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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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보편적인 인생의 흐름이라는 게 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표준화된 것 같은 흐름이 있는데요. 학교에 다니고, 졸업 후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제시간에 맞춰 그 흐름을 탄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이상하게 여기고, 잘 못 된 사람처럼 여깁니다.

개울물도 유속이 서로 다른데, 각자의 인생 역시 다른 속도로 흘러갈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때로는 보에 막혀서 앞으로 나갈 수 없을 때도 있고, 그러다가 갑자기 내리는 폭우에 다른 길로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어째서 그 자리에 있느냐 타박합니다. 굵은 줄기를 타지 못한 자들에게 끊임없이 이리 오라 합니다. 그 자리가 그에게 어울리건 어울리지 않건 간에요. 그들처럼 되는 것만이 정상인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같지 않은 사람은 차마 '난 다른 길을 가고 있어요.'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때로는 정말로 내가 여기 있는 것이 잘 못된 일이 아닐까 고민하기도 합니다.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그런가? 그래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치지 않으면 정상인 사람들에게 삭제된다.

-p.98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이라는 소설엔 게이코라는, 타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해결하려는 여자가 등장합니다. 인간이라면 마땅한 사건에 대한 '처리 방식'이 남다른 데요.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소설에서 이르지는 않았지만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졌나 봅니다. 다소 공격적인 면을 보인 적도 있었지만, 다행히 어렸을 때부터 자신과 타인의 생각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 스스로 매뉴얼화해서 움직입니다. 졸업 후 게이코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게 됩니다. 

매뉴얼화되어있는 접대 방식이라거나 판매 방식, 진열법 등이 그녀에게 딱 맞았습니다. 게이코도 이곳에서라면 다른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누구보다도 뛰어난 직원이었지요. 점장님 말씀을 숙지하고, 그대로 지키며 매뉴얼에 따라 점포가 활성화 되도록 하는 것에는 그 누구도 따라갈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르바이트지만 안정적인 이곳에서 그녀는 18년 동안이나 일했습니다. 그 사이 함께 근무하는 동료를 관찰하며 평상복이라거나 소품들을 남들과 다르지 않게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말투도 동료 몇 명의 것을 섞어서 어울리게 사용했습니다. 우리도 친한 친구와는 말투가 닮아가니,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게이코는 편의점에 있을 때 가장 안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게이코를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고 있는 여동생은 그렇다 치더라도, 동창들은 여전히 게이코가 결혼하지 않는 것도, 벌이가 좋은 곳에 취직하지 않는 것도, 그래 결혼은 둘째 치더라도 연애조차 하지 않는 그녀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하며 걱정해주었습니다. 세상 쓸데없는 게 남 걱정인 거 같은데 말이죠. 아무리 게이코라지만 남들과 또 다르게 보이는 자신이 걱정되었습니다. 



지난 2주 동안 열네 번이나 "왜 결혼하지 않아?"라는 질문을 받았다. "왜 아르바이트를 해?"라는 질문은 열두 번 받았다. 우선 들은 횟수가 많은 것부터 소거해보자고 생각했다.

-p.113




그때, 인간 말종 쓰레기 시라하가 들러붙습니다. 제발 그녀의 인생에서 꺼져다오.



남들과 다른 게 그렇게 문제가 되나요? 게이코가 결혼하지 않는 것이 그들에게 어떤 폐라도 되는 건가요? 왜 일을 하고 있는데 취직을 하지 않는다고 타박하는 건가요. 그들과 다른 삶의 형태로 살아가면 안 되는 건가요. 그런 우리는 영원히 갈 곳 없어 헤매어야만 하는 건가요.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다는 걸 알아주면 안 되나요. 그런 방식이 아니라면 살 수 없는 사람도 있다는 걸 인정해주면 안 되나요? 이것도 저것도 안된다면 그냥 모른체해주면 안 되나요.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곳이 타인의 눈에는 의아하게 보이거나 때로는 형편없게 보일지라도 자신에게는 딱 맞는, 마땅한 장소가 있습니다. 그러니 모두의 틀에 억지로 욱여넣을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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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의 달걀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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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날달걀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노래할 일이 생기면 날달걀의 뾰족한 부분과 둥근 부분을 젓가락으로 톡톡 깨어 호르륵 빨아먹던 아버지를 보고, 어린 시절 몇 번 따라 해 본 적이 있었는데요. 전혀 제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억지로 목으로 휘릭 넘기고서 메슥거림을 다스리기 위해 물을 벌컥벌컥 마셨는데,  그럼 날계란을 먹은 보람이 없잖아요. 일본 미식 만화를 봤더니 날달걀에 간장을 넣어 밥을 비비거나, 버터까지 넣어서 비벼 먹더군요. 정말 맛있을까 궁금해 따라 해봤는데.... 결국 그 밥을 프라이팬에 부어 볶아 먹었습니다. 전, 안되겠어요. 날달걀 간장밥은.


