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살림)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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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로맨스 소설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금껏 리뷰한 책들을 곰곰히 되짚어보아도, 어떤 독특한 테마가 없다면 (이를테면 SF나 호러 같은거요) 로맨스 소설은 읽지 않은 것 같네요.

 

보통 로맨스 소설은, 재벌이거나, 준재벌이거나 재벌 2세같은 아무튼 억 소리 나게 돈이 많고, 스포츠도 만능이고, 잘생겼으며 특히 살인미소를 지녔지만, 어쩐지 여자한테 까칠한 그런 세상에 없을 것 같은 남자와, 중산층 혹은 그 이하의 삶을 살지만,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면서 성격이 밝거나 명랑한, 시련에 굴하지 않는 그런 여자와의 얽히고 설키다가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내용으로 되어있지요. 그럴때마다 이건 신데렐라 컴플렉스가 아니라고 우기면서 여자가 주체성이 있으므로 다르다고 하지요. 뭐 그런 뻔한 스토리가 짜증나서 로맨스 소설도 안보고, 드라마도 안봅니다. 메말랐지요.

 

하지만, <미 비포 유>는 그런 뻔한 소설과는 다르다고 하는 이야기에 솔깃하여 읽기 시작했습니다. 좀 감수성이 예민해서 혹시나 울게 될까봐 - 책 표지에 그런 이야기가 있거든요. 티슈한통을 다 쓰게 된다는 - 집에서 얌전히 읽었습니다.

역시, 전 메말랐더군요. 울지는 않았어요. 

 

개인소유의 성을 가지고 있을 정도의 부자인데다가 사업재능도 있어서 잘나가던 CEO 윌은 어느날 교통사고를 당해 사지마비 환자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2년 후 다니던 카페가 문을 닫아 새 직장을 구해야했던 루는 윌의 간병인겸 친구가 되지요.

처음에는 까칠한 윌때문에 짜증이 납니다. 사실 루도 보통 성격은 아니거든요.

말하자면 꿀벌 같은 아가씨라고나 할까요? 달콤하다는 뜻이 아니고요, 재잘거리기를 좋아하고 톡톡 튀는 아가씨입니다. 패션감각도 남들 눈에 이상하게 보일정도로 남달라요.

그런데, 루에게 윌이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서 이야기에 변화가 생깁니다.

루의 남자친구 패트릭은 윌과 루의 관계를 질투하는데요. 아주 뭐 저녀석 머리는 근육으로만 되어있나, 지 생각만 하는 구나... 싶은데, 결국 막판까지 이 인간 짜증나요.

 

문제는 패트릭이 아니라 윌에게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은 온전한, 그러니까 인간으로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살 수 있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스위스에 있는 디그니타스 병원으로 가서 자신의 생을 마감하길 원했습니다.

이미 6개월전 그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으로 자살을 시도했었고, 가까스로 살아난 후 부모에게 6개월의 시간을 주고서 그 후에는 디그니타스 병원에서 안락사를 하길 원했지요. (실제로 존재하는 병원입니다.)

 

그러니까, 사방 모든게 움직이고 휘어지고 자라나고 번식하는데, 내 아들은, 내 목숨 같은 카리스마 넘치는 아름다운 청년은, 이런....... 한 덩이 나무 토막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미치도록 분노가 치밀었다. 꼼짝도 못하고 시든 채 피범벅이 되어 괴로워하고 있는 내 아들. 화초들의 아름다움이 음탕한 모욕처럼 느껴졌다.

p.157

루는 그 6개월간 고용된 자살방지 감시자였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루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합니다. 그의 곁에서 죽음을 도울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가 마음을 돌릴 수 있도록,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희망을 주자는 목표를 세웁니다. 그와 함께 할 일들을 계획하지요. 계획은 뜻대로 될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는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합니다.

마침내 윌이 사고당시에 사귀고 있었던 여자친구와 윌의 친구의 결혼식날, 루와 함께 결혼식과 피로연에 참석하고, 그 곳에서 저는 아주 작은 희망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윌의 무릎에 앉아 두팔로 그의 목을 감싸고 균형을 잡았다. 그는 거절할 수 있을까 가늠하려는 듯 내 눈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놀랍게도, 윌은 휠체어를 밀고 댄스플로어로 나가 미러볼의 반짝이는 불빛 아래에서 천천히 작은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p.386

사지마비 장애인이 아닌 한 사람의 남자로서 윌이 존재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날을 기점으로 무언가 달라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지요.


