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 1 밀리언셀러 클럽 6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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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이들이 잠들 무렵 도시락 공장에 출근하는 야간조가 있습니다. 주간보다 짧은 시간 근무하면서 시급이 좋기 때문에 주부들이 일하곤하는데요. 낮에 일하기보다 밤을 택해야만 했던 그녀들의 사정은 저마다 다릅니다.

 

남편이 죽은 후 병든데다가 성격마저 고약한 시어머니의 수발을 들며, 개념이라곤 없는 딸의 뒷바라지까지 해야하는 50대 중반의 요시에는 동료들에게 스승님이라고 불리우는 베테랑 직원입니다. 과거 신용금고에 근무했었지만, 지나치게 똑똑하고, 딱 부러지고 강인한 성격이라 오히려 해고당하고 만 미사코는 스스로를 어둠속에 가둔듯, 야간일을 택했고요. 남편과는 냉담, 아들은 1년째 집안에서 말하지 않습니다. 뚱뚱하고 못생긴데다가 사치를 일삼아 카드빚과 사채에 시달리는 구니코는 허영심이 대단해서 외제차를 몰고 출근을 하지요. 그러던 중, 사건이 발생합니다.  클럽 넘버원 아가씨에게 빠진것도 모자라 바라카라는 도박에 빠져 가정을 내팽개치다시피 하고, 적금마저 깨서 탕진해 버린 남편에게 항의하던 야요이가 심하게 얻어맞고 다음날엔 급기야 남편을 살해하고 맙니다.

어떡하지. 평소 똑똑하고 딱 부러지는 성격인 미사코에게 전화를 합니다. 미사코는 망설였지만, 알수없는 이유로 인해 시체 유기를 돕기로 결정합니다.

 

미사코는 잠긴 트렁크를 열었다. 그리고 트렁크 뚜껑을 10센티미터 정도 들어 올리고 가만히 들여다봤다. 회색 바지와 털이 무성한 왼쪽 정강이가 보였다. 어젯밤 야요이가 아직 따스하다며 만졌던 곳이다. 피부 색깔은 창백하고 털이 말라붙은 실밥처럼 지저분해 보인다. 물체다. 단순한 물체다. 마사코는 중얼거리면서 트렁크를 닫았다.

p.122 (아웃 1권)

 

다음날, 미사코는 요시에를 끌어들여 자신의 집에서 시체를 토막냅니다. 그러다가 돈을 급하게 빌리러 온 구니코에게 들켜 함께 시체 처리를 하지요. 하지만 구니코는 개념도, 생각도 없습니다.  약속했던 대로 쓰레기장들을 돌며 쓰레기봉투에 담긴 토막 시신을 몰래 버리는 대신 공원쓰레기통에 하나씩 버립니다. 까마귀가 시신을 발견했지요.

 

수사가 계속되고 엉뚱하게도 혐의는 부인이 야요이가 아니라 죽은 남편이 드나들던 도박장과 클럽의 주인이던 사타케가 받습니다. 전날 다투는걸 본 목격자도 있을 뿐만 아니라 그는 17년전 여자를 잔인하게 능욕하면서, 고문하면서 칼로 여러번 찔러 살해한 전과가 있었으니까요.

그의 살해 회상씬은 무방비 상태로 책을 읽고 있던 저에게 충격을 줄 만큼 너무나 잔인했습니다.

어쨌든, 그는 결국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지만, 그의 과거가 드러나는 바람에 도박장도, 클럽도 모두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쌓아온 것들이 모두 사라졌죠. 사타케는 야요이가 범인임을 확신하고 그녀에게 복수하기로 합니다.

 

한편, 구니코가 불어버린 정보로 주몬지는 마사코를 만나 예전에 같은 회사에 근무했던 인연을 들먹이며 사업을 제안합니다. 사업이란 시체 처리. 결국 마사코와 요시에는 그 사업을 받아들입니다. 동료를 돕는다는 생각으로, 요시에의 경우는 돈때문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한번의 경험은 그녀들을 점점 더 깊은 지옥으로 끌고 들어갈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들의 신변에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나고, 어쩐지 일이 이상하다고 느낀 마사코는 모두에게 주의하라고 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구니코가 살해된 시체로 그녀들 앞에 토막내어지기 위해 나타났으니까요.

 

소설을 읽으면서 어쩐지 그녀들이 들키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뿐만 아니라, 응원까지 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 무척 놀랐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녀들의 가장 큰 헛점인 구니코의 일거수 일투족은 정말 짜증이 났지요. 아니, 저 언니들 구니코를 가만 놔둘꺼야? 저것부터 어떻게 처리하는게 좋지 않겠어?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내 자신이 조금 혐오스러웠지만, 그래도 응원하게 되는걸 어쩝니까. 그러나 점점 시간이 갈 수록 다른 여자들이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응원하고 있는건 이 여자들이 아니라 마사코였구나.

마사코 힘내.

 

그녀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쫓겨난 존재 같은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행실머리때문에 자업자득이라고 생각되는 구니코 뿐만 아니라, 야요이, 요시에, 그리고 마사코까지 일탈하고 싶지만 일탈 할 수 없는 그 무엇, 그녀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존재들에게서 그녀들이 탈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의 그런 소외됨은 그녀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브라질 혼혈 청년 가즈오의 고독도 느껴졌습니다. 성실하지만, 외롭고, 고독한 존재. 아버지의 나라 일본이지만, 다른 외모 때문에 일본인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 이건 비단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이었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는 외롭기에 한번의 일탈을 했고, 그마저 미수에 그쳤습니다만, 무척 정직하고 성실한 청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성소수자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잔인한 취향을 가졌던 사타케도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며, 긴 세월을 참아왔습니다. 그에게도 고독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자신은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에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이런 고독하고,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영혼들끼리 밤의 세계에서 얽혀들어 서로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버린건 아닌가 합니다.

게다가 이 소설을 읽는 저 마저 악에 물들여 지독한 악, 그리고 혐오스러움까지 그럴수도 있겠다고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슬퍼하게 만드는 것은 작가 기리노 나쓰오의 필력 때문일겁니다. <아임 소리 마마>를 읽을때도 잔인한 묘사, 심리묘사, 상황의 정리등으로 저를 쉼없이 조여대더니, <아웃>에서도 그러했습니다.

장면들의 우울함, 암울함, 어두움, 피투성이, 잔인하고, 사악함들이 몸서리치게 만들면서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아웃>은 무척 두려운 소설이었습니다.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까 이것으로 됐다고 마사코는 생각한다. 양달의 데워진 돌멩이를 뒤집으면 습하고 차가운 흙이 나온다. 지금 자신은 차분히 그 어두움을 맛보고 있다. 흙에 온기는 없더라도 그림고 편안하다. 마치 둥글게 몸을 만 벌레 같다. 그렇다. 자신은 벌레가 된 것이다.

p.108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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