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 - 한국과 일본, 라면에 사활을 건 두 남자 이야기
무라야마 도시오 지음, 김윤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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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서 이야, 재미있겠다고 생각한 <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입니다. 뒷면을 보니 더욱 그러하더군요. 뭔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김정운님의 추천사도 그렇고, 뭔가 산뜻하고 재미있는 미시사인건가, 라면에 대한, 인스턴트 라면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한 바가지쯤 들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 예상은 또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이 책은 재미있는, 흥미위주의 책이라기보다는 라면에 관한 한일 두나라의 사업가에 관한 이야기책이었습니다. 

자국민들의 굶주림을 함께 이겨나가기 위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두 사람은 부를 축적하기 보다는 정말로 순수한 마음으로 노력했고 그 결과 한일 양국의 국민들은 라면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며 끔찍한 기아를 이겨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노력으로 사람들은 살아 갈 힘을 얻었던 것이겠죠. 저는 알 수 없을 정도의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아무튼 그들이 끝까지 승승장구 했으면 좋으련만, 실은 그렇지 못했던 건 정말 안타깝습니다. 이 책에서는 라면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이야기가 개인의 역사 혹은 라면 창세기처럼 - 소설처럼 - 놓여져있습니다. 라면이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음식 인 것 처럼 이 책 역시 누구라도 읽을 수 있도록요. 


저희 어렸을 때는 집집마다 라면을 박스째로 사다 두었었지요. 요새 같은 번들이나 미니 박스가 아니고, 큰 라면 박스였습니다. 연탄보일러를 때던 시절이면 연탄을 넣는 쪽의 뚜껑을 열고 냄비를 앉혀, 물이 끓어오르면 라면을 보글보글 끓여먹기도 했었습니다. 제 손으로 라면을 사다 먹은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집에는 언제나 라면이 있었으니까요. 지금에야 라면을 건강의 적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라면은 참 좋은 친구였습니다. 그냥 끓여먹어도 좋고, 파랑 계란을 넣어도 좋았습니다. 만두나 떡을 넣어도 좋고, 가끔은 고급 지게 전날 먹다 남은 갈비 고기를 넣어서 끓이기도 했으니까요. 라면과의 추억이 없는 사람이어디 있겠습니까만 은 평생 라면을 한 번도 안 드셔보신 저희 친척 이모님이 계시니 그 이모님은 라면은 질색이라는 추억을 가지고 계시겠지요. 아무튼, 쌀의 여부와 상관없이 라면은 가끔 먹고 싶은 음식 중 하나입니다. 아이가 라면을 워낙 좋아하니 제가 싫어해서 안 먹는다는 악역을 맡고 있기에 라면을 멀리하고자 하지만 번들로 사다 두면 금세 동이 나버립니다. 혼자 있을 때는 라면을 먹게 되거든요. 흥. 내가 뭐 먹고 싶어서 먹은 줄 알아? 혼자 있을 때 밥을 제대로 차려먹으면 금세 한 시간이지나가 버리니까 시간 절약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먹은 거라고.라고 말은 하지만 가끔은 진짜 정말로 당겨서 먹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라면 생각이 났습니다. 라면을 개발하던 두 사업가의 마음씀이 어쩐지 홍익인간 같다는 생각도 했고요. 

오늘, 라면을 먹어야 할까요? 

....얼마 전에 라면을 먹었는데 말이죠. 큰일입니다. 당분간 라면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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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쇼의 새 십이국기 5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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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독립적인 책이었으면 어땠을까. 이 책을 읽던 중 그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제까지의 십이국기와는 어쩐지 다른 느낌의 책이었기 때문이었는데요. 12년 만의 신작이라 그런가요. 아니면 제가 어떤 것을 기대했기 때문일까요. 어느쪽이어도 상관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던 흐름이 아니었기에 적잖이 당황스러웠고,  이 책에 몰입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책의 내용이 별로 좋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은 4개의 단편으로, 나라 변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렸습니다. 출판사 서평에 의하면 주변 인물이나 상황에 불과하던 것을 중심으로 끌어내어 십이국에 대한 정교한 디테일을 완성 시킴으로써 작품의 퀄리티가 올라갔다고 했습니다만, 제가 십이국기에 기대하던 것은 어떤 모험과 여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재미, 그리고 소년 소녀들의 성장이었지 사회파 소설의 호소력 같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대와는 다르다고 여겼을겁니다. 

이를테면 미야베 미유키의 현대물을 읽을 때면 사회파의 미스터리겠군.. 하는 기대, 에도물을 읽을 때면 상처받은 여자나 아이가 나오겠군, 그러니 이런 식으로 생각하며 읽어야겠다라는 나름대로의 가이드 라인을 머리 속에 그립니다. 이것이 어쩌면 편견으로 작용 할 수도 있겠지만, 대략적인 방향을 정하며 책을 골라드는 것은 그 날의 기분과도 관계가 있기 때문에 예상과 다른 책을 읽게 되면 어쩐지 섭섭합니다. 

