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김성한 지음 / 새움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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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으로 검색해보면, 동명의 영화, 드라마, 웹툰이 나옵니다. 심지어 책도 몇 가지 찾아볼 수 있는데요.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내용은 다르겠지만, 그만큼 사람들은 '달콤한 인생'을 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소박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인생을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욕망하는지라 위를 향해 나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다 만난 걸림돌, 장애, 뜻밖의 사건에서 어떻게 해결해나가느냐는 순간의 판단에 의지할 수밖에 없겠죠. 평소에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했던 사람이라면 A 플랜이나 B 플랜을 가동하면 됩니다. 하지만 나에게만은 절대 생기지 않을 것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그 상황이 느닷없이 나를 덮치면 어찌해야 할까요. 


이번에 읽은 <달콤한 인생>이라는 소설에서 주인공 상우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았던 상황에 부딪힙니다. 살인이라니. 자신이 살인을 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잘 나가는 로펌 소속의 잘 나가는 변호사, 고등학생 때부터 사모했던 그녀와 결혼해 부촌의 2층 집에서 살며 벤츠를 굴리며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그의 일탈이라면 술집 여자 승혜와 스폰서 관계를 하고 있다는 것이겠죠. 차츰 귀찮아져 떼버려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욕망과 이성이 싸우면서 차일피일 시간을 미루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친구와 해외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상우는 승혜와 끈적한 시간을 보내다 아내로부터 전화를 받습니다. 비행기가 결항이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는. 거기서부터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상우는 집으로 돌아가는데 주차를 하다가 바닥에 버려진 맥주병을 밟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려니 자신의 옷과 몸에서 배신의 향기가 풍깁니다. 차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아내가 잠든 후 들어가려고 했지만, 의지와는 달리 3시간 남짓 잠들어버립니다. 그리고 차를 들여다보던 검은 모자의 사내를 보고 차 밖으로 나와 객기에 싸움이 붙었지만, 남자 밑에 깔리고 맙니다. 상우는 손에 잡히는 것을 휘둘렀는데, 아뿔싸. 아까 바퀴로 밟은 깨진 맥주병이었습니다. 남자가 즉사하자 상우는 오만가지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결국 사건 현장에서 자신을 지우려 합니다. 한참 작업 중 나타난 병호. 그는 차기 대선 주자의 외아들이자 다운증후군 청년입니다. 상우는 병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 합니다. 병에 그의 지문을 찍고, 머리카락도 붙여둡니다. 병호의 옷에 핏자국을 묻히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이대로 병호가 체포되고 자신은 용의선상에서 벗어나면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상우가 평소에 동아줄로 사용하려 친분을 쌓아두었던 병호의 아버지는 상우에게 변호를 의뢰합니다. 이 책의 홍보문구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내가 덮어씌운 살인사건의 변호를 내가 맡았다"가 성립하는 순간입니다. 이대로 잘 만지고 포장해서 법정 드라마로 갈 것 같았던 이 소설은 법정 신이 별로 나오지 않습니다. 작가는 영리하게도 병호를 - 특정 스위치가 켜지면 - 폭력을 사용하기도 하는 다운증후군 청년으로 설정해 두었거든요. 병호는 법정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이 일로 병호의 아버지 함상진 의원은 변호사를 교체하려 하지만 상우는 자신이 변호를 맡아야 한다며 절대 안 된다고 필사적으로 그를 막습니다. 

머리 좋은 상우이기에 모든 것이 자신의 생각대로 흘러간다면 앞으로의 인생도 자신의 뜻대로 되어 줄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한고비를 넘으면 또 한고비, 그리고 다른 굴곡. 너무나 당연합니다. 범죄를 덮는 방식이 나빴으니까요.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는 없었을까.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지만 어디서부터 수정해가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드라마틱 한 소설이 작가의 데뷔작이라니 믿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사건의 진행 과정이라거나 주인공의 생각 흐름 같은 것이 참신하지는 않았지만, 위화감이나 거부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흐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독자를 상우에게 끌어가 그의 심리를 함께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역시 이래서 범죄 소설은 안돼. 스톡홀름 증후군 같은 게 생긴단 말야.' 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상우가 한 발 한 발 지옥으로 내딛는 걸 말리고 싶었지만, 그의 행동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누명을 씌우는 걸 이해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미래를 지키기 위해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없었던 바보 같은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상우는 비열하다기보다는 어쩔 줄 몰라 얕은꾀로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는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안쓰러웠죠. 


