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HhH
로랑 비네 지음, 이주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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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바로 리뷰를 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새벽무렵 잠에서 깨기전에 꿈 속에서도 이 책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HH...또 HH 계속 책 제목과 내용을 곱씹었습니다. 이 책은 거의 완벽한 팩트임에도 불구하고 서술되는 내용을 읽어가면서 머릿속은 대혼란, 저자가 의도하지 않은 미스터리에 스스로 빠져들었습니다. 몇 페이지 읽다가 갸웃, 몇 페이지 읽다가 곰곰... 이런식으로 책을 절룩절룩 읽었습니다.

어째서냐하면....


<HHhH>는 최대한 작가의 생각이나 상상을 배제하고 사실만을 전하려고 합니다. 



역사소설에서 제일 억지스러운 것은 과거를 그린 죽은 페이지에 생명을 불어넣겠다는 이유로 어느 정도 직접 수집한 증언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대사다. 이것은 활사법과 비슷하다. 묘사가 너무 생생해 마치 눈으로 직접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기법이다. 대화를 재구성하면 부자연스러울 수도 있고 의도하지 않았던  효과가 날 수 있다. 인위적인 기교가 너무나 뻔히 보이고 역사적 인물들의 목소리를 가로채어 되살리려는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많이 들어가게 된다.

-p.33



그런 이유로 작가는 이 소설에 되도록 대화를 많이 넣지 않으려고 합니다. 모든 걸 사실 그대로 서술하겠다는 거죠. 그러니 작가의 글을 따라 읽다보면 계속해서 책상에 앉아 고민하고 글을 쓰고 다시 고민하는 작가의 모습만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그러다 과거의 장면들을 묘사하는 장면이 나오면 검은 잡티나 노이즈가 있는 회색빛 화면속에서 그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가끔은 산뜻하게 - 말하자면 찰리 채플린의 '독재자' 같은 정도의 산뜻함이지만 - 재생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금발의 짐승이라고 불렸던 하이드리히는 나치 친위대 내부 정보기관 (SS) 의 책임자로서 나치스의 정치 공작과 비밀 작전을 모두 지휘하는 천재적 역량을 발위한 인물로 유대인 말살 계획인 최종 해결책을 입안하고 추진했습니다. 친위대 사령관은 히믈러였지만 사실상 모든 작전은 하이드리히가 지휘했기 때문에 당시 '히믈러의 두뇌는 하이드리히라고 불린다'라는 말이 항간에 떠돌았다고 하는데요(책 날개 -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에서) '히믈러의....'이 부분의 독일어를 줄인 말이 책의 제목인 <HHhH>입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주인공은 하이드리히가 되겠지만,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은 작가 자신입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 미스터리에 빠지고 말았죠. 100 페이지 넘게 읽고 있는데, 도대체 이걸 소설이라고 해도 좋은 것인가. 나치와 하이드리히에 관한 스토리 텔링 형식의 글을 읽고 있는게 아닌가.. 나아가서는 이건 그냥 작가의 나레이션이 들어간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게다가 작가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 하이드리히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내가 쓰고 있는 책은 '하이드리히에 관한 책'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하이드리히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몇 년 전부터 이 책을 구상하면서 내가 생각한 제목은 '유인원 작전' 하나였다.(중략) 하이드리히는 작전의 표적이지 주체가 아니다. 이 책에서 하이드리히 이야기는 배경을 설명해주는 역할이다.

-p.134



작가는 다른 소설가와는 달리 등장인물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활기차게 움직이게 하지 않습니다. 역사의 후손으로서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고 싶어합니다. 강박증이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사실은 '절대로' 왜곡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이 장면은 앞의 장면과 마찬가지로 그럴듯해 보이지만 완전히 허구다.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 변명할 수도 없는 사람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은 뻔뻔한 일이 아닌가! 어쩌면 가브치크는 커피만 마시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는데 나는 차를 마신다고 묘사하고 있다. 가브치크는 어쩌면 외투를 한 벌만 입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내 마음대로 두 벌을 입히고 있다. 기차를 탔을 수도 있는데 내 마음대로 버스에 태우고 있다. 저녁에 떠났을 수도 있는데 내 마음대로 아침에 떠난 것으로 해 버린다. 나 자신이 부끄럽다.

