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
시마자키 도손 지음, 노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다카기 아키미쓰의 <파계재판>을 통해 신평민에 대한 차별로 인해 자신이 천출임이 드러날까 노심초사했던 주인공을 보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분명히 존재했던 출신상의 문제. 지금도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근본'이라는 것이 발목을 잡고 편견을 피할 수 없게합니다. <파계재판>에서는 시마자키 도손의 <파계>를 언급하며, 모티브가 그 곳에서 나왔음을 이야기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파계>에서는 주인공 우시마쓰가 아버지의 당부와 현실속에서 어떤 갈등을 일으키며 어떤 길을 걷는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아버지는 또 덧붙여서, 세상에 나가 출세하려는 백정 자식의 비결-유일한 희망, 유일한 방법, 그것은 오직 자신의 신분을 감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설령 어떤 경우를 당하더라도,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결코 백정이라고 고백하지 마라. 한때의 분노나 비애로 이 훈계를 잊으면 그때는 사회에서 버려지는 거라 생각해라" 하고 아버지는 가르쳤던 것이다.

p.16

 

이 계율은 우시마쓰가 간직한 단 하나의 계율이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초등선생으로 근무하고 있지만 백정집안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그야말로 끝입니다. 감히 백정 주제에 누굴 가르치려 드냐며 돌을 던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시마쓰가 존경해 마지 않는 선생이자 선배인 이노코 렌타로는 다릅니다. '나는 백정이다.'라고 당당히 밝히므로써 백정이라는 것은 신분에 지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주장하며 오히려 신지식인으로서 존경받을 수 있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자신도 그처럼 당당하고 싶지만, 세상의 눈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숙집에 백정이 있음이 발각되었을때 우시마쓰는 자신도 덩달아 들통날까봐 렌게 사로 숙소를 옮깁니다. 그 곳에서 퇴직 교사의 딸 오시호를 알게되고 마음을 두지만, 그녀의 가문은 무사 가문, 감히 자신의 마음을 알릴 수 없습니다. 메이지 유신 후 일본의 세계급 무사, 스님, 천출은 유신 전과 달라졌습니다. 존경받던 무사와 스님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가문은 있되 富나 德은 부족한 사람이 되었고 천출은 새로이 姓을 부여하고 新平民으로 승격되었으나 타인의 눈엔 여전히 그게 그거였으니 뜻이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도 실상은 그렇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러니 오시호의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하고 자신이 아무리 지적이고 단정하여 마음씀이 선비같아도 감히 손 내밀수 없는 상대인 것이지요.

 

우시마쓰의 아버지는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관리하던 씨소의 뿔에 찔려 돌아가시고 말았죠. 우시마쓰는 고향에서 만난 렌타로에게 자신도 백정출신임을 이야기하려하지만, 아버지의 계율이 그를 막았습니다. "우시마쓰. 너는 아비를 버릴 셈이냐." 이제는 어린아이도 아닌데다가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시고 안계신데도 아버지의 말은 그의 마음을 꾹 누르고 있었습니다.

무정한 세상에 분노하는 렌타로를 따르고 싶은 마음과 세상을 따르라던 아버지의 마음. 그 속에서 갈등하는 것입니다. 사건은 묘하게 진행되어 우시마쓰의 주변에서 그가 백정 출신이라는 소문이 들기시작합니다. 소문의 근원은 대의원 선거에 출마 예정인 다카야기로, 자신의 부인 - 백정 출신 대부호의 딸 - 의 출신을 비밀로 해달라며 우시마쓰를 찾아갔으나 우시마쓰의 말을 오해하여 소문을 낸 것 같습니다.

 

들통날 것인가. 아니면 소문이 퍼지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는 우시마쓰의 고백이 먼저일 것인가. 만일 고백을 한다면, 지금 껏 그를 따르던 아이들이 그를 비난할지도 모르고, 학생때부터 절친했던 긴노스케도 자신을 멸시할것 같습니다. 오시호 역시 그럴테지요.

소설 속의 누구보다 마음 착하고 인정있는 우시마쓰의 내적, 외적 갈등에 제 마음도 덩달아 복잡해졌습니다. 그리고 그가 드디어 '파계'하며 무릎을 꿇었을 때 제 시간도 멈춘 듯 했습니다. 아팠습니다. 슬펐습니다.

 

 이제와서야 우시마쓰는 후회했다. 왜 자신은 학문을 해서 바른것과 자유로운 것을 좇는 사상을 가지게 되었을까?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몰랐다면 달게 세상의 경멸을 받고 있었을 텐데. 왜 나는 사람 같은 것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들과 산을 뛰어다니는 짐승으로 태어났다면 평생 아무런 괴로움도 모르고 지낼 수 있으련만.

p.309

 

이 소설은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정말로 그가 행복하게 되었을지는 아무로 모릅니다. 다만, 그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그가 백정이라는 이유로 그를 버리지 않았으며 '그'자신의 의미로 그를 대했습니다. 그것이 시대의 변화이며, 인식의 변화로 가는 첫걸음이 아닐까요?

 

** 해설을 읽고나니 제 리뷰가 작가의 의도와 다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읽었던 파계는 위와 같았습니다.

**이 책은 일본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작이며, 나쓰메 소세키가 '명작'으로 추천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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