요사이 뉴스를 보면 상우와 같은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이렇게 하면 되겠지... 다들 속을 거야. 그리고 나는 그 위치를 지킬 수 있을 테지. 잠잠해지면, 더 높이 올라가자......

그들 중 몇몇은 눈을 속일 수 있을 테죠. 하지만, 대부분은 아닐 겁니다. 그걸 깨닫지 못하는 그들은, <달콤한 인생>의 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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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성 스토리콜렉터 51
혼다 테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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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예일대의 밀그램 교수는 권위를 가진 사람으로부터 부여된 불법적인 지시에 대하여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에 대해 연구를 하다가 직접 실험해보기로 합니다.  징벌에 의한 학습효과를 알아본다는 테마를 걸고 실험에 참가할 사람들을 모집했는데요. 참가자를 둘로 나누어 한쪽은 선생, 다른 한쪽은 학생의 역할을 맡겼습니다. 그렇지만 학생 쪽은 미리 섭외해 둔 배우들이었죠. 교사가 학생에게 문제를 내고 틀렸을 경우 전기 충격을 가하게 했는데요. 버튼은 교사가 누릅니다. 사실 학생에게는 가짜 전기 충격장치가 붙어있었고, 버튼을 누르면 감전된 것 같은 연기를 하라고 했었습니다. 처음엔 가벼운 찌릿함 정도의 15볼트의 전압이었지만 나중엔 450볼트까지 올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실험이었습니다. 과연 그들은 겨우 4달러의 소득을 위해 타인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는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렸을까요? 몇몇은 그렇게 했고, 몇몇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라는 말에 65%의 사람들이 450 볼트 이상 전압을 올렸습니다. 학생(역할의 사람)이 비명을 지르고 괴로워하는 것을 알면서도요. 내 잘못이 아니야, 나는 어쩔 수 없었어. 명령을 따랐을 뿐이야. 라는 생각으로 이런 일을 행했던 것인데요. 불법적이거나 반인륜적인 명령이라도 권위가 있는 사람의 말이라면 따른다는 걸 실험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도저히 이런 짓은 할 수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사람도 있었다는 거죠.


또 하나의 유명한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 있습니다. 1971년 행해진 이 실험은 참가자를 두 그룹 - 교도관과 죄수- 로 나누어 가짜 감옥 생활을 하게 했는데, 처음엔 역할놀이를 하는 것처럼 즐기더니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역할에 심취, 교도관들은 - 실제로 감옥에서도 저럴까 싶은 - 가혹 행위를 합니다. 상황을 지나치게 즐기는 거죠. 갑갑한 공간과 스트레스로 폭력성이 터져 나온 죄수 측에서 반항을 하지만 교도관들은 소화기 등을 사용해 폭동을 진압합니다. 당초 예상된 날짜를 모두 채우지 못하고 끝난 실험이었지만 - 그만큼 사태가 심각했다는 걸 말합니다 - 인지부조화와 권력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었습니다.