 

 

그러나, 소설은 내 마음과는 다르게 흘러갑니다. 안타까울 때도 있고, 흐뭇할때도 있고, 짜증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결말은, 흔해빠진 happily ever after는 아닙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또 다른 형태의 해피엔딩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 친구가 살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살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면, 억지로 살라고 하는건, 당신도, 나도, 아무리 우리가 그 친구를 사랑해도, 우리는 그에게서 선택권을 박탈하는 거지 같은 인간 군상의 일원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p.446

루는, 그리고 저는 마지막쯤에 이르러 깨닫습니다.

루가 윌에게 세상은 살만 한 곳이다. 지금의 이 자리를 벗어나서 힘차게 살아보라고 권했던 것은 윌이 루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는걸 말이지요. 윌은 루에게 새로운 인생을 경험시켜 주고, 그녀를 가족이나 남자에게 얶매인 존재가 아닌 자유로운 한 사람의 인간으로 당당하게 설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사실 소설을 읽는 내내 제가 신경쓰였던 것은 로맨틱한 부분이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루가 윌을 위해 외출을 계획하고, 여행을 계획할때 부딛혔던 수많은 난관들은 장애인을 배려하는 시설이나, 사람들의 태도였거든요. 과연 우리 주변은 어떻게 되어있을까... 제주는 중증 장애인들도 마음놓고 관광을 할 수 있는 곳인가하는 것을 고민하게 되더군요. 루와 윌이 네이선과 함께 떠났던 리조트처럼 언제나 안락하고 편안한 곳에서 지낼 수만 있었다면 소설의 결말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구요. 그랬더라면 둘은 모두 행복했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읽다보면 소설이라는 생각보다는 수기 같은 착각이 들어서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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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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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웃음시리즈중  하나인 <괴소소설>을 읽었습니다.

지난 번에 <흑소소설>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단숨에 읽어버렸습니다.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읽고 난 후의 감상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작정하면 이렇게 웃기는 소설도 쓸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쿠다 히데오식 유머도 좋지만, 뒤통수를 맞는 것 같은 기분으로 웃기다는 기분이 드는 히가시노 게이고 식의 유머도 만만치 않더라구요.

소설의 초반은 좀 짜증스럽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심리를 정말 잘 묘사하거든요. 아니 어쩜 저럴까.. 싶으면서도 씁쓸한 웃음이 실실 배어나오는 찰라 막판 뒤집기를 한달까요? 아무튼 허를 찔러 헉하는 사이에 푸힛하고 웃음이 나옵니다.

 

첫번째의 [우울전차]라는 단편에서는 전차안에서의 사람들의 투덜거림 궁시렁 거림이 머리위에 말 풍선처럼 둥둥 떠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자리를 양보해줬으면 하며 젊은이를 욕하는 할머니,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해주고서도 짜증내는 사람, 앞자리 아가씨의 속옷을 보려고 용쓰는 아저씨, 자리가 없다고 엉엉 우는 아이 좁다면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별별 사람들의 - 공감가는 말풍선들. 그 속으로만 궁시렁 거리는것을 눈치로는 알지만, 어짜피 입밖에 내지는 않으니까 모른척하며 예의바른 얼굴들을 하고 있는 것이겠죠?

 

두번째의 [할머니 골수팬]은 너무 웃겼습니다. 초반에는 독거노인의 외로움이 저렇게도 발산 될수도 있구나..하면서 읽었는데요. 그럴것이 혼자사는 할머니가 '스기하라 겐타로'라는 가수에게 반해서 먹을것도 안먹어가며 그의 광팬이 되고 마니까요. 하지만 점점 도를 넘어서게되고.. 끝내는 할머니에게는 비극, 저에게는 희극이 되고 마네요. 블랙 유머란 이런건가봐요.

 

나머지 단편들도 어이없고, 황당하며 웃깁니다.

 

그러나, [어느 할아버지 무덤에 향을]이라는 단편은 웃을수만은 없었습니다.

어쩐지 슬픈 생각까지 들더라니까요.

노쇠한 할아버지가 의학실험으로 점점 젊어지는 기분을 느껴, 사랑도하고 희망도 가져볼라치는데, 갑자기 급속도로 다시 진행된 노화라니... 슬프잖아요. 그냥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맞겨서 시나브로 늙어가는 것과 다시 한 번 젊음을 맛보고 나서 급속히 노화가 진행되는걸 스스로 느낀다면, 그건 더욱 큰 절망이 될 것 같아요.

 

그러나 전체적인 느낌으로는 재미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다시는 이런 유머러스 한 책을 쓰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은근히 기대하고 싶네요.

