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혁진 작가의 <그녀를 찾습니다, 여름>을 읽었습니다. 리뷰를 하려고 PC 앞에 앉았지만 어떻게 멋지게 잘 써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괜히 레몬 생강 차만 홀짝거리고 있습니다. 딱히 멋지게 써야 하는 건 아니지만요.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공개적인 글을 쓰는 블로거인 저조차 글을 쓸 때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전달할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데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님들은 오죽할까요.
<그녀를 찾습니다, 여름>은 비극적인 사건과 가벼운 일상 추리가 어우러진 소설입니다. 베리에이션이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가독력도 무척 좋고요. 주인공인 기우의 감정 기복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눈이 피로하거나 살짝 졸릴 때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요. 그렇지만 좀 아쉬운 점들이 보였습니다. 변주가 심하다 보니 뭔가 많이 가벼워져버린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출판사의 책 소개에서는 나혁진 작가의 지난번 두 권의 책과는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라 말하고 있는데요. <브라더>는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교도섬>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제가 <교도섬>에서 느낀 나혁진 작가는 유쾌한 무협 코드가 있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의 책은 공부는 못하지만 관찰력과 추리력이 좋은 - 풋풋한 주인공이 고교 시절과 대학시절에 겪는 사건과 일상 미스터리를 보여줍니다. 나쁘지는 않은데, 뭔가 좀 어색한 느낌이었습니다. 약간 절뚝거리는 기분이었달까요. 재미있게 잘 읽어나가면서, 소설 속에 포옥 빠져들어가면서도 뭔가 어색한 기분이었어요.
마지막에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어쩐지... 그래서였구나...하며 납득했지만, 책 읽는 도중에 느꼈던 약간의 어긋남은 추리물을 읽는 데에는 방해요소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재미없느냐. 그게 또 그렇지 않습니다. 재미있어요.
주인공이자 화자인 기우는 고교시절 학교 괴담을 해결하고 알게 된 동급생 지연이와 알콩달콩 만나는 사이가 되지만, 함께 놀러 간 놀이공원에서 그만 지연이가 사고로 죽습니다. 원래도 바이킹이나 롤러코스터를 타지 못 했던 기우는 그 사건 이후로 고소공포증이 생기는데요. 어느덧 시간은 흘러 대학교 2학년 학생이 되어있습니다. 그래도 아직 지연이를 잊지 못했습니다. 그녀를 어떻게든 다시 만나고 싶어 영계 통신이라는 동아리도 만들었지만, 별 소득은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죽은 자와 대화가 가능하다는 학우를 만나려고까지 했을까요. 그 학우를 통해 지연이는 만날 수 없었지만, 소민이라는 후배를 알게 되었습니다. 기우에게 호감을 가진 소민은 영계 통신 동아리에 가입합니다. 도대체 뭐 하는 동아리인지, 영계랑 통신은 하지 않는 것 같던데요. 아무튼 영계 통신 동아리는 오란고교 호스트부의 타마키 선배 같은 재력과 성격을 가진 김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유지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넘쳐날 정도의 돈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는 립 서비스마저 최상급.
독자를 뿜게하는 오글거림을 갖춘 김원의 초대로 동아리 부원들은 그의 별장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화장이라는 저택의 오래된 살인사건과 만나게 됩니다. 영혼의 소행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밀실 사건에 관심을 두는데요. 역시 영계 통신 동아리 답죠. 이곳에서 영혼을 만나려 하나 봅니다. 그러나 영혼에 의한 사건이 아니라 사람에 의한 사건이라는 의심이 깊어지는데요... 과연 그들은 사건을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요?
이 소설은 미스터리물입니다만, 좀 가볍습니다. 사건 자체가 가벼운 건 아닌데요. 생각하고 추리해야 하는 맛은 없습니다. 하지만 읽어나가는 맛은 아주 좋아요. 중간의 유머 코드도 제법 있고요. 무리수를 둔 곳도 좀 보이기는 합니다만, 귀여우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니, 작가 말고 소민이요.
아까부터 이 책이 재미있다, 아쉽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읽으라는 말이냐 말라는 말이냐...
글쎄요. 다만, 아쉬운 점이 좀 보완되어서 시리즈물로 나와도 좋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