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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김성한 지음 / 새움 / 2016년 11월
평점 :
'달콤한 인생'으로 검색해보면, 동명의 영화, 드라마, 웹툰이 나옵니다. 심지어 책도 몇 가지 찾아볼 수 있는데요.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내용은 다르겠지만, 그만큼 사람들은 '달콤한 인생'을 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소박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인생을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욕망하는지라 위를 향해 나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다 만난 걸림돌, 장애, 뜻밖의 사건에서 어떻게 해결해나가느냐는 순간의 판단에 의지할 수밖에 없겠죠. 평소에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했던 사람이라면 A 플랜이나 B 플랜을 가동하면 됩니다. 하지만 나에게만은 절대 생기지 않을 것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그 상황이 느닷없이 나를 덮치면 어찌해야 할까요.
이번에 읽은 <달콤한 인생>이라는 소설에서 주인공 상우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았던 상황에 부딪힙니다. 살인이라니. 자신이 살인을 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잘 나가는 로펌 소속의 잘 나가는 변호사, 고등학생 때부터 사모했던 그녀와 결혼해 부촌의 2층 집에서 살며 벤츠를 굴리며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그의 일탈이라면 술집 여자 승혜와 스폰서 관계를 하고 있다는 것이겠죠. 차츰 귀찮아져 떼버려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욕망과 이성이 싸우면서 차일피일 시간을 미루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친구와 해외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상우는 승혜와 끈적한 시간을 보내다 아내로부터 전화를 받습니다. 비행기가 결항이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는. 거기서부터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상우는 집으로 돌아가는데 주차를 하다가 바닥에 버려진 맥주병을 밟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려니 자신의 옷과 몸에서 배신의 향기가 풍깁니다. 차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아내가 잠든 후 들어가려고 했지만, 의지와는 달리 3시간 남짓 잠들어버립니다. 그리고 차를 들여다보던 검은 모자의 사내를 보고 차 밖으로 나와 객기에 싸움이 붙었지만, 남자 밑에 깔리고 맙니다. 상우는 손에 잡히는 것을 휘둘렀는데, 아뿔싸. 아까 바퀴로 밟은 깨진 맥주병이었습니다. 남자가 즉사하자 상우는 오만가지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결국 사건 현장에서 자신을 지우려 합니다. 한참 작업 중 나타난 병호. 그는 차기 대선 주자의 외아들이자 다운증후군 청년입니다. 상우는 병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 합니다. 병에 그의 지문을 찍고, 머리카락도 붙여둡니다. 병호의 옷에 핏자국을 묻히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이대로 병호가 체포되고 자신은 용의선상에서 벗어나면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상우가 평소에 동아줄로 사용하려 친분을 쌓아두었던 병호의 아버지는 상우에게 변호를 의뢰합니다. 이 책의 홍보문구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내가 덮어씌운 살인사건의 변호를 내가 맡았다"가 성립하는 순간입니다. 이대로 잘 만지고 포장해서 법정 드라마로 갈 것 같았던 이 소설은 법정 신이 별로 나오지 않습니다. 작가는 영리하게도 병호를 - 특정 스위치가 켜지면 - 폭력을 사용하기도 하는 다운증후군 청년으로 설정해 두었거든요. 병호는 법정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이 일로 병호의 아버지 함상진 의원은 변호사를 교체하려 하지만 상우는 자신이 변호를 맡아야 한다며 절대 안 된다고 필사적으로 그를 막습니다.
머리 좋은 상우이기에 모든 것이 자신의 생각대로 흘러간다면 앞으로의 인생도 자신의 뜻대로 되어 줄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한고비를 넘으면 또 한고비, 그리고 다른 굴곡. 너무나 당연합니다. 범죄를 덮는 방식이 나빴으니까요.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는 없었을까.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지만 어디서부터 수정해가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드라마틱 한 소설이 작가의 데뷔작이라니 믿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사건의 진행 과정이라거나 주인공의 생각 흐름 같은 것이 참신하지는 않았지만, 위화감이나 거부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흐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독자를 상우에게 끌어가 그의 심리를 함께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역시 이래서 범죄 소설은 안돼. 스톡홀름 증후군 같은 게 생긴단 말야.' 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상우가 한 발 한 발 지옥으로 내딛는 걸 말리고 싶었지만, 그의 행동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누명을 씌우는 걸 이해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미래를 지키기 위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없었던 바보 같은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상우는 비열하다기보다는 어쩔 줄 몰라 얕은꾀로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는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안쓰러웠죠.
요사이 뉴스를 보면 상우와 같은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이렇게 하면 되겠지... 다들 속을 거야. 그리고 나는 그 위치를 지킬 수 있을 테지. 잠잠해지면, 더 높이 올라가자......
그들 중 몇몇은 눈을 속일 수 있을 테죠. 하지만, 대부분은 아닐 겁니다. 그걸 깨닫지 못하는 그들은, <달콤한 인생>의 상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