그러니, 오늘도 섭섭했습니다. 

히쇼의 새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결코 가벼이 생각할 수 없는 것들,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그런 건 기대하지 않았는데....


과연 6권은 어떨까요? 

조금 기대해 보아도 좋을까요? 

다음 권은 좀 더 묵힌 후 읽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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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 상 십이국기 4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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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휘몰아쳐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기 싫었던 일요일 오후에 십이국기 4,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을 꺼내들었습니다. 십이국기 시리즈는 매 편 마무리가 되므로 연속해서 읽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는데요. 그 세계관이 방대하므로 한참 뒤에 읽으면 앞서 이해했던 내용을 다 잊어버려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듯 읽어야 한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뭐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읽다 보면 저절로 머릿속에 십이 국의 모습이 그려지거든요. 


십이국기 1 편에서 등장하는 소녀 요코는 일본(왜)에서 살다가 십이 국으로 돌아오는데요. 게이키(기린)의 선택으로 왕이 된 그녀는 정치에 대해서, 그리고 이 나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탓에 허수아비 왕이 되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이 싫었기에 평복을 하고 공부를 하고자 마을의 한 집에서 살게 됩니다. 

한편, 스즈라는 소녀는 우리가 살던 세상에서 이곳으로 흘러와 선적에 올라 하급 선녀로서 살지만 갖은 고생을 합니다. 자신이 해객이기 때문에 미움을 받는다며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지요. 

공주였던 쇼케이는 어진 정치를 하지 못 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반역자에 의해 살해된 후 고초를 겪습니다. 스즈와 쇼케이는 각각 다른 나라에서, 스스로의 운명과 마주할 기회를 얻습니다만 여전히 그녀들은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라는 착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 합니다. 그러던 중 스즈는 세이슈라는 꼬마를 통해, 쇼케이는 제가 십이국기에서 제일 좋아하는 라쿠슌에 의해 자신들 마음가짐의 잘못을 깨닫고 조금씩 성장하며 나가아갑니다. 


책을 읽으면서 언제 즘 이 세 명의 소녀들이 한자리에서 만날까 기대했습니다. 스즈는 같은 해객이라는, 그리고 또래 소녀라는 이유로 경국의 왕을 만나고 싶어했고, 쇼케이는 자신이 잃은 모든 것을 운 좋게 얻은 경국의 왕을 보고 싶어 했으니 언젠가는 한자리에서 만나게 될 것이 분명했으니까요. 세 명의 소녀들은 우연히 잠깐 만나게 되는 우연을 갖게 되는데요. 마침내 한자리에 모였을 때는 처음과는 달리 모두들 성장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큰일을 해내지요. 운명에게서도 이기고, 적들에게서도 이겨냅니다.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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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악마다
안창근 지음 / 창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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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사람이 악마다. 살인범들은 멀리 있지 않다. 그들은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다. 그리고 그 악마들은 다른 사람을 조종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더구나 그를 추종하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p.74



귀신이나 유령보다 살인마를 더 두려워하는 저는 '사람이 악마다.'라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그 앞에 '모든'이라는 단어가 붙어있지 않음에 감사합니다. 세상을 살아보니 악마보다는 평범한 사람이 더 많았고, 악마의 숫자만큼 천사들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스를 보면 악마가 판을 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그 어두움의 크기가 크기 때문일 겁니다. 

이 악마들 중에 가장 무서운 놈은 바로 곁에 있는 악마일 텐데요.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지 못하며 세상에서 가장 포근하며 중심이 되어야 할 장소를 가장 무서운 곳으로 만들어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다는 절망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일이라고 그런 곳에서 뭐 하러 계속 지내느냐 당장 나와서 혼자 힘으로 어떻게든 살아보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꾸준히 학습되어온 폭력과 공포 때문에 이미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행여나 그곳에서 빠져나왔다고 하더라도 그 무력감은 쉬이 치료되지 않아 끊은지 몇 년 된 담배가 꿈속에서 어른거리듯, 시간이 아무리 지나가도 계속 괴롭힙니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여러 가지 콘셉트를 따온 이 책의 악역 주연인 유령은 자기 자신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리하여 연쇄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데요. 마지막에 이러저러해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살인은 어쨌든 살인입니다. 악마를 처단하는 유령이 되었다고 하더라도요. 연쇄 살인범인 유령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동등한 지능과 판단력의 소유자, 전직 프로파일러이지만 현재는 연쇄 살인범으로서 감옥에 갇혀있는 민수뿐일 겁니다. 경찰은 비밀리에 민수에게 협조 요청을 하고 그 일은 과거의 연인이자 경찰인 희진이 맡습니다. 유령의 예고장 암호를 풀어나가는 것이 이 소설의 주된 흐름인데요. 제가 추리나 스릴러 소설에서 질색하는 두 가지가 밀실, 그리고 암호이기에 암호를 발견한 순간. '아, 망했다. 이 책은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책인가 보다.'라고 여기며 실망했지만, 암호를 궂이 함께 풀어나가지 않아도 민수가 잘 풀어주기에 염려하지 않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유령과 민수의 심리전은 참 볼만합니다. 스릴도 있고요. 가독성도 아주 좋아 흥미진진하게 읽어내려갔습니다. 하지만, 뒷심이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클라이맥스에서 무언가가 빠진 것 같은 그런 허전함이 있었어요. 초반과 중반의 흐름에서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아서 RPM을 최고로 올린 후 튕겨나가는 기분으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잘 달리다가 갑자기 주차장을 만나서 차를 급히 세우고 안전벨트를 풀어버린 것 같은 그런 마무리였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면, 괜찮은 스릴러 소설이었습니다. 