그런데 이 날달걀 간장밥으로 마을의 부흥을 꾀하는 청년이 있지 뭡니까. <히카루의 달걀>이라는 소설에서요. 무민처럼 생겨서 무상이라고 불리는 무라타 지로인데요. 그냥 시골도 아닌 깡촌에서 사랑을 담뿍 담은 양계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닭을 공주님이라고 부르며 클래식을 들려주고 직접 배합한 사료를 주면서 좋은 달걀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의 단점이라면 지나치게 사람이 좋다는 건데요. 아마 그의 자상한 어머니의 영향이 컸을 겁니다. 이렇게나 사람이 좋을 수 있을까, 긍정적일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마을 청년회의 평균연령이 65세가 넘어가는 - 남의 일이 아닌 거 같은 이 시골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무상의 작전은 바로 달걀밥을 제공하는 가게를 여는 것이었는데요. 이 일로 단짝 친구 다이키치와 크게 싸우고 말도 안 섞는 사이가 되었지만, 어쨌든 가게를 열게 됩니다. 모든 신장개업 집들이 그렇듯이 초반엔 반짝 실적이 좋았다가 금방 쇠락해버립니다. 무상은 가게 오픈 자금을 대출받을 때 담보를 잡혀둔 양계장을 처분해야 할 위기에 처하지만, 갑자기 광고 회사에서 연락이 와, 방송을 탄 후로 급하게 다시 일어섭니다. 그리고 더욱 번창하는 가게, 무상은 제2의, 제3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데요. 그의 꿈은 부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마을의 모두가 활기차고 행복해지는 것이거든요. 달걀 밥집도 자신의 부를 위한 게 아니었습니다.  


이 책의 줄거리를 읊기엔 좀 부족합니다. 상당히 복합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데다가 복선들이 마구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니 어느 부분을 이야기하고, 어느 부분을 빼야 좋을지 판단이 잘 안 섭니다. 위의 이야기도 요리조리 피하면서 떠벌인 건데요. 중간에 중요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제가 주요 포인트를 발설할까 봐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습니다. 직접 읽어보는 게 좋으니까요.


모리사와 아키오가 에세이는 무척 웃기게 쓰지만, 소설은 잔잔하고 서정적으로 쓰는 것 같습니다. 자연과 시골을 사랑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사랑하는, 곰을 닮은 남자거든요. <쓰가루 백 년 식당>에서 처음 만난 그의 소설들을 펼 때마다 살짝 두렵습니다. 조금 전까지 피 튀기는 소설을 읽었는데, 이렇게 피에 물든 손으로 아름다운 책을 읽어도 좋은 것인가. 하지만, 피폐해진 마음을 그의 소설로 달래며 다시 선한 사람으로 돌아옵니다. 그에겐 그런 힘이 있습니다. 잘못된 마음을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해도 좋을 정도로 좋은 마음으로 돌려주거든요. 이상론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어딘가에 이런 선한 사람들이 있고, 반짝반짝 빛나는 반딧불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데요.


유복하지는 않아도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 <히카루의 달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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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김성한 지음 / 새움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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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으로 검색해보면, 동명의 영화, 드라마, 웹툰이 나옵니다. 심지어 책도 몇 가지 찾아볼 수 있는데요.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내용은 다르겠지만, 그만큼 사람들은 '달콤한 인생'을 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소박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인생을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욕망하는지라 위를 향해 나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다 만난 걸림돌, 장애, 뜻밖의 사건에서 어떻게 해결해나가느냐는 순간의 판단에 의지할 수밖에 없겠죠. 평소에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했던 사람이라면 A 플랜이나 B 플랜을 가동하면 됩니다. 하지만 나에게만은 절대 생기지 않을 것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그 상황이 느닷없이 나를 덮치면 어찌해야 할까요. 