나머지, 독소소설이 남았군요.

그 책도 근시일내에 읽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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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1 밀리언셀러 클럽 6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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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이들이 잠들 무렵 도시락 공장에 출근하는 야간조가 있습니다. 주간보다 짧은 시간 근무하면서 시급이 좋기 때문에 주부들이 일하곤하는데요. 낮에 일하기보다 밤을 택해야만 했던 그녀들의 사정은 저마다 다릅니다.

 

남편이 죽은 후 병든데다가 성격마저 고약한 시어머니의 수발을 들며, 개념이라곤 없는 딸의 뒷바라지까지 해야하는 50대 중반의 요시에는 동료들에게 스승님이라고 불리우는 베테랑 직원입니다. 과거 신용금고에 근무했었지만, 지나치게 똑똑하고, 딱 부러지고 강인한 성격이라 오히려 해고당하고 만 미사코는 스스로를 어둠속에 가둔듯, 야간일을 택했고요. 남편과는 냉담, 아들은 1년째 집안에서 말하지 않습니다. 뚱뚱하고 못생긴데다가 사치를 일삼아 카드빚과 사채에 시달리는 구니코는 허영심이 대단해서 외제차를 몰고 출근을 하지요. 그러던 중, 사건이 발생합니다.  클럽 넘버원 아가씨에게 빠진것도 모자라 바라카라는 도박에 빠져 가정을 내팽개치다시피 하고, 적금마저 깨서 탕진해 버린 남편에게 항의하던 야요이가 심하게 얻어맞고 다음날엔 급기야 남편을 살해하고 맙니다.

어떡하지. 평소 똑똑하고 딱 부러지는 성격인 미사코에게 전화를 합니다. 미사코는 망설였지만, 알수없는 이유로 인해 시체 유기를 돕기로 결정합니다.

 

미사코는 잠긴 트렁크를 열었다. 그리고 트렁크 뚜껑을 10센티미터 정도 들어 올리고 가만히 들여다봤다. 회색 바지와 털이 무성한 왼쪽 정강이가 보였다. 어젯밤 야요이가 아직 따스하다며 만졌던 곳이다. 피부 색깔은 창백하고 털이 말라붙은 실밥처럼 지저분해 보인다. 물체다. 단순한 물체다. 마사코는 중얼거리면서 트렁크를 닫았다.

p.122 (아웃 1권)

 

다음날, 미사코는 요시에를 끌어들여 자신의 집에서 시체를 토막냅니다. 그러다가 돈을 급하게 빌리러 온 구니코에게 들켜 함께 시체 처리를 하지요. 하지만 구니코는 개념도, 생각도 없습니다.  약속했던 대로 쓰레기장들을 돌며 쓰레기봉투에 담긴 토막 시신을 몰래 버리는 대신 공원쓰레기통에 하나씩 버립니다. 까마귀가 시신을 발견했지요.

 

수사가 계속되고 엉뚱하게도 혐의는 부인이 야요이가 아니라 죽은 남편이 드나들던 도박장과 클럽의 주인이던 사타케가 받습니다. 전날 다투는걸 본 목격자도 있을 뿐만 아니라 그는 17년전 여자를 잔인하게 능욕하면서, 고문하면서 칼로 여러번 찔러 살해한 전과가 있었으니까요.

그의 살해 회상씬은 무방비 상태로 책을 읽고 있던 저에게 충격을 줄 만큼 너무나 잔인했습니다.

어쨌든, 그는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지만, 그의 과거가 드러나는 바람에 도박장도, 클럽도 모두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쌓아온 것들이 모두 사라졌죠. 사타케는 야요이가 범인임을 확신하고 그녀에게 복수하기로 합니다.

 

한편, 구니코가 불어버린 정보로 주몬지는 마사코를 만나 예전에 같은 회사에 근무했던 인연을 들먹이며 사업을 제안합니다. 사업이란 시체 처리. 결국 마사코와 요시에는 그 사업을 받아들입니다. 동료를 돕는다는 생각으로, 요시에의 경우는 돈때문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한번의 경험은 그녀들을 점점 더 깊은 지옥으로 끌고 들어갈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들의 신변에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나고, 어쩐지 일이 이상하다고 느낀 마사코는 모두에게 주의하라고 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구니코가 살해된 시체로 그녀들 앞에 토막내어지기 위해 나타났으니까요.