-p.141



이정도로 사실만을 옮기는 데 집착하다니. 책을 읽다말고 소설가님들께 질문의 글을 올릴 뻔 했습니다. 허구를 가미하지 않고 팩트만을 전하는 방식도 소설에 속하는 것인가. 계속해서 책을 읽어가던 저는 마침내 단서 하나를 획득합니다. 



내가 쓰는 책이 소설이었다면 발치크는 전혀 필요 없는 등장인물이었을 것이다.

-p.279



'내가 쓰는 책이 소설이었다면' 이라는 말은 소설이 아니라는 말이 아닌가!! 그래, 이 책은 소설이 아니로구나!! 깨달음을 얻고 기뻤습니다만, 그 기쁨도 잠시. 만약 지금까지 나온 '나'라는 사람이 작중화자로서 허구의 인물이라면? 그렇다면 이 책의 전체적인 모습은 제가 알고 있는 소설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대혼란.

혼란에 빠졌던 건 저 뿐만이 아니었나봅니다. 작가는 후반부에 이르러 깨닫습니다.



이제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내가 쓰고 있는 것은 인프라 소설(설화, 가상의 내러티브, 작가의 생각이 결합된 소설-옮긴이)이다.

-p.320



작가의 깨달음과 동시에 무언가가 개운해진 저는 마음 놓고 책을 읽어갔습니다. 작가도 개운해진 모양입니다. 갑자기 소설에 생기가 돕니다. 그게 깨달음 때문인지 하이드리히가 죽을 때가 다 되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하이드리히는 죽어가고 소설은 살아납니다. 회색빛이었던 화면에 붉은색, 노란색, 초록색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저는 분명 엉뚱한 곳에 촛점을 맞추어 책을 읽었습니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형식의 소설을 만나 당황했기 때문이었죠. 악마적인 매력이 있는 하이드리히에게 주어야 할 관심을 작가에게 줘버렸습니다. 작가는 책을 쓰기 위해 2차대전과 하리드리히에 관한 수많은 자료를 읽고, 책을 읽었으며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 노력이 <HHhH>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었구요. 소설 속에서 여러가지 영화나 자료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참 특이한 책입니다. 

실은, 몇 페이지 읽고서 큰일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뭐지. 나랑 맞지 않잖아.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아. 원치 않았던. 


조금씩 읽어나가면서 마음을 다졌습니다. 그래, 이 책을 정복하고 말겠어. 이건 읽는게 아니라 정복하는거야. 마지막 페이지를 닫을 때까지 전진! 전진하라! 

그런데 희한하게도, 소설이 생기를 띄기 시작한 후(320 페이지 이후) 갑자기 흥미진진해집니다. 하이드리히 암살 당시의 장면이 눈 앞에 그려지면서 일제시대 우리나라의 '의사'들도 생각나고, 암살 이후의 이야기들도 깊은 한숨으로 다가왔습니다.

책을 다 읽고나니 아쉬워졌습니다. 제가 만일 당시의 역사나 인물관계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더라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을텐데요. 수많은 플래그를 붙여가며 읽은 책이었지만, 처음과는 달리 지금은 만족스럽습니다. 끝까지 읽길 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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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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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첫 책으로 선택한 것이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입니다. 소설의 배경이 여름인 건 그렇다지만 제목부터가 어울리지 않는 계절인 것을. 그렇지만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도 서로 안 어울리긴 마찬가지거든요. 첩첩산중 와이파이는커녕 데이터도 사용할 수 없는 아홉모랑이 마을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탐정이 운동복 차림 삼수생에, 여든 넘은 할머니, 열다섯 살 꽃돌이라니 그 조합의 삼총사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요?