이번에 읽은 <달콤한 인생>이라는 소설에서 주인공 상우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았던 상황에 부딪힙니다. 살인이라니. 자신이 살인을 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잘 나가는 로펌 소속의 잘 나가는 변호사, 고등학생 때부터 사모했던 그녀와 결혼해 부촌의 2층 집에서 살며 벤츠를 굴리며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그의 일탈이라면 술집 여자 승혜와 스폰서 관계를 하고 있다는 것이겠죠. 차츰 귀찮아져 떼버려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욕망과 이성이 싸우면서 차일피일 시간을 미루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친구와 해외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상우는 승혜와 끈적한 시간을 보내다 아내로부터 전화를 받습니다. 비행기가 결항이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는. 거기서부터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상우는 집으로 돌아가는데 주차를 하다가 바닥에 버려진 맥주병을 밟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려니 자신의 옷과 몸에서 배신의 향기가 풍깁니다. 차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아내가 잠든 후 들어가려고 했지만, 의지와는 달리 3시간 남짓 잠들어버립니다. 그리고 차를 들여다보던 검은 모자의 사내를 보고 차 밖으로 나와 객기에 싸움이 붙었지만, 남자 밑에 깔리고 맙니다. 상우는 손에 잡히는 것을 휘둘렀는데, 아뿔싸. 아까 바퀴로 밟은 깨진 맥주병이었습니다. 남자가 즉사하자 상우는 오만가지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결국 사건 현장에서 자신을 지우려 합니다. 한참 작업 중 나타난 병호. 그는 차기 대선 주자의 외아들이자 다운증후군 청년입니다. 상우는 병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 합니다. 병에 그의 지문을 찍고, 머리카락도 붙여둡니다. 병호의 옷에 핏자국을 묻히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이대로 병호가 체포되고 자신은 용의선상에서 벗어나면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상우가 평소에 동아줄로 사용하려 친분을 쌓아두었던 병호의 아버지는 상우에게 변호를 의뢰합니다. 이 책의 홍보문구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내가 덮어씌운 살인사건의 변호를 내가 맡았다"가 성립하는 순간입니다. 이대로 잘 만지고 포장해서 법정 드라마로 갈 것 같았던 이 소설은 법정 신이 별로 나오지 않습니다. 작가는 영리하게도 병호를 - 특정 스위치가 켜지면 - 폭력을 사용하기도 하는 다운증후군 청년으로 설정해 두었거든요. 병호는 법정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이 일로 병호의 아버지 함상진 의원은 변호사를 교체하려 하지만 상우는 자신이 변호를 맡아야 한다며 절대 안 된다고 필사적으로 그를 막습니다. 

머리 좋은 상우이기에 모든 것이 자신의 생각대로 흘러간다면 앞으로의 인생도 자신의 뜻대로 되어 줄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한고비를 넘으면 또 한고비, 그리고 다른 굴곡. 너무나 당연합니다. 범죄를 덮는 방식이 나빴으니까요.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는 없었을까.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지만 어디서부터 수정해가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드라마틱 한 소설이 작가의 데뷔작이라니 믿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사건의 진행 과정이라거나 주인공의 생각 흐름 같은 것이 참신하지는 않았지만, 위화감이나 거부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흐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독자를 상우에게 끌어가 그의 심리를 함께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역시 이래서 범죄 소설은 안돼. 스톡홀름 증후군 같은 게 생긴단 말야.' 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상우가 한 발 한 발 지옥으로 내딛는 걸 말리고 싶었지만, 그의 행동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누명을 씌우는 걸 이해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미래를 지키기 위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없었던 바보 같은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상우는 비열하다기보다는 어쩔 줄 몰라 얕은꾀로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는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안쓰러웠죠. 


요사이 뉴스를 보면 상우와 같은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이렇게 하면 되겠지... 다들 속을 거야. 그리고 나는 그 위치를 지킬 수 있을 테지. 잠잠해지면, 더 높이 올라가자......

그들 중 몇몇은 눈을 속일 수 있을 테죠. 하지만, 대부분은 아닐 겁니다. 그걸 깨닫지 못하는 그들은, <달콤한 인생>의 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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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성 스토리콜렉터 51
혼다 테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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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예일대의 밀그램 교수는 권위를 가진 사람으로부터 부여된 불법적인 지시에 대하여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에 대해 연구를 하다가 직접 실험해보기로 합니다.  징벌에 의한 학습효과를 알아본다는 테마를 걸고 실험에 참가할 사람들을 모집했는데요. 참가자를 둘로 나누어 한쪽은 선생, 다른 한쪽은 학생의 역할을 맡겼습니다. 그렇지만 학생 쪽은 미리 섭외해 둔 배우들이었죠. 교사가 학생에게 문제를 내고 틀렸을 경우 전기 충격을 가하게 했는데요. 버튼은 교사가 누릅니다. 사실 학생에게는 가짜 전기 충격장치가 붙어있었고, 버튼을 누르면 감전된 것 같은 연기를 하라고 했었습니다. 처음엔 가벼운 찌릿함 정도의 15볼트의 전압이었지만 나중엔 450볼트까지 올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실험이었습니다. 과연 그들은 겨우 4달러의 소득을 위해 타인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는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렸을까요? 몇몇은 그렇게 했고, 몇몇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라는 말에 65%의 사람들이 450 볼트 이상 전압을 올렸습니다. 학생(역할의 사람)이 비명을 지르고 괴로워하는 것을 알면서도요. 내 잘못이 아니야, 나는 어쩔 수 없었어. 명령을 따랐을 뿐이야. 라는 생각으로 이런 일을 행했던 것인데요. 불법적이거나 반인륜적인 명령이라도 권위가 있는 사람의 말이라면 따른다는 걸 실험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도저히 이런 짓은 할 수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사람도 있었다는 거죠.