암호에 자신 있는 분들은 풀어나가면서 함께 읽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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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 다양한 편견의 양상과 우리가 가진 편견에 관하여
아그네스 헬러 지음, 서정일 옮김 / 이론과실천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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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 [명사]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

- 네이버 국어사전 

사람이 언제나 공정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입니다. 공정하려 애를 쓰고 객관적이려 하더라도 결국 자신에게 누적되어 온 무언가의 작용에 의해 판단을 할 수밖에 없기에 조금은 한쪽으로 쏠리게 마련이지요. 자신의 얼굴도 살짝 비대칭일진데,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정확히 대칭이 될 수 있을까요? 누구나 편견은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편견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결국 진보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현대 사회는 다양한 편견이 존재합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던 편견은 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또 다른 편견들이 생겨난 셈인데요. 


편견은 존재론적 인류학적 관점, 사회적 심리학적 관점에서 모두 존재합니다. 


영국 드라마 셜록에서 셜록은 묻습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진실인지. 언뜻 들으면 같은 개념 같기에, 질문을 받은 사람은 어리둥절해합니다.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이 어느 쪽인지 몰라 그렇다기보다는 용어의 정의를 잘 모르기 때문일 겁니다.우리도 혼용하고 있으니 셜록 같은 깐깐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정확하게 사용하는 이가 드물지 않겠습니까.

(우리 말로는 거짓이 없는 사실을 진실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사실적인 정보만을 받아들여 판단하여야 옳지만 흔히 과잉 일반화의 경향이 일어나곤 합니다. 이를테면, 시끄러운 중국 관광객들 때문에 여러번 짜증이 났던 저 같은 경우엔 모든 중국인들이 시끄럽다고 말하겠지요. 그런 것이 바로 편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경우에는 사실이며 편견이 아니라고 우기기도 합니다. 


오래전부터 편견은 존재했겠지만, 근대에 이르러서 편견이 생겨났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사실 저는 그것조차 편견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 편견이라는 것이 등장했는데요. 구개념과 신개념이 등장하여 대립하게 되는 시기였기에 구태의연한 개념은 새로운 미래 설계에 방해가 되는 개념이었습니다. 즉, 편견이었죠. 옳지 않은 것은 바꾸어야 한다는 역동성을 지니기 시작했기에 더 이상 진리는 철학자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의 진리라는 것은 철학적 논증과 추론을 통해 도달 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순수이성, 순수 지식, 경험적 체험을 넘어서야 만날 수 있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보편타당한 것이 진리가 되는 시기이므로 이러저러한 것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그것 자체가 편견이었습니다. 역동적이라는 것은 무척 중요한데요. 변화가 없이 전통만 추구하며 머무르는 사회는 붕괴하고 말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라는 말은 근대를 여는 중요한 말입니다. 근대 이전의 불평등한 출생을 '편견'으로 규정하고 반발하는 신개념의 확립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편견을 배제하고 진보하자라고 외치던 근대 이후부터 도리어 편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문제들이 생겨납니다. 과거보다 더욱 심하게요. 

근대를 진보적인 시기로 생각하는, 편견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조차 중세 문화를 암흑기로 규정함으로써 중세는 암흑이라는 편견에 빠지고 맙니다. 어느 쪽이 우월한 문화라고 할 수 없을 텐데 말이죠. 


문명과 문화는 대립적 개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편견이다. 현대인들에게는 더 이상 문화가 없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이를 소외라는 말로 표현할 것이다. 어떤 경우든 문명의 발달로 인간의 정신은 더욱 퇴보하고 있다.

p.120


현대에는 이런 철학적인 개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마주하고 있는 편견들이 무척 많습니다. 인종(사실 원칙적으로 인종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성, 종교, 종족, 국가 등에 대한 편견들이 그런 것인데요. 과거 전체주의로 인해 홀로코스트를 겪어야만 했던 그들을 생각하면 끔찍한데도 우리는 나름대로의 편견에 빠져있습니다. 자신의 잣대로 가지고 타인을 재단하는 행위를 어제도, 오늘도 하고있습니다.

이 책은 그렇게 쉬운 책은 아니었습니다. 인문학적 재능이 없기에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노트에 적어가며 읽어야 했습니다. 이 책이 편견이라는 것에 대한, 읽기 쉬운 심리학 책 정도로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초반엔 무척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편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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