러다 과거의 장면들을 묘사하는 장면이 나오면 검은 잡티나 노이즈가 있는 회색빛 화면속에서 그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가끔은 산뜻하게 - 말하자면 찰리 채플린의 '독재자' 같은 정도의 산뜻함이지만 - 재생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금발의 짐승이라고 불렸던 하이드리히는 나치 친위대 내부 정보기관 (SS) 의 책임자로서 나치스의 정치 공작과 비밀 작전을 모두 지휘하는 천재적 역량을 발위한 인물로 유대인 말살 계획인 최종 해결책을 입안하고 추진했습니다. 친위대 사령관은 히믈러였지만 사실상 모든 작전은 하이드리히가 지휘했기 때문에 당시 '히믈러의 두뇌는 하이드리히라고 불린다'라는 말이 항간에 떠돌았다고 하는데요(책 날개 -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에서) '히믈러의....'이 부분의 독일어를 줄인 말이 책의 제목인 <HHhH>입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주인공은 하이드리히가 되겠지만,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은 작가 자신입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 미스터리에 빠지고 말았죠. 100 페이지 넘게 읽고 있는데, 도대체 이걸 소설이라고 해도 좋은 것인가. 나치와 하이드리히에 관한 스토리 텔링 형식의 글을 읽고 있는게 아닌가.. 나아가서는 이건 그냥 작가의 나레이션이 들어간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게다가 작가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하이드리히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내가 쓰고 있는 책은 '하이드리히에 관한 책'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하이드리히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몇 년 전부터 이 책을 구상하면서 내가 생각한 제목은 '유인원 작전' 하나였다.(중략) 하이드리히는 작전의 표적이지 주체가 아니다. 이 책에서 하이드리히 이야기는 배경을 설명해주는 역할이다.

-p.134



작가는 다른 소설가와는 달리 등장인물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활기차게 움직이게 하지 않습니다. 역사의 후손으로서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고 싶어합니다. 강박증이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사실은 '절대로' 왜곡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이 장면은 앞의 장면과 마찬가지로 그럴듯해 보이지만 완전히 허구다.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 변명할 수도 없는 사람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은 뻔뻔한 일이 아닌가! 어쩌면 가브치크는 커피만 마시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는데 나는 차를 마신다고 묘사하고 있다. 가브치크는 어쩌면 외투를 한 벌만 입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내 마음대로 두 벌을 입히고 있다. 기차를 탔을 수도 있는데 내 마음대로 버스에 태우고 있다. 저녁에 떠났을 수도 있는데 내 마음대로 아침에 떠난 것으로 해 버린다. 나 자신이 부끄럽다.

-p.141



이정도로 사실만을 옮기는 데 집착하다니. 책을 읽다말고 소설가님들께 질문의 글을 올릴 뻔 했습니다. 허구를 가미하지 않고 팩트만을 전하는 방식도 소설에 속하는 것인가. 계속해서 책을 읽어가던 저는 마침내 단서 하나를 획득합니다. 



내가 쓰는 책이 소설이었다면 발치크는 전혀 필요 없는 등장인물이었을 것이다.

-p.279



'내가 쓰는 책이 소설이었다면' 이라는 말은 소설이 아니라는 말이 아닌가!! 그래, 이 책은 소설이 아니로구나!! 깨달음을 얻고 기뻤습니다만, 그 기쁨도 잠시. 만약 지금까지 나온 '나'라는 사람이 작중화자로서 허구의 인물이라면? 그렇다면 이 책의 전체적인 모습은 제가 알고 있는 소설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대혼란.

혼란에 빠졌던 건 저 뿐만이 아니었나봅니다. 작가는 후반부에 이르러 깨닫습니다.



이제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내가 쓰고 있는 것은 인프라 소설(설화, 가상의 내러티브, 작가의 생각이 결합된 소설-옮긴이)이다.

-p.320



작가의 깨달음과 동시에 무언가가 개운해진 저는 마음 놓고 책을 읽어갔습니다. 작가도 개운해진 모양입니다. 갑자기 소설에 생기가 돕니다. 그게 깨달음 때문인지 하이드리히가 죽을 때가 다 되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하이드리히는 죽어가고 소설은 살아납니다. 회색빛이었던 화면에 붉은색, 노란색, 초록색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저는 분명 엉뚱한 곳에 촛점을 맞추어 책을 읽었습니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형식의 소설을 만나 당황했기 때문이었죠. 악마적인 매력이 있는 하이드리히에게 주어야 할 관심을 작가에게 줘버렸습니다. 작가는 책을 쓰기 위해 2차대전과 하리드리히에 관한 수많은 자료를 읽고, 책을 읽었으며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 노력이 <HHhH>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었구요. 소설 속에서 여러가지 영화나 자료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참 특이한 책입니다. 

실은, 몇 페이지 읽고서 큰일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뭐지. 나랑 맞지 않잖아.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아. 원치 않았던. 


조금씩 읽어나가면서 마음을 다졌습니다. 그래, 이 책을 정복하고 말겠어. 이건 읽는게 아니라 정복하는거야. 마지막 페이지를 닫을 때까지 전진! 전진하라! 

그런데 희한하게도, 소설이 생기를 띄기 시작한 후(320 페이지 이후) 갑자기 흥미진진해집니다. 하이드리히 암살 당시의 장면이 눈 앞에 그려지면서 일제시대 우리나라의 '의사'들도 생각나고, 암살 이후의 이야기들도 깊은 한숨으로 다가왔습니다.

책을 다 읽고나니 아쉬워졌습니다. 제가 만일 당시의 역사나 인물관계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더라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을텐데요. 수많은 플래그를 붙여가며 읽은 책이었지만, 처음과는 달리 지금은 만족스럽습니다. 끝까지 읽길 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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