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
시마자키 도손 지음, 노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다카기 아키미쓰의 <파계재판>을 통해 신평민에 대한 차별로 인해 자신이 천출임이 드러날까 노심초사했던 주인공을 보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분명히 존재했던 출신상의 문제. 지금도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근본'이라는 것이 발목을 잡고 편견을 피할 수 없게합니다. <파계재판>에서는 시마자키 도손의 <파계>를 언급하며, 모티브가 그 곳에서 나왔음을 이야기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파계>에서는 주인공 우시마쓰가 아버지의 당부와 현실속에서 어떤 갈등을 일으키며 어떤 길을 걷는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아버지는 또 덧붙여서, 세상에 나가 출세하려는 백정 자식의 비결-유일한 희망, 유일한 방법, 그것은 오직 자신의 신분을 감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설령 어떤 경우를 당하더라도,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결코 백정이라고 고백하지 마라. 한때의 분노나 비애로 이 훈계를 잊으면 그때는 사회에서 버려지는 거라 생각해라" 하고 아버지는 가르쳤던 것이다.

p.16

 

이 계율은 우시마쓰가 간직한 단 하나의 계율이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초등선생으로 근무하고 있지만 백정집안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그야말로 끝입니다. 감히 백정 주제에 누굴 가르치려 드냐며 돌을 던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시마쓰가 존경해 마지 않는 선생이자 선배인 이노코 렌타로는 다릅니다. '나는 백정이다.'라고 당당히 밝히므로써 백정이라는 것은 신분에 지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주장하며 오히려 신지식인으로서 존경받을 수 있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자신도 그처럼 당당하고 싶지만, 세상의 눈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숙집에 백정이 있음이 발각되었을때 우시마쓰는 자신도 덩달아 들통날까봐 렌게 사로 숙소를 옮깁니다. 그 곳에서 퇴직 교사의 딸 오시호를 알게되고 마음을 두지만, 그녀의 가문은 무사 가문, 감히 자신의 마음을 알릴 수 없습니다. 메이지 유신 후 일본의 세계급 무사, 스님, 천출은 유신 전과 달라졌습니다. 존경받던 무사와 스님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가문은 있되 富나 德은 부족한 사람이 되었고 천출은 새로이 姓을 부여하고 新平民으로 승격되었으나 타인의 눈엔 여전히 그게 그거였으니 뜻이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도 실상은 그렇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러니 오시호의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하고 자신이 아무리 지적이고 단정하여 마음씀이 선비같아도 감히 손 내밀수 없는 상대인 것이지요.

 

우시마쓰의 아버지는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관리하던 씨소의 뿔에 찔려 돌아가시고 말았죠. 우시마쓰는 고향에서 만난 렌타로에게 자신도 백정출신임을 이야기하려하지만, 아버지의 계율이 그를 막았습니다. "우시마쓰. 너는 아비를 버릴 셈이냐." 이제는 어린아이도 아닌데다가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시고 안계신데도 아버지의 말은 그의 마음을 꾹 누르고 있었습니다.

무정한 세상에 분노하는 렌타로를 따르고 싶은 마음과 세상을 따르라던 아버지의 마음. 그 속에서 갈등하는 것입니다. 사건은 묘하게 진행되어 우시마쓰의 주변에서 그가 백정 출신이라는 소문이 들기시작합니다. 소문의 근원은 대의원 선거에 출마 예정인 다카야기로, 자신의 부인 - 백정 출신 대부호의 딸 - 의 출신을 비밀로 해달라며 우시마쓰를 찾아갔으나 우시마쓰의 말을 오해하여 소문을 낸 것 같습니다.

 

들통날 것인가. 아니면 소문이 퍼지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는 우시마쓰의 고백이 먼저일 것인가. 만일 고백을 한다면, 지금 껏 그를 따르던 아이들이 그를 비난할지도 모르고, 학생때부터 절친했던 긴노스케도 자신을 멸시할것 같습니다. 오시호 역시 그럴테지요.