위의 두 가지 실험을 떠올리게 된 것은 혼다 테쓰야의 <짐승의 성> 때문이었습니다. 갇혀있는 공간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한 사람의 명령을 따르는 것만이 생존의 비결이라면 따를 수밖에 없겠지요. 상대방이 비명을 지르고 고통으로 몸부림치더라도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 자신에겐 죄가 없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저 사람이 당하는 고통이 내 것이 될 테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해야 합니다. 오늘 밤도 누군가는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그게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나만 아니면 됩니다. 그래서 스탠퍼드 감옥의 교도관처럼 변합니다. 명령을 충실히 행하는 밀그램의 선생이 되기도 합니다. 밀고하고, 잔인한 폭력을 저지르고. 이곳에서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이 조그만 세상에서의 생존에 목숨을 겁니다. 잦은 폭력에 대한 노출로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2002년 3월에 밝혀진 기타큐슈 일가족 감금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짐승의 성>은 읽는 내내 세상에, 작가가 변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잔인하고 가학적인 장면들이 상당히 묘사되어있습니다. 어쩌다 등장하는 것이 아닌,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전기 충격 장면은 만화<사채꾼 우시지마>에서도 본 적이 있기에 - 그때도 두려워하며 읽었지만 - 조금 면역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소설에의 가학행위는 만화 그 이상이었습니다. 아무리 작품을 위해서라지만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기타큐슈 일가족 감금 살인사건을 검색해서 읽어보았는데요. 실제의 사건이 소설보다도 더 잔인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혼다 테쓰야의 필력으로 읽을 만하게 다듬은 게 이 정도였구나. 


장기간 학대를 받았다며 경찰에 보호를 요청한 소녀 마야의 신고로 맨션 선코트마치다 403호를 조사하러 간 경찰들은 경악합니다. 온 집안에서 풍기는 비정상적인 냄새. 방문마다 채워져있는 맹꽁이자물쇠. 자신을 학대했다고 지목한 2인조 중 한 명인 아쓰코를 그 집에서 조사차 데리고 나오는데, 아쓰코 역시 학대받은 흔적이 온몸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과 요시오가 마야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자백했는데요. 경찰 조사 결과, 그 집 욕실에서 4명의 DNA가 검출됩니다. 죽은 사람이 마야의 아버지 하나가 아니라는 거죠. 경찰의 조사, 그와는 별도로 진행되는 신고의 이야기, 아쓰코의 혼란스러운 자백 등...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멈출 수가 없습니다. 


기리노 나쓰오의 <아웃1,2>에서 보았던 장면들도 오버랩되면서 정말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시신에 관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무뎌지고 무감각해지는 것인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짓이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면서 도망칠 수 없는 건 남아있는 가족들 때문일까. 이지경이 되기 전에 초반에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일까. 말도 안 되는 협박에 넘어가서 파멸에 이르는 경우는 흔하다지만 이 정도로 당하면서도 - 참아야 하는 고통에 비하면 협박의 내용은 별것도 아닌 거 같은데 - 지켜야 했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듭니다.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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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찾습니다, 여름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나혁진 지음 / 들녘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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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혁진 작가의 <그녀를 찾습니다, 여름>을 읽었습니다. 리뷰를 하려고 PC 앞에 앉았지만 어떻게 멋지게 잘 써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괜히 레몬 생강 차만 홀짝거리고 있습니다. 딱히 멋지게 써야 하는 건 아니지만요.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공개적인 글을 쓰는 블로거인 저조차 글을 쓸 때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전달할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데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님들은 오죽할까요. 

<그녀를 찾습니다, 여름>은 비극적인 사건과 가벼운 일상 추리가 어우러진 소설입니다. 베리에이션이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가독력도 무척 좋고요. 주인공인 기우의 감정 기복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눈이 피로하거나 살짝 졸릴 때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요. 그렇지만 좀 아쉬운 점들이 보였습니다. 변주가 심하다 보니 뭔가 많이 가벼워져버린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출판사의 책 소개에서는 나혁진 작가의 지난번 두 권의 책과는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라 말하고 있는데요. <브라더>는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교도섬>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제가 <교도섬>에서 느낀 나혁진 작가는 유쾌한 무협 코드가 있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의 책은 공부는 못하지만 관찰력과 추리력이 좋은 - 풋풋한 주인공이 고교 시절과 대학시절에 겪는 사건과 일상 미스터리를 보여줍니다. 나쁘지는 않은데, 뭔가 좀 어색한 느낌이었습니다. 약간 절뚝거리는 기분이었달까요. 재미있게 잘 읽어나가면서, 소설 속에 포옥 빠져들어가면서도 뭔가 어색한 기분이었어요.