막장 드라마를 보다가 정말로 뒷목잡고 쓰러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초상을 치르러 산촌의 마을에 모였던 효심 깊은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은 혼자 남은 노모가 걱정이 되어 삼수생이라는 이름의 백수인 무순이에게 할머니를 부탁하고- 라지만 늦잠 자는 사이에 쪽지와 용돈을 두고 모두 떠나버렸습니다. 잔소리쟁이 할머니를 피해 마실을 나갔던 무순은 할아버지 책장에서 자신이 15년 전이 집에서 살 적에 그렸던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지도를 발견하고, 보물 찾기에 나서는데요. 지도의 장소에서 발견한 것은 '다임개술'이었습니다. 그 안에 들어있던 것은 보물이 아니라 잡동사니뿐이었는데요. 그곳에서 종갓집 종손 꽃돌이와 마주칩니다. 정녕 보물은 꽃돌이였던 것인가! 꽃돌이, 아니 창희는 무순이 발견한 것들에 흥미를 보입니다. 종갓집에 입양된 자신과는 달리, 이 집의 진짜 딸인 유선희가 실종되기 전에 남긴 것 같은 물건을 보았기 때문이죠.


이 마을에는 공개된 미스터리가 하나 있습니다. 백수잔치를 하기 위해 온 동네 어른들이 온천여행을 떠났던 15년 전. 마을에 돌아와보니 네 명의 여자아이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종갓집의 피부 하얀 아가씨 유선희(16세) 뿐만 아니라, 삼거리 공깃돌 줍는 모자란 아이의 누나 황부영(16세), 소문난 날라리 유미숙(18세), 교회 목사님의 막내  조예은(7세) 이렇게 네 명이었는데요. 나이도 그렇고 뭔가 안 어울리는 조합의 네 명의 여자아이들이 한 번에 실종되다니 경찰의 수사도, 무당의 신기도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 했습니다.묻혀버린 사건이지만, 실종된 아이들의 부모님은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목사 사모님은 정신을 놓은 것 같습니다. 예은이를 외계인이 데려갔다며 매일 하늘을 향해 울부짖습니다. 이미 세월은 15년이나 지났는데도요. 시간은 다른 사람들에게나 흐르는 것이지 아이 잃은 엄마에게는 그렇지 않나 봅니다. 


무순이와 꽃돌이가 처음부터 이 미스터리에 뛰어들려고 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유선희의 물건으로 추정되는 '자전거와 소년'이라는 목각을 '소년'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찾아내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과거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탐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에 카리스마 간난 여사가 합세해, 이 희한한 탐정단은 마을의 모든 비밀을 들쑤시게 되지요.


처음엔 무지막지한 코믹함으로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아니 이거 뭐야, 미스터리가 이래도 좋은 거냐. 하지만 그 코믹함 속에 들어있는 삶이 보이고, 사람이 보여 마냥 웃을 수만은 없습니다..... 라지만, 다시 웃게 만듭니다. 

모처럼 희한한 미스터리를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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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범죄자 - 옆집에 살인마가 산다!
웬디 L. 패트릭 지음, 김경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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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살던 집의 바로 담장 너머엔 2층 집이 있었습니다. 1층은 식당이었는데요. 2층엔 일가족이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확실하지 않았던 건 왕래가 없었기 때문이었죠. 그 집의 다른 식구들은 몰라도, 아저씨는 몇 번 뵌 적이 있었습니다. 큰 키에 깔끔하게 밀어버린 머리, 험상궂은 얼굴, 검은색 티셔츠나 터틀넥 셔츠를 입고 검은색 양복을 입고 다니시는 분으로, 다른 옷을 입은 건 뵌 적이 없었습니다. 체격도 건장해서 누가 함부로 말을 붙이기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저도 물론 말을 붙이거나 인사해본 적도 없었죠. 조직에 계시거나, 경찰 조직에 계시는 분일 것 같았습니다. 그것도 강력반.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저씨가 우리 집 대문으로 들어와 1층 식당의 뒤쪽 창문을 기웃대는 걸 보았습니다. 좀 무섭지만 왜 그러나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현관문을 열고 나갔더니 오히려 아저씨가 당황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실은, 앞집 건물 주인아저씨였는데요, 식당에서 가스 단속을 잘 안 하고 퇴근하는 바람에 한 번 큰일 날뻔한 적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끔 이렇게 실례인 줄 알면서 저희 쪽으로 들어와 식당의 열린 창문으로 살핀다고 하시더라고요.그날 가볍게 인사하고 헤어졌지만, 참말인지 거짓말인지도 몰라서 살짝 두근거렸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저희는 이사를 갔고, 그전의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요. 딸과 함께 시내 나들이를 가다가 그 아저씨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조직의 둘째 형님이나 형사일 거라고 짐작했던 그 아저씨가, 사실은 꽃집 아저씨였지 뭡니까. 그렇죠, 상냥하고 사근사근한 분만 꽃집을 하라는 법은 없죠. 꽃을 사랑하고 나무를 사랑하면 꽃집 할 수 있죠. 험상궂고 건장한 체격만 보고서- 게다가 무채색의 의상까지 더해 오해하고 말았습니다. 