또 하나의 유명한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 있습니다. 1971년 행해진 이 실험은 참가자를 두 그룹 - 교도관과 죄수- 로 나누어 가짜 감옥 생활을 하게 했는데, 처음엔 역할놀이를 하는 것처럼 즐기더니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역할에 심취, 교도관들은 - 실제로 감옥에서도 저럴까 싶은 - 가혹 행위를 합니다. 상황을 지나치게 즐기는 거죠. 갑갑한 공간과 스트레스로 폭력성이 터져 나온 죄수 측에서 반항을 하지만 교도관들은 소화기 등을 사용해 폭동을 진압합니다. 당초 예상된 날짜를 모두 채우지 못하고 끝난 실험이었지만 - 그만큼 사태가 심각했다는 걸 말합니다 - 인지부조화와 권력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었습니다.


위의 두 가지 실험을 떠올리게 된 것은 혼다 테쓰야의 <짐승의 성> 때문이었습니다. 갇혀있는 공간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한 사람의 명령을 따르는 것만이 생존의 비결이라면 따를 수밖에 없겠지요. 상대방이 비명을 지르고 고통으로 몸부림치더라도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 자신에겐 죄가 없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저 사람이 당하는 고통이 내 것이 될 테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해야 합니다. 오늘 밤도 누군가는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그게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나만 아니면 됩니다. 그래서 스탠퍼드 감옥의 교도관처럼 변합니다. 명령을 충실히 행하는 밀그램의 선생이 되기도 합니다. 밀고하고, 잔인한 폭력을 저지르고. 이곳에서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이 조그만 세상에서의 생존에 목숨을 겁니다. 잦은 폭력에 대한 노출로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2002년 3월에 밝혀진 기타큐슈 일가족 감금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짐승의 성>은 읽는 내내 세상에, 작가가 변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잔인하고 가학적인 장면들이 상당히 묘사되어있습니다. 어쩌다 등장하는 것이 아닌,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전기 충격 장면은 만화<사채꾼 우시지마>에서도 본 적이 있기에 - 그때도 두려워하며 읽었지만 - 조금 면역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소설에의 가학행위는 만화 그 이상이었습니다. 아무리 작품을 위해서라지만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기타큐슈 일가족 감금 살인사건을 검색해서 읽어보았는데요. 실제의 사건이 소설보다도 더 잔인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혼다 테쓰야의 필력으로 읽을 만하게 다듬은 게 이 정도였구나. 


장기간 학대를 받았다며 경찰에 보호를 요청한 소녀 마야의 신고로 맨션 선코트마치다 403호를 조사하러 간 경찰들은 경악합니다. 온 집안에서 풍기는 비정상적인 냄새. 방문마다 채워져있는 맹꽁이자물쇠. 자신을 학대했다고 지목한 2인조 중 한 명인 아쓰코를 그 집에서 조사차 데리고 나오는데, 아쓰코 역시 학대받은 흔적이 온몸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과 요시오가 마야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자백했는데요. 경찰 조사 결과, 그 집 욕실에서 4명의 DNA가 검출됩니다. 죽은 사람이 마야의 아버지 하나가 아니라는 거죠. 경찰의 조사, 그와는 별도로 진행되는 신고의 이야기, 아쓰코의 혼란스러운 자백 등...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멈출 수가 없습니다. 