마지막에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어쩐지... 그래서였구나...하며 납득했지만, 책 읽는 도중에 느꼈던 약간의 어긋남은 추리물을 읽는 데에는 방해요소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재미없느냐. 그게 또 그렇지 않습니다. 재미있어요.

주인공이자 화자인 기우는 고교시절 학교 괴담을 해결하고 알게 된 동급생 지연이와 알콩달콩 만나는 사이가 되지만, 함께 놀러 간 놀이공원에서 그만 지연이가 사고로 죽습니다. 원래도 바이킹이나 롤러코스터를 타지 못 했던 기우는 그 사건 이후로 고소공포증이 생기는데요. 어느덧 시간은 흘러 대학교 2학년 학생이 되어있습니다. 그래도 아직 지연이를 잊지 못했습니다. 그녀를 어떻게든 다시 만나고 싶어 영계 통신이라는 동아리도 만들었지만, 별 소득은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죽은 자와 대화가 가능하다는 학우를 만나려고까지 했을까요. 그 학우를 통해 지연이는 만날 수 없었지만, 소민이라는 후배를 알게 되었습니다. 기우에게 호감을 가진 소민은 영계 통신 동아리에 가입합니다. 도대체 뭐 하는 동아리인지, 영계랑 통신은 하지 않는 것 같던데요. 아무튼 영계 통신 동아리는 오란고교 호스트부의 타마키 선배 같은 재력과 성격을 가진 김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유지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넘쳐날 정도의 돈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는 립 서비스마저 최상급. 
독자를 뿜게하는 오글거림을 갖춘 김원의 초대로 동아리 부원들은 그의 별장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화장이라는 저택의 오래된 살인사건과 만나게 됩니다. 영혼의 소행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밀실 사건에 관심을 두는데요. 역시 영계 통신 동아리 답죠. 이곳에서 영혼을 만나려 하나 봅니다. 그러나 영혼에 의한 사건이 아니라 사람에 의한 사건이라는 의심이 깊어지는데요... 과연 그들은 사건을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요?

이 소설은 미스터리물입니다만, 좀 가볍습니다. 사건 자체가 가벼운 건 아닌데요. 생각하고 추리해야 하는 맛은 없습니다. 하지만 읽어나가는 맛은 아주 좋아요. 중간의 유머 코드도 제법 있고요. 무리수를 둔 곳도 좀 보이기는 합니다만, 귀여우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니, 작가 말고 소민이요. 
아까부터 이 책이 재미있다, 아쉽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읽으라는 말이냐 말라는 말이냐...
글쎄요. 다만, 아쉬운 점이 좀 보완되어서 시리즈물로 나와도 좋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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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환상문학전집 11
필립 K. 딕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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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SF 명작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명작 중의 명작,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읽었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읽었기 때문인지 이미 이 책은 절판되었지만, 다행히 폴라북스에서 2013년 출판한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는 여전히 판매 중입니다. 

저자는 평생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요.  소설들이 영화화되어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 사랑을 느껴보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으니 참 안타깝습니다.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는 1982년 <블레이드 러너>라는 영화로 제작되어 상영되었는데 정작 작가는 영화의 완성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의 세계관은 새롭고 철학적이었는데요. 그 세상을 바탕으로 SF 영화나 소설들이 재생산되다 보니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약간 식상하다 느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장면,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 그만큼 작가가 우리에게 던져놓은 물음과 이야기는 커다랗고, 아직까지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겠죠.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무엇이 올바른 일인가, 어떤 게 진실인가. 사실과 진실을 구별할 수는 있는 것인가. 수없이 생각해야 했고, 긴장과 해소를 반복했습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의 도덕관과 <토탈 리콜>에서의 진실과 허구의 불확실한 경계가 이 소설에서도 보였습니다. 옳다고 믿는 것이 반드시 진실이고 정의인 것은 아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생각해 보아야한다...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저이기에, 주인공인 릭이 살고 있는 - 최후 세계대전 이후의 세상을 상상하며 생각해 보아도 '스스로의 지능과 판단을 가지고 있는 지적 물체'를 즉결 심판으로 '은퇴' 시켜도 좋은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없었습니다.

