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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ㅣ 미 비포 유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저는 로맨스 소설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금껏 리뷰한 책들을 곰곰히 되짚어보아도, 어떤 독특한 테마가 없다면 (이를테면 SF나 호러 같은거요) 로맨스 소설은 읽지 않은 것 같네요.
보통 로맨스 소설은, 재벌이거나, 준재벌이거나 재벌 2세같은 아무튼 억 소리 나게 돈이 많고, 스포츠도 만능이고, 잘생겼으며 특히 살인미소를 지녔지만, 어쩐지 여자한테 까칠한 그런 세상에 없을 것 같은 남자와, 중산층 혹은 그 이하의 삶을 살지만,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면서 성격이 밝거나 명랑한, 시련에 굴하지 않는 그런 여자와의 얽히고 설키다가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내용으로 되어있지요. 그럴때마다 이건 신데렐라 컴플렉스가 아니라고 우기면서 여자가 주체성이 있으므로 다르다고 하지요. 뭐 그런 뻔한 스토리가 짜증나서 로맨스 소설도 안보고, 드라마도 안봅니다. 메말랐지요.
하지만, <미 비포 유>는 그런 뻔한 소설과는 다르다고 하는 이야기에 솔깃하여 읽기 시작했습니다. 좀 감수성이 예민해서 혹시나 울게 될까봐 - 책 표지에 그런 이야기가 있거든요. 티슈한통을 다 쓰게 된다는 - 집에서 얌전히 읽었습니다.
역시, 전 메말랐더군요. 울지는 않았어요.
개인소유의 성을 가지고 있을 정도의 부자인데다가 사업재능도 있어서 잘나가던 CEO 윌은 어느날 교통사고를 당해 사지마비 환자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2년 후 다니던 카페가 문을 닫아 새 직장을 구해야했던 루는 윌의 간병인겸 친구가 되지요.
처음에는 까칠한 윌때문에 짜증이 납니다. 사실 루도 보통 성격은 아니거든요.
말하자면 꿀벌 같은 아가씨라고나 할까요? 달콤하다는 뜻이 아니고요, 재잘거리기를 좋아하고 톡톡 튀는 아가씨입니다. 패션감각도 남들 눈에 이상하게 보일정도로 남달라요.
그런데, 루에게 윌이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서 이야기에 변화가 생깁니다.
루의 남자친구 패트릭은 윌과 루의 관계를 질투하는데요. 아주 뭐 저녀석 머리는 근육으로만 되어있나, 지 생각만 하는 구나... 싶은데, 결국 막판까지 이 인간 짜증나요.
문제는 패트릭이 아니라 윌에게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은 온전한, 그러니까 인간으로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살 수 있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스위스에 있는 디그니타스 병원으로 가서 자신의 생을 마감하길 원했습니다.
이미 6개월전 그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으로 자살을 시도했었고, 가까스로 살아난 후 부모에게 6개월의 시간을 주고서 그 후에는 디그니타스 병원에서 안락사를 하길 원했지요. (실제로 존재하는 병원입니다.)
그러니까, 사방 모든게 움직이고 휘어지고 자라나고 번식하는데, 내 아들은, 내 목숨 같은 카리스마 넘치는 아름다운 청년은, 이런....... 한 덩이 나무 토막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미치도록 분노가 치밀었다. 꼼짝도 못하고 시든 채 피범벅이 되어 괴로워하고 있는 내 아들. 화초들의 아름다움이 음탕한 모욕처럼 느껴졌다.
p.157
루는 그 6개월간 고용된 자살방지 감시자였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루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합니다. 그의 곁에서 죽음을 도울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가 마음을 돌릴 수 있도록,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희망을 주자는 목표를 세웁니다. 그와 함께 할 일들을 계획하지요. 계획은 뜻대로 될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는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합니다.
마침내 윌이 사고당시에 사귀고 있었던 여자친구와 윌의 친구의 결혼식날, 루와 함께 결혼식과 피로연에 참석하고, 그 곳에서 저는 아주 작은 희망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윌의 무릎에 앉아 두팔로 그의 목을 감싸고 균형을 잡았다. 그는 거절할 수 있을까 가늠하려는 듯 내 눈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놀랍게도, 윌은 휠체어를 밀고 댄스플로어로 나가 미러볼의 반짝이는 불빛 아래에서 천천히 작은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p.386
사지마비 장애인이 아닌 한 사람의 남자로서 윌이 존재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날을 기점으로 무언가 달라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지요.
그러나, 소설은 내 마음과는 다르게 흘러갑니다. 안타까울 때도 있고, 흐뭇할때도 있고, 짜증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결말은, 흔해빠진 happily ever after는 아닙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또 다른 형태의 해피엔딩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 친구가 살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살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면, 억지로 살라고 하는건, 당신도, 나도, 아무리 우리가 그 친구를 사랑해도, 우리는 그에게서 선택권을 박탈하는 거지 같은 인간 군상의 일원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p.446
루는, 그리고 저는 마지막쯤에 이르러 깨닫습니다.
루가 윌에게 세상은 살만 한 곳이다. 지금의 이 자리를 벗어나서 힘차게 살아보라고 권했던 것은 윌이 루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는걸 말이지요. 윌은 루에게 새로운 인생을 경험시켜 주고, 그녀를 가족이나 남자에게 얶매인 존재가 아닌 자유로운 한 사람의 인간으로 당당하게 설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사실 소설을 읽는 내내 제가 신경쓰였던 것은 로맨틱한 부분이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루가 윌을 위해 외출을 계획하고, 여행을 계획할때 부딛혔던 수많은 난관들은 장애인을 배려하는 시설이나, 사람들의 태도였거든요. 과연 우리 주변은 어떻게 되어있을까... 제주는 중증 장애인들도 마음놓고 관광을 할 수 있는 곳인가하는 것을 고민하게 되더군요. 루와 윌이 네이선과 함께 떠났던 리조트처럼 언제나 안락하고 편안한 곳에서 지낼 수만 있었다면 소설의 결말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구요. 그랬더라면 둘은 모두 행복했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읽다보면 소설이라는 생각보다는 수기 같은 착각이 들어서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