외모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오해하고 마는군요. 비단 저만 그렇겠습니까. 세상에는 보이는 것 때문에 속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 허점을 노리는 범죄자들도 참 많고요. 외모가 뛰어나거나, 재력이 있어 보이는옷차림과 자동차, 화려한 언변 같은 것에 넘어가 사기도 당하고, 강력 범죄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걸요. 

현직 샌디에이고 카운티 검찰청 지방 검사이자 성범죄 스토킹 부서 팀장인 웬디 L. 패트릭은 <친밀한 범죄자>에서 우리 주변에 있는 범죄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들을 감별하는 방법을 FLAG라는 이니셜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FLAG는 가면 뒤에 숨은 본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그것들을 잘 관찰하면 내 주변에 숨어 있는 위험한 사람들을 알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


F Focus 관심사, 그 사람은 어디에 관심을 보이는가? 나에게 관심이 있는가 아니면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는가.

L : Lifestyle 생활방식, 그 사람의 생활방식은 어떠한가? 퇴근 후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취미는 무엇인가.

A : Associations 주변인, 그 사람은 어떤 사람과 어울리는가? 주로 누구와 시간을 보내고 어떤 인간관계를 유지하는가.

G : Goals 목표, 그 사람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며 어떤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나중에 돌아보면 분명 허술한 점이 있거나 수상한 점이 있는데, 희한하게도 일이 안되려면 그렇다고, 그들이 가진 미심쩍은 점들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애시절엔 눈에 콩깍지가 씌웠다고도 하죠.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볼 땐 정말 이건 아니다 싶은데 본인을 활활 불타오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증후군이라고, 반대하면 반대할수록 더 타오르는데요.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상당수가 파국을 맞습니다. 자신이 보지 못 했던 그런 부분 때문에요. 아마도 객관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냉정함이 부족하기 때문일 테죠.- 그렇게까지 냉정하면 그건 그것대로 힘들 것 같습니다만.


저자는 책의 앞쪽에서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는 서술을 통해 우리에게 FLAG를 파악하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그렇기에 저도 책에 Flag를 많이 달아놓았습니다. 한 번에 이해하기엔 좀, 그래요 힘들었으니까요. 그렇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알겠습니다. 만일 저에게 그런 일이 닥치면 과연 이대로 실행할 수 있을까 하는 건 별개의 문제겠지만요. 얼마 안 되는 서문과 Part 1을 지나고 나면 실례와 함께 현실적인 조언을 합니다.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요새 유튜브에서 '용감한 기자들'을 발췌해 놓은 걸 보고 있습니다. 티캐스트를 통해서 제공되고 있는데요. 놀라운 사건이 무척 많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가까운 사람끼리 저럴 수 있나 싶은 그런 기사들인데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는 사이에, 친한 사이에 일어나는 범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믿기 싫은 마음에서 나오는 한탄이겠죠.


<친밀한 범죄자>에는 사이코패스에 대한 부분이 제법 다뤄집니다. 읽다 보면 요새 뉴스에 나오는 누구와 누구, 그리고 누구누구가 생각나기도 하고, 지인 중에 딱 들어맞는 부분도 있었고 해서 놀랐습니다. 그런 사람들까지 사이코패스였구나 싶어 놀라기도 하며 읽었는데요. 다소 무거운 내용의 책이었습니다. 내용도 무겁지만, 책 자체도 -실제로 - 무겁습니다. 300여 페이지 치고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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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키의 해체 원인 스토리콜렉터 31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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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키의 해체 원인>은 사전 준비 없이 읽었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 반전을 느끼지도 못해 속상했던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여러 개의 단편 소설로 되어 있는데요. 마지막에 한데 모이니 개별적인 단편이라고 할 수 없겠군요. 연작 단편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단단히 준비를 하고 읽어야 합니다. 