 

소설을 읽으면서 어쩐지 그녀들이 들키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뿐만 아니라, 응원까지 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 무척 놀랐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녀들의 가장 큰 헛점인 구니코의 일거수 일투족은 정말 짜증이 났지요. 아니, 저 언니들 구니코를 가만 놔둘꺼야? 저것부터 어떻게 처리하는게 좋지 않겠어?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내 자신이 조금 혐오스러웠지만, 그래도 응원하게 되는걸 어쩝니까. 그러나 점점 시간이 갈 수록 다른 여자들이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응원하고 있는건 이 여자들이 아니라 마사코였구나.

마사코 힘내.

 

그녀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쫓겨난 존재 같은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행실머리때문에 자업자득이라고 생각되는 구니코 뿐만 아니라, 야요이, 요시에, 그리고 마사코까지 일탈하고 싶지만 일탈 할 수 없는 그 무엇, 그녀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존재들에게서 그녀들이 탈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의 그런 소외됨은 그녀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브라질 혼혈 청년 가즈오의 고독도 느껴졌습니다. 성실하지만, 외롭고, 고독한 존재. 아버지의 나라 일본이지만, 다른 외모 때문에 일본인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 이건 비단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이었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는 외롭기에 한번의 일탈을 했고, 그마저 미수에 그쳤습니다만, 무척 정직하고 성실한 청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성소수자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잔인한 취향을 가졌던 사타케도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며, 긴 세월을 참아왔습니다. 그에게도 고독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자신은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에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이런 고독하고,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영혼들끼리 밤의 세계에서 얽혀들어 서로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버린건 아닌가 합니다.

게다가 이 소설을 읽는 저 마저 악에 물들여 지독한 악, 그리고 혐오스러움까지 그럴수도 있겠다고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슬퍼하게 만드는 것은 작가 기리노 나쓰오의 필력 때문일겁니다. <아임 소리 마마>를 읽을때도 잔인한 묘사, 심리묘사, 상황의 정리등으로 저를 쉼없이 조여대더니, <아웃>에서도 그러했습니다.

장면들의 우울함, 암울함, 어두움, 피투성이, 잔인하고, 사악함들이 몸서리치게 만들면서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아웃>은 무척 두려운 소설이었습니다.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까 이것으로 됐다고 마사코는 생각한다. 양달의 데워진 돌멩이를 뒤집으면 습하고 차가운 흙이 나온다. 지금 자신은 차분히 그 어두움을 맛보고 있다. 흙에 온기는 없더라도 그림고 편안하다. 마치 둥글게 몸을 만 벌레 같다. 그렇다. 자신은 벌레가 된 것이다.

p.108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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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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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 <달리기를 말할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제목을 좀 줄여줄 생각은 없으셨는지- 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하자면 회고록입니다. 달리기라는 것에 중심을 잡고 지나간 과거를 잘 챙겨보는 그런 책이지요. 어쩌면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달리기로 결심한 1982년 그는 서른 세살이었고, 책상앞에서 앉아서 집필하긴 하지만 사실은 정신과 육체노동을 합한 것 같은 그런 온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만 하는 소설쓰기에는 강한 체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달리기를 시작합니다. 자신의 의지와 러닝화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운동. 차차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 몸도 달리기에 적합한 체형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달리기 위해 금연도 하게 되었고요. 그 날 이후 지금껏 그는 달리고 있습니다. 예술가는 퇴폐적이라거나 올빼미형 인간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해가 뜰때 일어나고, 해가 지면 되도록 일찍 자는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그로 인해 조금은 사회생활에 지장이 생기긴 했슴니다만, 긴 안목으로 보자면 향락이라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기에 하루키는 아침형인간으로, 계속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나 자신에 관해 말한다면, 나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자연스럽게, 육치적으로, 그리고 실무적으로, 얼마만큼, 어디까지 나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이면 좋을 것인가? 얼마만큼, 어디까지 나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이면 좋을 것인가? 얼마만큼의 휴양이 정당하고 어디서부터가 지나친 휴식이 되는가? 어디까지가 타당한 일관성이고 어디서부터가 편협함이 되는가? 얼마만큼 외부의 풍경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얼마만큼 내부에 깊이 집중하면 좋은가?

p. 126

 

지난 번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들중 하나를 읽었을 때도 느꼈지만, 하루키의 달리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쩐지 저도 달리고 싶다는 충동이 입니다. 하지만, 마음만 그렇다는 이야기. 액션 영화를 보고 나오면 어쩐지 나도 휙휙 날아다니면서 저 정도 액션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지만 (앗? 남자 한정이었나요?... 저는 그렇던데요) 실상은 굴러다니는 것이 빠른 몸매를 가져서 슬픈, 그런 기분입니다.