소설 속의 누구보다 마음 착하고 인정있는 우시마쓰의 내적, 외적 갈등에 제 마음도 덩달아 복잡해졌습니다. 그리고 그가 드디어 '파계'하며 무릎을 꿇었을 때 제 시간도 멈춘 듯 했습니다. 아팠습니다. 슬펐습니다.

 

 이제와서야 우시마쓰는 후회했다. 왜 자신은 학문을 해서 바른것과 자유로운 것을 좇는 사상을 가지게 되었을까?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몰랐다면 달게 세상의 경멸을 받고 있었을 텐데. 왜 나는 사람 같은 것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들과 산을 뛰어다니는 짐승으로 태어났다면 평생 아무런 괴로움도 모르고 지낼 수 있으련만.

p.309

 

이 소설은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정말로 그가 행복하게 되었을지는 아무로 모릅니다. 다만, 그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그가 백정이라는 이유로 그를 버리지 않았으며 '그'자신의 의미로 그를 대했습니다. 그것이 시대의 변화이며, 인식의 변화로 가는 첫걸음이 아닐까요?

 

** 해설을 읽고나니 제 리뷰가 작가의 의도와 다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읽었던 파계는 위와 같았습니다.

**이 책은 일본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작이며, 나쓰메 소세키가 '명작'으로 추천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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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초등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앉아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다들 고민도 없고 활기차 보이지만, 학원 선생님과 엄마에게 혼날 - 아이다운 고민 외에도 벌써부터 인생의 무게와 삶의 버거움에 한숨을 쉬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 그랬고, 제 딸이 그렇기에. 하지만 절망하는 대신 즐기는 법을 익히고 나면 삶을 부드럽게 타 넘어갈 줄 알게 되는데, 그전까지는 너무나 무겁고 고됩니다. 게다가 어린 시절의 하루는 얼마나 길던가요. 지금은 친구를 만나 한 시간을 논다고 하면 아주 잠깐 보고 돌아오는 것이지만, 아이 때는 한 시간이면 오만가지를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아이에게 고난이 있다면 어른보다 더 괴로울 것입니다. 특히나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문제로 인한 것이라면 더 한데, 실제로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게 많지 않은 나이 아니었던가요. 그러니 아이를 너무 어리게, 걱정 따윈 없는 존재라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평탄하게 살아온 어른보다 더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미치오 슈스케의 <달과 게>에 나오는 세 명의 중심인물 - 5학년 동급생들도 각자의 고민이 있었습니다. 작년에 자신의 병명도 모르고 시름시름 앓다가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하는 신이치는 아직 아버지와의 추억이 가시기도 전에 다른 상대와 데이트하는 엄마가 야속합니다. 엄마는 혹시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 싶어 몰래 데이트를 하는 것이었겠지만, 신이치의 마음은 불편합니다. 학교에서는 전학생이라는 이유로 따돌림당하는데, 친구라곤 하루야라는 같은 날 전학 온, 간사이 사투리를 쓰는 녀석 하나뿐입니다. 하루야의 아버지는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는데, 수입은 들쭉날쭉, 술을 마시고 때로는 맨정신에 하루야를 때리거나 굶깁니다. 학대하는 것이죠.

