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악마다
안창근 지음 / 창해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항상 사람이 악마다. 살인범들은 멀리 있지 않다. 그들은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다. 그리고 그 악마들은 다른 사람을 조종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더구나 그를 추종하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p.74



귀신이나 유령보다 살인마를 더 두려워하는 저는 '사람이 악마다.'라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그 앞에 '모든'이라는 단어가 붙어있지 않음에 감사합니다. 세상을 살아보니 악마보다는 평범한 사람이 더 많았고, 악마의 숫자만큼 천사들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스를 보면 악마가 판을 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그 어두움의 크기가 크기 때문일 겁니다. 

이 악마들 중에 가장 무서운 놈은 바로 곁에 있는 악마일 텐데요.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지 못하며 세상에서 가장 포근하며 중심이 되어야 할 장소를 가장 무서운 곳으로 만들어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다는 절망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일이라고 그런 곳에서 뭐 하러 계속 지내느냐 당장 나와서 혼자 힘으로 어떻게든 살아보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꾸준히 학습되어온 폭력과 공포 때문에 이미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행여나 그곳에서 빠져나왔다고 하더라도 그 무력감은 쉬이 치료되지 않아 끊은지 몇 년 된 담배가 꿈속에서 어른거리듯, 시간이 아무리 지나가도 계속 괴롭힙니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여러 가지 콘셉트를 따온 이 책의 악역 주연인 유령은 자기 자신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리하여 연쇄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데요. 마지막에 이러저러해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살인은 어쨌든 살인입니다. 악마를 처단하는 유령이 되었다고 하더라도요. 연쇄 살인범인 유령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동등한 지능과 판단력의 소유자, 전직 프로파일러이지만 현재는 연쇄 살인범으로서 감옥에 갇혀있는 민수뿐일 겁니다. 경찰은 비밀리에 민수에게 협조 요청을 하고 그 일은 과거의 연인이자 경찰인 희진이 맡습니다. 유령의 예고장 암호를 풀어나가는 것이 이 소설의 주된 흐름인데요. 제가 추리나 스릴러 소설에서 질색하는 두 가지가 밀실, 그리고 암호이기에 암호를 발견한 순간. '아, 망했다. 이 책은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책인가 보다.'라고 여기며 실망했지만, 암호를 궂이 함께 풀어나가지 않아도 민수가 잘 풀어주기에 염려하지 않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유령과 민수의 심리전은 참 볼만합니다. 스릴도 있고요. 가독성도 아주 좋아 흥미진진하게 읽어내려갔습니다. 하지만, 뒷심이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클라이맥스에서 무언가가 빠진 것 같은 그런 허전함이 있었어요. 초반과 중반의 흐름에서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아서 RPM을 최고로 올린 후 튕겨나가는 기분으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잘 달리다가 갑자기 주차장을 만나서 차를 급히 세우고 안전벨트를 풀어버린 것 같은 그런 마무리였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면, 괜찮은 스릴러 소설이었습니다. 

암호에 자신 있는 분들은 풀어나가면서 함께 읽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