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카루의 달걀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저는 날달걀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노래할 일이 생기면 날달걀의 뾰족한 부분과 둥근 부분을 젓가락으로 톡톡 깨어 호르륵 빨아먹던 아버지를 보고, 어린 시절 몇 번 따라 해 본 적이 있었는데요. 전혀 제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억지로 목으로 휘릭 넘기고서 메슥거림을 다스리기 위해 물을 벌컥벌컥 마셨는데,  그럼 날계란을 먹은 보람이 없잖아요. 일본 미식 만화를 봤더니 날달걀에 간장을 넣어 밥을 비비거나, 버터까지 넣어서 비벼 먹더군요. 정말 맛있을까 궁금해 따라 해봤는데.... 결국 그 밥을 프라이팬에 부어 볶아 먹었습니다. 전, 안되겠어요. 날달걀 간장밥은.


그런데 이 날달걀 간장밥으로 마을의 부흥을 꾀하는 청년이 있지 뭡니까. <히카루의 달걀>이라는 소설에서요. 무민처럼 생겨서 무상이라고 불리는 무라타 지로인데요. 그냥 시골도 아닌 깡촌에서 사랑을 담뿍 담은 양계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닭을 공주님이라고 부르며 클래식을 들려주고 직접 배합한 사료를 주면서 좋은 달걀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의 단점이라면 지나치게 사람이 좋다는 건데요. 아마 그의 자상한 어머니의 영향이 컸을 겁니다. 이렇게나 사람이 좋을 수 있을까, 긍정적일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마을 청년회의 평균연령이 65세가 넘어가는 - 남의 일이 아닌 거 같은 이 시골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무상의 작전은 바로 달걀밥을 제공하는 가게를 여는 것이었는데요. 이 일로 단짝 친구 다이키치와 크게 싸우고 말도 안 섞는 사이가 되었지만, 어쨌든 가게를 열게 됩니다. 모든 신장개업 집들이 그렇듯이 초반엔 반짝 실적이 좋았다가 금방 쇠락해버립니다. 무상은 가게 오픈 자금을 대출받을 때 담보를 잡혀둔 양계장을 처분해야 할 위기에 처하지만, 갑자기 광고 회사에서 연락이 와, 방송을 탄 후로 급하게 다시 일어섭니다. 그리고 더욱 번창하는 가게, 무상은 제2의, 제3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데요. 그의 꿈은 부자가 되는 게 아닙니다. 마을의 모두가 활기차고 행복해지는 것이거든요. 달걀 밥집도 자신의 부를 위한 게 아니었습니다.  


이 책의 줄거리를 읊기엔 좀 부족합니다. 상당히 복합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데다가 복선들이 마구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니 어느 부분을 이야기하고, 어느 부분을 빼야 좋을지 판단이 잘 안 섭니다. 위의 이야기도 요리조리 피하면서 떠벌인 건데요. 중간에 중요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제가 주요 포인트를 발설할까 봐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습니다. 직접 읽어보는 게 좋으니까요.


모리사와 아키오가 에세이는 무척 웃기게 쓰지만, 소설은 잔잔하고 서정적으로 쓰는 것 같습니다. 자연과 시골을 사랑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사랑하는, 곰을 닮은 남자거든요. <쓰가루 백 년 식당>에서 처음 만난 그의 소설들을 펼 때마다 살짝 두렵습니다. 조금 전까지 피 튀기는 소설을 읽었는데, 이렇게 피에 물든 손으로 아름다운 책을 읽어도 좋은 것인가. 하지만, 피폐해진 마음을 그의 소설로 달래며 다시 선한 사람으로 돌아옵니다. 그에겐 그런 힘이 있습니다. 잘못된 마음을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해도 좋을 정도로 좋은 마음으로 돌려주거든요. 이상론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어딘가에 이런 선한 사람들이 있고, 반짝반짝 빛나는 반딧불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데요.


유복하지는 않아도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 <히카루의 달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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