둘은 단짝입니다. 외로운 둘이는 소라게를 라이터로 달궈 도망쳐 나온 소라게를 소라검님이라 부르며 소원을 빌고 태워 죽이는 다소 잔인한 놀이를 하는데, 소라검님은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줍니다. - 사실은 하루야가 신이치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루미. 나루미의 엄마는 십 년 전 신이치의 할아버지가 모는 배를 탔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신이치에게 다정하게 대해줍니다. 그러나 나루미의 아빠와 신이치 엄마의 데이트는 두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고 나루미는 순수하지 못한 눈으로 염탐하듯 신이치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이치는 나루미와 하루야의 사이를 질투하기도 하고, 단짝인 둘의 사이에도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지요.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는 이러다 어떻게 되는 건 아닌가 하며 심장을 졸이면서 읽었습니다.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은 <등의 눈>이 처음이라지만, 저는 애초에 <술래의 발소리>로 시작했었기에 그의 책이라면 어느 정도 긴장을 하며 읽습니다. <달과 게>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아이들이 소라게를 가지고 노는 모습이 잔인하게 느껴질 뿐 한적한 시골에서 그들이 겪은 이야기들이라 약간 어깨에 힘을 빼고 턱을 괴고선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묘사는 과하지 않았고, 어린아이들을 지나치게 어른의 영역으로 끌어들이지 않은 그의 필력에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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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동 레시피
신경숙 지음, 백은하 그림 / 소모(SOMO)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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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저는 요리 만화를 좋아하는데요, 요리인들의 노력과 장인 정신도 보기 좋지만, 손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한 그릇의 음식을 만났을 때, 저역시 치유받는 기분입니다. 라따뚜이의 까칠하고 비쩍마른 평론가가 라따뚜이를 맛보고 한 줄기 빛이 내리는 느낌과 더불어 엄마를 떠올리며 밝은 모습으로 변하는 장면은 우습기도하면서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런가하면 '헤븐' 이라는 만화가 있는데 묘지에 레스토랑을 차려놓고 경영하는 - 요리만화라기보다는 감성 코믹이지만- 독특한 오너가 있는 레스토랑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다 풀어내라면 바텐더, 소물리에르등의 만화까지 범위가 넓어지면서 죄다 늘어놓아야 할텐데, 그러자면 끝이 없을 듯 합니다.

 

<효자동 레시피>라는 책은 효자동 골목 한옥을 고쳐 운영하는 '레서피'라는 레스토랑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이나 만화는 아니고, 실제의 레스토랑인데 총 좌석 수가 16석 밖에 안되는 작은 레스토랑이지만 따뜻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심야식당'이 작은 선술집이라 더 정이 가듯이 '레서피'도 작고 아늑한 문위기이기에 손님들과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완벽해 보이는 카리스마 쉐프의 요리는 아니지만 정성을 담은 음식에 기뻐했나봅니다. 영업초기 스텝의 이중 예약 실수에서도 손님은 중요한 교훈을 주었습니다. 그 교훈을 바탕으로 잘 성장할 수도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질책을 교훈으로 삼은 주인장의 태도도 좋았고, 그 후에도 레스토랑에 실망하지 않고 계속 찾아주며 조언한 손님도 멋있습니다. 어떤 손님은 새우 샌드위치의 허전한 맛을 보충한 비장의 무기를 전해주기도 했고, 멋부리지 않는 영혼을 담아내는 레스토랑으로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하는 손님도 있었습니다. 정원의 장식 개구리를 깊은 웅덩이에 파묻어 장례를 치뤄버린 어린 손님도 있었지만, 어린이 요리교실을 여는 것은 즐거웠습니다. 스텝까지 두근거리게 만든 청혼 사건도 있었고, 파스타의 늦은 서빙으로 (전적으로 레스토랑의 실수였습니다)손님을 잃은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혹은 식은 땀나는 추억과 기억을 가진 '레서피'는 긴 방학에 들어갔습니다. 손님들은 얼마나 아쉬워했을까요.이 책의 초판이 2009년. 방학이 시작된지 벌써 5~6년이 지났을텐데. 지금은 개학했을까요? 눈내리는 창문을 바라보며 따뜻한 음식과 함께 미소를 띄우며 손님을 맞이할 그들을 그려봅니다.

