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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동 레시피
신경숙 지음, 백은하 그림 / 소모(SOMO)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저는 요리 만화를 좋아하는데요, 요리인들의 노력과 장인 정신도 보기 좋지만, 손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한 그릇의 음식을 만났을 때, 저역시 치유받는 기분입니다. 라따뚜이의 까칠하고 비쩍마른 평론가가 라따뚜이를 맛보고 한 줄기 빛이 내리는 느낌과 더불어 엄마를 떠올리며 밝은 모습으로 변하는 장면은 우습기도하면서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런가하면 '헤븐' 이라는 만화가 있는데 묘지에 레스토랑을 차려놓고 경영하는 - 요리만화라기보다는 감성 코믹이지만- 독특한 오너가 있는 레스토랑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다 풀어내라면 바텐더, 소물리에르등의 만화까지 범위가 넓어지면서 죄다 늘어놓아야 할텐데, 그러자면 끝이 없을 듯 합니다.
<효자동 레시피>라는 책은 효자동 골목 한옥을 고쳐 운영하는 '레서피'라는 레스토랑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이나 만화는 아니고, 실제의 레스토랑인데 총 좌석 수가 16석 밖에 안되는 작은 레스토랑이지만 따뜻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심야식당'이 작은 선술집이라 더 정이 가듯이 '레서피'도 작고 아늑한 문위기이기에 손님들과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완벽해 보이는 카리스마 쉐프의 요리는 아니지만 정성을 담은 음식에 기뻐했나봅니다. 영업초기 스텝의 이중 예약 실수에서도 손님은 중요한 교훈을 주었습니다. 그 교훈을 바탕으로 잘 성장할 수도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질책을 교훈으로 삼은 주인장의 태도도 좋았고, 그 후에도 레스토랑에 실망하지 않고 계속 찾아주며 조언한 손님도 멋있습니다. 어떤 손님은 새우 샌드위치의 허전한 맛을 보충한 비장의 무기를 전해주기도 했고, 멋부리지 않는 영혼을 담아내는 레스토랑으로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하는 손님도 있었습니다. 정원의 장식 개구리를 깊은 웅덩이에 파묻어 장례를 치뤄버린 어린 손님도 있었지만, 어린이 요리교실을 여는 것은 즐거웠습니다. 스텝까지 두근거리게 만든 청혼 사건도 있었고, 파스타의 늦은 서빙으로 (전적으로 레스토랑의 실수였습니다)손님을 잃은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혹은 식은 땀나는 추억과 기억을 가진 '레서피'는 긴 방학에 들어갔습니다. 손님들은 얼마나 아쉬워했을까요.이 책의 초판이 2009년. 방학이 시작된지 벌써 5~6년이 지났을텐데. 지금은 개학했을까요? 눈내리는 창문을 바라보며 따뜻한 음식과 함께 미소를 띄우며 손님을 맞이할 그들을 그려봅니다.
하지만, 책을 낼때 손님을 고려하듯이 독자로 고려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지나치게 작은 활자 때문에 눈이 피곤해 감성적인 수많은 사진들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피로가 지나치기 전에 얼른 읽고 끝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패스트푸드점 의자에 앉아서 햄버거 스테이크와 샐러드를 즐기는 기분이었죠. 활자의 크기가 얼마나 되느냐면, 종이 신문의 활자와 비교하면 신문의 글자는 아주 당당하게 느껴질 정도로 큽니다. 서점에서 챙겨준 책갈피의 글자와 비교했더니 겨우 비슷하네요. 웬만한 책의 주석으로 사용되는 활자의 사이즈라고 생각하셔도 과장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건 본문 글자 크기이고요, 레시피나 식재료들을 예쁘게 설명해 놓은 페이지는 사전의 글씨크기와 비슷합니다.
책을 읽고나니 눈주위가 부었습니다. 후유증이 상당하네요. 제가 이정도이니 노인은 읽기를 아예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책은 좋습니다. 다만 읽으시려면 눈이 건강하신 분들만 읽으시길.
저는 2012년 9월 초판 17쇄 발행된 책을 읽었습니다. 그간 눈이 건강한 사람들만 책을 읽었나봅니다. 개선이 없었던 것을 보면 말이죠. 그러니 눈도 안좋으면서 읽은 제 잘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섭섭하지만.
교훈 하나를 얻었습니다. 책을 고를땐 반드시 글자크기고 보고 선택해야겠습니다. 저는 왼눈 잡이라 눈이 빠질 것 같습니다. 편두통이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