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드롭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12월 말 어느 뒷골목, 어둡고 차가운 비가 거리에 내리면 몸 안에 젖어든 한기를 몰아내기 위해 바에 앉아 한잔 두 잔 들이켭니다. 바(Bar)라는 곳에는  10년도 넘게 못 가보았기에 제 머릿속에 그려지는 바는 1990년대 말에 가봤던 몇 안되는 그런 곳으로 상상됩니다. 책의 배경이 미국이니 웨스턴 바를 떠올렸지만, 2000년대의 웨스턴 바는 다소 어색할 것 같습니다. 오래된 나무 벽이 알코올과 담배에 찌들어 풍기는 냄새는 비슷할지 몰라도요. 그래서 다시 상상을 해봅니다. 코요테 어글리에 나오는 언니들의 파티가 있는 바였음 좋을 텐데, 아니면 칵테일에 나오는 - 톰 크루즈가 있는 바도 좋을 텐데, 내성적이고 말수 적은 외로운 바텐더 밥과 한때 잘 나갔던 마브의 바가 이 소설의 무대입니다.

 

눈, 비, 알코올, 혈액으로 수분함량이 높은 이 소설은 촉촉하다기보다는 눅눅해 젖은 쓰레기 냄새와 시큼하고 역한 오물 냄새가 날 지경입니다. 이런 배경에 딱 맞는 주인공 밥은 외롭습니다. 매주 성당에 나가므로 열심성도 인 것 같지만 영성체는 받지 않습니다. 죄 씻김을 믿지 않는 것인지, 씻김을 받고 싶지 않은 건지 알 수 없지만, 외로움과 죄 속에 자신을 담구어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자란 집에서 혼자, 냄새, 기억들을 모두 싸안은 채 부질없는 희망 같은 건 걷어치우고 적어도 겉으로는 친절하고 담담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사촌이자 바의 바지사장인 마브는 한때 잘 나갔었지만, 지금은 장물업자에 불과합니다. 그의 바는 소위 말하는 드롭 바로 이용되고 있었고 실소유자는 뒤 세계를 다스리는 체첸인이었기에 그 지역의 모든 검은 돈이 이 바를 거쳐갔습니다. 밥은 바텐더 일이 마음에 들었기에 지금 같은 삶에 만족하고 있었지만 마브는 아니었습니다. 행복한 척할 뿐. 과거의 영예를 다시 누리고 싶었습니다. 그래 봤자 어둠일 텐데.

마브는 그런 영예가 돈만 있으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건지 피츠와 브리라고 불리는 피츠제럴드 형제와 작당해 자신의 바에서 5000달러를 훔쳐내게 합니다. 결국 이런 엉뚱한 행동 때문에 토레스라는 경찰의 눈에 들게 되지요. 좋은 의미가 아니라 '예의 주시'당하게 된 것인데요. 이것만 해도 피곤할 지경인데 체첸인 보스에게서도 돈을 되찾으라는 명을 받습니다.

 

밥은 마브가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것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는데, 만신창이로 피 흘리며 쓰레기통에 버려진 핏불을 치료해주고 키우게 되며 이 과정에서 나디아라는 여자와 알게 됩니다. 핏불 강아지를 키우기로 한 것은 마브가 사고 치기도 전이어서 그의 행동에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밥은 핏불에게 로코라는 이름을 주고 사랑하는데, 로코를 돌보며 그의 외로움에 따스한 빛이 스며들기 시작한 듯합니다. 마브가 한 번 밟았다고 화를 냈던 돌아가신 어머니의 깔개에 로코가 실례를 했는데도 화내지 않고 돌보는 걸 보면요.

 

그런데 어느 날 에릭 디즈라는 남자가 나타나 파렴치하게도 그 개는 자신의 개라며 나서고 협박을 합니다. 밥이 이 개를 사랑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1만 달러를 요구하네요. 애송이에 지나지 않는 것 같은데 뭘 믿고 까부는지. 소문에 의하면 교도소에도, 정신병원에도 있었고,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는 10년 전 리치 휠런 실종사건의 범인이 그라고 합니다.

 

리치 휠런 사건은 이 소설 전반에 배경처럼 깔려있습니다. 그는 10년 전 영하 15도의 날씨에 대마초를 구해오겠다며 마브의 주점을 나가서 그대로 행방불명되고 말았습니다. 그날 밤 대마초를 판 사람들 중 하나로 추정되는 자가 에릭 디즈였고, 토레스 형사는 이 실종사건과 드롭 바의 연관으로 마브의 바에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리치 휠런 사건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비중을 두고 있는데, 눈치 채이지 않을 정도로 드문드문 나옵니다. 소설의 도입 부분이 그를 추모한다는 핑계로 술을 마시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말해도 좋을까 망설였지만, 솔직하기로 결심. 네. 소설은 딱 여기까지입니다. 더 이상은 없어요. 총질하고 갱이 쫓고. 오락을 위한 소설일 뿐입니다. 남성적이고, 터프하죠. 주인공이 섬세하고 얌전한 사람이라고 해도, 강아지가 엄청 귀엽게 생겼어도. 터프한 남성 지향 소설입니다. 그러니 킬링타임용으로 무척 괜찮지요. 아쉬운 것은 데니스 루헤인의 파고들듯한 심리묘사 혹은 인물 묘사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묘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인물 하나마다 외모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에 성격도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다만, 그 인물들의 성격과 행동의 당위성을 알기 위해 책을 두 번 연속으로 읽어야만 했습니다. 어렵지 않은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요.

