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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성 ㅣ 스토리콜렉터 51
혼다 테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961년 예일대의 밀그램 교수는 권위를 가진 사람으로부터 부여된 불법적인 지시에 대하여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에 대해 연구를 하다가 직접 실험해보기로 합니다. 징벌에 의한 학습효과를 알아본다는 테마를 걸고 실험에 참가할 사람들을 모집했는데요. 참가자를 둘로 나누어 한쪽은 선생, 다른 한쪽은 학생의 역할을 맡겼습니다. 그렇지만 학생 쪽은 미리 섭외해 둔 배우들이었죠. 교사가 학생에게 문제를 내고 틀렸을 경우 전기 충격을 가하게 했는데요. 버튼은 교사가 누릅니다. 사실 학생에게는 가짜 전기 충격장치가 붙어있었고, 버튼을 누르면 감전된 것 같은 연기를 하라고 했었습니다. 처음엔 가벼운 찌릿함 정도의 15볼트의 전압이었지만 나중엔 450볼트까지 올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실험이었습니다. 과연 그들은 겨우 4달러의 소득을 위해 타인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는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렸을까요? 몇몇은 그렇게 했고, 몇몇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라는 말에 65%의 사람들이 450 볼트 이상 전압을 올렸습니다. 학생(역할의 사람)이 비명을 지르고 괴로워하는 것을 알면서도요. 내 잘못이 아니야, 나는 어쩔 수 없었어. 명령을 따랐을 뿐이야. 라는 생각으로 이런 일을 행했던 것인데요. 불법적이거나 반인륜적인 명령이라도 권위가 있는 사람의 말이라면 따른다는 걸 실험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도저히 이런 짓은 할 수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사람도 있었다는 거죠.
또 하나의 유명한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 있습니다. 1971년 행해진 이 실험은 참가자를 두 그룹 - 교도관과 죄수- 로 나누어 가짜 감옥 생활을 하게 했는데, 처음엔 역할놀이를 하는 것처럼 즐기더니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역할에 심취, 교도관들은 - 실제로 감옥에서도 저럴까 싶은 - 가혹 행위를 합니다. 상황을 지나치게 즐기는 거죠. 갑갑한 공간과 스트레스로 폭력성이 터져 나온 죄수 측에서 반항을 하지만 교도관들은 소화기 등을 사용해 폭동을 진압합니다. 당초 예상된 날짜를 모두 채우지 못하고 끝난 실험이었지만 - 그만큼 사태가 심각했다는 걸 말합니다 - 인지부조화와 권력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었습니다.
위의 두 가지 실험을 떠올리게 된 것은 혼다 테쓰야의 <짐승의 성> 때문이었습니다. 갇혀있는 공간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한 사람의 명령을 따르는 것만이 생존의 비결이라면 따를 수밖에 없겠지요. 상대방이 비명을 지르고 고통으로 몸부림치더라도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 자신에겐 죄가 없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저 사람이 당하는 고통이 내 것이 될 테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해야 합니다. 오늘 밤도 누군가는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그게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나만 아니면 됩니다. 그래서 스탠퍼드 감옥의 교도관처럼 변합니다. 명령을 충실히 행하는 밀그램의 선생이 되기도 합니다. 밀고하고, 잔인한 폭력을 저지르고. 이곳에서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이 조그만 세상에서의 생존에 목숨을 겁니다. 잦은 폭력에 대한 노출로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2002년 3월에 밝혀진 기타큐슈 일가족 감금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짐승의 성>은 읽는 내내 세상에, 작가가 변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잔인하고 가학적인 장면들이 상당히 묘사되어있습니다. 어쩌다 등장하는 것이 아닌,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전기 충격 장면은 만화<사채꾼 우시지마>에서도 본 적이 있기에 - 그때도 두려워하며 읽었지만 - 조금 면역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소설에의 가학행위는 만화 그 이상이었습니다. 아무리 작품을 위해서라지만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기타큐슈 일가족 감금 살인사건을 검색해서 읽어보았는데요. 실제의 사건이 소설보다도 더 잔인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혼다 테쓰야의 필력으로 읽을 만하게 다듬은 게 이 정도였구나.
장기간 학대를 받았다며 경찰에 보호를 요청한 소녀 마야의 신고로 맨션 선코트마치다 403호를 조사하러 간 경찰들은 경악합니다. 온 집안에서 풍기는 비정상적인 냄새. 방문마다 채워져있는 맹꽁이자물쇠. 자신을 학대했다고 지목한 2인조 중 한 명인 아쓰코를 그 집에서 조사차 데리고 나오는데, 아쓰코 역시 학대받은 흔적이 온몸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과 요시오가 마야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자백했는데요. 경찰 조사 결과, 그 집 욕실에서 4명의 DNA가 검출됩니다. 죽은 사람이 마야의 아버지 하나가 아니라는 거죠. 경찰의 조사, 그와는 별도로 진행되는 신고의 이야기, 아쓰코의 혼란스러운 자백 등...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멈출 수가 없습니다.
기리노 나쓰오의 <아웃1,2>에서 보았던 장면들도 오버랩되면서 정말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시신에 관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무뎌지고 무감각해지는 것인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짓이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면서 도망칠 수 없는 건 남아있는 가족들 때문일까. 이지경이 되기 전에 초반에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일까. 말도 안 되는 협박에 넘어가서 파멸에 이르는 경우는 흔하다지만 이 정도로 당하면서도 - 참아야 하는 고통에 비하면 협박의 내용은 별것도 아닌 거 같은데 - 지켜야 했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듭니다.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