 

하지만, 책을 낼때 손님을 고려하듯이 독자로 고려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지나치게 작은 활자 때문에 눈이 피곤해 감성적인 수많은 사진들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피로가 지나치기 전에 얼른 읽고 끝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패스트푸드점 의자에 앉아서 햄버거 스테이크와 샐러드를 즐기는 기분이었죠. 활자의 크기가 얼마나 되느냐면, 종이 신문의 활자와 비교하면 신문의 글자는 아주 당당하게 느껴질 정도로 큽니다. 서점에서 챙겨준 책갈피의 글자와 비교했더니 겨우 비슷하네요. 웬만한 책의 주석으로 사용되는 활자의 사이즈라고 생각하셔도 과장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건 본문 글자 크기이고요, 레시피나 식재료들을 예쁘게 설명해 놓은 페이지는 사전의 글씨크기와 비슷합니다.

 

책을 읽고나니 눈주위가 부었습니다. 후유증이 상당하네요. 제가 이정도이니 노인은 읽기를 아예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책은 좋습니다. 다만 읽으시려면 눈이 건강하신 분들만 읽으시길.

 

저는 2012년 9월 초판 17쇄 발행된 책을 읽었습니다. 그간 눈이 건강한 사람들만 책을 읽었나봅니다. 개선이 없었던 것을 보면 말이죠. 그러니 눈도 안좋으면서 읽은 제 잘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섭섭하지만.

 

교훈 하나를 얻었습니다. 책을 고를땐 반드시 글자크기고 보고 선택해야겠습니다. 저는 왼눈 잡이라 눈이 빠질 것 같습니다. 편두통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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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드롭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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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2월 말 어느 뒷골목, 어둡고 차가운 비가 거리에 내리면 몸 안에 젖어든 한기를 몰아내기 위해 바에 앉아 한잔 두 잔 들이켭니다. 바(Bar)라는 곳에는  10년도 넘게 못 가보았기에 제 머릿속에 그려지는 바는 1990년대 말에 가봤던 몇 안되는 그런 곳으로 상상됩니다. 책의 배경이 미국이니 웨스턴 바를 떠올렸지만, 2000년대의 웨스턴 바는 다소 어색할 것 같습니다. 오래된 나무 벽이 알코올과 담배에 찌들어 풍기는 냄새는 비슷할지 몰라도요. 그래서 다시 상상을 해봅니다. 코요테 어글리에 나오는 언니들의 파티가 있는 바였음 좋을 텐데, 아니면 칵테일에 나오는 - 톰 크루즈가 있는 바도 좋을 텐데, 내성적이고 말수 적은 외로운 바텐더 밥과 한때 잘 나갔던 마브의 바가 이 소설의 무대입니다.

 

눈, 비, 알코올, 혈액으로 수분함량이 높은 이 소설은 촉촉하다기보다는 눅눅해 젖은 쓰레기 냄새와 시큼하고 역한 오물 냄새가 날 지경입니다. 이런 배경에 딱 맞는 주인공 밥은 외롭습니다. 매주 성당에 나가므로 열심성도 인 것 같지만 영성체는 받지 않습니다. 죄 씻김을 믿지 않는 것인지, 씻김을 받고 싶지 않은 건지 알 수 없지만, 외로움과 죄 속에 자신을 담구어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자란 집에서 혼자, 냄새, 기억들을 모두 싸안은 채 부질없는 희망 같은 건 걷어치우고 적어도 겉으로는 친절하고 담담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사촌이자 바의 바지사장인 마브는 한때 잘 나갔었지만, 지금은 장물업자에 불과합니다. 그의 바는 소위 말하는 드롭 바로 이용되고 있었고 실소유자는 뒤 세계를 다스리는 체첸인이었기에 그 지역의 모든 검은 돈이 이 바를 거쳐갔습니다. 밥은 바텐더 일이 마음에 들었기에 지금 같은 삶에 만족하고 있었지만 마브는 아니었습니다. 행복한 척할 뿐. 과거의 영예를 다시 누리고 싶었습니다. 그래 봤자 어둠일 텐데.