기리노 나쓰오의 <아웃1,2>에서 보았던 장면들도 오버랩되면서 정말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시신에 관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무뎌지고 무감각해지는 것인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짓이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면서 도망칠 수 없는 건 남아있는 가족들 때문일까. 이지경이 되기 전에 초반에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일까. 말도 안 되는 협박에 넘어가서 파멸에 이르는 경우는 흔하다지만 이 정도로 당하면서도 - 참아야 하는 고통에 비하면 협박의 내용은 별것도 아닌 거 같은데 - 지켜야 했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듭니다.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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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찾습니다, 여름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나혁진 지음 / 들녘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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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혁진 작가의 <그녀를 찾습니다, 여름>을 읽었습니다. 리뷰를 하려고 PC 앞에 앉았지만 어떻게 멋지게 잘 써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괜히 레몬 생강 차만 홀짝거리고 있습니다. 딱히 멋지게 써야 하는 건 아니지만요.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공개적인 글을 쓰는 블로거인 저조차 글을 쓸 때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전달할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데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님들은 오죽할까요. 

<그녀를 찾습니다, 여름>은 비극적인 사건과 가벼운 일상 추리가 어우러진 소설입니다. 베리에이션이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가독력도 무척 좋고요. 주인공인 기우의 감정 기복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눈이 피로하거나 살짝 졸릴 때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요. 그렇지만 좀 아쉬운 점들이 보였습니다. 변주가 심하다 보니 뭔가 많이 가벼워져버린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출판사의 책 소개에서는 나혁진 작가의 지난번 두 권의 책과는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라 말하고 있는데요. <브라더>는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교도섬>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제가 <교도섬>에서 느낀 나혁진 작가는 유쾌한 무협 코드가 있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의 책은 공부는 못하지만 관찰력과 추리력이 좋은 - 풋풋한 주인공이 고교 시절과 대학시절에 겪는 사건과 일상 미스터리를 보여줍니다. 나쁘지는 않은데, 뭔가 좀 어색한 느낌이었습니다. 약간 절뚝거리는 기분이었달까요. 재미있게 잘 읽어나가면서, 소설 속에 포옥 빠져들어가면서도 뭔가 어색한 기분이었어요.

마지막에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어쩐지... 그래서였구나...하며 납득했지만, 책 읽는 도중에 느꼈던 약간의 어긋남은 추리물을 읽는 데에는 방해요소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재미없느냐. 그게 또 그렇지 않습니다. 재미있어요.

주인공이자 화자인 기우는 고교시절 학교 괴담을 해결하고 알게 된 동급생 지연이와 알콩달콩 만나는 사이가 되지만, 함께 놀러 간 놀이공원에서 그만 지연이가 사고로 죽습니다. 원래도 바이킹이나 롤러코스터를 타지 못 했던 기우는 그 사건 이후로 고소공포증이 생기는데요. 어느덧 시간은 흘러 대학교 2학년 학생이 되어있습니다. 그래도 아직 지연이를 잊지 못했습니다. 그녀를 어떻게든 다시 만나고 싶어 영계 통신이라는 동아리도 만들었지만, 별 소득은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죽은 자와 대화가 가능하다는 학우를 만나려고까지 했을까요. 그 학우를 통해 지연이는 만날 수 없었지만, 소민이라는 후배를 알게 되었습니다. 기우에게 호감을 가진 소민은 영계 통신 동아리에 가입합니다. 도대체 뭐 하는 동아리인지, 영계랑 통신은 하지 않는 것 같던데요. 아무튼 영계 통신 동아리는 오란고교 호스트부의 타마키 선배 같은 재력과 성격을 가진 김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유지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넘쳐날 정도의 돈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는 립 서비스마저 최상급. 
독자를 뿜게하는 오글거림을 갖춘 김원의 초대로 동아리 부원들은 그의 별장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화장이라는 저택의 오래된 살인사건과 만나게 됩니다. 영혼의 소행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밀실 사건에 관심을 두는데요. 역시 영계 통신 동아리 답죠. 이곳에서 영혼을 만나려 하나 봅니다. 그러나 영혼에 의한 사건이 아니라 사람에 의한 사건이라는 의심이 깊어지는데요... 과연 그들은 사건을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요?

이 소설은 미스터리물입니다만, 좀 가볍습니다. 사건 자체가 가벼운 건 아닌데요. 생각하고 추리해야 하는 맛은 없습니다. 하지만 읽어나가는 맛은 아주 좋아요. 중간의 유머 코드도 제법 있고요. 무리수를 둔 곳도 좀 보이기는 합니다만, 귀여우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니, 작가 말고 소민이요. 
아까부터 이 책이 재미있다, 아쉽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읽으라는 말이냐 말라는 말이냐...
글쎄요. 다만, 아쉬운 점이 좀 보완되어서 시리즈물로 나와도 좋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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