산뜻한 표지에 넘어가 가벼운 마음으로 토막살인에 대한 소설들을 읽었습니다만, 단편이 가진 장점 - 한 편 읽고, 쉬었다가 다음 편을 읽어도 좋다.-을 즐기다가 느닷없이 모든 것을 기억해내라는 최종장의 명령을 받아 머리에 과부하가 걸렸습니다. 그래서 리뷰를 하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몇 달전의 패배를 설욕하고자 - 사실은 이 책을 읽은 딸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해설해달라고 하는 바람에 다시 읽게 되었는데요. 이번에는 준비를 단단히 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각 장의 제목을 적고, 모든 등장인물과 사건의 개요. 치아키나 유스케가 추리, 혹은 상상한 내용을 요약해 적었습니다. 야단스럽다고 하시겠지만, 무척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부디 이 책을 읽을 때 메모할 준비를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최근에 출간된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소설 <인격 전이의 살인>에서도 메모지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제법 전이가 복잡합니다- 이 소설에서만큼은 필요했습니다. 그 결과 굉장한 분량의 메모와 최종장 요약본이 생겼습니다.


이 소설 <치아키의 해체 원인>은 시마다 소지의 추천을 받은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데뷔작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은근슬쩍 시작 부분에 자신을 등장시킵니다. 치아키의 친구이자 기혼인 선생으로요. 하지만 그 뒤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혹시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친구 중에 치아키의 모델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했습니다. 


<치아키의 해체 원인>은 치아키나 쇼이치 경감, 유스케가 등장해서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토막살인에 대한 추리를 하고 시신을 해체한 원인을 밝혀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한편 한편이 소중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잘 읽어야 합니다. 특히 등장인물의 이름에 주의하면서요. 

연속 살인이 될 뻔했던 여성 알몸 토막 살인, 납득이 가지 않는 형태의 토막 살인, 8층에서 1층에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발견된 여인의 토막 시체, 난봉꾼의 내연녀 토막살인 사건, 좀 귀여웠던 곰돌이 팔 절단 사건, 여섯 상자에 나눠 담긴 남자의 시체, 그리고 다소 긴 분량이지만 '슬라이드 살인사건'의 추리 시나리오를 읽다 보면, 참 세상에 토막 사건도 많구나 싶고, 이 모든 게 치아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니 이 자가 사신이 아닌가 싶지만, 코난을 따라가려면 멀었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최종장.

나카고시 쇼이치 형사라고 하는 남자가 치아키를 찾아와 이번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나다 나츠요라는 여자가 도이 도시코와 호즈미 요코를 죽인 후 둘의 목을 잘라 각각의 머리를 교환해둔 엽기적인 사건이었는데요. 범인인 사나다 나츠요는 범행 후 자살합니다. 이에 사건이 종결되고 수사본부도 해체되는데, 이 사건에는 묘한 점이 남아있었습니다. 어째서 머리를 교환할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점인데요. 치아키는 이 해체 원인을 분석합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앞서 단편들의 연결점, 그리고 몇 개의 잘못되었던 추리가 바로 잡히기도 하면서 사건은 반전을 맞이합니다. 


처음에 제대로 못 읽었을 때엔 정말 머리가 멍했습니다.

그러나 필기를 하면서 이해하며 읽고 나서는 커다란 반전을 느낄 수 있었죠. 아이에게 마치 강의를 하듯 설명을 하고 질문을 받고선 다시 설명을 할때, 이것은 흡사 명탐정의 추리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아니었습니다. 하하.

절묘하고 놀라운 소설이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렇게까지 공부하듯 읽어야 하는 소설은 사양하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스미디어에서 나온다는 닷쿠 다카치 시리즈를 읽고 싶어 하는 걸 보면, 치아키와 친구들에게 매력을 느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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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문율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추지나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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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고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낯선 사람이 내 인생에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스쳐 지나갈 사람일 수도 있고, 앞으로의 일에 영향을 미칠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일일이 고려하면서 누군가를 만나고 피하며 살아가는 이는 없을 겁니다. 그 낯선 이로 인해 뜻밖의 사건이 벌어진다 하더라도요.


