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문율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추지나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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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고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낯선 사람이 내 인생에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스쳐 지나갈 사람일 수도 있고, 앞으로의 일에 영향을 미칠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일일이 고려하면서 누군가를 만나고 피하며 살아가는 이는 없을 겁니다. 그 낯선 이로 인해 뜻밖의 사건이 벌어진다 하더라도요.


미야베 미유키의 <불문율>에는 자신의 인생에 끼어든 타인들이 등장합니다. 어떤 소설이든 안 그렇겠습니까만은 이 소설에서의 영향력은 대단하여 주인공뿐만 아니라 독자마저 불안과 공포, 그리고 해소로 인한 카타르시스 같은 걸 느끼게 합니다. <불문율>은 예전에 <지하도의 비>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적이 있는 책인데요. 깔끔한 표지와 편집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구적초>때와 마찬가지로 잡음이 있었던가 말던가 했다지만, 저의 경우 <구적초>도 <불문율>도 구판은 손이 가지 않아 읽지 않았다가 새 옷을 갈아입고 다시 태어난 판본으로 읽게 되었으니, 책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표지와 편집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에도 시리즈나 현대물이나 모두, 미스터리이거나 호러거나 관계없이 늘 사람 냄새가 납니다. 상처 입은 사람이 그곳에 있는데요. 주로 여자나 아이가 그런 역할로 등장하지요. <불문율>에서는 어떨까요. 이번엔 그렇지 않군요. 남자, 여자를 떠나서 - 떠나면 안 될지도 모르지만 - 상처 입거나 자신의 존재가치에 의문을 가진 이가 등장합니다. 이런, 중요한 걸 빼먹었습니다. <불문율>은 단편 소설집입니다. 이 이야기를 먼저 했어야 하는데 하지 않았군요. 각 단편에 위와 같은 이가 등장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지하도의 비'에서 사랑의 상처를 입은 여자를, 사랑의 아픔이 있는 아사코가 만나게 됩니다. 편집증이 있는 그녀로부터 '그'를 지켜야 하는 아사코는 용기를 내봅니다. 

'결코 보이지 않는다'에서는 우연히 만난 사람이지만 어쩐지 자꾸만 만나게 된다거나 이상하게 상대방에게 끌릴 때엔 그와 어떤 색의 실로 연결되어있는 건 아닌가 의심해야 하나 싶지만 그마저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불문율'에는 월급 셔틀로 전락한 것 같은 남자가 가족과 디즈니랜드로 놀러 가다 느닷없이 동반자살을 해버립니다. 사건은 어이없는 타인의 편지가 방아쇠가 되어 버린 건데요. 글에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남자의 순간적인 고뇌와 슬픔이 느껴졌습니다. 그가 느꼈을 공포감도요.

'혼선'은 네, 무섭습니다. 요새는 발신번호 표시가 되지만, 20세기 말까지만 하더라도 그런 게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고, 장난 전화도 참 많았습니다. 익명성이라는 게 상대방을 괴롭혀도 된다는 뜻이 아닐 텐데요. 지금이라면 인터넷에 있는 악플러들이 그들의 후예겠죠. 

'영원한 승리'는 평생 독신으로 산 이모님의 장례식에서 그녀의 과거를 추억하는데요. 뜻밖의 사실이 밝혀지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합니다. 그렇지만 괜찮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아픔을 안고 살았던 이모님은 영원히 승리했으니까요.

'무쿠로바라'를 읽고는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가벼운 범죄를 저지르던 사람이 어느 날 마가 씌워서(라는 핑계로) 중범죄를 저지른다거나, 평소에는 정의롭고... 아니,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평범했던 사람이 무서운 짓을 한다거나 하는 건 진짜로는 어떤 이유에서일까 하는 것도 고민해보았고요, 의인이 과잉 행동을 했다며 처벌받거나, 주변인으로부터 좋지 않은 시선을 받는 사회구조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습니다. 

'안녕 기리하라씨'에는 느닷없이 집안에만 들어가면 귀가 들리지 않게 되는 일가족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요. 자신을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기리하라씨. 가벼운 코믹물인가 싶지만, 역시 그 집에는 소외된 할머니가 계십니다. 치매기가 있어서 별생각 없겠지 싶지만, 실은 할머니에게는 고민이 있습니다. 잠깐잠깐 귀가 들리지 않는 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닐 정도로요. 이 단편 역시 반전이 있는데요. 뭔가 마음이 찡합니다.


이 소설을 읽었다고 낯선 이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소설을 다 읽고, 표지를 쓰다듬고, 책꽂이에 두고, 그리고 리뷰를 하는 이 순간 까지만, 최근의 인연들을 잠시 다시 생각해봅니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인연이었을까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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