릭 데카드가 사는 세상은 최후 세계대전 이후 낙진으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되어 올빼미가 멸종하고 이내 대부분의 곤충을 포함한 동물들이 멸종하거나 멸종 위기를 맞은, 회색빛의 우울한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릭은 경찰서 소속 현상금 사냥꾼으로 일하고 있는데요. 우울감을 가진 데다가 머서 주의라는 종교 같은 것을 믿고 있는 아내와 둘이 살고 있습니다. 그는 언뜻 보아서는 진짜처럼 보이는 전기 양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웃들은 모두 진짜 양으로 알고 있지만요. 릭은 정말 살아있는 동물을 키우고 싶어 합니다. 동물을 키우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정교하게,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져 누가 보아도 진짜 같더라도 그 안에서 심장이 뛰고 있지 않다면 그에겐 아무 소용없습니다. 집에서 동물을 키운다는 건 인간으로서의 가치 지표와 같습니다. 좀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아마도 현대의 사람들이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를 가지고 싶은 욕망과 비슷한가 봅니다. 우리는 좋은 무생물을 원하고, 그는 좋은 생물을 원합니다. 살아있다는 건 언젠가 죽기 마련인데,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거금을 들여 동물을 키우길 원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죠.

릭은 안드로이드에게 붙은 현상금을 사냥합니다. 돌려 말해도 나아지는 게 없군요. 직설적으로 말해, 도망자 안드로이드를 찾아내어 '은퇴' 시키는 일을 합니다. 영원히 말이에요. 죽인다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죽으려면 먼저 살아있어야 하거든요. 안드로이드는 생명체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죽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입장에서는 죽음이죠. 그렇기에 죽지 않기 위해 도망칩니다. 릭은 그들을 찾아내고요.

이번 그의 임무는 넥서스 - 6 안드로이드의 은퇴입니다. 선배인 데이브가 추격하다가 실패한 녀석들을 찾는데요. 이번 일만 잘 해결되면 진짜 양을 살 수 있을 겁니다. 선수금 정도밖에 안되겠지만 열심히 일해서 할부로 사면 되니까. 부지런히 놈들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그들을 만나면서 릭은 조금씩 혼란스러워집니다. 뛰어난 인공지능 때문인지 평범한 인간보다 뛰어나고 판단력과 행동력도 좋습니다. 아니 뭐 그런 걸 따지지 않더라도 정말 저 안드로이드에게 생명이 없다고 말해도 좋은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릭이 아니라 제가 고민하는 건데요. 릭도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리사 마이어의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에 나오는 이코에게 생명이 없으니 사라져도 좋은 존재라고 말하기 어려운 건 독자와의 유대를 쌓았기 때문이죠. 이 소설에서는 별로 유대관계가 없으므로 제거해도 괜찮을까요? 다른 등장인물들과 다를 바 없이 이야기하고 생활하는데요. 릭은 자신이 제거한 안드로이드가 무기력한 다른 사람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죽이지 않고 살려두는 편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좋았던 건 아닐까 회의가 듭니다. 그들의 조직적 움직임에 당할 뻔했으면서도 자신의 행동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보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소설이 던지는 물음들을 일일이 열거하고 그것에 대한 대답을 하려면 길이가 무척 길어질 겁니다. 가장 신경이 쓰였던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라거나 '생명체'에 관한 기준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모두 이야기하기 힘든 걸요. 더 힘든 건 머리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모두 끄집어 낼 수 없다는 점입니다. 
SF 소설을 읽었지만, 철학자의 물음을 마주한 것만 같아요. 아무 생각하지 않고 SF 액션물로 읽었더라면 고민이 되지 않았을 텐데. 이 책은 그걸 불가능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저는 다시 <매트릭스>를 보고 난 후 , <다크 시티>를 보고 난 후 가졌던 기분, 그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세상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혹시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기억은 아닐까... 책장을 덮으며 잠이 들었습니다. 눈을 떠도 여전한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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랫맨
미치오 슈스케 지음, 오근영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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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러니까 이런 유령이라면 있다는 이야기야. '어쩌면 유령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겁을 집어먹는 사람은 머릿속으로 진짜 유령을 만들어 내고 있는 거야. 어둠 속에서 본 아무것도 아닌 물건이 창백한 사람의 얼굴로 보이기도 하고,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누군가의 속삭임으로 들리기도 한다는 거지. -p.71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본다고 합니다. 또는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도 하지요. 그런 사실을 알고 있기에 다양한 각도로 사물과 현상을 살피고자 하지만, 어딘가에 맹점은 있기 마련입니다. 소설 속의 명탐정들도 그러한데, 평범한 저 같은 사람이야 늘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요즘 나라 돌아가는 판을 봐도 그렇습니다. 모두가 획일된 생각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생각과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보이더란 말입니다. 이쯤 되면 사이코패스 집단인지 감응정신병인지, 그것도 아니면 사이비 종교의 일종인지 말도 안 되는 논리와 편견을 가지고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이므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가능합니다.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 수 있는 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게 과연 바른 소리인지 - 객관적으로 살펴보아 - 한 번쯤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미치오 슈스케의 <랫맨>을 읽다 말고 뉴스와 유튜브를 뒤적인 탓에 좀 과하게 나갔습니다.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닌데도 말이죠. 예를 들어 이 그림에서 랫맨만을 봤다고 쳐. 그때 '이건 쥐야.' 하고 믿어 버리면 의도적으로 견해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 이상 몇 번을 봐도 쥐라는 생각밖에 하지 않아. 반대로 '아저씨 얼굴'이라고 믿으면 더 이상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게 돼. 이게 명명 효과야. 쥐라고 해버리면 그냥 쥐야. 아저씨라고 하면 그대로 아저씨고. -p.71 