미야베 미유키의 <불문율>에는 자신의 인생에 끼어든 타인들이 등장합니다. 어떤 소설이든 안 그렇겠습니까만은 이 소설에서의 영향력은 대단하여 주인공뿐만 아니라 독자마저 불안과 공포, 그리고 해소로 인한 카타르시스 같은 걸 느끼게 합니다. <불문율>은 예전에 <지하도의 비>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적이 있는 책인데요. 깔끔한 표지와 편집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구적초>때와 마찬가지로 잡음이 있었던가 말던가 했다지만, 저의 경우 <구적초>도 <불문율>도 구판은 손이 가지 않아 읽지 않았다가 새 옷을 갈아입고 다시 태어난 판본으로 읽게 되었으니, 책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표지와 편집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에도 시리즈나 현대물이나 모두, 미스터리이거나 호러거나 관계없이 늘 사람 냄새가 납니다. 상처 입은 사람이 그곳에 있는데요. 주로 여자나 아이가 그런 역할로 등장하지요. <불문율>에서는 어떨까요. 이번엔 그렇지 않군요. 남자, 여자를 떠나서 - 떠나면 안 될지도 모르지만 - 상처 입거나 자신의 존재가치에 의문을 가진 이가 등장합니다. 이런, 중요한 걸 빼먹었습니다. <불문율>은 단편 소설집입니다. 이 이야기를 먼저 했어야 하는데 하지 않았군요. 각 단편에 위와 같은 이가 등장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지하도의 비'에서 사랑의 상처를 입은 여자를, 사랑의 아픔이 있는 아사코가 만나게 됩니다. 편집증이 있는 그녀로부터 '그'를 지켜야 하는 아사코는 용기를 내봅니다. 

'결코 보이지 않는다'에서는 우연히 만난 사람이지만 어쩐지 자꾸만 만나게 된다거나 이상하게 상대방에게 끌릴 때엔 그와 어떤 색의 실로 연결되어있는 건 아닌가 의심해야 하나 싶지만 그마저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불문율'에는 월급 셔틀로 전락한 것 같은 남자가 가족과 디즈니랜드로 놀러 가다 느닷없이 동반자살을 해버립니다. 사건은 어이없는 타인의 편지가 방아쇠가 되어 버린 건데요. 글에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남자의 순간적인 고뇌와 슬픔이 느껴졌습니다. 그가 느꼈을 공포감도요.

'혼선'은 네, 무섭습니다. 요새는 발신번호 표시가 되지만, 20세기 말까지만 하더라도 그런 게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고, 장난 전화도 참 많았습니다. 익명성이라는 게 상대방을 괴롭혀도 된다는 뜻이 아닐 텐데요. 지금이라면 인터넷에 있는 악플러들이 그들의 후예겠죠. 

'영원한 승리'는 평생 독신으로 산 이모님의 장례식에서 그녀의 과거를 추억하는데요. 뜻밖의 사실이 밝혀지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합니다. 그렇지만 괜찮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아픔을 안고 살았던 이모님은 영원히 승리했으니까요.

'무쿠로바라'를 읽고는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가벼운 범죄를 저지르던 사람이 어느 날 마가 씌워서(라는 핑계로) 중범죄를 저지른다거나, 평소에는 정의롭고... 아니,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평범했던 사람이 무서운 짓을 한다거나 하는 건 진짜로는 어떤 이유에서일까 하는 것도 고민해보았고요, 의인이 과잉 행동을 했다며 처벌받거나, 주변인으로부터 좋지 않은 시선을 받는 사회구조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습니다. 

'안녕 기리하라씨'에는 느닷없이 집안에만 들어가면 귀가 들리지 않게 되는 일가족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요. 자신을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기리하라씨. 가벼운 코믹물인가 싶지만, 역시 그 집에는 소외된 할머니가 계십니다. 치매기가 있어서 별생각 없겠지 싶지만, 실은 할머니에게는 고민이 있습니다. 잠깐잠깐 귀가 들리지 않는 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닐 정도로요. 이 단편 역시 반전이 있는데요. 뭔가 마음이 찡합니다.


이 소설을 읽었다고 낯선 이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소설을 다 읽고, 표지를 쓰다듬고, 책꽂이에 두고, 그리고 리뷰를 하는 이 순간 까지만, 최근의 인연들을 잠시 다시 생각해봅니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인연이었을까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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