 

<더 드롭>이라는 영화의 원작 소설이라는 기분으로 읽었는데, 잘 못 생각했나 봅니다. 시나리오의 소설화 쪽인 것 같아요. 무언가 석연치 않은 기분입니다. 재미있다 없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이 어색하고 문맥이 어색한데, 어느 부분인지 콕 찍지 못하겠습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책을 많이 읽지 않은 번역자가 번역한 책을 읽는 기분이었습니다. 원서는 읽을 능력이 되지 않아 어디가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을 번역하신 분은 장르소설 전문 번역가이신데, <나는 전설이다>를 비롯해 제가 좋아하는 소설 다수를 번역하셨습니다. 그러니, 전체적 구조 문제인지, 데니스 루헤인 원작의 문제인지, 번역의 문제인지, 아니면 제 자신의 문제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예전에 히가시노 게이고 책 중 하나에서 느꼈던 위화감을 이 책에서도 느꼈습니다. 그때가 전체적인 덜걱거림이었다면, 이 책은 아 그래요. 딱 그런 느낌이었네요. 8,90년대 더빙된 외화를 보는 느낌. 다소 과장된 톤으로 (멀더와 스컬리의 대사처럼) 대사를 읽어보니 딱 들어맞습니다. 속상합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이 멀게 느껴질 때, 뭐라도 느껴보려고, 뭐라도 얻어보려고 발버둥 치고, 그런 버둥거림을 깨달을 때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허무합니다.

 

** 밀리언셀러 클럽 10월 우수회원으로 선정되어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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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날 2014-12-03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그 `덜걱거림`이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여러 번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만, 아마도 데니스 루헤인 특유의 문체가 한국어와 잘 맞지 않는 탓이 아닐까 하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작품 뿐만 아니라 켄지-제나로 시리즈 역시 그런 `덜걱거림`이 계속해서 가독성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스틱 리버>나 <살인자들의 섬>의 경우 그런 장애는 거의 없었어요. 이런 점으로 추측해보건대, 현대 보스턴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미스틱 리버>를 제외하고)은 생생한 말투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작가가 도입한 리얼리즘 스타일의 영향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영화로 따지면 `시네마 베리떼` 라고 해야할까요) 아직 <운명의 날>과 <리브 바이 나이트>를 읽어보지는 못 했습니다만, 이 작품들이 금주법 시대 전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하니, 비교해보면 더 확실해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이 터프한 남성 지향 소설인 것에는 동의하지만, `킬링타임용`이라는 말이 작품의 질을 깎아내리기 위해 사용되었다면, 그 점에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물론 개인적인 감상에 `동의`니 뭐니 가타부타 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것일지 모르지만...)
인물의 성격적 특성이나 행동에 당위성이 부족하다는 말씀은 일견 이해는 됩니다만, 거기에는 이 소설 특유의 드러내기 방식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다 읽으셨으니 아시겠지만,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서술트릭`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을 통한 간접적 1인칭 서술 속에서 독자는 주인공이 과거에 저지른 `그 일`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죠. 결말에 등장하는 과거의 `그 일`이 주인공의 심리 속에 일으키는 파장이 한 꺼풀 덮인 채 소설 전체에서는 일종의 안개로 드리워져 있죠. 그러므로 진행중인 사건의 전모에 대한 시야와 주인공이 그 사건에 대해 반응하는 양상 사이에 지울 수 없는 틈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간극과 낙차가 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을 앙상하고 표면적인 캐리커쳐들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소설의 세계는 밥 사이노스키의 내면 외에는 어떤 것도 자연스럽지 않은 세계인 것입니다. 이건 어떤 의미에서 놀라운 효과를 불러오는데, 이런 `평평함`에 대한 추구는, 흔히 `모던 시네마`라고 하는 영화들의 공통적인 관심사이기 때문입니다. 데니스 루헤인은 그걸 소설 속에서 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포니 2014-12-04 13:04   좋아요 0 | URL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번 소설이 참 아쉬웠습니다. 아무래도 번역의 문제라고 생각되는데요. 킬링 타임용이라는 말이 적절하지 못했던건가.. 생각을 해보았는데, 작품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없었고, 다만 말 그대로 킬링 타임이었다는 뜻이었습니다. ^^

리브바이나이트는 아주 좋았어요. 문체의 어색함도 없었고, 인물 심리에 대한 묘사와 배경에 대한 부분도요. 살인자들의 섬에서는 더욱 말할 것도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