마브는 그런 영예가 돈만 있으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건지 피츠와 브리라고 불리는 피츠제럴드 형제와 작당해 자신의 바에서 5000달러를 훔쳐내게 합니다. 결국 이런 엉뚱한 행동 때문에 토레스라는 경찰의 눈에 들게 되지요. 좋은 의미가 아니라 '예의 주시'당하게 된 것인데요. 이것만 해도 피곤할 지경인데 체첸인 보스에게서도 돈을 되찾으라는 명을 받습니다.

 

밥은 마브가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것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는데, 만신창이로 피 흘리며 쓰레기통에 버려진 핏불을 치료해주고 키우게 되며 이 과정에서 나디아라는 여자와 알게 됩니다. 핏불 강아지를 키우기로 한 것은 마브가 사고 치기도 전이어서 그의 행동에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밥은 핏불에게 로코라는 이름을 주고 사랑하는데, 로코를 돌보며 그의 외로움에 따스한 빛이 스며들기 시작한 듯합니다. 마브가 한 번 밟았다고 화를 냈던 돌아가신 어머니의 깔개에 로코가 실례를 했는데도 화내지 않고 돌보는 걸 보면요.

 

그런데 어느 날 에릭 디즈라는 남자가 나타나 파렴치하게도 그 개는 자신의 개라며 나서고 협박을 합니다. 밥이 이 개를 사랑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1만 달러를 요구하네요. 애송이에 지나지 않는 것 같은데 뭘 믿고 까부는지. 소문에 의하면 교도소에도, 정신병원에도 있었고,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는 10년 전 리치 휠런 실종사건의 범인이 그라고 합니다.

 

리치 휠런 사건은 이 소설 전반에 배경처럼 깔려있습니다. 그는 10년 전 영하 15도의 날씨에 대마초를 구해오겠다며 마브의 주점을 나가서 그대로 행방불명되고 말았습니다. 그날 밤 대마초를 판 사람들 중 하나로 추정되는 자가 에릭 디즈였고, 토레스 형사는 이 실종사건과 드롭 바의 연관으로 마브의 바에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리치 휠런 사건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비중을 두고 있는데, 눈치 채이지 않을 정도로 드문드문 나옵니다. 소설의 도입 부분이 그를 추모한다는 핑계로 술을 마시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말해도 좋을까 망설였지만, 솔직하기로 결심. 네. 소설은 딱 여기까지입니다. 더 이상은 없어요. 총질하고 갱이 쫓고. 오락을 위한 소설일 뿐입니다. 남성적이고, 터프하죠. 주인공이 섬세하고 얌전한 사람이라고 해도, 강아지가 엄청 귀엽게 생겼어도. 터프한 남성 지향 소설입니다. 그러니 킬링타임용으로 무척 괜찮지요. 아쉬운 것은 데니스 루헤인의 파고들듯한 심리묘사 혹은 인물 묘사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묘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인물 하나마다 외모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에 성격도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다만, 그 인물들의 성격과 행동의 당위성을 알기 위해 책을 두 번 연속으로 읽어야만 했습니다. 어렵지 않은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요.

 

<더 드롭>이라는 영화의 원작 소설이라는 기분으로 읽었는데, 잘 못 생각했나 봅니다. 시나리오의 소설화 쪽인 것 같아요. 무언가 석연치 않은 기분입니다. 재미있다 없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이 어색하고 문맥이 어색한데, 어느 부분인지 콕 찍지 못하겠습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책을 많이 읽지 않은 번역자가 번역한 책을 읽는 기분이었습니다. 원서는 읽을 능력이 되지 않아 어디가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을 번역하신 분은 장르소설 전문 번역가이신데, <나는 전설이다>를 비롯해 제가 좋아하는 소설 다수를 번역하셨습니다. 그러니, 전체적 구조 문제인지, 데니스 루헤인 원작의 문제인지, 번역의 문제인지, 아니면 제 자신의 문제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예전에 히가시노 게이고 책 중 하나에서 느꼈던 위화감을 이 책에서도 느꼈습니다. 그때가 전체적인 덜걱거림이었다면, 이 책은 아 그래요. 딱 그런 느낌이었네요. 8,90년대 더빙된 외화를 보는 느낌. 다소 과장된 톤으로 (멀더와 스컬리의 대사처럼) 대사를 읽어보니 딱 들어맞습니다. 속상합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이 멀게 느껴질 때, 뭐라도 느껴보려고, 뭐라도 얻어보려고 발버둥 치고, 그런 버둥거림을 깨달을 때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허무합니다.

