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환상문학전집 11
필립 K. 딕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많은 SF 명작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명작 중의 명작,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읽었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읽었기 때문인지 이미 이 책은 절판되었지만, 다행히 폴라북스에서 2013년 출판한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는 여전히 판매 중입니다. 

저자는 평생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요.  소설들이 영화화되어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 사랑을 느껴보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으니 참 안타깝습니다.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는 1982년 <블레이드 러너>라는 영화로 제작되어 상영되었는데 정작 작가는 영화의 완성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의 세계관은 새롭고 철학적이었는데요. 그 세상을 바탕으로 SF 영화나 소설들이 재생산되다 보니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약간 식상하다 느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장면,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 그만큼 작가가 우리에게 던져놓은 물음과 이야기는 커다랗고, 아직까지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겠죠.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무엇이 올바른 일인가, 어떤 게 진실인가. 사실과 진실을 구별할 수는 있는 것인가. 수없이 생각해야 했고, 긴장과 해소를 반복했습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의 도덕관과 <토탈 리콜>에서의 진실과 허구의 불확실한 경계가 이 소설에서도 보였습니다. 옳다고 믿는 것이 반드시 진실이고 정의인 것은 아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생각해 보아야한다...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저이기에, 주인공인 릭이 살고 있는 - 최후 세계대전 이후의 세상을 상상하며 생각해 보아도 '스스로의 지능과 판단을 가지고 있는 지적 물체'를 즉결 심판으로 '은퇴' 시켜도 좋은 것인가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없었습니다.

릭 데카드가 사는 세상은 최후 세계대전 이후 낙진으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되어 올빼미가 멸종하고 이내 대부분의 곤충을 포함한 동물들이 멸종하거나 멸종 위기를 맞은, 회색빛의 우울한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릭은 경찰서 소속 현상금 사냥꾼으로 일하고 있는데요. 우울감을 가진 데다가 머서 주의라는 종교 같은 것을 믿고 있는 아내와 둘이 살고 있습니다. 그는 언뜻 보아서는 진짜처럼 보이는 전기 양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웃들은 모두 진짜 양으로 알고 있지만요. 릭은 정말 살아있는 동물을 키우고 싶어 합니다. 동물을 키우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정교하게,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져 누가 보아도 진짜 같더라도 그 안에서 심장이 뛰고 있지 않다면 그에겐 아무 소용없습니다. 집에서 동물을 키운다는 건 인간으로서의 가치 지표와 같습니다. 좀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아마도 현대의 사람들이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를 가지고 싶은 욕망과 비슷한가 봅니다. 우리는 좋은 무생물을 원하고, 그는 좋은 생물을 원합니다. 살아있다는 건 언젠가 죽기 마련인데,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거금을 들여 동물을 키우길 원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죠.

릭은 안드로이드에게 붙은 현상금을 사냥합니다. 돌려 말해도 나아지는 게 없군요. 직설적으로 말해, 도망자 안드로이드를 찾아내어 '은퇴' 시키는 일을 합니다. 영원히 말이에요. 죽인다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죽으려면 먼저 살아있어야 하거든요. 안드로이드는 생명체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죽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입장에서는 죽음이죠. 그렇기에 죽지 않기 위해 도망칩니다. 릭은 그들을 찾아내고요.

이번 그의 임무는 넥서스 - 6 안드로이드의 은퇴입니다. 선배인 데이브가 추격하다가 실패한 녀석들을 찾는데요. 이번 일만 잘 해결되면 진짜 양을 살 수 있을 겁니다. 선수금 정도밖에 안되겠지만 열심히 일해서 할부로 사면 되니까. 부지런히 놈들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그들을 만나면서 릭은 조금씩 혼란스러워집니다. 뛰어난 인공지능 때문인지 평범한 인간보다 뛰어나고 판단력과 행동력도 좋습니다. 아니 뭐 그런 걸 따지지 않더라도 정말 저 안드로이드에게 생명이 없다고 말해도 좋은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릭이 아니라 제가 고민하는 건데요. 릭도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리사 마이어의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에 나오는 이코에게 생명이 없으니 사라져도 좋은 존재라고 말하기 어려운 건 독자와의 유대를 쌓았기 때문이죠. 이 소설에서는 별로 유대관계가 없으므로 제거해도 괜찮을까요? 다른 등장인물들과 다를 바 없이 이야기하고 생활하는데요. 릭은 자신이 제거한 안드로이드가 무기력한 다른 사람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죽이지 않고 살려두는 편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좋았던 건 아닐까 회의가 듭니다. 그들의 조직적 움직임에 당할 뻔했으면서도 자신의 행동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보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소설이 던지는 물음들을 일일이 열거하고 그것에 대한 대답을 하려면 길이가 무척 길어질 겁니다. 가장 신경이 쓰였던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라거나 '생명체'에 관한 기준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모두 이야기하기 힘든 걸요. 더 힘든 건 머리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모두 끄집어 낼 수 없다는 점입니다. 
SF 소설을 읽었지만, 철학자의 물음을 마주한 것만 같아요. 아무 생각하지 않고 SF 액션물로 읽었더라면 고민이 되지 않았을 텐데. 이 책은 그걸 불가능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저는 다시 <매트릭스>를 보고 난 후 , <다크 시티>를 보고 난 후 가졌던 기분, 그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세상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혹시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기억은 아닐까... 책장을 덮으며 잠이 들었습니다. 눈을 떠도 여전한 세상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