 

뭐. 그런 저이니까.

응원이나 할까요?

무라카미 하루키 선생님. 화이팅입니다.

달리기도, 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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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가들 모중석 스릴러 클럽 8
데이비드 모렐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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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목에 건설을 하다가만, 그러니까 버려진 건물이 있었습니다. 그 건물을 아지트라고 부르면서 종종 놀다오곤 했지요. 으스스하거나 무섭다는 생각은 전혀하지 않았습니다.  건물을 탐험하기도 하고, 구석에서 공기 놀이도하고 그러면서 놀았었지요.지금 생각하면 철근이 여기저기 튀어나와있는 위험한 콘크리트 덩어리인 건물이었는데요. 위험한 짓을 잘도 했다고 생각듭니다.

그런데, 철모르는 어린아이들의 건물탐험보다 더 위험한 행동을 하는 어른들이 있었네요. 저희처럼 짓다가 버려진 건물이 아닌, 실제로 사용되다가 버려진 건물에 잠입해서 그 건물을 살펴보고 짜릿해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도시탐험가들>이지요. 스스로를 Creepers라고 부르는 사람들인데요.  그 건물의 역사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을 찾는 탐험을 합니다. 사실 불법이지요. 주거침입이니까요. 버려졌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소유일텐데- 개인이나 혹은 단체나 정부 - 몰래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문제이지요.

 

이런 크리퍼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을 읽었습니다.  데이비드 모렐의 <도시탐험가들>인데요. 데이비드 모렐은 영화 <람보>의 원작인 <퍼스트 블러드>를 쓴 작가입니다. 모던 액션계의 아버지라고 불리웁니다. 그는 이 도시탐험가들이라는 소설로 2006년 브램 스토커 상을 받았지요. 읽고 보니 상 받을 만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8시간의 사투.이야기는 시간의 흐름대로 진행이 되는데요. 긴장의 연속입니다.

 

뉴욕주립대 역사학 교수이면서 리더인 콩클린 교수, 뉴욕의 고등학교 교사인 비니, 코라와 릭 부부, 그리고 뉴욕 선데이 매거진 기고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야기의 주인공 프랭크 발렌저는 패러건 호텔을  탐험합니다.

패러건 호텔은 유전적 혈우병으로 광장공포증이 있는 칼라일에 의해 건축된 피라미드 형태의 건축물인데요. 곧 부숴질 예정입니다. 외부에서의 각종 시위행렬에 의해 건물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자 안쪽에서 닫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덧문 덕분에 건물의 내부는 어두침침하지만 거의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듯 합니다.

 

다섯명의 크리퍼스는 지하통로를 이용해 건물로 잠입합니다. 패러건 호텔은 갇혀있음과 동시에 열려있는 장소이지요. 그들이 처음 맞딱드린 것은 알비노, 돌연변이 동물들. 귀가 세개인 쥐나 다리가 다섯개 달린 고양이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소설이 뮤턴트 물인가보다.. 했습니다. 마지막엔 몬탁괴물 같은 것과 싸우는 것 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했지요.

 

하지만 이야기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그들은 세명의 괴인들과 맞딱뜨리지요. 그 세명은 크리퍼스들을 뒤쫓아 오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콩클린 교수와 발렌저가 건물에 숨겨진 금화를 노리고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발렌저도 만만한 인물은 아닙니다. 고약한 일을 겪어서 공포증이 있긴 하지만, 이래뵈도 걸프전 특수부대원 출신이거든요. 발렌저가 그들을 모두 구출 할 수 있을까요. 대형 금고 안에서 아만다라는 젊은 여자가 발견되면서부터 이야기는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그들이 싸워야 하는 것은 뮤턴트도 아니었고, 그 세명의 강도도 아니었습니다. 제3의 인물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형식이라 한시도 긴장을 늦출수가 없어서 가독력도 좋고, 서스펜스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요.

 

하지만, 다 읽고 난 후에는 그럼 그 돌연변이들은 뭐지? 단순히 폐쇄된 공간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것들이 생겨난 건가? 그냥 기괴함을 연출하기 위한 장치인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뭔가 이야기가 초반의 설정과는 다르게 진행된 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그 곳에서 동물실험을 했었다거나, 아니면 약물을 함부로 버렸다거나.. 하는 등의 이야기는 없었는데요. 단순히 폐쇄된 건물에서 그렇게 돌연변이들이 생겨난것이라고 한다면 설득력은 좀 부족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느낌으로 볼때는 무척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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