 

** 밀리언셀러 클럽 10월 우수회원으로 선정되어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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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날 2014-12-03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그 `덜걱거림`이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여러 번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만, 아마도 데니스 루헤인 특유의 문체가 한국어와 잘 맞지 않는 탓이 아닐까 하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작품 뿐만 아니라 켄지-제나로 시리즈 역시 그런 `덜걱거림`이 계속해서 가독성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스틱 리버>나 <살인자들의 섬>의 경우 그런 장애는 거의 없었어요. 이런 점으로 추측해보건대, 현대 보스턴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미스틱 리버>를 제외하고)은 생생한 말투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작가가 도입한 리얼리즘 스타일의 영향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영화로 따지면 `시네마 베리떼` 라고 해야할까요) 아직 <운명의 날>과 <리브 바이 나이트>를 읽어보지는 못 했습니다만, 이 작품들이 금주법 시대 전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하니, 비교해보면 더 확실해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이 터프한 남성 지향 소설인 것에는 동의하지만, `킬링타임용`이라는 말이 작품의 질을 깎아내리기 위해 사용되었다면, 그 점에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물론 개인적인 감상에 `동의`니 뭐니 가타부타 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것일지 모르지만...)
인물의 성격적 특성이나 행동에 당위성이 부족하다는 말씀은 일견 이해는 됩니다만, 거기에는 이 소설 특유의 드러내기 방식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다 읽으셨으니 아시겠지만,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서술트릭`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을 통한 간접적 1인칭 서술 속에서 독자는 주인공이 과거에 저지른 `그 일`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죠. 결말에 등장하는 과거의 `그 일`이 주인공의 심리 속에 일으키는 파장이 한 꺼풀 덮인 채 소설 전체에서는 일종의 안개로 드리워져 있죠. 그러므로 진행중인 사건의 전모에 대한 시야와 주인공이 그 사건에 대해 반응하는 양상 사이에 지울 수 없는 틈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간극과 낙차가 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을 앙상하고 표면적인 캐리커쳐들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소설의 세계는 밥 사이노스키의 내면 외에는 어떤 것도 자연스럽지 않은 세계인 것입니다. 이건 어떤 의미에서 놀라운 효과를 불러오는데, 이런 `평평함`에 대한 추구는, 흔히 `모던 시네마`라고 하는 영화들의 공통적인 관심사이기 때문입니다. 데니스 루헤인은 그걸 소설 속에서 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포니 2014-12-04 13:04   좋아요 0 | URL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번 소설이 참 아쉬웠습니다. 아무래도 번역의 문제라고 생각되는데요. 킬링 타임용이라는 말이 적절하지 못했던건가.. 생각을 해보았는데, 작품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없었고, 다만 말 그대로 킬링 타임이었다는 뜻이었습니다. ^^

리브바이나이트는 아주 좋았어요. 문체의 어색함도 없었고, 인물 심리에 대한 묘사와 배경에 대한 부분도요. 살인자들의 섬에서는 더욱 말할 것도 없지요.^^

 
비밀의 정원 - 안티 - 스트레스 컬러링북 조해너 배스포드 컬러링북
조해너 배스포드 지음 / 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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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링북의 열풍을 불러온 책!
도안들도 정말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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