정치와는 상관없는 <랫맨>은 음악 하는 청년의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어린 시절 누나가 추락사 한 뒤 뇌종양을 앓고 있던 아버지마저 한 달 후 돌아가시면서 누나의 죽음에 대해 내내 의문을 품고 있던 히메카와 료는 현재 아마추어 록 밴드의 기타리스트입니다. 친구들과 결성한지 벌써 14년째, 홍일점인 히카리와 연인 사이입니다. 뜨겁게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미적지근하게, 그리고 오래도록 사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녀의 동생 게이에게 마음이 갑니다. 게이도 히메카와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레 알게 된 히카리의 임신, 그들은 중절을 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의문이 듭니다. 내내 피임기구를 사용해왔는데 어째서 임신을 했을까요? 5%라는 - 어떻게 낸 통계인지도 모르겠지만- 확률에 당첨되어 임신이란 걸 한 걸까요? 혹시 그녀가 다른 남자를 만난 건 아닐까요? 그런 의혹을 해소하기도 전에 히카리가 사망합니다. 누군가에 의해서요. 과연 어떻게 된 걸까요. 히메카와의 누나의 죽음, 그리고 히카리의 죽음엔 어떤 랫맨이 숨어 있을까요. 



 미치오 슈스케의 소설을 읽을 때 저는, 약간의 기대를 합니다. 스산하거나 촉촉하겠지 하는 기대 말이에요. <술래의 발소리>로 처음 시작했거든요. 말 그대로 종이신문을 읽다가 책 소개 글을 보고 찾아 읽었는데요. 미치오 슈스케란 그런 미스터리 하면서도 호러블한 소설을 쓰는 사람일 거라 막연히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잔잔하거나 약간은 아픈 글을 쓰기도 하는 소설가였어요. 이 책 <랫맨>은 어떤가 하면, 잔잔합니다. 반전에 반전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큰 굴곡은 없어요. 파고가 높지 않은 바다에 커다란 돌을 던져 넣은 것 같은 정도에요.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요. 저는 괜찮았습니다. 미치오 슈스케의 글을 좋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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